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6 21

청죽골 사람들

청죽골 사람들/ 월정 강대실  동구 밖에서  앞산 코숭이 거쳐뒷산 중허리까지푸른 죽의 장막에 에워싸인 두메 왕대밭 휘돌아 도랑물 지줄대고참대밭 샛길 넘어 신작로 열리고청대밭 건너 앞들 옥토 일군다 알몸 부비며 삼동을 넘는 인고대숲에 술렁이는 바람의 어울림아궁이 속 튀는 대통의 용맹 담아 대쪽 같은 심지하늘 닿는 꿈을 갈며오순도순 댓잎처럼 살아간다.초2-70

1. 오늘의 시 2023.09.06

구릿대

구릿대 姜 大 實 섭섭다 않으리다 내 열 수 없는 마음 탓에 먼산 보듯 했던 지난 날 밟히고 잘리고 짓뭉개져도 기필코 피워내고픈 속 깊은 꿈에 어디랄 곳 없이 발 묶고 귀도 눈도 내버리고 세상없는 멀대로 서서 두견이 검은 흐느낌 은하수 맑은 물로 씻어 무던히 내일을 기웠던 나날들 원도 한도 없이 이제는 열어젖뜨립니다 가슴을 영영 기억해주실 계절이라.

1. 오늘의 시 2023.09.06

중년의 서글픔

중년의 서글픔 姜 大 實 죽마 올라타고 골목을 쓸고 다닐 땐 산뜻한 교복에 가방을 든 형들의 의젓함 보면 빨리 나이 든 게 원이었건만 덧없는 세월 앞에 애들은 머리가 굵고 하나 둘 가까운 지기들 자식 또래에 자리 빼앗겨 기죽어 살아야 하는 중년 바람 앞 나부대는 잎새보다는 지는 꽃잎 기리며 어줍은 몸으로 살아가는 사시나무의 하루하루는 길고 서글픔에 겨운 하늘 우러른다.

1. 오늘의 시 2023.09.06

동전을 손에 쥐고

동전을 손에 쥐고                                       姜   大   實 달랑대는 동전 몇 닢주머니 속 쥐고 걷는다바람 일면 누더기 둘러쓰다가까스로 순풍 끝자락에 달려살아내는 아픔 우려 태우는호롱불 같은 내 자신을 떠올린다이렇다 할 자리는 얼씬도 못하고세세한 틈새에 발붙여십 원짜리 울부짖음으로 버텨낸 한 생밀쳐도 덧없이 밀리는 물살에여울목 돌부리 붙들고 버티다작은 욕망마저 시린 그 날엔억지로는 살 수 없다 자위하며 대지의 용광로에 녹아 없어지리.

1. 오늘의 시 2023.09.06

산마을 여름밤에

산마을 여름밤에 姜 大 實 어찌 이 밤이 혼자이랴! 그리움은 신작로에 아른거리고 도랑가에 돌멩이로 어울려 먼 산봉우리 불러놓고 앉아서 어찌 이 밤이 외로우랴! 산공기 서늘히 감싸주고 미물들 외등 이마에 몰려 물안개 쑥불로 피어오르는데 어찌 이 밤이 슬프랴! 하늘 창으로 별들의 전설이 오고 울며 헤매던 산짐승 가깜이 내려와 아는 시늉하는데 어찌 멀어지는 것뿐이랴, 쓰디쓴 외로움뿐이다 하랴! 계절은 산자락에 싱그럽고 산마을 포근히 잠든 여름밤에

1. 오늘의 시 2023.09.06

미운 살구나무

미운 살구나무/ 월정 강대실 금살 좋아 하늘은 깊고뱃속에 허기 가득해 공허한데담 너머 빈터 혼자 흐드러진 살구꽃 앞산 자락 스친 바람에펑펑 쏟아져 날리는 꽃잎튀밥이 아니어서 아깝기만 한데 별들의 소망 받아먹고어느새 보송보송한 열매 눈 맞추면살구보다 큰 덩그런 허기 어스름에 친구랑 담 넘다 들키어줄행랑 놓다 넘어지고 붙들려벌을 서게 한 미운 살구나무.초2-704

1. 오늘의 시 2023.09.06

산방일기7

산방일기7 姜 大 實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가만히 샛문 밀치고 나가니 뒷산이 겸연스레 서 있었다 이슥토록 인기척이 들려 더듬더듬 바람 따라 왔단다 상기 돌 짐도 짊어질 젊음인데 아주 왔느냐 턱 밑에 다가선다 여태껏 어디메서 살고 몇이나 먹고 식솔은 어떠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보아하니 망해 들어온 건 아닌 것 같고 내왕하며 형제 같이 살잔다 멀찍이서 엿듣던 노송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1. 오늘의 시 2023.09.06

그대에게 비는 용서

그대에게 비는 용서 姜 大 實 할퀴인 생채기야 흔연히 새날이 싸매 주지만 가슴에 맺힌 그 한 마디 여름 갈수록 앙금으로 갈앉고 지우려면 샛별로 글썽해 마음 기댈 곳 없으련만 상처 없는 이 어딨냐며 지울 수야 없지만 잃기 위해 애쓴다는 듯 눈길 한 번 흘리지 않고 속 깊지 못한 탓이었노라고 얼굴 빨개지곤 한 그대 그대여, 그 때 일이 지금껏 손톱 밑 거스러미 되어 아픔 돋쳐냅니다.

1. 오늘의 시 2023.09.06

산방 일기5

산방 일기5 姜 大 實 문 열고 들어서려니 너 같으면 가만 있겠느냐고 사방 을러메는 종주먹에 옷 갈아입고 나와 사알한다 멀고 가직한 산 둘러보며 반겨 줘 감사하다 목례하고 둠벙가 쪼그리고 앉아 속 훤한 것이 같다며 손 내민다 먼발치 호수로 눈길 보내며 이 갈한 세상에도 거연한 네가 젤이다 손사래하고 쌜쭉 토라져 앉은 바위 찾아가 풍진세상에 너 뿐이라 추어준다

1. 오늘의 시 2023.09.06

마음 고쳐먹기

마음 고쳐먹기/ 월정 강대실                                                                         괜스레 내가 밉고 은근히 화가 치밀어홀연히 긴 그림자 따라 나선다 삼나무 편백나무가 한세상 이룬숲 속에 겸연쩍이 발을 들여 놓자귓전에 희미한 음성 들린다나를 상하게 하는 것은꿀 바른 말로 입 맞출 줄 몰라어느 틈에 하나 둘 먼전으로 돌고종국엔 스스로 무인도에 갇히어나도 모르게 외돌토리가 되었단다 나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한 생 하늘 바라 서로 기도로 산다며먼 산의 불 보듯 말라 한다모여든 곳 각각이고 냄새가 나도 내색 않고 섞여서 함께 썩지 않는깊고 넓은 바다가 되라 이른다.

1. 오늘의 시 2023.09.06

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 월정 강대실 눈길을 나선다 입춘이 내일인데 길이란 길은 끝없이 흰 길로 통하고 금방 스친 이가 찍은 발자국까지 숨어버린 눈 길 소록소록 걷는다 속에 사그라지다 남은 그리움 조각 눈 속에 빠끔히 고갤 내민다 추억이 서린 길 따라 걷는다 눈꽃 으로 피워내며 이슥토록 걷는다 이 길 다 가고 나면 그리움 이울고 말겠지 어느새 가로등 하얀 빈 터에 기다려 서 있는 문 앞에 당도한다 툭툭 그리움 털어 낸다 눈물을 닦아낸다. 눈길을 걸으며/ 월정 강대실 눈길을 나선다 입춘이 내일인데 길이란 길은 끝없이 흰 길로 통하고 금방 스친 이가 찍은 발자국까지 숨어버린 눈길 소록소록 걷는다 속에 사그라지다 남은 그리움 조각 눈 속에 빠끔히 고갤 내민다 추억이 서린 길 따라 걷는다 눈꽃으로 피워내며 이슥토록 걷는..

1. 오늘의 시 202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