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16

나를 만나다

나를 만나다 /월정 강대실  이제 가차 없이세월의 누더기 벗어던지고 싶다. 뒤죽박죽된 서실 정리하다가 느지막이 아침 때운다.차 한 잔 챙겨 들고 우두망찰하다 지나온 길 본다. 예제없이 널린 삶의 편린들인연의 얼레를 감고 푼 하많은 사람들……돌연 탈박 둘러쓴 나를 만난다. 꾸물대다 세월이 벼린 바람 맞고 에움길 돌다간당간당 회한의 강 건너는 얼뜨기, 정수리에 성근 땀내 밴 머리칼점점 눈멀고 귀먹더니이제, 삐뚤어진 주둥이 헛나발 불며 거들먹거리는 (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5.05

동네 경사가 났다ㅡ요수

동네 경사가 났다/ 월정 강대실 넷째야, 동네 경사가 났다 아래 고샅 상 큰댁 네 순기 형 순하디순하고 일 잘 하는 씨어미 산고를 앞산이 다 쩌렁쩌렁 따라 울더니 순산했는갑다 아까참에 네 배 짼데 잠잠해졌다 인제는 야야!, 낼 아침에는 식전에 갈초랑 큰 소쿠리에다 속겨 꼭꼭 눌러 담아 살째기 한행부 짊어다 주어라 먹고 새끼 젖 잘 물리고 얼른 힘 타 농골 수렁배미 애갈이해야 쓴다 해토하면 그러고, 단단히 일러두어라 이참에는 송아치 암수 간에 젖 떨어지면 기스락 밑에라도 꼭 판도치 숙부네 집에 소고삐 매어 줄 생각 하라고 소 뜯기던 언덕 너머 금살 소 울음소리 망각의 강 질러오는 아버지 말씀.

오늘의 시 2024.05.05

아픈 회상

아픈 회상/ 월정 강대실                    한밤중에 돌담이 와르르 무너지더만노을빛 곱게 물들던 외할머니어지럽다며 돌아눕더니바람 자듯 가셨습니다돼지가 젖 달란 제 새끼 물어 쫓더만묵정밭 일구러 서울 갔던 작은 형실족 후 가쁜 숨 몰아쉬더니땡감 떨어지듯 가셨습니다빈터 먹감나무가 벌러덩 드러눕더만축산에 마지막 꿈을 걸었던 아버지빈 우사 우두커니 바라보더니하늘 내려앉듯 가셨습니다.(2-46.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5.05

큰누님ㅡ요수

큰누님/ 월정 강대실 도배지 무늬처럼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문갑 속 모신 족보 배견하다 옆의 아버지 제적등본 찬찬히 살핀다 일면식도 없이 한 뼘 흰 집에 갇혀서도 세월의 깊이보다 더 애틋이 여섯 살 위 큰누님 내 마음 틀어쥔다 예쁜 딸 봤다고, 세간 밑천이라고 얼마나 기분이 훨훨 날 것 같았을까 아버지 아뿔싸!, 이 무슨 우환덩어리 인가! 갓 세 살 뾰조롬한 떡잎 젖배 곯았을까? 돌림병 맞았을까? 전생의 업 다 못 벗어 세상이 버렸을까? 천국의 두 분께는 입도 뻥긋 못하고 맏형 한 점 기억 없다 하고ᆢ 어디메 꽃밭에 백화 만발해 옹그리고 있는지 생때같은 자식 가슴에 묻고 가신 부모님 전에 ‘어머님 아버님!, 불효자 양순이 이옵니다’ 진작에 찾아 납작 엎드려 용서 빌고 왕부모님이랑 서둘러 떠난 두 형들 ..

오늘의 시 2024.05.05

막냇누이ㅡ요수

막냇누이/ 월정 강 대 실 어머니 느지막이 점지 받은 동냥젖 곡정수로는 뱃구레 못 채워 줘 일찍이 밥물림을 해서 길렀던 왜소한 체구 얼굴도래며 행동거지가 영락없는 데다 흙에 묻혀 사는, 오사리 딸기 어서 와서 맛보란 전화에 한달음에 달렸더니 하우스 가득 향긋한 향연 고양이 손도 없어 못 빌리기에 반의반 힘이라도 보태고자 나섰지만 몸에 안 배어 마음이 무거운 들돌인데, 심성조차 이어 받았나, 땅 부치고 날아가는 까마귀도 불러대는 게 빼닮았다 말끝마다 일도 주변도 줄여보래도 허리춤에 씨앗 주머니 차고 다니며 한 뼘 빈 땅 생기면 후비적후비적 심고 가꾸어 식전부터 부리나케 챙기더니 오만데다 부치고 내게까지 들려주며 마냥 흔흔해 하는 막냇누이 세 남매가 마냥 착해서 좋단다. (4-89. 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오늘의 시 2024.05.04

자화상ㅡ요수

자화상 / 월정 강대실 어려서 나는 허기지면 동구 밖 넘봤다 열두 가족 구식 위해 찬 이슬을 차는 아버지 거짓 모른 논밭 귀퉁이 쫓아다니며 땅 벌이 만이 주린 배 불린 줄 알았다 자라며 나는 자취방 5촉 알등과 맞붙었다 생금밭에서 캐낸 장학금 토장국 끓이면 날마다 부모님 말씀의 회초리 반추하다 씨암탉이 알 품듯 사도의 길 새겼다 결국 나는 아버지 날벼락에 변놀이꾼 되었다 한몫 쥘 욕심에 넓은 책상머리에 앉아 오만 군데 별별 사람들 고락을 함께 나누다 비록 가난하게 살 지라도, 세상에 가슴 따스운 사람으로 서고 싶었다 어느덧, 청청 세월 해질녘 어정거리고 달려온 산굽이 길 돌아다보면 왠지 눈에는 아버지 근엄한 자태만 들어온다 올곧게 살고자 발버둥치신 그 모습 선하다. (3-60. 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5.03

한 친구 아버지ㅡ요수

한 친구 아버지 /월정 강대실 서낭당 고개 너머 나무들 쑥부쟁이랑 한데 어울려 사는 마을 한 친구 아버지 흙집 지어 이사 드셨다. 새파란 까까머리 적 첫인사 드린 후 뵐 때마다, 고향 집 안부는 물론 은행알 같은 티 없고 알진 우의 당부하셨던 향리 아래뜸 월천리 초입 산동네 아버지 거둥길 길라잡이 되자는 급보에 들메끈 조여 매고 시근벌떡 달려간 곧잘 동네 앞길 지나면서도 못 가 보고 두 눈이 보진 못 했어도 실존하여 어느 누구도 아니 갈 수가 없다는 흰 꽃이 피고 흰 나비가 날고...... 돌아올 수 없는 길 내고 가야만 한다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 심오한 적멸궁.

오늘의 시 2024.05.03

월리아짐

월리 아짐/ 월정 강대실 뒷등 자욱한 봄 안개 속에 대들보가 무너지자 설움도 한갓 호강이라는 듯 줄남생이 같은 자식들 앞세우고 나가 안산 밑 자갈 배미 다랑논 묏등골 큰 밭 호락질로 휘어잡더니 청룡도 든 두억시니 같은 눌어붙은 日月의 더께 떨쳐낼 수 없었던가요 흙과 함께 굽은 등 삭은 나무토막처럼 드러누워 저승사자만 눈이 멀었다 나무라신다.

오늘의 시 2024.05.02

폭우暴雨ㅡ요수

폭우暴雨/ 월정 강대실 청청하늘에 뜬 먹구름 한 둘금 쏟아붓는 폭우이다. 안 고샅 귀동양반 살붙이 하나를 비탈진 밭 귀퉁이에 묻던 날 신작로 건너 멀찍이서 넋 잃은 미륵같이 바라보더니 나직한 봉머리 뗏장 한 장 마지막으로 올려지자 아니라고, 생떼 같은 놈 절대로 땅 밑에 못 넣는다고 참다 참다 울컥 쏟아낸 눈물. -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오늘의 시 2024.05.02

사모곡思母曲2

(사진출처: 인터넷 이미지) 사모곡思母曲2/ 월정 강대실                                                          천수 야박하여 백방으로내로라한 병의원 찾아 나섰지만 명의 못 만나고갖은 첩약에 단방약 써보았지만 약발 없어끝내, 예순일곱에 명줄 슬며시 내려놓고만가 소리 구슬픈 꽃가마 타고황망히 이승의 강 건너신 어머니한 번만이라도 뵙옵기 학수고대해도왠지, 이때까지 만날 길 없고 내 안에 계셔해마다 백화 흐드러지는 오월 이맘때면앙가슴 저미는 그리움 도집니다한 생 터벅거리며 살아왔다고저승걸음도 이리 진땀이다는 서글픈 눈빛,애원하는 자식들 둘러보고는 스르르 눈 감고된 숨 몰아쉬더니 끝끝내 말문 못 여신어젯밤 꿈길에 한 자식이라도 찾아들까밤새껏 선잠 깨어 눈이 시디시게..

오늘의 시 2024.05.02

내 안의 아버지

내 안의 아버지/ 월정 강대실 우리 아버지,십 남매 중 다섯째로 날 보셨다밥상머리에서는 다심으로문밖에서는 길라잡이로회중 가운데 당신을 불러 세우며삼킬 듯한 풍랑에도 선돌처럼 사시다 예순여섯에 이승의 강 건너황망히 내게로 오셨다마음속 외딴 섬 되어 어디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사립 꼭꼭 걸어 잠그시더니노상 자식이 전부라서내 안에 온전히 살아 계시다살아, 세상을 향한 문 지키신다.

오늘의 시 2024.05.02

울 엄니

울 엄니 / 월정 강대실                  울 엄니, 울 엄니는저승궁궐 금침에 들어 단잠이 드셨는가보고파서 못 잊어서찾아와 무릎 꿇고 흐느끼는 못난 자식보고 싶도 않은 거여이제는 아주아주까막 잊고 계신 거여아냐!,  아냐!날 보고픈 울 엄니 맘무덤가 쑥잎 되어 저렇듯 돋는 거여쥐어뜯고 뽑아내도더욱더욱 싱거럽게정리가 솟는 거여.

오늘의 시 2024.05.02

대숲에 들면

대숲에 들면/ 월정 강대실 얼마나 심지를 곧추세워야 눌리고 비틀려도 아주 휘지 않는,저리 꼿꼿이 일어설 수 있을까얼마나 심전을 갈고 부쳐야 비바람 눈서리 만나 더욱 푸르른, 저리 청청히 살아갈 수 있을까얼마나 심성이 곱고 발라야쉼 없이 구름 쓸어 하늘 드러내는, 저리 세상을 맑혀 살 수 있을까해 저문 고희 강 대숲에 들면한생, 뜨고도 못 보는 당달봉사  부끄러운 내 모습 보인다.

오늘의 시 2024.05.02

풀 뽑는 노인장ㅡ요수

풀 뽑는 노인장/ 월정 강대실 병원 앞 쌈지 공원 가로수 성근 그늘 아래 수없는 질시와 발길질 아랑곳없이 계절을 딛고 무심히 짓어 오른 잡풀 풀 뽑는다 환자복 입은 칠십객 노인장 혹자는 거기가 해까닥 했거나 논팽일거라고 흘깃대는 눈총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괘념 한 번 마음에 걸린다 싶으면 사돈네 쉰 떡 보듯 그냥 못 두는 성미일까 한 손에 링거대 움켜잡고 맨손으로 뽑는다 포장마차 호떡 굽는 너부죽한 아낙네 파리 날리는 눈빛 뽀르르 쫓아가서는 풀은 뽑아 뭐할라요, 내뱉고 휙 돌아선 뒤꼍 마음밭 자꾸만 돋는 노욕을 뽑아냈다며 한사코 겸연쩍은 표정, 숨 고르는 노인장 솔선이 막막한 인해의 촛불로 탄다.

오늘의 시 202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