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10

부끄러운 날2 -몸살 앓는 산하

부끄러운 날2 /월정 강대실 -몸살 앓는 산하 씨알로 떨어진 땅에서 한 발짝도 꼼짝 않고 눌러산다고 허리 굽은 노송 말을 붙인다 언제인가 생겨난 뒤로 한 번도 바람에 장단 맞춰 춤춘 적 없다고 곰바위가 말 보탠다 어디서 뺨을 얻어맞았는지 눈에 모를 세우고 떼거리로 몰려 와 걸신같이 먹고 마시며 게걸게걸 떠들다 도토리만 한 묘수라도 났는지 결코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입찬소리하다 그만 술에 떨어져 즐빗이 퍼질러 자더니 ​ 갈 때는, 난장판을 쳐 놓고는 나 몰라라 달랑 빈 배낭 하나 걸쳐 매고 빚쟁이 야반도주하듯 날라 버린다고 줏대도 제 곬도 없는 코푸렁이들 백 번이라도 뺨을 맞아도 싸다고 열이 받친 바람 다발총처럼 말을 갈겨댄다. 2024. 3. 22.

오늘의 시 2024.03.28

탐매-화엄매

탐매-화엄매/월정 강대실 산동골 산수유꽃 흐드러진 소문에 꽃 같은 내 님이랑 꽃구경 가렸더니 들리네 구례 화엄사 화엄매 찾는 음성. 각황전 긴 삼동을 염불로 지새우며 길상암※ 들매를 사무치게 기리더니 올봄엔 천연기념물※ 입적했네 홍매도. 서둘러 벌거니 꽃단장한 아리따움 그윽한 향 백매랑 화음을 이뤄 내니 사바의 구름 중생들 경탄해 마지않네. ※길상암: 화엄사 대웅전 뒷길로 호젓이 가면 구층암을 지나서 있음. 수령 450년의 화엄매 (들매화. 백매. 천연기념물 485호)가 있음. ※천연기념물: 들매에 이어 홍매도 올봄 천연기념물 화엄매로 추가 지정 됨.

오늘의 시 2024.03.24

봄날 엽서

봄날 엽서 / 월정 강대실 황사바람 훔친 하늘에 금살 넘실댑니다 구례 지리산 들머리 고향 마을 산수유 어느새 여울여울 꽃불 탑니다 그대여, 지금 내가 못 견뎌 하는 건 봄이 너무 좋아서가 아닙니다 무심히 흐르는 섬진강 탓도 아닙니다 그대 떠난 자리에 외로 나동그라진 차디찬 돌멩이여서가 아니고 사무치는 그리움 못 참아도 아닙니다 그대여, 내가 긴긴 봄밤 망연히 지새는 건 하 많은 바람의 싹 파릇이 못 틔워 내고 떨쳐 버리지도 못해서가 아닙니다 가슴을 쓸어안고 피다 스러지는 민둥제비꽃 어르는 봄비의 아픔이 아니고 거기 그냥 서 있는 산 갈마들어 보듬는 계절의 목마름은 정말로 아닙니다 그대여, 지금 내가 너무도 못 견뎌 하는 건 서천에 붉게 타는 저 노을의 아름다움 감히 그대는 까맣게 몰라서 입니다. (2-3..

오늘의 시 2024.03.21

새봄을 그리다

새봄을 그리다/월정 강대실 일월의 시간 막다른 골목에 붙박여 운신 제대로 하기 힘듭니다 가슴이 짓눌리는 듯 갑갑하고 탄식 맘대로 뱉어 내지도 못합니다 꼭두 봄 기다림은 일상이 되고 갈급한 바람 봄의 길목에 우뚝 서서 하늘만 뚫어져라 우러릅니다 올해에는 뭐든 꼭 좋은 일만 선물처럼 한아름 안겨 주실 가슴 벅찬 새봄 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여며 청심촉을 밝히고 지새워 애잔한 기도 받칩니다 그늘받이 무욕의 풀잎 하나까지도 환희에 찬 얼굴 내밀 모습 그리며.

오늘의 시 2024.03.17

광주문학 제 110호(2024.봄)

1. 광주문학 2024 봄.통권 110호 2. 발행일 2024. 3. 10. 3. 발행인: 이근모(광주문인협회장) 4.발표시: 못 못 탕탕! 못 박았다 버럭 불뚝대고 말을 무지르고, 안하무인으로 무던히도 믿었던 이들 가슴에 깨소금처럼 고소했다 마음의 탕개가 풀려 눈에 띄는 것이 없고 하늘 무서운 줄 몰랐다 어쩌다 역지사지할 때는 박은 못에 붙박여 곁이 허했다 세상을 막사는 망나니짓, 질매를 당하고도 버릇을 개 주지 못했다 어느새, 망치도 못도 다 녹슬고 못 쓴 지 오래 종용히 뒷방에 들앉아 면벽하다 파란 많았던 생 뒤돌아본다 꺼들대며 무수히 박은 크고 작은 못 대침 되어 내 야윈 가슴팍에 내리박히고 찬웃음 매서운 눈빛 한없이 뒤통수에 꽂힌다. 5. 증빙사진

그림자 찾는 노인장

그림자 찾는 노인장/월정 강대실 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 정오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 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 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 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 소복단장에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깊이 젖었을까 ‘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 눈자위보다 더 깊은 기다림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 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 뛰노는 학동들에게서.

오늘의 시 2024.03.13

큰애에게 보내는 메일

큰애에게 보내는 메일/월정 강대실 얘야, 시간 한 번 내거라! 잠깐 아무리 곁눈질 할 틈이 없을지라도 근일 내로 네 안이랑 민성이랑 셋이서, 꼭 거기 초입 하당에 아버지와 오랫동안 벌꿀보다 더 달고 끈끈하게 통정해 온 막역지우 한 분 계시니라 미루지 말고 전화 올려 내 말씀 드리고 꼭 한 번 찾아뵙고자 한다고 언제든 좋으니 시간 주십사 허락 받아라 미리 지척이 천리라고 이 근년 서로 간에 전화만 그넷줄같이 오갔지 상면 없어 어제는 연락이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발 너르기가 거기 앞바다 정박선이요 노적봉보다 더 큰 덕 쌓으신 분이다 했더니 너희들이 꼭 찾아뵙고자 한다고 얘기했다 가서는 곡진히 정례에 약주 한 잔 올리고 언제고 올라오시면 꼭 한자리 하시잔 다고 말씀 잊지 말고 틀림없이 올려라 시종 말씀..

오늘의 시 2024.03.10

봄의 길초에서

봄의 길초에서/월정 강대실 꽃샘바람 불어친다 탓을 말아요 몇 날이고 불어대게 꽃이 울며 손짓해도 그냥 두세요 시새워만은 아녜요 헤살질이 꺾이어 밟히는 못다 한 생 하르르 지는 꽃잎 엽서 한 장에도 하냥 가슴 저미는 봄의 여신이여 칼날처럼 날렵한 당신 생각다 북받치는 서러움 주체할 길 없어 하얀 낮달이 봄의 길초를 서성이는데 일다가 어느새 스러지겠지요 흔들리며 찬란히 예쁜 꽃물 들지요 긴긴 기다림이 닿기 전에. 2024. 3. 5.

오늘의 시 2024.03.05

살아내기2

살아내기2/ 월정 강대실 식솔들 입에 풀칠이라도 할라치면 칙살스럽지만 납작 엎드려서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고 바람 앞동질러 근지러운 데 찾아 긁어 주고 입 맞춰 그림자로 따라나서다가도 어언간 결단의 문턱에 서면 뾰로통 머리 내미는 내 안의 나 던지러워 스르르 접어 버리는 위선 비럭질 할망정 다리아랫소리 하기 싫어 물린 밥상 차지한 오늘도 눈 들어 부끄럼 없이 하늘 우러른다. (2-73.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

오늘의 시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