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17

정들다

정들다/ 월정 강대실  새로 둥지를 튼 근동십여 년을 같이 운동하는 여자 남편고향에 눌러산 큰형이 나와 갑장이라는내 셋째 동생뻘 되는 박 동생만나면 만날수록 정들어 친해지지요 길가 풀섶 언저리얼씬하면 오가는 발길에 짓밟히고고개 수그리고 앉아 두 눈을 크게 떠야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봄까치꽃보면 볼수록 정들어 예뻐지지요 북쪽 서낭당 고개 지나서오부 능선 길 굽이굽이 돌고 밀재 넘어잊어버리고 한참을 달려야 나오는 산마을전학 간 초등 동창의 고종 동생 산막다니면 다닐수록 정들어 가까워지지요                                                2024. 4. 13.

오늘의 시 2024.04.30

성묘

성묘2/ 월정 강대실  순창 팔덕면 창덕리 전 480의2유년적 아버지 졸졸 따라가 뵈었던조부님 사신 산마을로 나선다 실오리만 한 기억 앞세우고온 동네 기웃거려 보아도그날의 발자국 도무지 흔적이 없다 웃자란 풀숲 밟아 눕히며가늠으로 여기저기 찾아 헤매다불현듯, 내 안에 전율같이 번쩍이는 예감걸음걸음 발길 쫓는다 산이 내려와 참나무 키우는 데에지붕 가라앉은 빈빈한 집 한 채부끄럽고 면구하여 토방 밑 무릎 꿇자오-냐, 바쁜데도 안 잊었구나!  가슴속 솟구치는 아리디아린 불효. (2-53.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4.27

배롱나무

배롱나무/ 월정 강대실 담양호 관광단지 앞 굽이진 내리막길조심조심히 따라 내려가다 보면 우측 길턱에 교통 표지판 안고 있는 화사한 나무 한 그루 있다어느 여름날 정처 없는 길 가다우연히 만나 길동무하고부터는영락없는 성자라고 생각하게 된오늘도 묵묵히 내 길목 지켜 서서 줄곧 서행을 당부하더니만 어느새 앞질러 왔는지 보리암에서 뵌 적 있는 부처님같이가부좌 틀고 앉아, 간절히 미소 공양으로 무사를 빌어 주는언제고 마음밭에 기르고픈 배롱나무.

오늘의 시 2024.04.25

뜬소문

뜬소문/ 월정 강대실돈 버는 일 그만두고 나면이왕이면 향리 쪽에다토막집이라도 하나 마련하여詩도 쓰고 고즈넉이 살고 싶었다 호젓한 산자드락 양지바른, 주춧돌 놓을 만한 자리 있을까 하고아내랑 여기저기 둘러보다안면 있는 몇몇 만났더니이젠 다 망해 굽도 젖도 할 수 없어 기어들란갑다고 비아냥대고몰래 숨어든 게 틀림없다고수런댄단 소문 자자했었지.머리털이 약쑥같이 희어지도록호박꽃 소망 고이고이 품고 고향 하늘 부끄럼 없이 우러르며살아 온 나, 어느 누가 알기나 했을까.

오늘의 시 2024.04.25

병아리눈물꽃

병아리눈물꽃/ 월정 강대실 병아리눈물꽃이랑                             얼굴 맞대보았나요머리 조아리고 앉아눈물  뚝뚝  흘려본 적 있나요                                        행여 눈에 띌세라숨소리라도 새어 나갈세라바람도 눈길 보내지 않는맨땅 끝자리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앙증스런 자태로옴실옴실 모여 앉은얌전 자르르한 꽃 우리님 단아한 말씀이 듯마음문 안 열면 볼 수 없는참깨 알 같은 꽃절대 겸허가 몸에 배인 그 꽃. 병아리눈물꽃

오늘의 시 2024.04.25

아내의 발

아내의 발/월정 강대실 길마 무거운 소, 드러눕더니 며칠째 꼼짝 못하는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자락 쏘-옥 나온 두 발 오롯, 가족들 바람의 고임돌 되어 세상의 질고 매운 것 다 심곡에 묻고 한 生 바닥으로 살아온. 구부정한 발가락 거뭇거뭇한 발톱 금이 가 벌어진 발뒤꿈치며 여기저기에 박인 옹이와 굳은살, 도짓소로 살아온 세월의 유산. 한밤, 구도자 고행의 훈장에서 성자의 말씀 들린다 내리 걸어야 할 길 본다 두 발이 몰래 흘렸을 눈물 헤아리다 마음속 촛대에 불 밝히고 참회의 뜨거운 경배 발볼에 기-인 입맞춤 한다.

오늘의 시 2024.04.24

큰댁 형수

큰댁 형수/월정 강대실 안 잊고 꼭 상골 찾습니다 큰댁 형수가 동구 밖 벅수처럼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십니다 해와 달 번갈아 이고 지고 한세상 밭고랑창 묻히어 사시다 허위허위 녹두밭 윗머리에 선 앞 고샅 돌멩이 채이는 소리에 고무래처럼 휜 허리 일으켜 뒤뚱뒤뚱 사립까지 걸어 나오시는 아재요, 나는 아주 잊은 줄 알았어! 두 손 덥석 받아 쥐고 한사코 안으로만 들자십니다 마주 앉으면 그새 더 왜소해진 모습 여기저기에 거뭇거뭇한 저승꽃 가슴이 아르르 저며 옵니다.

오늘의 시 2024.04.22

고향에 띄운 편지

고향에 띄운 편지/ 월정 강대실 울 밖 한쪽에 슬슬 뿌린 푸성귀 시나브로 앞들 뒷산으로 퍼져나가 나서면 달래 냉이 참취… 나물거리라니! 볕받이 막에서 새끼 치던 짐승 알게 모르게 야음 타고 뛰쳐나가 까투리 토끼 멧돼지… 사냥감 천지라니! 친구, 참말로 재수가 불붙었네 그려 바쁜데 뿌리고 돌보지 않아도 산열매 칡뿌리 산삼 녹아든 물 먹고 해와 달 별을 보며 우둥푸둥 살찐다니 여보게 친구, 꼭 부탁하네! 올여름 죽마고우 탁족회 날 잡히면 연락 주시게, 인제는 나도 안 빠지려네 벼르던 모교에 들러고 어우렁더우렁 한 사나흘 고향의 명소도 쭉 둘러보며 나물 캐고 사냥도 넉넉히 하세 계곡물에 발 담그고 앉아 장만한 안주에 친구네 잘 익은 가양주 권커니 잣거니 정리 듬뿍 쌓아보세.

오늘의 시 2024.04.21

골목길

골목길 / 월정 강 대 실 골목길을 좋아한다풀잎 향 그윽한 들판 오솔길이나갯냄새 물씬 풍기는 바닷길도 좋지만인정이 뭉뚝뭉뚝 묻어나는 골목길이 더 좋다 먼동 트면 서로 먼저 내 집 앞 깔끔히 쓸어새날을 기도의 마음으로 열어서 좋고살살이 어느 틈에 종종걸음 쳐 나와깔깔깔 그림자 쫓는 반가운 인사가 좋다 울담 위로 슬그머니 고개 내민 장미쏟아붓는 새빨간 미소를 만나 좋고삐그시 열린 자그마한 쪽문 사이로주인댁 소박한 일상 들여다보여 좋다성근 울 틈으로 성깔지게 흘러나오는갓난애 보채는 소리 절창처럼 좋고개구쟁이들 모아들어 가댁질치다 쏟아내는해맑은 웃음과 우정이 답쌓여서 좋다  바람길 그늘터 평상에 모여 앉은 이웃사촌도란도란 나누는 구수한 이야기꽃 좋고손님을 맞고 보낼 때에는 대문 앞에 나와주고받는 살가운 정이 정..

오늘의 시 2024.04.19

꽃잎 지것다

꽃잎 지것다/ 월정 강대실 엊그제 봄비에 벙긋벙긋 꽃숭어리 비바람 치면 어떡하나 꽃잎 아깝게 지것다 바람길 심등 켜고 기다렸다고 꽃그늘 꽃자리에 앉아 눈도 맞추고 한 마리 꽃나비가 되고 싶은데 간힘을 주어 예쁘게 피운 꽃 오늘밤은 바람비 내리친단 예본데 꽃잎 하염없이 지것다 마음의 탕개를 조인 봄의 역사가 일순의 비바람에 오고 간다고 생의 여정도 같다 일러 주려는 듯.

오늘의 시 2024.04.09

봄 오는 길목

봄 오는 길목/ 월정 강대실 돌아서지 못한 계절 움츠려 있다 배시시 웃는 햇 살에 녹아 버린 언덕바지 아래 지난 가을의 흔적 옹기종기 둘러앉아 옛이야기 수군대면 대지가 몸 풀어 봄 애기 뾰조록이 머리 내밀고 강에 진치고 있는 동장군 남녘에서 올려 보낸 화신에 전열 풀 고 화평을 화답하는 노래 부르면 마른 풀덤불 속 몸 사리고 있던 갯버들강아지 시름 잊은 듯 창 열고 해동갑하여 연초록 물 품어 올려 단장한다. (1-57. 잎새에게 꽃자리 내주고)

오늘의 시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