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03 33

19. 서정주 시/ 18. 고요

/ 서정주  이 고요 속에눈물만 가지고 앉았던 이는이 고요 다 보지 못하였네. 이 고요 속에이슥한 삼경의 시름지니고 누었던 이도이 고요 다 보지는 못하였네. 눈물,이슥한 삼경의 시름,그것들은고요의 그늘에 깔리는한낱 혼곤한 꿈일뿐, 이 꿈에서 아조 깨어난 이가비로소만길 물 깊이의 벼락의향기의꽃새벽의옹달샘  속 금동아줄을타고 올라 오면서임 마중 가는 만세 만세를침묵으로 부르네.

19. 서정주 시/ 17. 쑥국새 打鈴타령

쑥국새 打鈴타령 / 서정주 애초부터天國천국의사랑으로서사랑하여사랑한건아니었었다그냥그냥네속에담기어있는그냥그냥네몸에실리어있는네天國이그리워竊盜절도했던건아는사람누구나다아는일이다아내야아내야내달아난아내쑥국보단天國이더좋은줄도젖먹니가나보단널더닮은줄도어째서모르겠나두루잘안다그러니딸꾹울음하고있다가딸꾹질로바스라져가루가되어날다가또네근방달라붙거든예살던情分정분으로너무털지말고서下八潭上八潭하팔담상팔담서옛날하던그대로또한번그어디만큼묻어있게해다오

19. 서정주 시/ 16. 선덕여왕의 말씀

선덕여왕의 말씀  짐朕의 무덤은 푸른 영嶺위의 욕계 제이천第二天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너무들 인색치 말고있는 사람은 병약자한테 시량柴糧도 더러 노느고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첨성대瞻星臺 위엔 첨성대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살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황금 팔찌를 그 가슴 위에,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서라벌 천년의 지혜가 가꾼국법國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늘 항상 더 타고 있어라. 짐의 무덤은 푸른 영 위의 욕계 제이천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

19. 서정주 시//14. 눈 오시는 날

눈 오시는 날 내 연인은 잠든 지 오래다. 아마 한 천년쯤 전에……. 그는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그 꿈의 빛만을 나한테 보낸다. 분홍, 분홍, 연분홍, 분홍, 그 봄 꿈의 진달래꽃 빛깔들. 다홍, 다홍, 또 느티나무 빛, 짙은 여름 꿈의 소리나는 빛깔들. 그리고 이제는 눈이 오누나……. 눈이 와서 내리 쌓이고, 우리는 저마다 뿔뿔이 혼자인데 아 내 곁에 누워 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

19. 서정주 시/13. 님은 주무시고

님은 주무시고  님은 주무시고, 나는 그의 베갯모에 하이옇게 수놓여 날으는 한 마리의 학이다. 그의 꿈속의 붉은 보석들은 그의 꿈속의 바다 속으로 하나하나 떨어져 내리어 가라앉고  한 보석이 거기 가라앉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한 이별을 갖는다.  님이 자며 벗어놓은 순금의 반지 그 가느다란 반지는 이미 내 하늘을 둘러 끼우고  그의 꿈을 고이는 그의 베갯모의 금실의 테두리 안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또 한 이별을 갖는다.

19. 서정주 시/10. 꽃밭의 독백

꽃밭의 독백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 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19. 서정주 시/9. 풀리는 한강가에서

풀리는 한강가에서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 이파리 같은 것들 또 한 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 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 번 더 바래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19. 서정주 시/8. 추천사

추천사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한 풀꽃 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19. 서정주 시/7. 국화 옆에서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19. 서정주 시/5. 귀촉도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미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굽이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9. 서정주 시/4. 부활

부활 내 너를 찾아왔다 순아.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냐.순아, 이것이 몇 만시간 만이냐.그날 꽃상여 산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리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촉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 린지, 한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아 순아! 순아! 순아! 너 이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19. 서정주 시/3. 자화상(自畵像)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

19. 서정주 시/2. 화사

화사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꿰어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베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베암.

8. 문병란/ 24. 가을행

가을행                             문   병   란가을 아침 문득손수건 한 장으로 길을 나선다아무 준비 없는 길 떠남이이토록 가슴 설레임은 무엇일까.모르는 얼굴들 틈에서 두리번거리며쫓겨가는 사람모양 서글픔을 안고다음 열차를 기다려 개찰구 앞에 서면제법 감도는 인생에의 비장감,누구에게 결별을 고하지 않았어도나의 애틋한 마음 허공에 운다.인간의 고독한 삶이여, 줄줄이 매달린온갖 속연들, 마누라와 자식과제자와 직장의 동료와 여러 친척들,그들의 눈빛은 오히려 선하기만 하거니지금 내가 들고 있는 차표 위에는유언처럼 슬픈 내일의 이정표가 흐른다.다시 오지 못할 길일지라도후회하지 말라 가을 바람은 소슬하고내 피에 섞인 역마성은먼 하늘의 흰구름을 손짓해 부른다.떠남을 재촉하는 철맞은 코스모스야너..

8. 문병란/ 23. 서편에 달이

서편에 달이                           문  병  란서편에 달이 지려 하고 있다.하품하는 키 큰 미루나무가그 달과 눈을 맞추고 있다.지난밤 나는 꿈속에서누군가를 만났는데이 아침 문득서쪽에 사는 사람이 그리워진다.아쉬움이 남는 밤촛불 한 자루 다 태우지 못한 밤호박 잎 위에서 여름밤이 도르르 말린다.이 새벽 무슨슬프지 않은 이별이 있는 걸까.지는 달을 안고호수가 별들을 토해낸다.삼나무가 자꾸만 손을 흔든다.서편에 달이정다운 벗처럼 떠나고 있다.친구, 친구, 날 잊지 마셔요.어디선가 누가 작게 울고 있다.

8. 문병란/ 22. 전라도 젓갈

전라도 젓갈                                 문   병   란썩고 썩어도 썩지 않는 것썩고 썩어도 맛이 생기는 것그것이 전라도 젓갈의 맛이다전라도 갯땅의 깊은 맛이다괴고 괴어서 삭고 곰삭아서맛 중의 맛이 된 맛온갖 비린내 땀내 눈물내갖가지 맛 소금으로 절이고 절이어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맛소금기 짭조롬한 눈물의 맛장광에 햇살은 쏟아져 내리고미닥질 소금밭에 소금발은 서는데짠맛 쓴맛 매운맛 한데 어울려설움도 달디달게 익어가는 맛원한도 철철 넘치게 익어가는 맛어머니 눈물 같은 진한 맛이다할머니 한숨 같은 깊은 맛이다자갈밭에 뙤약볕은 지글지글 타오르고꾸꾸기 뻐꾸기 왼종일 수상히 울어예고눈물은 말라서 소금기 저린 뻘밭이 됐나한숨은 쉬어서 육자배기 뽑아올린 삐비꽃이 됐나썩고 썩어서 남은 ..

8. 문병란// 21. 아버지의 귀로

아버지의 귀로 문병란 서천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리어커꾼의 거치른 손길 위에도 부드러운 노을이 물들면 하루의 난간에 목마른 입술이 타고 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애인이 된다는 것, 무너져가는 노을 같은 가슴을 안고 그 어느 귀로에 서는 가난한 아버지는 어질기만 하다. 까칠한 주름살에도 부드러운 석양의 입김이 어리우고,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그 아들딸 앞에 돌아오는 초라한 아버지, 그러나 그 아들딸 앞에선 그 어느 대통령보다 위대하다! 아부도 아첨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왕국 주류와 비주류 여당과 야당도 없이 ..

8. 문병란/ 20. 배암

배암                           문   병   란배암,너는 저주 받은 운명을 몸에 두르고돌팔매 단죄 장대공격을 피하여볕 가린 구멍이나음지의 진구렁 가시밭에아무도 모르게 고독을 또아리쳤다.아담과 이브,차라리 진실은 인간의 죄를 둘러씌운 음모소리를 빼앗긴 혓바닥 낼룽거리며너는 또 돌팔매에 쫓기는구나멋대로 타락한 인간들뱀을 팔아 하느님을 배신한보다 더 징그러운 인간의 혓바닥들이총알보다 무서운 증오를 내뿜는다배암,눈이 시리게 차거운 달밤이면오만한 조상의 풍속을 배워호화로운 뱀춤 기나긴 교미를 끝내고아라비아 사막의 노래 피리를 부느냐.슬기롭고 냉혹하여라 배암,완강한 운명의 목줄을 물어뜯어선지피 낭자한 그날에다시 한 번이브와 아담을 타락하게 하려므나.

8. 문병란/ 19. 매운 고추를 먹으며

매운 고추를 먹으며                           문   병   란오뉴월 더위에 약 오른매운 고추,된장에 찍어그 정력제를 먹으며맵고 毒한 오늘의 눈물을 삼킨다.눈물을 흘리면서호호 불면서한사코 매운 것으로 골라 먹으면뼈 속까지 스미는 이 맵고 독한기운,그 어느 장미의 肉香보다 더욱 진하게우리의 오장 깊이 아리힌다.오직 우리만이 알고 있는서러운 눈물, 千年의 恨을 삼키듯질겅질겅 씹어 삼키는 매운분노,모질게 으깨려 온너와 나의 슬픔을 깨문다.그 옛날 不逞鮮人의 눈물을 알고그 半島人의 가슴에 맺힌 恨닛본刀 끝에서 피흘리던마디마디 맺힌 슬픔이오늘은 작은 고추 속알알이 스민 매운 역사.최루탄 가스보다 더 아리게우리의 마음을 울리고모질게 깨아무는어금니의 충돌그 속엔 무엇이 으깨려져 지는가. 고추를 못..

8. 문병란/ 18.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문  병  란나의 눈은 밤중에도 오히려대낮처럼 환하다다방의 탁자와 커피잔들이내 머릿속을 걸어다닌다무수한 골목들이실뱀처럼 기어다닌다묵은 책들이 눈을 뜨고쥐마저 잠든 밤나는 남처럼 앉아 나를 바라본다너는 또 무엇이 그리워이 밤에 동그랗게 앉아 등불을 지키는 것이냐언제부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이루지 못할 사랑 하나 큰 죄악처럼 지니고이 밤도 너는 단테의 제7지옥 애욕의 골짜기깊고 먼 고뇌의 어둠 속을 헤메고 있구나새벽 세 시죽어버린 올빼미도이 밤엔 울지 않는다내 슬픈 임종처럼 고독한 밤두 눈 말똥해 가는 불면 속에서사신(死神)처럼 앉아 있는 외로운 사내를 본다

8. 문병란/ 17. 예수가 계신 곳은

예수가 계신 곳은 문   병   란호화찬란한 교회당거기에 예수는 없다은빛 빛나는 벽장식의 거대한 십자가거기에 예수는 없다수천만원이 모이는 바구니 속의 헌금거기에 예수는 없다장엄하게 들리는 수백명 합창단의 찬송거기에 예수는 없다.예수는 예수를 모르나 예수를 닮은 사람들의어질고 가난한 손 가운데 있고굶주린 사람들이 물어뜯는 한덩이 빵義人의 목마름을 적시는 한 잔의 우유빈 창자를 채우는 한 그릇 밥 속에 있다.그대 서가를 장식하는 금박의 책그대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속세의 명성소리 높여 부르는 저 호리톤의 기도흥겨운 박자에 맞추어 부르는 열광의 찬송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을 파는뭇 바리새인들의 혀끝에서예수는 두 번 다시 처형을 받는다.벗겨지지 않는 가시면류관멎지 않는 구멍 뚫린 옆구리의 피두꺼운 벽 속에 갇..

8. 문병란/ 16. 꽃에게

꽃에게 문   병   란차라리 마지막 옷을 벗어버려라.밤마다 비밀을 감추고마지막 부분,부끄러운 데를 가리우던그날부터.내 앞에 위태롭게 서 있던 자태.너를 탐내는 눈 앞에너를 더듬어 찾는 음모의 손길 앞에간신히 지켜온비밀,가장 안에 감춘 빛나는 아픔을 보여주어라.그 어느 빛의 언저리에서간음 당하는 너의花心,이 눈부신 밝음 앞에탐욕의 눈길들이 너를 찾고 있다.오늘의 수치,白磁의 無法 앞에알몸으로 떨고 있는 꽃이여.아슬아슬한 빛의 난간에서네가 마지막 지킨분노,어느 절정에 눈을 꼭 감고 있느냐.이제 지켜야 할 아무것도 없는赤裸裸한 가슴,차라리찬란한 밝음을 갈갈이 찢어버려라.

8. 문병란/ 15. 손

손 문  병  란서로의 可能이 꽃피는 距離를 두고저만치한 개의 銀錢이 놓인다.핏빛 아픔이 벙을히는 손금을 따라가면거기,전쟁이 누워 있는 地圖속.한 줄기 아픈 線이 금그어지고.어느 날엎었다 뒤집는 손바닥 위에20만분의 1로 줄인 세계가 펼친다.지금은 물러나빈 잔을 채우는 저녁 일곱時 위에길게 놓여 있는 수지운 孤獨.밤이면 둘 곳 없는 나의손.차가운 은메달 언저리에목마른 어둠이 기어내리고.한밤중.비밀 회담이 시작되는 나의 王國거기.황홀히 點火되는 손가락끝.極東의 위기가 불타오른다.잠든 젖무덤 사이,위기일발의 8부 능선을 따라또 하나의 火藥庫 위에 기어가는 나의손.전쟁은 極點에 피어나는 꽃이었다.이제는 찬란한 깃발을 내리고두 손을 한데 모으는 밤.凍傷이 번지는 아픔을 모아M1소총 방아쇠언저리.긴 겨울을 지키던..

8. 문병란/ 14.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문   병   란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철조망이나 탱크가 아니다.철조망이나 탱크보다 더 완강한 것은우리들의 편견, 우리들의 이기심,형제의 손에 떡 대신 돌을 쥐어 주는욕망의 빌딩을 쌓아올리는모진 놀부의 욕심에 있다.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제국주의나 파시즘의 논리만이 아니다.최루탄보다 총칼보다 더 무서운 것은우리들의 기득권, 우리들의 독점욕,형제의 가난까지 훔쳐다 투기하고손만 닿으면 황금이 되는 마이더스의 욕망,수천억의 공장을 통째로 삼키는 저금통장에 있다.우리를 가로막고 갈라놓는 것은휴전선이나 판문점 초소가 아니다.잘못된 지배논리, 약한자의 이마를 딛고핏줄기보다 인간끼리의 참된 사랑보다얼굴이 닮은 동포의 ..

8. 문병란/ 13. 고무신

고무신                         문   병   란어느 노동자의 발바닥 밑에서40대 여인의 금간 발바닥 밑에서이제는 닳아지고 구멍 뚫린 고무신,이른 새벽 도시의 뒷골목 위에서나저무는 변두리의 진흙밭 속에서나그들은 쉬지 않고 아득히 걷고 있다.태어날 때부터 쉬임없이 걸어온 운명,존데만 딛고 온 고단한 발길 따라캄캄한 어둠도 밟고 가고끝없이 펼쳐진 노동의 아침,타오르는 불길도 밟고 간다.아득한 시간의 언덕 너머 펼쳐진고향의 잃어진 논둑길을 걸어서가물거리는 호롱불을 찾아가는 고무신,두메산골 머슴의 발바닥 밑에서도뿌듯한 중량의 눈물을 안고그들은 어디서나 돌아오고 있다.영산포 어물장 법성포 소금장이 장 저 장 굴러다니다영산강 황토물 속에 처박혀멀뚱멀뚱 두 눈 부릅뜨고한많은 가슴 썩지 못하는 고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