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나무※를 만나다 /월정 강대실
지리산 화엄사 등반길, 일찍이
발 잘 못 들이어 맘껏 천기 누리지 못하고
긴 허리 꼿꼿이 못 펴고 살아
대웅전 대들보로 쓰임 받지 못한
해와 달 별이 먼 일가 같이 했어도
그윽한 꽃향내 작은 벌레들도 분분히 찾고
나무갓 큰 품 쫓긴 산짐승 걷어안았을
나이 이길 덕이 없어 수려함 쇠잔하고
독야청청 허연 알몸이 절개 지키더니
골바람에 힘이 부쳐 벌러덩 나자빠진
나락에 빠져도 아주 못쓰게 되진 않다고
찾아든 청설모 산지니 앉아 쉴 등 대주고
산객들 땀 밴 옷 받아 뽀송히 말리는 일
자신만이 감당해야 할 일 있다는
세월의 발톱에 긁힌 흐물흐물한 살은
배고픈 중생 흰개미 땅강아지 지네들……
옆구리 곪아 터진 음부는 진물 빠는 버섯들
모름지기 공양할 제물이다는
그러고도, 궁극에 남은 지스러기는 기꺼이
흙으로 썩고 섞이어 목숨 탄 것들 생명소로
보시의 공덕 닦아야 한다는
오늘 우연히 연이 닿아 상면하였지만
지금껏, 어디서도 한 번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못할 일을 다 하는 진대나무 보살.
※진대나무: 산 속에 죽어서 넘어지거나 쓰러져 있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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