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7 16

부활절 아침에

부활절 아침에 姜 大 實 기다림 앞질러 오다 뽑힌 뜨락의 잡풀 설한강 건너자며 들여놓고 못 살핀 화분 죽여버린 생명 위해 기도합니다 허기져 담 넘는 도둑고양이 내몰고 히포크라테스의 길에 공력 쏟는 어린 것 못 보고 자리에 든 것 자복합니다 립스틱 짙은 입술로 바람 쫓는 종이컵 벌어진 포도 틈에 빼꼼이 고개든 애기봄 무심결 짓밟은 것 회계합니다 찾아 드려야 할 위로 벼르다가 흘리고 내려놓아야 할 그리움 못 잊어 품곤 하는 나약한 마음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를 믿노라며 한 발 세상에 걸치고 다달이 감사헌금 소득의 10의 1 제대로 못 드린 것 자복합니다 찬송하고 말씀 축도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이대로 죽음 문에 치닫고 싶사옵니다 지은 죄 하얗게 씻은 부활절 아침에.

1. 오늘의 시 2023.09.07

선대들 뫼시던 날

선대들 뫼시던 날 姜 大 實 광산 이씨 집안 맏서랑 되어 자식을 둘씩이나 낳아 기르면서도 선조 무릎 밑 가지런 서서 읍례 한 번 제대로 못 드려 속 깊은 부끄럼 뿐이였는데 정여립사건으로 지금은 한 발 한 발이 아슬아슬한 순창 쌍치 오룡리 골짜기로 들어 삼대를 숨죽여 사시던 증·고조님 빙장 어르신 작고한 뒤로 한동안 발길 잃은 커막한 불효까지 범했건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잡목에 밟혀 가쁜 숨 몰아쉬고 계신 윗대 5 위 남의 벌 귀퉁이 대나무 그늘 아래 모로 누워 선잠드신 장모 망월동 떠도는 원혼들 틈에서 이제나저제나 그림자 기다리신 장인 윤이월 하늘 맑고 밝은 청명일 추월산 지산 정각산 비호재 밑 한갓져 풍광 자지러진 데다 영생의 새집 마련하여 뫼시고 형제들 무릎꿇고 속죄할 제 장인 장모님 한사코 내 짐 너..

1. 오늘의 시 2023.09.07

다시 새봄을 맞으며

다시 새봄을 맞으며 姜 大 實 돌팍 틈 주저앉아 털고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앙가슴이 미어져도 소리 내지를 수 없었습니다 회한으로 살라낸 자리에 에는 저림 답쌓이고 하늘은 서러워 붉게 넘어도 실한 끝물 보아야 합니다 당신 때문에, 타다 만 심지에 마즈막 불을 댕겨 반겨 맞으렵니다 새봄을 환희에 자지러져 가장 나중 눈물 한 방울까지 하르르 하르르 흘려낼 그 모습을 기리며.

1. 오늘의 시 2023.09.07

뒷자손 된 도리

뒷자손 된 도리 姜 大 實 번다스런 도회 생활에 물려 길 따라 정처 없이 헤매다 보면 강산을 야금야금 어지럽히는…… 이래선 안 되겠다 했건만 언제부턴가 삐긋이 관심의 창 열리기 시작하더니 더러 눈길 붙드는 데가 있고 초라한 선대 산소 찾을 땐 죄만 같고 뒷꼭지 부끄러워짐은 뒷자손 된 도리 다 못한 연유이리 올 공이월 청명일엔 그간 동기들 효심 모운 자리에 처가 어른들 편안히 모시려는데 자식들은 알랑가 몰라 아비 간 뒤에나.

1. 오늘의 시 2023.09.07

기우는 달을 좇으며

姜 大 實 잊어야 할 것 층층이 쌓아 놓고 새겨야 할 건 고스란히 흘리고 생은 이렇게 잦아지려느가 이 밤 족과 불만의 문턱 넘나들며 아리고 쓰린 것들은 추슬러 여정의 생채기라 가리 지어 놓자 그리고 돌아서야만 된다 산정을 향한 바람의 목마름으로 무던히 가슴 저미던 고독의 강을 마지막 태우다 남은 반생 찬란한 산화를 위해서라면,이젠 오줌동이라도 껴안아야 한다.

1. 오늘의 시 2023.09.07

한자리 딴 마음

한자리 딴 마음 姜 大 實 이름만 들어도 반가움 설레고 목로집도 좋던 못난 놈들 칼바람 훌닦은 뒷자리에 다시 모여 앉았다 먹거리집 쥔장이 되고 이웃을 밝히는 초롱이 되고 선생이 되어 다 나왔다 콜라를 트고 잔을 권하며 변신의 터널이었다 한다 아픔도 세월 강에 돌리고 재기의 날을 갈자고 벌떼같은 아우성이다 허나, 심곡 속 소용돌이치는 잔설의 냉기 포근한 봄날이 사무치게 그리워 운명처럼 가느다란 골목 찬 불빛만 터벅터벅 밟는다.

1. 오늘의 시 2023.09.07

친구야 너는 좋것다

친구야 너는 좋것다 姜 大 實 친구야 좋것다 너는 좋것다 올 봄 사월이면 꽃가마 타고 고운 님 온다니 네 님 온다니 너는 좋것다 정말 좋것다 친구야 친구야 너는 말이다 입술엔 나긋이 미소를 물고 가슴은 짓끓는 용광로 되어 나비 같은 네 님 얼싸맞거라 친구야 친구야 네 님 맞아서 손잡고 맘 문 열고 하나가 되어 못다 한 정화로 봄을 붙들고 한 세상 좋은 세상 길이 살거라.

1. 오늘의 시 2023.09.07

아랫마을 형님

아랫마을 형님 姜 大 實 노모 상 당했다네, 아랫마을 형님 쓰러진 형수 얼기설기 얽은 생명줄 십여 년을 앉을방이차에 앞세우고 젖은 안살림에 하많은 농사일에 바깥일까지 도맡아 고생고생하며 노질로 안방을 독차지한 어머니 삼셋때 없이 지성으로 수발들더니 장마 속 큰비에 붉덩물 넘치든 날 아버님 계신 천상으로 보냈다네 동기간 많으나 먼 텃밭 찾아가고 무릎 아래 여러 자식 철 덜 들어 눈 앞 벗어나면 망각의 강 건너니 터지는 앙가슴 그 누가 알았으리 앞산 같은 어머님 유명을 달리하여 하늘이 무너진들 애석함 씻으랴만 고개 숙인 조화 속 벙근 흰 국화 서글픈 향기 구슬비로 오가는 밤 날이 새면 영영 떠날 북망산 길 상여놀음 구슬픈 만가 먹밤에 깊어 얼마나 속울음을 토했었거나 짠하디짠한 예순 다섯 연우형님.

1. 오늘의 시 2023.09.07

역전에서 만난 고향 사촌

역전에서 만난 고향 사촌 姜 大 實 오고 잡더냐 복대기는 도회지 금줄에 옴짝달싹 못 하면서 긴긴 고갤 넘고 강 건너 와 낯익은 이도 없으련만 매무새 다듬어 뽄새 갖추고 허리에 칭칭 금대를 띠고 질러대는 악취와 굉음에도 오롯이 버티누나 고향지기로 언제까지 언제까지 너의 품에 회색 그늘 넌더리 기대 살려니 노상 청청함 잊지 말아다오 향리의 듬직한 이웃사촌으로.

1. 오늘의 시 20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