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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날

산행 날/ 월정 강대실 숨 고르고 싶은데 날아든 안내장, 외할머니 집 가듯 친정집 가듯 방맹이질 치는 가슴 산행 날 손꼽는다 무게가 될 것은 눈곱까지 내려놓고 차에 오르면, 세월에 헐거워졌지만 태산이라도 오를 수 있다는 듯 한 차 가득한 주체 못할 욕망들 도란도란 휴식 같은 풍광 내다보며 흥타령에 궁댕이 몇 번 틀어 앉으면 산문 불끈 솟아오르는 한창때의 기운 송골송골 땀방울이 밟아 오른 산정 멀리 바라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 꿀맛 같은 도시락 잔치 벌이고 나면 불꽃 진 생의 아쉬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서산을 물들이는 금빛 낙조 바람의 나래 잡고 가뿐히 내려와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권하는 하산주 가슴속 시궁창에 떠오르는 보름달 생기 돋은 산객들 귀로가 가볍다.

1. 오늘의 시 2018.07.01

귀로歸路3

귀로歸路3 / 월정 강대실 한 손에 책가방 또 한 손엔 빈 자루랑 된장 단지 챙겨 들고 쌍치행 버스에 올라타면 어느새, 귀에 고소한 고향 한 시간여를 짐짝처럼 끼이어 터덜터덜 두어 시간 자갈길 걸어 어스름 매방아 고샅에 들면 꼬리치며 달려드는 꺼멍이 뒤로 희색 가득한 어머니 얼굴 지금은, 훌쩍 서산 노을 따라 가시더니 농골 막창 산밭 윗머리에서 아슴한 동네 어귀 내다보고 계시는, 아내와 반 이야기 참도 안 되는 찾을수록 가슴 설레는 길.

1. 오늘의 시 2018.06.08

큰애에게

큰애에게 보내는 메일/ 월정 강대실 얘야, 시간 한 번 내거라! 잠깐 아무리 곁눈질 할 틈이 없을지라도 근일 중에 네 안이랑 민성이랑, 꼭 거기 초입 하당에 아버지와 오랫동안 벌꿀보다 더 달고 끈끈하게 통정해 온 친구 중 한 분이 계시니라 미루지 말고 전화해 애비 말씀 드리고 찾아뵙고 인사 올리고자 한다고 불편하지 않은 시간 허락 받아라 미리 지척이 천리라고 이 근년 서로 간에 전화만 그넷줄같이 오갔지 상면 없어 어제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발 너르기가 거기 앞바다 정박선이요 노적봉보다 더 큰 덕 쌓은 분이시라 너희들이 꼭 찾아뵙고자 한다 했다 가서는 곡진히 정례에 약주 올리고 언제고 올라오시면 꼭 한 번 뵙잔 다고 말씀 잊지 말고 틀림없이 올려라 시종 말씀 새겨듣고 일어설 때는 거처가 근동이라 또 문..

1. 오늘의 시 2018.05.26

사모곡 2

사모곡思母曲2/ 월정 강대실                                                             천수 야박하여 백방으로 내로라하는 명의 찾았지만 용한 의사 못 만나고 갖은 첩약에 단방약 다 썼으나 약발 못 받아 끝내 예순일곱에 귀한 명줄 내려놓으신 어머니 만가 소리 구슬픈 꽃가마 타고황망히 이승의 강 건너시더니꼭 한 번만이라도 뵙옵기 학수고대해도왠지, 이때까지 만날 길 없고 내 안에만 계셔해마다 백화 흐드러지는 오월 이맘때가 되면앙가슴 저미는 그리움 도집니다한 생 터벅거리며 살아왔다고저승걸음이 이리 진땀이냐는 서글픈 눈빛,애원하는 자식들 둘러보시고는 스르르 눈 감고된 숨 몰아쉬더니 끝끝내 말문 못 여신어젯밤 꿈길에, 한 자식이라도 찾아들까 하고선잠 깨어서 밤새껏 눈..

1. 오늘의 시 2018.05.07

덕실마을 채씨

덕실마을 채씨/ 월정 강대실 진눈깨비 때리던 동짓달 허접한 살림살이 주섬주섬 챙겨 싣고 논두렁길 박차고 떠난 덕실마을 채씨 산처럼 치닫고 물처럼 휘감기며 부자 동네에다 아파트도 장만하고 새끼들이랑 옥작옥작 살더니만 어쩌다 중간에 잘못 생각하여 숫되고 세상모른 자식 백일몽에 젖어 일일년년 뒤통수만 바라보고 살자니 삶이 한 곡조 노래보다 서글픈데 어느덧 짓눌러 오는 세월의 무게 질화로 속 온기처럼 그리워지는 가난 절름절름 망초꽃 같은 백발 머리에 이고 노을 든 한강에 씻는 바람 아홉 섬.

1. 오늘의 시 2018.05.04

풍경5-밤골

풍경5-밤골 ✽ / 月靜 강대실 어둑살 땅뺏기 하는 당산 마당에 드니 까치가 머리오리가 세었다며 통성한다 맨손으로 호랑이 때려눕힌 이야기도 좋고 모여 앉아 이약이약하다 밥도 함께 먹고 회당이 내 집 안방 같아서 좋다. 정월 대보름 천 원씩 내는 인구전 당산신께 풍요와 평안을 빌며 제 지낸다 메 주 과 포 편 채 정갈한 제물에 울리는 매구굿 소리 축수하는 부민들 파제 후 훈훈한 동네잔치가 좋다. 첩약보다 운동이 더 좋은 줄을 알고 틈내어 삼삼오오 동네 윗길 수차처럼 돈다 된깔크막 넘어서 약수터에 다녀온 이들 앞 강 자전거길 애마로 달리는 사람들 섭슬려 운동하는 습관이 좋다. 고희의 마루턱에 선 토박이 친구들 목이 칼칼하면 아무나 가만히 손짓한다 주막집에 앉아 소주 막걸리 몇 병 앞에 놓고 애먼 세상 씹다가..

1. 오늘의 시 2018.02.26

대숲을 바라보며

대숲을 바라보며/月靜 강대실 자꾸만 달라붙는 보푸라기 생각들, 마음도 바람개비 가만히 못 있어 창밖 산비알 대숲에 눈 돌린다. 푸르른 대숲에 잔잔해진 내 안에 수다식구 삼시 세끼 녹록치 않아도 항상 집안 가득히 햇볕 불러다 놓고 동네 어귀 왕대밭 사들였던 학자금 캐어 낼 생금밭 일구자며 틈만 나면 철없는 자식들 앞 세우고 나가 땀 흘리며 말씀 일러 꿈을 심고 울울창창 대밭 가꾸었던 쥔 것 없는 죽물꾼들 찾아오면 어서 가 쪼개고 절어 본때 있게 살라며 생대 한 짐씩 밀어주고는 뒷장날 죽물전 찾아가 함께 허기 달랬던 고향 마을 안 고샅 큰 어르신 청대처럼 푸르른 뜻 보인다 소래기 크고 너른 마음 새록새록 떠오른다.

1. 오늘의 시 2018.02.10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 시인 -

설산雪山

설산雪山/ 월정 강대실 세밑가지 설한을 뚫고 산문 연다 키 큰 나무들 옷 벗어 어린나무 덮어 주고는 눈 짐을 지고 동안거하는 중이다 네발로 기어가다 유목 내민 손 잡다 산정은 아득한데 숨이 앞장서서 턱에 올라 노송과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숨 고른다 선뜻, 한 번쯤 누군가 흘린 눈물 강에 덤벙 뛰어들어 보듬고 허덕여 봤더냐 선문답이라도 하듯이 던진다 내달아 팔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는 먼눈으로 바라보다 야기죽거리기도 했던 내 반생 스스럼없이 털어놓자 바윗등에서 고개를 삐쭉 엿듣다 같이 갔으면 더 쉽고 멀리 갈 수도 있었다며 귓전에 슬쩍 흘리고 줄행랑친 바람 한 점 후끈 달아오르는 낯짝 입술 감쳐물고 바람 발자국 엉금엉금 쫓으며 내 안의 내 속 깊이 다진다, 나를 죽이라.

1. 오늘의 시 2018.01.15

로드킬

로드킬/ 월정 강대실 묵은세배 드리고 어둠 뚫고 가는 길 전조등 불빛에 희끄무레한 형상 하나 급브레이크로 아슬아슬 피하고 보니 로드킬로 정물이 된 길고양이 그냥 버려두고 와서 마음에 밟혀 원단 일깨워 다시 찾은 그 길 조심히 다가가자, 주검 옆 웅크리고 있다 풀덤불로 어슬어슬 꼬리 감추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냉돌 같은 밤 대답 없는 어미 팔 끌며 일어나, 위험해! 얼른 일어나! 가게, 집에 가서 편히 쉬게! 통울음으로 고추바람 버텼을 길섶에 정차하여 마음속 촛불 밝히고 올 한 해 만 생명들 무사의 복 빌며 저만치 눈물 찍어 훔치는 은행나무 발아래 쌓인 낙엽 헤치고 초장 지낸다.

1. 오늘의 시 2018.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