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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실 솟아 올 새해에는

둥실 솟아 올 새해에는 지금은 서리서리 또아리 틀어 산 삶 추스려, 하릴없이 강에 흘려 보내야 할 시간 아무 날 어느 때든 안에서나 어디서든지 마음 문 열어 감싸안아야 했는데 모든 사람 기쁨을 주며 서운한 기색 싫은 표정 한 번 넘보아지 않은 우리를 앞세운 삶 살아야 했는데 나만의 유익과 안위를 위해 술수를 부리지는 않았던가? 당 짓고 원수를 맺지는 않았던가? 사랑과 온유와 화평으로 더욱 낮아져 우러르며 질박하고 진솔한 삶 살아야겠네 갖은 풍상 일념으로 버텨 사는 청솔 되어 살아야 겠네, 둥실 솟아 올 새해에는.

1. 오늘의 시 2023.09.04

살아가기 2

살아가기 2 산을 오른다 개미도 토끼도 꽃뱀도 여우도 돼지도 노루도 염소까지도 바람 잠재우지 못해 청솔잎 울어대는 새벽 산잔등을 오른다 강아지를 앞세우고 승냥이를 달고 송아지 타고 허튼춤 추며 두 발로 기는 놈 세 발로 걷는 놈 네 발로 뛰는 놈 어떤 자는 온 몸으로 굴러간다 가쁜 욕망에 밀트려 허공에 산새 날리고 발싸심하며 하늘이고 간다.

1. 오늘의 시 2023.09.03

천리향

천리향 月靜 강 대 실 하늬바람 숨 돌리는 틈새로 솔솔 풍겨 오는 향기, 밤이면 샛강 여울목께서 만나 내 팔 베게하고 별 찾다 왜 이리 밤이 짧냐며 울먹이던 잊으려야 잊히지 않는 그녀 거기 천리향 활짝 피었다 오랜만에 군산 부둣가에서 만나 회포 안주하여 한잔 한다 그리움 얼얼히 취해오고 여우비에 묻은 갯냄새 거나하다 술이 어물어물 주정한다 왜 이렇게 세월 덧없이 흘러 반백이냐며 비척이며 지나온 날들은 어디로 갔냐며 빈 술병 천리향에 묻힌다. (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1. 오늘의 시 2023.09.03

사죄

사죄 번지레히 찾아 들 땐 온 동네 바람 일더니 외지 사람 들아닥쳐 자식 찾아내라 닦달하자 골방에 틀어박힌 건너 마을 천복이 어르신 문안 올리고 길처 산소 찾아 성묘 드리던 날 거처 마련해 주지 못해 눈 못 감겠다 시어 담보 잡히고 빚 둘러대 아파트 하나 이름 앞으로 놓고 쾌유하셔 가보자 말씀 올리자 쟤가 더 고생했다며 며느리까지 챙기고 눈시을 붉히시더니 손자들 나란히 꿇어앉히고 진솔 고해 보지만 숫제 말문 닫은 우리 부모님 생전에 저지른 죄 탓으로 압니다.

1. 오늘의 시 2023.09.03

노을녘에서 2

노을녘에서 2 눈 질끈 한 번 감고 뜨락 봄의 자락에 까만 씨갓 한 알 묻었더라면 강 언덕에 꽃 흐드러져 켜켜이 타드는 노을 부시도록 아름다울 것을 차마 발 돌리지 못해 무지르는 바람에 핥이며 한 생 풀섶에 엎디어 살다 무심결 허리 세워 앞 보면 안개 속 아련한 고갯마루 오금이 저려 오지만 여우 넘보지 못한 참대밭으로 하늘 흔흔히 우러를 수 있어 이 아침에도 찬란한 해는 진실의 샘물 길어 올린다.

1. 오늘의 시 2023.09.03

꽃 새악시에게

꽃 새악시에게 삼십여 년 답쌓인 그리움 아슴한 기억 곧추세워 바람으로 찾아갔다 인기척에 사립 밀치자 감나무 아래 복더위 식히다 첫 눈 준 네 모습 정갈해 하도 어예뻐했더니 석중 삼촌 강권하여 딸려 보냈다 색시야, 꽃 새악시야! 애통해 한 네 탓이었더냐 갈재 굽이돌고 물 건너자 하늘 여우비로 울더니 그만, 마음을 고정하거라 신랑 된 네 식구 호강 받으리니.

1. 오늘의 시 2023.09.03

고향 그리운 날

고향 그리운 날 姜 大 實 간 밤 몽롱히 두통으로 남아 가까막한 잔디 구장 찾는다 동구 밖 전답으로 바라보다 뜸부기 좇는 농사아비 되어 온 바닥 맨발로 허댄다 불현듯, 골짜기 땅 부쳐서는 커나는 입 풀칠도 힘들다고 누더기 짐 포개 싣고 떠나며 먼 산 바라보고 울먹이던 박씨 얼굴 살아올라 두덩에 내려놓고 하늘 본다 어느 결에 빌딩 넘어 고향에서 풀잎 스친 바람 날아들어 가슴을 어루만진다.

1. 오늘의 시 2023.09.02

비탈에 서서

비탈에 서서 한 우물을 생각하며 구린내 싸매고 반생을 살았다 옆 돌아 볼 틈 없이 우리를 머리에 두고 끌어들이기에 눈이 벌겧고 박리라 포장하여 번개머리 굴려 넘겨 왔다 많고 많은 속내를 간통하다 돌아들면 빠개질 듯한 두통이여 식어 가는 심장의 밥 데워 다오 멀어져 가는 눈과 귀여 가슴의 신음 소리 만져 다오 가난도 사랑도 그저, 심곡 눈물로 삭히며 꽃 心 부여안고 기도하는 임이여 어둠을 꽃등으로 밝혀 봄 향기 폐부에 부어다오

1. 오늘의 시 2023.09.02

누구 없소

누구 없소 사랑도 아닌 것이 그리움도 아닌 것이 천 근 만 근 무게로 옥여 죄 멀거니 하늘 바라본다 앙가슴 터져 와 '누구 없소, 그 아무도 없소!' 요염한 보름달이든 한바탕 소낙비든 아님 불바다도 좋다고 목 놓아 부른다 언하에 먹장구름 하늘 덮더니 뇌성벽력 앞세우고 한바탕 내려꽂는 소낙비. 깊은 속 복판에 앙버티던 바위 덩이 넌지시 꼬리 사린다.

1. 오늘의 시 202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