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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금밭

생금밭/ 월정 강대실 상골* 아들 부잣집 양반, 다랑논 부쳐서는 층층이 커가는 새끼들 지겟다리 장단에 초부타령 못 벗어난다고 여기저기서 하많은 새꺼리 끌어대 언제든 대톱 하나로 뭉칫돈 캐내는 왕대밭 동네 들머리 신작로 가에 마련하셔 보람 반 꿈 반 생금밭 가꾸며 꼭두새벽 이슬을 쓸고 앞산 마루 솟는 달 바지게에 지고 드시니 촌로들 거친 입살이 밑거름 되어 세세연년 빼곡히 죽순이 솟아오르고 죽물꾼들 청죽 한 다발 베어 달라 줄을 서 어섯눈을 뜨게 된 자식들 두 분 어르신 대꽃 되어 가시자 어느 결에 줄줄이 들어앉은 외지인 주춧돌 울창한 꿈의 생금발이 애처롭다. * 상골: 담양군 용면 쌍태리 상월마을을 이름.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에서)

1. 오늘의 시 2018.10.30

담양호에서 돌아온 고향

담양호에서 돌아온 고향/월정 강대실    반가워라 다시 보는 고향 풍경긴 세월 깊고 푸른 물의 나라에서오롯이 침묵으로 버티다 활짝 얼굴 내민. 한 겹 한 겹 물의 퇴적을 벗고우연히 본 어머니 앙상한 가슴과 같은희무스름한 맨살 드러내 보이더니어느새, 수장의 악몽 딛고 망초꽃 흐드러진 왕대처럼 모여 살던 노루목 청수 용평마을*아침저녁으로 덜컹거리며 달리던시골 버스 뽀얀 흙먼지 일으키던 신작로 개헤엄 치며 붕어 송사리 잡던 앞내감 가마니 차곡차곡 실은 소달구지우걱우걱 건너던 삼거리 초소 아래 다리 뿔뿔이 흩어진 일촌들 못내 잊을 수 없어물줄기보다 더 질긴 명줄 부여잡고옛 풍치 고스란히 갈무리했구려 버들치 미꾸라지를 노리는 물총새여울목 너럭바위 찾아 웅크리고 앉고유유히 짝을 지어 나르는 왜가리삶의 터전 되찾은 ..

1. 오늘의 시 2018.10.30

받침목

받침목/ 월정 강대실 볕내에 부끄러이 머리 내밀더니 철따라 온 들 색칠하는 풀잎 뜻도 의미도 없이 강바닥에 나동그라져 무량겁 씻기고 닳아 불심이 된 돌멩이 작은 몸짓 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떠받치나니 평생을 묵묵히 흙 속에 묻히어 살며 공덕으로 반듯이 길러 낸 열 자녀 인파 그득한 먼 바다로 내보내고 홀로 곱디곱게 노을빛 물드신 신평 할머니같이.

1. 오늘의 시 2018.10.04

가벼운 삶

가벼운 삶/ 월정 강대실 종심강 새털구름같이 한가하다 보니 주머니가 흥부 살림처럼 가벼워지네 미안쩍고도 그저 감사한 것은 큰 딸 연금이가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감쪽같이 들여놓는 효도적금 뒷산처럼 짱짱히 내 삶 받쳐주네 퇴계 선생 만나면 한나절이 세종대왕 모시면 하루해가 무릉도원이네. 속에 빈 창고 큼직이 하나 짓고 보니 마음이 경주 최부자집처럼 넉넉해지네 비로서, 심곡 진창에 달 떠올라 춤추는 꽃향기 선연하게 보이네 쫓긴 일 없어 신발 거꾸로 안 신고 허튼 욕심 안 부려 허방에 빠지지 않네 장마당 나서면 눈에 든 건 다 내 것 동구 밖 거닐면 앞뒤들이 안마당이네. -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2018.09.27

원율 당산할아범

원율* 당산할아범             원율 서쪽 어귀 귀기 띤 당산할아범우람한 풍채에다 언제부터인가 할망이듯 흔연히 돌 하나  품고 산다칠야 캄캄한 밤 보쌈에 걸려 왔는지빗길에 잠깐 쉬어 가자며 든 것인지 팔 척 장신 멀쑥한 허우대에다가가도 내외하지 안 했을 듯한긴긴날 소 닭처럼 물끄럼말끄럼 바라보다 동한 마음, 날마다 품을 넓혀 가 아픔 삼키며 제 살로 끌어안고는 그예, 연리지락 누리게 되었으리라 동네 사람들 들면날면 그냥 안 보고는온 동네가 한마음 한뜻이라야당산할아범 진노 안 하신단 생각이 들었는지물 한 바가지도 나누자 하고 정월 대보름날 다짐으로 올리는 동신제,마을 수호신으로 섬긴다.          * 원율: 전남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를 이름.

1. 오늘의 시 2018.09.15

상흔

상흔傷痕 / 월정 강대실 왠지 일상이 흐느적거릴라치면 어느덧 혼돈의 바다 열렬히 헤엄쳐 나가다 얻은 손이며 발 온몸에 천지인 마룻장 옹이 자국 같은 크고 작은 상흔 눈여겨본다 어둠의 냉대와 질시의 눈총 속 애오라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에 순리와 정심의 기치 치세우고 쌈닭처럼 치달리다 독 묻은 발톱에 무참히 할퀸 내 생존의 가열한 길이요 식솔들 삼시 세 때 끼니 안 굶기는 밥이요 크게는 경제 대국의 한 장 벽돌로 놓인 덧없이, 문설주 옆 부적처럼 퇴색 되어 가지만 세월의 칼날도 감히 도려낼 수 없는 존재의 아픔을 초극한 승리의 징표 훈장인 양 상흔 하나하나를 찾아 매만지노라면 사생 결투의 뜨거운 순간들이 시간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마음속 채 아물지 않은 통증으로 욱신거린다.

1. 오늘의 시 2018.08.30

물내 나는 여자

물내 나는 여자/월정 강대실 툭툭 털고 한번은 나그네 되자던 어느 가을 월야의 약속 미뤄질수록 점점 마음보다 더 긴 하루하루 오늘도 첫새벽부터 종종걸음 치다 옆에 앉더니 스르르 잠에 빠진 짠한 눈빛으로 얼굴 한 겹 덮어 주다 망연히 창밖 먼 산 바라보면 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 잔영 위로 연화처럼 봉긋이 피어오르는 천둥소리 나면 버썩 겁이 나 문 잠그고 꽃무늬 몸뻬 바지가 좋아 즐겨 입고 가난한 내 시 읽어 주다가는 어느덧, 눈에 핑 도는 눈물 애써 감추는 숙맥 같은 아내 내가 더 좋아하는 물내 나는 여자.

1. 오늘의 시 2018.08.23

마당 굿

마당 굿/ 월정 강대실 감히, 뜰방에 올라설 수 있으랴 아래 회색 틈새에 숨어들어 풍찬노숙 온갖 설움 참아 살다 춘정의 문안에 얼굴 내민 생명 둘 여린 목숨 아슬아슬한 벼랑 끝 삶 안쓰러움에 기울인 마음 한 가닥 맞손 잡고 연리의 정에 살더니 어느새, 초롱초롱 피워 내건 꽃등 머잖아 배려의 은혜 갚음으로 알알이 여문 참깨 보답할 심산이니 맙소사, 生命이 한 편 시로다 어울린 生과 生 한바탕 마당굿이다.

1. 오늘의 시 2018.08.06

병원 일기

병원 일기/월정 강대실 희미한 지등이라도 하나 밝히자고 한 生 뒤뚱뒤뚱 고빗길 넘어온 탓이리 머리맡에 늘어만 가는 약봉지에 점점 멀리 못할 병원길 담당의, 눈길 안 닿는 음지 어딘가에 사악한 음모가 숨어든지 모른다며 샅샅이 뒤져 보자 권한다 행주보다 더 척척한 뉘우침, 속을 비우고 청강수로 씻어 낸 뒤 침대에 몸이 누이고 주삿바늘 꽂히고… 얼마나 깊은 미혹에 빠졌을까! 몽롱세계 흔들어 깨워 곁부축한다 긴 의자에 버려진 우유갑처럼 쓰러져 누워 연신 만상이 바로 서고 또렷해지자 대장에 몹쓸 싹 하나 뽑아냈다며 탈 있거든 바로 와 입원하란다 내 언어에 병실잠은 없다 되뇌며 오후의 나른한 병원 문 밀치고 나온다.

1. 오늘의 시 2018.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