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3)좋은 시 4

순천만 갈대/ 손광은

순천만 갈대/ 손광은  가을을 엿듣고 있으면가래는 흔들리지 않는구나푸른빛도 보이지 않고하얀 입술을 문지르고 있구나.달이 떨군 한숨인 듯 하얗게휘청휘청 나부끼고아무르강 흑두루미순천만에 날라와 끼룩끼룩 울고,물면에 몸에 던져 부비듯,스스스 서걱이는 마른 갈대잎 휘날리지만,갈대는 흔들리지 않는구나. 바람에 몸을 맞긴 채 가슴끼리 맞부비고 흔들리지 않는구나.갯바람도 쓸어모아 자지러지게 부딪히는 소리뿐건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에 춤을 출뿐.... 갈대는 휘모리로 휘모리로 귀가 열리네.가을에 갈대는 귀가 열리네.갈대는 가을에 휘모리로 귀가 열리네.내가 엿듣고 마는 나를 갈대는 나를 만나네.숨어있는 나를 향해 석양 빛을 길게 뻗고강이 뒤채는 물면 그늘에 빛을 던지네.흰달이 흰물결 뒤로 떨어질 때까지다소곳이 서서 뉘..

보리타작/ / 손광은

보리타작/ 손광은 어릴적 머슴인 내 아버지는 마당 복판에 무더위를 불러들인보리단을 놓아둔다까실까실한 사슬이 매달린 보리,단정히 부수지 않고손가락을 대본다.실한 머슴은 곁에 있는 농주를 마시며푸른 보리를 생각한다.풀잎 같은 풀잎이었다가풀잎 같은 보리였다가풀잎 같은 보리국물을겨울에는 마시며,지금은 풀잎같이의식을 일으켜비밀의 구조를 갖고 누렇게 살아 있는,보리를 술잔에 비쳐보곤 히죽이 웃으며,「여 때리라저 때리라」거만스럽게 삐걱이며도리깨질을 하면서 잠 깊은 누런 이마를 후려친다. 후려쳐....서성이는 어머니는 빗자루를 치켜들고왔다, 갔다,튀어나는 보리알을 쓸면서신비로운 내 시선 사이로 지나간다.큰물소리가 지나간다.곁에 가던 먼지가불타듯 연기되..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손택수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모처럼 만에 입은흰 와이셔츠가슴팍에김칫국물이 묻었다난처하게 그걸 잠시들여다보고 있노라니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김칫국물을 보느라숙인 고개를인사로 알았던 모양살다보면 김칫국물이 다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푹 숙이게 하는구나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ㅡ 손택수 [출처] 가슴에 묻은 김칫국물|작성자 파크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