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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소나무

서글픈 소나무 / 月靜 강 대 실 웬 변덕들 이냐는 듯, 늘 청청한 자태로 속내 솔솔 바람에 실어 보내더니 네 그윽한 향기에 취한 인간들 이기의 사슬에 옥죄어 야음 태워져 와 처음 역전에서 만났을 때는 고향집 이웃 잘 아는 형 같아 반갑고 마음 든든하더만 음풍 소슬한 도회 회색빛 야박한 인심 마음 내려놓을 수 없더냐 점점 영걸스런 모습 잃어가더니 오늘은 산마을 벗들 만나 안부 전하고 오는 길, 네 신음 소리 듣는다.

1. 오늘의 시 2023.09.13

군걱정

군걱정 / 월정 강대실 모락모락 타는 바람 가슴에 안고 햇살 좋은 오월 민들레 홀씨처럼 홀연히 둥지를 박차고 떠나 뻗쳐 오는 손길 하나 없는 가시밭 길 스스로를 태워 한 발 한 발 헤쳐 간 너 퍽이나 대견하고 한없는 보람이었지 낯선 하늘 갈수록 생경한 불모지 바위 틈바구니 발붙임의 힘겨움이 먼 산 바람꽃 같은 그리움 불렀나 피붙이 살 내음 얼마나 목말라 소라 속 같은 거처 가득히 채울 한 자락 빛살 바라는 갈급한 음성 그 외마디 짠하고도 다급해 지어미랑 갈마들며 곁에서 끈적끈적한 빈 방의 온기를 올려 주곤 하지만 계절은 거침없이 오고 가는데도 박힌 돌멩이같이 꼼짝 않는 너 혹여 외기러기 날개 될까 이는 군걱정.

1. 오늘의 시 2023.09.13

그대의 고독을 위하여

그대의 고독을 위하여/月靜 강 대 실 이웃도 우정도 사랑까지도 헌신짝 버리듯 내던지고 뒤돌아보지도 않는 세상 얼굴 알아보고 눈인사 건네는 이웃 있어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요 이름 기억하고 나직이 불러 주는 친구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 일이요 거처 어이 알고 청장請狀 보내온 일가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요 고독에 슬픈 그대여! 그대 슬픔에 아픈 나 있음이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이오.

1. 오늘의 시 2023.09.13

또 한 해를 위하여

또 한 해를 위하여 / 月靜 강 대 실 한 삼십 년쯤 흘러 길을 냈을까 한 오십 년쯤 불어 방향 잡았을까 들 가운데 굽이쳐 흐르는 저 강 노령의 낮은 봉 넘나드는 된바람 해가 뜬다고 달리고 졌다 누웠을까 꽃이 좋아 웃고 싫다해 달렸을까 맵고 쓰겁고, 짜고 떫고 실지라도 업보로 알고 꿀꺽 쓸어 삼키지만 묻어 둔 아픈 기억 하도 가슴 시려 뾰로퉁 돌아앉아 발등을 찧다가도 흔적이라도 남는 일은 이 길이라고 연륜의 거울 비추며 길을 독촉한다.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

1. 오늘의 시 2023.09.13

행복 예감

행복 예감/ 月靜 강 대 실 곰곰이 생각치 않아도 낯 들고 살 수 없는 부끄럼 많고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도 드러난 죄 헤아릴 수 없는지라 가시관 쓰고 옹아리 앓느니 차라리 죽어 진토 됨이 마땅하나 질긴 것이 목숨인지라 명줄 세월강에 묻고 버텨 왔지만 동기간에는 다정다감한 형제요 이웃들은 잔정이라도 나누자 하고 친구들 몹쓸 놈이라 침 배앝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아직도 육신 멀쩡하고 욕망은 끓어 마음은 앞산이라도 옮길 것 같으나 피고 질 때를 알아 지키자고 꽃자리 밤사이 잎새에게 내주고 산 찾으면 둘러서서 반기고 하늘 더없이 높고 바람 서늘하니 이제는 찾아올 것 같은 행복 예감에 마음은 새털같이 창공을 난다.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

1. 오늘의 시 2023.09.13

화분을 들이며

화분을 들이며/ 月靜 강 대 실 천더기로 버려진 너 측은지심에 퇴근길 품어 왔다 초초히 진데 마른데 골라 주며 때 맞춰 정을 챙겨 부었다 천연스레 낯설음 딛고 뜨락 가득히 미소 날리더니 스산한 바람결 속 달마중 하다 무서리 먹고 숙연해진 너 저어해하지만 안으로 맞아 삼동의 긴 강 함께 넘고자 함은 좋아한다는 것은 끝내는 목숨까지도 책임 져야 함을 믿기 때문이란다.

1. 오늘의 시 2023.09.12

낙화를 꿈꾸다

낙화를 꿈꾸다 / 월정 강 대  실지명이 되면 돈 버는 일손 거두고비단옷 못 입었어도 고향 깊숙이 들어가호수가 잘 보이는 산코숭이 양지 녘봄이면 까투리 새끼 치고 푸두둥 날아오르고밤에는 뻐꾸기 뒷산 지켜 주는 데다명매기집 같은 토막이라도 하나 마련하여한적히 살기로 맘먹었지요집 앞 길 마당에 두어 뙈기 텃밭 가꾸고가축도 얼굴별로 몇 마리씩 치며틈틈이 물 가양에 나란히 나앉아못다 본 책 보고 시도 짓고 살자고당신과도 찰떡같이 약속했지요허나, 낯바닥이 땅 두께 같은 욕심이 도져눈귀 막고 입 딱 다물고 오 년만 더 벌어아무짝에도 철딱서니 없는 새끼들제냥으로 숟가락 들게 하자고내게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터에옷 벗을 연령까지 따라 늦춰졌으니떡 본 도깨비처럼 좋아 날뛸 일이요만이정표 바라보면 앞길이 빤히 ..

1. 오늘의 시 2023.09.12

가을을 두고 간 여자

가을을 두고 간 여자/ 월정 강대실 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 먼 하늘 나의 별 가슴에 얼굴을 묻고 지새워 목쉰 독백 나누었을까 팔려가는 송아지 같은 속울음 소리 차창 밖 가을 산은 알아챘을까 바람은 새살새살 달래 주었을까 하마, 망각의 강 질러 멀리 갔을까 산책길 붉나무 연신 떨구는 잎새 헤며 추억의 향기 헤적이고 있을까 계절이 오고 갈 때면 아리게 떠오르는 가을을 두고 낙엽 따라 간 그 여자 앙가슴에 꺼멓게 멍울지는 그리움.

1. 오늘의 시 2023.09.12

시가 걸어오다

시가 걸어오다 / 月靜 강 대 실 쇠물가마 속 욕기가 오각의 씨알 꿀단지 싸안듯 붙안고 늘어져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 등 타고 솟대 끝 기어오르고 천지 사방 들쑤시고 다녀도 털끝만치도 기미가 없다 첩첩산중을 짐승같이 싸대다 파도가 물기둥 치는 벼랑을 날아 공룡처럼 으르릉으르릉 울부짖는다 몰강물에 쫙쫙 감아 땋은 머리 항라 치마저고리에 외씨버선 신은 금가락지 같은 詩 하나 보시시 눈웃음 지으며 이내 마음의 오솔길 은빛 바람결 따라 하느작하느작 내게로 걸어온다.

1. 오늘의 시 2023.09.12

현해탄

현해탄 / 월정 강대실 아래로 아래로 낮추면 저리 깊어지는 것을 깊디깊어지다가는 푸르러 저 눈 끝 둥둥그런 적멸궁에 이르는 것을 바람에 드리이고 긴긴 세월강에 우려내고도 한 마름 다 차도록 산머리 뜬구름 쫓다 외곬밭 손바닥만큼도 갈아엎질 못하고 쑥대 우부룩한 이랑에 놀 빛 낭자한 회한 갑판을 내리갈기는 빛살과 해풍 간기 밴 물비린내 묵정밭 불을 놓는다.

1. 오늘의 시 2023.09.12

물통골 약수터

물통골 약수터/월정 강대실       구전되어 온 쌀 한 홉 졸졸 약수로 흐르는추월산 큰 자락 물통골 중허리 약수터고래로, 토박이들 믿음에 신령님 계셔경외심이 범접 삼가고 아스라이 바라만 본 세상 바다 헤쳐 가다 숨이 턱턱 막히면한달음에 찾는 아늑한 부모님 품만세에 들어서는 더없이 정이 가는 적멸궁아내랑 향기 쫓아 도란도란 찾는 우리 부모님 연년세세 길일 택해 신령님께 부민 풍년과 무병장수 발원하고지극 정성 마련한 재물 괴어 올려소지를 사르며 길어 올린 정화수 귀엣말 나래 달려 뜨르르 사방에 퍼져갈봄 여름 없이 발길 끊일 날 없지만아버지 어머니 치성 높이 기리고길이길이 명소로 보존되길 원함이리.   초2-898

1. 오늘의 시 2023.09.12

새 눈뜨기3

새 눈뜨기3 / 월정 강 대 실 -원계정遠溪亭에서 반석 반석 하지만들 어이 반석이라고 다 반석일 수 있으랴 함양 병곡 가촌 천산마을 향기 그윽한 한 시인님 안내로 성하지열에 순수 하나 안고 찾았다 초입 잠수교를 건너자 강섶 천혜의 바위 둔덕 위에 옥계의 사계 외로 지켜 서 있는 원계정 처마 밑 움키듯 쌓아 올려진 죽담 네 귀 버티고 서서 오로시 일월을 헤는 다섯 소나무 풍채 의젓하고 기력 왕성했던 것 같은 헌데, 작년부터란다 반석 틈바구니에 명줄을 댄 셋 칠십년 이래 타는 목마름에 날로 기력이 쇠잔하더니 올 봄부턴 외관이 검붉게 변하며 사경 헤맨 지가 노송은 반석은 반석이 아니었다.

1. 오늘의 시 2023.09.12

호반길을 거닐며

호반길을 거닐며 / 월정 강대실 당초엔 이 길이, 안온한 보금자리 이었느니 네들만의 세세연년 엉클어지고 성클어지던 관광 제일의 깃발 든 과욕이 막무가내로 덤벼들어 여기저기에 콰앙쾅 말뚝을 박아대더니 육중한 삽이 냅다 밀어붙이고 다져 번지르르 검은 포장 씌우고 양켠에 저 단단한 철책 둘러쳤나니 금족의 강 넘고 건너 옛처럼 어우렁더우렁 살고 싶은 목마름에 긴긴 장마 칠흑 야밤을 훔쳐 늘늘히 여린 발 디밀어 보지만 날이 새면 그뿐 무참히 으깨진 꿈 검은 땅 위에 낭자한 아픔 정갈한 아침의 호반길 칡넝쿨 풋풋한 피비린내에 죄 짐 도맡아 진듯 휘청이는 발걸음. 장성호반길

1. 오늘의 시 2023.09.12

새 눈뜨기2

새 눈뜨기2 / 월정 강대실 -부분일식을 보며 61년 만의 재연 우주의 생 쇼 생애 최고의 행운 맞을 기대에 커닿게 요동치는 가슴 발그레한 동문 위로 불끈 솟는 태양 흐르는 듯 멎는 듯 서천을 향한 걸음 가슴 조여드는 긴긴 시간 순간 가양이 열리기 시작하고 누에가 야금야금 뽕잎을 쏠아 먹듯이 차차…… 좁다래지는 둥근 잎살 반쪽…… 끝내 새색시 눈썹만 하다가 눈을 의심할 멈춤의 찰나 뒤에 차오르는 듯 아닌 듯 연방 동그란 모양으로 널따래지다 이내 해 되어 유유히 제 갈 길 찾아 찬란한 빛살 쏟아 내는 의젓함 맞아, 공로 아무리 크고 빛나도 언제 어디서고 있을 한낱 헤살질에 받아 마땅할 영광 가리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영원일 수 없다는 것 대명천지에 우주가 오롯이 계시한 묵시록 확인한다 난생 처음이자 마지..

1. 오늘의 시 2023.09.12

말바우시장

말바우시장                    月靜  강  대  실              웬일인지  마음 헛헛하고일손 무거워지는 날은저린 그리움 새떼같이 몰려와말바우 저자 거리로 나선다생의 구렁에서 허덕여 본 사람은 안다남모른 눈물 흘린 사람은 보인다현란한 네온의 길섶길나무 성긴 그림자 밑에그믐달처럼 졸고 있는 향리한생, 꿈 한 동이 땀 한 섬휜 허리 짊어지고 버티다검은 비닐 봉다리 봉다리마다한 한 저분 더 얹어 주는 어머니. 말바우시장

1. 오늘의 시 2023.09.12

다시 너를

다시 너를 /월정 강대실 손사래 향한 헤픈 미소로 바람처럼 돌아선 너, 눈길은 하냥 뒤를 쫓지만 달랑 빈 깡통처럼 남겨두고 산모롱이 돌아서 사라졌다 가눌 길 없는 허전함, 개울가 검바위를 찾는다 잔바람에 꽃잎 하르르 날리는 오후의 적막한 신작로 너머 가슴 숭숭한 산 어슬렁이다 멧부리 위 두둥실 흰 구름 멀거니 바라보며 흐르다가 여직 잠 깨지 않아 앙상한 가지 많은 은행나무 붙들고 또 한 겹 고독의 더깨 쌓으며 앞산 붉어질 날 기다린다. (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1. 오늘의 시 20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