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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을 걸으며

숲 속을 걸으며 월정 강대실 먼발치에서는 나무 외에는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숲 속등어릴 쓰다듬고 손도 잡고 내 마음과 숨결 첩첩이 불어 넣으며이리저리 길 내고 걷는다긴긴 여정 끝, 아득한 침묵의 행자 진대나무에 기대어 숨 돌리면 전율처럼 느껴 오는 숲 마을과 정겨움서로 손에 손 덧잡고갈맷빛 소망 하늘 끝 펼치고 있었다 여기저기 둔 빈자리에 뿌리박은 너럭바위 해와 달 들러서 가고갈 길 잃은 목숨과 지친 나래 감싸 새 힘 받고 마음의 갈피 잡게 하였다숲 속을 걷고 걸으며, 사람도 한 물 되어 말 섞어 보지 않고는 든 것도 본받을 것도 없다고 지레짐작 말 않기로 했다. 허형만의 「겨울 들판을 걸으며」에 화답하며

대숲을 바라보며

대숲을 바라보며 월정 강대실 자꾸만 달라붙는 보푸라기 생각들마음도 바람개비처럼 가만있지 못해창밖 산비알 대숲에 눈 돌린다 푸르른 대숲에 마음 잔잔해지고수다식구 삼시 세끼 녹록치 않아도항상 집안 가득 햇볕 불러다 놓고동네 어귀 왕대밭 사들이셨던 학자금 캐어 낼 생금밭 일구자며틈만 나면 자식들 앞세우고 나가땀 흘리며 말씀 일러 꿈을 심고울울창창 대밭 가꾸셨던 쥔 것 없는 죽물꾼 찾아오면어서 가 쪼개고 절어 본때 있게 살라며생대 한 짐 밀어주시고는뒷장날 죽물전 찾아 허기 함께 달래셨던 고향 마을 안 고샅 큰 어르신청대처럼 푸르른 뜻 보인다소래기 크고 너른 마음새록새록 떠오른다.

천서를 보다

천서(天書)를 보다 월정 강대실 도지는 역마살간밤에 쌓인 숫눈 밟으며산성산 마루 꼭두서니빛 햇살 마중 간다눈짐 진 솔가지 사이 스미는 빛살은전을 뿌린 듯 찬란한 눈밭길을 찾는 걸음아직 꿈속처럼 너무 서툰 나해장술에 대취한 듯 이리저리 흔들리다성루에 올라앉는다멀리서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문득 먹먹해지는 가슴골감히 새 한 마리 날아들어 점찍지 않은아득한 설국나는 천서(天書)를 본다하늘과 땅 산과 강 신작로와 가로수의 행렬……에돎의 곡선마다신비로운 계시가 깃들고눈부신 아름다움이 살아난다.

대숲에 들어

대숲에 들어 월정 강대실 얼마나 심지가 곧아야눌리고 비틀려도 끝내 꺾이지 않는,저리 꼿꼿이 일어설 수 있을까 얼마나 마음밭을 갈아야비바람 눈서리 맞고 더욱 푸르른,저리 청청히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심성이 고아야쉼 없이 비질하여 하늘 드러내는,저리 세상을 맑혀 살 수 있을까 해 저문 종심강 대숲에 들어한생 뜨고도 보지 못한 청맹과니,부끄러운 내 모습을 본다.(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아내의 발

아내의 발 월정 강대실 길마 무거운 소,드러눕더니 며칠째 꼼짝 못하는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자락쏘오옥 나온 두 발오롯 가족들 바람의 고임돌 되어세상 맵고 짠 것 다 심곡에 묻고한 생 바닥으로 살아온.구부정한 발가락 거뭇거뭇한 발톱금이 가 벌어진 발뒤꿈치며여기저기 박인 옹이와 굳은살,도짓소로 살아온 세월의 유산.한밤, 구도자 고행의 훈장에서성자의 말씀 들린다내리 걸어야 할 길을 본다두 발이 몰래 흘렸을 눈물 헤아리다마음속 촛대에 불 밝히고참회의 뜨거운 경배발볼에 기인 입맞춤 한다.(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01:57:11

무당벌레

무당벌레 월정 강대실 사온일 거둥길 따라긴 동면 든 산방 찾는다나들문 빗장 열어 제치자덥석 집어삼키려는 시퍼런 냉기도망치듯 비집고 들어서니때꾼한 무당벌레 한 마리조아리며 비손하며 인기척한다이자가, 무단 투숙을!감히 어디라고 여기서반문 열고 끌어내려 하자갈쌍갈쌍한 눈빛,나그네가 외려 주인 노릇을…엄동설한 어이 건너라고!가슴 찔리는 소리 들린다.(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언덕 위 미루나무

언덕 위 미루나무 월정 강대실 너를 만나려고우듬지 높다란 까치집 보며여기까지 달려왔다한 그루 나무가 못되고곁가지도 되지 못하고시려운 강변에 어설픈 해거름벅수처럼 서 있다언덕배기 드센 바람 혼자 버티고 서서까치 부부 사랑을 끌어안고하늘 끝 치켜올리는 이 향기나를 안기에도 내 가슴이늘 부족하기만 한 무지렁이드레드레 부끄러움 매달고바람 높은 둔덕네 발아래 서성인다.

호수

호수 월정 강대실 외진 마을에 호수가 들어섰다산이 슬그니 다가가 보듬자 산수(山水)는 수려한 금실에 살게 되었다 만화방창한 어느 춘일 우연히 수면 위 자기 모습 본 산, 풍광 찾아드는 그 어떤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자신감에대처로 떠날 꾀를 부렸다호수의 깊은 마음 떨칠 요량으로남몰래 온몸 두레질하여 한여름에 이를 즈음에는허벅지가 빤히 드러나 보였다, 어느 날 이를 눈치 챈 호수, 속앓이하다가때마침 들른 먹구름께 아뢰니연거푸 한숨 몰아쉬더니 이제는 산까지 바람 들었다며 삼일곡을 해댔다 호수는 다시 안온히 산 품고산은 호수 얼굴 보며 잘 살고 있다.

폐교의 메타세쿼이아 학동

폐교의 메타세쿼이아 학동 월정 강대실 가마골 길목 외진 산마을 소년촌가파른 산자락 밑 폐교지경의 열아홉 그루 메타세쿼이아 학동깊어가는 산빛에 흠뻑 젖어애초의 선생님 말씀 저버리지 않는다일 열로 길게 세워진 채로운동장 가득 푸른 그림자 담고오늘도 허허로운 학교 지켜 서 있다어깨 너머 들은 배움이련만가뭄 세상에 본이 되어야 한다는 듯한 번을 틈 버그러진 일 없다서로 어깨 나란히 겯고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도란도란산 너머 먼 산읍 길 까치발로 내다보며그때 함성보다 더 푸른 기상높고 넓은 하늘에 펼친다.

노거수(老巨樹) 2

노거수(老巨樹) 2 월정 강대실 별의별 병이 다 있나 보다인술도 청순한 바람도 소용없어더는 회생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터덕거리며 삼동의 강 겨우 넘더니성큼성큼 찾아오는 화신에도생의 끝자락 틀어쥐고눈을 한번 깜짝할 생각이 없다 부끄럼 없는 나들잇길에삶과 바꾼 생채기만 덕지덕지 안고이제는 본향으로 가시려나 보다 아름다운 결단의 길에살아도 살았달 수 없는 천한 목숨,이리 우러러 가슴앓이만 한다.

하늘길

하늘길 월정 강대실 공원 초입 외따로이 선 모과나무할 일 없이 그냥 우두커니, 먼 산만바라보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철이 되면 늘 그랬듯잎과 꽃 피우고열매 매다는 줄로 알았습니다. 지명(知命) 고갯마루 턱훌쩍 올라앉아 종용히뒤를 돌아보다 알았습니다. 삼시선(三時禪)으로빛과 어둠 비와 바람 견디며잎도 꽃도 열매도 맺고 동안거 하안거 부단히 마음공부 하여눈에 안 띄게 조금씩 조금씩오늘도 하늘길 오르고 있었습니다.

병아리눈물꽃

병아리눈물꽃 월정 강대실 병아리눈물꽃이랑 얼굴 맞대보았나요머리 조아리고 앉아눈물 뚝뚝 흘려본 적 있나요 행여 눈에 띌세라숨소리라도 새어 나갈세라바람도 눈길 보내지 않는맨땅 끝자리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앙증스런 자태로옴실옴실 모여 앉은얌전 자르르한 꽃 우리님 단아한 말씀이 듯마음문 안 열면 볼 수 없는참깨 알 같은 꽃한없이 겸허가 몸에 배인 그 꽃.

송강정에서

송강정(松江亭)에서 월정 강대실 송림 속 가파른 돌계단시인의 향기 좇아한 단 한 단 밟아 오르니 누마루 지키고 선노송 긴 그림자길손 반겨 옆자리 내주고 증암천 백사장 에두른질펀한 창평 들판황금물결 일렁이어 오면 반짝이는 청댓잎, 연신 사운대며임을 연모하는 여인의 노래애절히 읊조리는데 저만치 가년스런 산죽(山竹)들주인 오실 날만 고대하며줄줄이 늘어서 있다.

면앙정에서

면앙정(俛仰亭)에서 월정 강대실 댓잎 스적이는 소리 귀를 씻는죽림 속 끊어진 듯 이어지는돌계단 밟아 오르니 주인의 숨결 오롯이 어린우람하고 청청한 참나무 한 그루솔솔바람에 실려 오는 임의 향취 사방 확 트인 정자툇마루에 동그맣게 올라앉으면발아래 산천 아득히 펼쳐지고하늘 땅 가이없는데 강호 제현 모여들어 유유자적하다국사를 개탄하던 아픈 심상뜨락에 여태 아른거린다.

청솔밭에서

청솔밭에서 월정 강대실 묵언(默言) 한입 가득 사리물고어둑한 산코숭이 오솔길 따라새날의 문을 연다 단잠 깬 산새 한 마리고요의 장막 박차고, 푸드득!여명을 부르는 힘찬 날갯짓 풋풋한 대기, 그윽한 솔향허명(虛名) 부푼 가슴 파고들어티 없는 겸손을 일깨우고 청솔 창창한 산자락 가로질러눈과 귀 씻어 주는은은한 예배당 종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