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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밭3

산밭 3 / 월정 강 대 실 어머니 빈손 길 떠나실 때 이거라도 받아 두거라 하시어 유산으로 물려받은 농골* 산밭 한 뙈기 잘 지킬 맘에 내 이름으로 돌려놓고는 여태껏 부치지 못해 죄만 같은데 먼저 가신 아버지 검은깨 말로 털고 미영 참 잘되던 개똥밭이 살피도 놓치고 묵정밭 됐다고 안타까워하시는 모습 눈에 선해 틈틈이 배롱나무 심고 가꾸어 선대님 산소에랑 옮겨 심을 맘으로 덤부렝이 걷어치운다 매부리 같은 가시 한 판 붙어 보자는 듯 냅다 옷과 온몸 할퀴어대고 댕돌같은 아내 여기저기 생채기 보이며 기껏 해서 이깟 밭이였냐는 찬웃음 된불 되어 가슴 꿰뚫어도 흙냄새에 묻은 두 분 향기 힘 솟친다. *농골: 담양군 용면 쌍태리 상월부락 서쪽 골짜기.

1. 오늘의 시 2022.08.31

설산雪山

설산雪山/월정 강대실 세밑가지 설한을 뚫고 산문 연다 키 큰 나무들 옷 벗어 어린나무 덮어 주고는 눈 짐을 지고 동안거하는 중이다 네발로 기어가다 유목 내민 손 잡다 산정은 아득한데 숨이 앞장서서 턱에 올라 노송과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숨 고른다 선뜻, 한 번쯤 누군가 흘린 눈물 강에 덤벙 뛰어들어 보듬고 허덕여 봤더냐 선문답이라도 하듯이 던진다 내달아 팔소매를 걷어붙이기보다는 먼눈으로 바라보다 야기죽거리기도 했던 내 반생 스스럼없이 털어놓자 바윗등에서 고개를 삐쭉 엿듣다 같이 갔으면 더 쉽고 멀리 갈 수도 있었다며 귓전에 슬쩍 흘리고 줄행랑친 바람 한 점 후끈 달아오르는 낯짝 입술 감쳐물고 바람 발자국 엉금엉금 쫓으며 내 안의 내 속 깊이 다진다, 나를 죽이라.

1. 오늘의 시 2022.08.23

[ 아름다운건축]담양에 스며들다

[아름다운 건축] 담양에 스며들다 가끔 집에 있다가 불현듯 "가자"하며 길을 나설 때가 있다. 늦은 아침 후 담양의 소쇄원을 보러 가자며 길을 재촉한다.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가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아 조성한 곳으로,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 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다. 소쇄원의 자연스러움이 좋아서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방문할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공간의 매력이기도 해서 자주 간다고 같은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소쇄원은 풍성하던 나무가 나이 들어 잘린 것인지 몇 그루의 나무는 그 흔적만 있을 뿐 숲속 깊이 푸르렀던 그 모습은 아니었으나, 원래 가지고 있던 멋은 잃지 ..

13. 문학 산책 2022.08.17

빗속을 거닐며

center> 빗속을 거닐며/월정 강대실 비가 온다 벌겋게 봇드는 대지의 가슴 위에 반가운 손님이듯 비가 내린다 후드득후드득 두드리다가, 어느새 간질이듯 여우비 비치더니 외발로 버텨 온 내 한뉘처럼 지적지적 궂은비 내린다 우산도 없이 빗속을 나선다 절절히 마음 나누다 세파에 떠밀려 세월강 굽이굽이 침전 된 사연들 함초롬 젖은 그리움 되어 연신 머리 들고 가슴 후벼댄다 후닥닥 장대비 쏟아진다 길바닥에 흥건히 빗물 고이고 푸른 시절의 꿈처럼 일고지는 물거품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오종종히 모인다 허둥지둥 고개 마루로 쫓기는 내 허기진 발길처럼 물머리 따라 빗물 흘러든다 그 속에 휩싸인 무심한 내 강 흐른다.

1. 오늘의 시 2022.08.15

정도리 구계등에서

정도리 구계등에서/ 월정 강대실 억겁을 매를 맞아 둥굴둥굴 만월보살 닮은 얼굴 오늘도 매를 벌고 있다 즐비하니 맨몸 맞대고 앉아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 처얼썩 철썩 득도의 물매 받는다 몽돌밭 들어서다, 여태 모난 말의 뼈 마저 발라내지 못한 나 화끈 달아오르는 부끄러움 한 발짝도 달싹 못하고 밤톨만 한 돌멩이 하나 집어 들고 우두망찰 먼 섬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 나오자 귓속을 들락이는 바람 소리 앙가슴 지르는 물매 소리 종아리에 떨어지는 아버지 회초리 소리.

1. 오늘의 시 2022.08.11

정도리 구계등에서

정도리 구계등에서/ 월정 강대실 억겁을 매를 맞아 둥굴둥굴 만월보살 닮은 얼굴 오늘도 매를 벌고 있다 즐비하니 맨몸 맞대고 앉아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 처얼썩 철썩 득도의 물매 받는다 몽돌밭 들어서다, 여태 모난 말의 뼈 마저 발라내지 못한 나 화끈 달아오르는 부끄러움 한 발짝도 달싹 못하고 밤톨만 한 돌멩이 하나 집어 들고 우두망찰 먼 섬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 나오자 귓속을 들락이는 바람 소리 앙가슴 지르는 물매 소리 종아리에 떨어지는 아버지 회초리 소리.

1. 오늘의 시 2022.08.11

풀 뽑는 노인장

길가의 풀을 뽑는 노인장/ 월정 강대실 큰길 옆 병원 앞 쌈지 공원 줄줄이 늘어선 길나무 그늘 아래 한없는 질시의 발길질 아랑곳없이 계절을 딛고 무심히 짓어 오른 잡풀 풀 뽑는다 환자복 입은 노인장, 혹여 행인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면 지지리도 할 일 없는 식충이라고 흘깃흘깃 퍼붓는 욕 괘념치 않는다는 듯 괘념 마음에 한 번 걸리는 것은 사돈네 쉰 떡 보듯 그냥 못 두는 성미일까 한 손에 링거병 달린 봉대 다잡고 한 쪽 맨손으로 보도 세세히 풀 뽑는다 길 모롱이 호떡 굽는 아낙네 파리 날리는 눈빛 뽀르르 쫓아가서는 그 풀 뭐할라냐 캐묻는 앙칼진 소리 내뱉고 휙 회리바람처럼 돌아선 뒤꼍 길보다는, 이내 마음 밭 야금야금 묵어 드는 잡풀을 뽑았다는 듯 겸연스런 얼굴빛 숨 고르는 칠십객 노인장 솔선이 막..

1. 오늘의 시 2022.08.08

국수

국수 월정 강 대 실 담양 땅 찾아갈 때는 관방제 초입 초사막 국수거리 들러 멸치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기다라니 늘어선 느티나무 가지 아래 머리를 맞대어 내놓인 평상 손님들 틈서리 비집고 올라서 한쪽 빈 상머리에 자리 잡고 앉으면 국수 한 그릇 먹고 잡더라만, 문 앞에까지 갔다가는 그냥...... 힘이 팽겨 자갈길 간신히 왔다시며 허리춤에 묻어 온 박하사탕 가댁질 치다 우르르 달려드는 자식들 입 속에 물리시던 어머니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 흔흔한 미소 뒤에 갈앉힌 허기 원추리 새순처럼 뾰조롬 솟아올라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배고픔 대신 채우고 간다.

1. 오늘의 시 2022.07.20

원율리* 당산할아범

원율리*당산할아범/ 월정 강대실 원율리 서쪽 어귀 귀기 띤 당산할아범 우람한 풍채에다 언제부터인가 할망이듯 흔연히 큼직한 돌 하나 품고 산다 칠야 캄캄한 밤 보쌈을 해왔는지 빗길에 하룻밤 쉬어 가자며 찾아들었는지 팔 척 장신 멀쑥한 허우대에 다가가도 내외하지 안 했을 듯한 긴긴날 소 닭처럼 물끄럼말끄럼 바라만보다 동한 마음, 날마다 품을 넓혀 가 아픔을 삼키며 자기 살로 끌어안고는 그예, 연리지락을 누리게 됐으리라 동네 사람들 들면날면 그냥 안 보고는 온 동네가 한마음 한뜻이라야 당산할아범 진노 안 하신단 생각이 들었는지 물 한 바가지도 서로 나누자 하고 정월 대보름날 다짐으로 올리는 동신제, 마을 수호신으로 섬긴다. * 원율리: 전남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를 이름

1. 오늘의 시 2022.02.07

서은문학 (2021/통권 제7호)

1. 발표 문예지 : 서은문학 2021 / 통권 제7호 2. 발표 일자: 2021년 12월 15일 정도리 구계등에서 억겁을 매를 맞아 둥굴둥굴 만월보살 닮은 얼굴 오늘도 매를 벌고 있다 즐비하니 맨몸 맞대고 앉아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 처얼썩 철썩 득도의 물매 받는다 몽돌밭 들어서다, 여태 모가 진 말의 뼈 발라내지 못한 나 화끈 달아오르는 부끄러움 한 발짝도 달싹 못하고 밤톨만 한 돌멩이 하나 집어 들고 우두망찰 먼 섬 바라보다 고개를 바로 못 들고 돌아서자 귓속을 들락이는 바람 소리 앙가슴 지르는 물매 소리 아버지 회초리 갈기는 소리. 동네 경사가 났다 넷째야, 동네 경사가 났다 아래 고샅 상 큰댁 네 순기 형 순하디순하고 일 잘 하는 씨어미 산고를 앞산이 다 쩌렁쩌렁 따라 울더니 순산했는갑다 아까참에..

개 짖는 밤

- 시 : 월정/강대실 - 외딴집 꺼멍이 산촌을 독식한다. 여흘여흘 흐르는 개울물 소리 바람에 쫓기는 낙엽의 발걸음 소리 이장댁 암소 산고의 울음소리 재를 넘는 짐차 가뿐 숨소리를 물어뜯는다. 길 건너 두서넛 흔들리는 불빛 둘러서서 앙탈 부리는 산 죄지은 것같이 대꾸 없는 하늘 내 어질머리 나게 끈적이는 그리움을 그예 통차지한다. 밤이 이슥토록 컹컹 짖어 대며 세상을 하얗게 먹어 치운다.

1. 오늘의 시 2022.01.28

진대나무※를 만나다

진대나무※를 만나다 /월정 강대실 지리산 화엄사 등반길, 일찍이 발 잘 못 들이어 맘껏 천기 누리지 못하고 긴 허리 꼿꼿이 못 펴고 살아 대웅전 대들보로 쓰임 받지 못한 해와 달 별이 먼 일가 같이 했어도 그윽한 꽃향내 작은 벌레들도 분분히 찾고 나무갓 큰 품 쫓긴 산짐승 걷어안았을 나이 이길 덕이 없어 수려함 쇠잔하고 독야청청 허연 알몸이 절개 지키더니 골바람에 힘이 부쳐 벌러덩 나자빠진 나락에 빠져도 아주 못쓰게 되진 않다고 찾아든 청설모 산지니 앉아 쉴 등 대주고 산객들 땀 밴 옷 받아 뽀송히 말리는 일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일 있다는 세월의 발톱에 긁힌 흐물흐물한 살은 배고픈 중생 흰개미 땅강아지 지네들…… 옆구리 곪아 터진 음부는 진물 빠는 버섯들 모름지기 공양할 제물이다는 그러고도, 궁극에 남..

1. 오늘의 시 2022.01.27

그 겨울날

그 겨울날/ 월정 강대실 삐리리! 삐리리! 보채대는 전화기 마뜩찮아 하는 왼손을 들어 귀에 맞대자 환히 피어나 는 반가운 이름 충사(忠事)! 여느 날처럼 반 가움 건네자 곤두선 목소리 어-이, 나 때려 치웠어 어제 날짜로! 웬 날벼락이여! 이 엄동 설한에 입도 뻥긋 않더니 난 행장은 따 놓은 당상으로 알았어, 친구는 어떡하겠는가 그 개같은 녀석들이 쥐구멍도 안 보고 막무가낸 데 이빨 빠진 사냥개라고 나는 벌써 넉 달째 네 영에서 뺨 맞고 저잣거리서 눈 흘긴다고 손톱만 송곳같이 갈고 있어 나는 평생 가슴속 품고 살라네 소리 안 나는 총 하나 어디 구할 데 있나 알아봐 친구가 선배 아닌가 사회! 이 른 아침 졸지에 백수당 선배가 됐네! 자네나 나나 죽으면 죽었지 징역 갈 며리는 없지 않 는가! 맘 추슬러 새..

1. 오늘의 시 2022.01.10

추억의 도양읍* 정리

추억의 도양읍* 정리/월정 강대실 언제부턴가 눈도 입도 그저 그만일 테니 꼭 한 번 짬을 내라 했어도 황막한 벌판길 가물거리는 횃불잡이 등 뒤로 쏟아지는 뭇 시선 따가 워 달 걸러서 어깨를 겯던 벗들 벼르다말고 간만에 무릎 맞댄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에 겨워 물오리 둠벙을 보면 떼거 리로 모여 걸쭉히 한마당 벌이듯 짐짓 상기된 표정 그럴싸해 마당에 시퍼런 바닷물 들락이는 횟집 가려잡고 펄펄하고 큼직한 생선 몇 마 리 회 친다. 그들먹한 회접시 금세 이마를 맞댄 교자상 가운데 대감처럼 좌정하 고 맞앉아 권커니 잣거니 연신 오가는 잔에 천년의아침 고꾸라져 토 를 해 대니 빈병 가뜬한 마음은 벗들 감흥을 불러 맘속 들독 같은 시 름 사르고 비움의 절절한 소망이 되어 만면에 발그스레 불탄다. 멍석..

1. 오늘의 시 2021.12.27

면앙정俛仰亭* 에서

면앙정俛仰亭* 에서 / 월정 강대실   댓잎 스적이는 소리 귀를 씻는 죽림 속 끊어진 듯 이어지는돌계단 밟아 오르니  주인님 숨결 오롯이 어린 우뚝 선 우람 청청한 참나무 하나솔솔바람에 실려 오는 임의 향취  사방 확 트인 정자툇마루에 동그맣게 올라앉으면발아래 산천 아스라하고하늘 땅 가이없는데  강호 제현 모여들어 유유자적하다국사를 개탄하던 아픈 심상뜨락에 아른거린다.  *면앙정: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신(侍臣)이었던 송순(宋純)이 만년에 벼슬을 떠나 후학들을 가르치며 한가롭게 여생을 지냈던 곳이다. 송순은 41세가 되던 1533년(중종 28)에 잠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정자를 짓고, 「면앙정삼언가(俛仰亭三言歌)」를 지어..

1. 오늘의 시 2021.12.06

송강정松江亭*에서

송강정松江亭*에서 월정 강대실 송림 속 가파른 돌계단 시인의 향기 쫓아 한 단 한 단 밟아 오르니 누마루 독차지하고 앉은 노송 긴 그림자 길손 반겨 옆자리 내주고 증암천 백사장 에두른 질펀한 창평 들판 황금물결 일렁이어 오면 반짝이는 청댓잎, 연신 임을 연모하는 여인의 노래 애절히 읊조리는데 저만치 가년스런 산죽 쥔 양반 오실 날만 줄줄이 기다려 서 있다. *송강정松江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 조선 선조 1584년 동인의 탄핵을 받고 벼슬에서 물러난 대사헌 송강 정철은 창평으로 내려와 죽록정 초막에 은거하며 우의정이 되기 전 4년간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었으며, 지금의 정자는 후손 이 1770년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송강정이라 이름 지었다. 정면에는 송강정, 측면에는 죽록정..

1. 오늘의 시 2021.10.23

한가위 달밤에

한가위 달밤에/ 월정 강대실 어머니! 앞산 마루 휘영청 달밤 땀에 찌든 농무 저만치 밀쳐놓고 혹여 누구 눈에 띌까봐 뒤꼍이었어요 맨드라미 빨갛고 노란 연한 잎 송당송당 썰어 넣어 동그란 보름달로 지진 전, 한사코 떼어서 입에 넣어 주셨지요 어머니! 곱기도 하다며 함께 바라본 보름달 오늘은 어머니 반가운 얼굴 사무치는 그리움 이슥토록 마주합니다 느닷없이 자식 앞에 보이고 싶지 않은 볼 위 조르르 흐른 두 줄기 눈물 달빛에 너무나 선연했습니다 그 의미 지금도 알지 못하고 가슴속 박혀 살아서는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도집니다.

1. 오늘의 시 2021.09.24

호수2

호수2 / 월정 강대실–담양호에 어머니 계셨네!       언제나 가 보고만 싶은 곳, 들렀다 오면 가슴속 뭉쳤던 응어리가 어느 틈에 사라져 드렁칡 같이 뒤엉킨 세상만사가 가닥이 보이고삶에 생기와 의욕이 샘솟게 하는 곳. 먹장구름에 난데없는 돌개바람 말달리더니산천을 뒤흔드는 뇌성벽력에 앞이 혼미하고 가슴이 두방망이질 쳐 먼 산만 뚫어져라 쳐다보다 새벽같이 찾았네 뵈었네, 담양호에 어머니 계셨네! 언젠가부터 틈이 났다 하면 찾아다녔어도 한 번도 뵈올 길 없던 우리 어머니 서창에 설핏 해가 드는 지금에사 만났네 치마끈 질끈 졸라매고 가난을 절구질하셔이따금씩 봄바람 꽃 냄새 얼비치는데 천수 다 못하고 훌쩍 낮달 따라 가신 어머니 담양호에 햇살처럼 찬란히 살아 계셨네 보았네, 수면에 아른거리는 어머니 얼굴 어느..

1. 오늘의 시 2021.09.08

체증약

체증약/ 월정 강대실  연분홍이나 갈색으로 쥐눈이콩 만한부모님 가보처럼 여기고 늘 안 떨어지게 하셨던매스껍고 답답한 속이 몇 알에 씻은 듯 개운해지는.흰토끼 눈망울 같은 손자가 방학을 해 왔다가며칠 더 할애비랑 놀겠다고 떨어졌다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게걸스레 먹더니한밤중 뱃속이 돨돨해 보채댄다  갈큇살 같은 손으로 연신 배를 쓸어 주다섬광처럼 번쩍 떠오른 그 똥그란 체증약,유년 적 꺼멍이가 늘 곁을 지켜 주듯 든든했으나언제인가 종적도 모르게 사라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의 고통여직 아버지 어머니 지혜의 분깃 못 이은이내 아둔함 탓이라 생각하니타는 가슴, 회한의 한숨이 줄을 잇는다.초2-803

1. 오늘의 시 2021.08.15

땀의 여백

땀의 여백/ 월정 강대실   언제까지 마음에 두고만 살 수 없어큰맘 먹고 낙목 쫓아가는 막내 동서랑땅끝 마을 달마고도 트래킹에 오른다   산문에 드니 기실 나는 땅을 기는 미물울울한 숲길을 걸으면 구정물 들이킨 잡물산골에 들어서자 있는 듯 사라지는 안개   산주 청설모 길라잡이가 되어 오르는 바윗등힘이 풀리고 후들후들한 네 다리로 기어서가까스로 산정에 땀벌창 되어 닿는다무상무념 반석에 오도카니 앉아가쁜 숨 갈앉히고는 사방으로 눈길 보내자아득히 열리는 시야, 땀이 일군 여백장부의 호연지기를 오늘에야 안다. 초2-802

1. 오늘의 시 2021.06.24

자작골 편지

자작골에서 온 편지/ 월정 강대실 여보게, 친구! 올 겨울 사온일 빠끔히 길 열리면 벼슬재 너머 추월산 뒤켠 두어 마장께 자작골 내 집 한 번 찾아 주시게, 꼬옥 견양동 들머리 아랫목 호박 넝쿨 같은 오솔길 호젓이 타고 들다 폴짝 자작자작한 개울 건너뛰면 이마 앞에 양지받이 초막간, 우글우글 검은 옷 입은 내 새끼들 되새기다 귀를 쫑긋 반겨 맞을 걸세 우선, 따끈한 대추차로 언 몸 녹이고 해전에 뒷등 생솔가지 쿡쿡 한 짐 찍어다 뒷바람 내는 연기 눈물 훔치며 군불 넣세 지글지글 온 방 끓어오르면 세상사 댓돌 아래 내려놓고 머루주에 밤이랑 고구마 화롯불에 묻으며, 지새워 밀쳐 둔 얘기 보따리 풀어헤치세 한번.

1. 오늘의 시 2021.05.29

미움

미움/ 월정 강대실 마음의 뜨락에 가시나무 키우는 일입니다 온통 들어내 살라 버리지 않으면 서슬 퍼런 청룡도 됩니다 구중심처 깊디깊은 데 도사리고 있다 불이 일 듯 순식간에 되살아나 여지없이 찌르고 헤집어댑니다 끝내는, 개맹이가 풀려서 시도 때도 없이 도지고 산이 뒤집히고 하늘이 빙빙 돕니다 아무에게나 찌그렁이 붙거나 스스로를 태질하여 몸을 잡치고 냅다, 천야만야 무저갱에 떨어져서 남세를 사게 합니다.

1. 오늘의 시 2021.05.27

산을 바라봅니다

산을 바라봅니다/ 월정 강대실 산이 그리운 날 있습니다 죄 진 것처럼 마음이 한 줌만 해지고 저절로 먼 산에 눈길이 갈 때가 있습니다. 욕망의 구렁에서 허우적이다 불현듯 내가 부끄러워지면 한이 없이 산을 바라봅니다 분수를 아는 오뇌의 동아줄에 꽁꽁 옥죄여 그지없이 내가 나약해지면 하염없이 산을 바라봅니다 흔들릴 줄 모르는 세월의 갈피에 놀빛 배어들고 속절없이 내가 허망해지면 시름에 겨워 산을 바라봅니다 계절을 부둥키는. 외길로 앞만 보고 걷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다 여겨지면 나도 모르게 먼 산 바라봅니다 도반으로 함께 가고 싶어집니다.

1. 오늘의 시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