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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거닐며

center> 빗속을 거닐며/월정 강대실 비가 온다 벌겋게 봇드는 대지의 가슴 위에 기다렸던 약속이듯 비가 내린다 후드득후드득 두드리다가, 어느새 간질이듯 여우비 비치더니 외발로 버텨 온 내 한뉘처럼 지적지적 궂은비 내린다 우산도 없이 빗속을 나선다 절절히 마음 나누다 세파에 떠밀려 세월강 굽이굽이 침전 된 사연들 함초롬 젖은 그리움 되어 연신 머리 들이밀며 가슴 후빈다 후닥닥 장대비 쏟아진다 길바닥에 흥건히 고이는 빗물 푸른 시절의 꿈처럼 일고지는 물거품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오종종히 모인다 허둥지둥 고개 마루로 쫓겨가는 내 허기진 발길처럼 물머리 따라 빗물 흘러든다 그 속에 휩쓸려 무심한 내 강 흐른다.

1. 오늘의 시 2017.06.27

텃밭

텃밭/ 월정 강대실 한 귀에 터주 정화조가 도사리고 앉아 악취 솔솔 날리던 반지빠른 자투리땅 여기저기 널린 우려먹고 버린 뼈다귀 개 고양이 몰래 싼 똥에 파리 떼 들끓던 뒤축이 삐딱하게 닳은 백구두 한 짝 마구 버린 연탄재에 치여 숨 헐떡이던 눈초리 날카로운 사금파리 유리조각 버얼건 녹 슨 놋숟가락 몽당이 묻혔던 삽날도 등골 오싹했던 이 더러운 데다 심어 한 고샅 사람들과 맛나게 나누는 푸성귀.

1. 오늘의 시 2017.06.24

국수

국수 월정 강 대 실 담양 땅 찾아갈 때는 관방제 초입 초사막 국수거리 들러 멸치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기다라니 늘어선 느티나무 가지 아래 머리를 맞대어 내놓인 평상 손님들 틈서리 비집고 올라서 한쪽 빈 상머리에 자리 잡고 앉으면 국수 한 그릇 먹고 잡더라만, 문 앞에까지 갔다가는 그냥...... 힘이 팽겨 자갈길 간신히 왔다 하시며 허리춤에 묻어 온 박하사탕 가댁질 치다 우르르 달려드는 자식들 입 속에 물리시던 어머니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 흔흔한 미소 뒤에 갈앉힌 허기 원추리 새순처럼 뾰조롬 솟아올라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배고픔 대신 채우고 간다.

1. 오늘의 시 2017.06.17

친구를 보내며

친구를 보내며/ 월정 강대실이제 그만 뜬구름 쫓겠노라고뒷산 곰바위가 시새워할 의지로혈혈단신 자작골 노송 밑에 막 치더니너덜 섶 불꽃 틔는 곡괭이질검은 짐승 떼를 이루어 풀 뜯고 건불 넉넉히 지핀 골방의 다짐들앞산보다 더 높고 청청한데근자에 안색이 좀 그렇다 했건만깊은 데다 칼 댔단 발 없는 말에한 줌 만한 마음 무릎 맞댈 때는이달 모임에는 꼬옥 얼굴 보자 해 놓고 까마귀 고기 드셨던가 깜빡 우리 속 눈과 귀 부리기재 서성이는데生 死는 도랑 건너는 거나 진배없다는 듯기어이, 이승에 내려놓은 탄 숨 소금 담긴 가슴 평안한 영면을 비네.

1. 오늘의 시 2017.06.06

한 가족

한 가족/ 월정 강 대 실 훌쩍, 두 내외가 어디론가 가서 며칠 조용히 쉬어 오고 싶어도 한 가닥 빗금진 눈길에까지 온몸으로 정 주는 생목숨들 탓에 늘 후제를 되뇌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모처럼 독한 맘먹고 갔다가 2박 5일 만에 돌아왔다, 웬걸 담장 위 날름 올라앉은 포도넝쿨 내려와 대문에 금줄 매고 왕거미 여기저기 구석진 데다 겹겹이 그물망 치고 있었다 꽃나무들 옆으로 푸른 친구 불러들여 시끌벅적 인기척 내고 남새밭 비릿한 풋향기 피우던 고추 매운 내 날리며 쌍불 켜고 있었다 한 가족임 훤히 알고들.

1. 오늘의 시 2017.05.22

비방

비방祕方/ 월정 강대실 황우처럼 뚜벅뚜벅 걸어온 生꽉꽉 조였던 나사가 헐거워졌나 벌써밤새껏 여기저기가 쑤시고 저려찾아간 터미널 앞 통증클리닉닫힌 창문 틈으로 새어 드는길 건너 삼층 한의원 쑥뜸 뜨는 냄새삼거리 기름집 참깨 볶는 냄새죽순 도갓집 죽순 삶는 냄새스미는 냄새 비방으로 마시며핫백에 물리치료 받고나면먼 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운바위라도 번쩍 메치고 싶은 욕망.                     2014. 4. 21.

1. 오늘의 시 2017.04.26

혼자 있는 날

혼자 있는 날/ 월정 강대실 자식들 제 식솔이랑 멀리 떨어져 살고 아내는 오랜 친구들 모임에 나가 긴긴날 덩그러니 혼자 있는데 어찌 적적하지 않으리오 봄샘바람에 몸을 뒤척이던 감나무 어느새 피운 손자 손바닥만 한 이파리 진종일 뜨락에 살랑이는데 어찌 그리움 모르리오 길 잘못 알고 온 나나니벌 한 마리 온 방 누비며 벽창을 치받더니 그만 진이 빠져 허공을 기는데 어찌 안쓰럽지 않으리오 해 떨어지자 땅거미 스멀스멀 밀려들고 앞집 용마루 환한 살구꽃 위로 개밥바라기 처량히 반짝이는데 어찌 서러움 모르리오.

1. 오늘의 시 2017.04.17

한식날

한식날 /월정 강대실순창 평지리 꽃동네이사 길에 들러 하룻밤 유하셨던 증 고조부님 동문까지 마중 나오셨네근엄한 모습에다한없이 인자하고 흡족한 표정들이신고맙다!, 네 덕분에 윗대 할아버님 모시고 무탈하게 지낸다그동안, 타촌 야로나 겨우 면한 협실에서 얼마나 마음고생 하셨을까를 생각하니면목 없고 몸 둘 바 몰라조촐한 주안상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 올릴 때저 건너 아미산 훌쩍 치달아왔네키 큰 산벚나무 환히 웃었네.                                                               한식날 /월정 강대실    순창 평지리 꽃동네이사 길에 들러 하룻밤 유하셨던 증 고조부님 동문까지 마중 나오셨네   근엄한 모습에다한없이 인자하고 흡족한 표정들이신   고맙다!, 네 덕..

1. 오늘의 시 2017.04.09

그림자를 지우며-매화나무

그림자를 지우며 / 월정 강대실 ㅡ매화나무 다 떠나가고 적요에 잠긴 들판 부르튼 손발 구동을 건너는 매화나무 못 잊을 우리 부모님 그림자이리 어깨 흔들어 깨워 보지만 끝내, 침묵의 빗장 열리지 않고 죄목도 정죄도 없이 기계톱 굉음에 동강나 툭! 툭! 땅 위에 떨어져 눕는 반백 년 그루터기에 남은 나이테 평생 호미등처럼 허리 한 번 못 펴신 부모님 안돌잇길 한이 담긴 타임캡슐 낙과落果 같은 순명 곁에 움츠리고 앉자 생의 내력 소스라쳐 튀어나오고 살붙이를 보내듯 목이 메이는데 빈 논배미 건너 시르죽은 해의 눈시울 떨어진 동백꽃 가슴보다 섧고 솔밭 발밤발밤 건너오는 절집 독경소리 내 화끈거리는 두 귓불.

1. 오늘의 시 2017.03.08

귀촌의 꿈

귀촌의 꿈/월정 강대실 여기저기에 선대님 숨결 어린 쌍태리 상골*. 환삼덩굴 같은 까칠한 가난 물려받아 벌 치고 다랑논 갈고 죽전 가 꾸어 열두 식구 구입하며 밖에서는 법 없이도 밥상머리 에선 불호령으로 당신을 각인 시키신 천생 농군 우리 아 버지. 짱짱한 하늘 바라 새끼들은 지겟다리 장단에 초부 타령이나 읊조리게 안 두겠다는 호박벌 열망에 둥지를 떠나야 했던 열다섯 살 까까머리 촌닭. 심안을 넓혀 가 족과 이웃을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자고 하고많은 날들 이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휘청거려도 쑥잎같이 돋는 首 丘初心. 또래들과 함께 쏘다니던 산과 들 앞도랑 울 너머 로 꼬순내 한 바가지 나누던 사람 냄새 못 잊어 돈 버는 일 접고 나서는 대뜸, 적을 향리에 두고 부지런히 큰밭이 랑 산밭 흙내 마셔가며 인생의 ..

1. 오늘의 시 2017.02.24

눈 내리는 밤이다

눈 내리는 밤이다 / 월정 강대실 나이가 드니 더 친구가 보고 싶다 일찍이, 타작마당 콩 튀어 나가듯 먼 바다로 헤엄쳐 가더니 전화 한 번 없는 길에서라도 만나 보릿국에 대폿잔 기울이며 죽마 타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따금씩 놀러 온 하리 맹순이 누님 형들이랑 둘러앉아 벌인 손때맞기 민화투 어쩌다, 뒷손이 잘 맞아 장원 하면 움켜쥐운 팔 후려치는 내 매운 손가락 매 그 오동포동한 손 만지고 싶은 큰아버지 댁 사랑방에 갔다가 밤이 이슥하면 발짐작이 어둠 헤쳐 와 에헴!, 큰기침 소리로 사립 여신 아버지 가마솥 쇠죽 푸는 고무래 소리, 이라! 자라! 외양간 깃 주는 소리 듣고 싶은 딸 셋에 청상이 된 외할머니 큰딸 가마 뒤쫓아 와 핏덩이 열 받아 내고 사 형제 따라다니며 뒷바라지하신 재판 구경한 날이면 들려..

1. 오늘의 시 2017.02.12

천서를 보다

천서를 보다/ 월정 강대실 도지는 역마살 간밤에 쌓인 숫눈 밟으며 산성산 마루 꼭두서니빛 햇살 마중 간다 눈짐 진 솔가지 사이 빛살 은전을 뿌린 듯 눈밭에 찬란한 가야할 길을 찾는 걸음 아직 꿈속에서처럼 너무 서툰 나 해장술에 대취한 듯 이리저리 흔들리다 발자국 너머 성루에 올라앉는다 들려오는 말 울음소리 일순 먹먹해지는 가슴골 감히 새 한 마리 날아들어 점찍지 않은 아득한 설국, 천서(天書)를 본다 하늘과 땅 산과 강 신작로와 가로수 그 행렬…… 에돎의 신비로운 계시록 곡선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움의 극치.

1. 오늘의 시 2017.01.21

도둑괭이

도둑괭이 /월정 강대실 수묵 같은 어스름 유년의 기억 속 도둑괭이 한 마리, 빠끔히 샛문 밀치고 기어드는 방구들 들썩이는 오롱조롱한 새끼들 호롱불 옆 헌옷 깁던 어머니 도둑괭이 왔다며 꼬이면 질겁하여 이불 속 파고들었던 대꾼한 눈 수심의 어둠 속으로 오그라드는 울음소리 등에 달라붙은 뱃가죽 허기진 모습에 시퍼런 냄새의 촉수 앞세운 오늘도 여기저기 뒤지고 헤쳐 늘어 치도곤 먹이려는 심보가 채 비워내지 못한 마음속 미움의 싹으로 새록새록 돋아 오르는데 미움을 품는 것은 마음밭에 가시나무 키우는 일이라 생각하니 불현듯, 작두날을 본 듯 서늘해진 가슴 색안경 접는다.

1. 오늘의 시 2017.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