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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 월정 강대실 스산히 낙엽이 뒹군다 한 생 아름답게 살더니 어느새 스르르 스러진 나뭇잎 하이얀 얼굴 지르밟고 고독히 걷는다 바사삭! 바람으로 다시 만나자 새로운 결별의 외마디 내 영혼 채질하는 찬란한 노래여! 결코 아파하지 말자 끝 날까지 사랑으로 보듬자며 내 속 깊이 큼직한 바위 하나 품고 훌쩍, 성자처럼 미련 없이 떠나 왔건만 사랑꽃 꽃눈 하나 틔워 내지 못하고 어스름 강둑에 눈 흘기고 서 있으니 어이 죄 아니랄 수 있으랴 사랑을 노래한다 하랴 꽃잎이 다시 피어날 그 날까지 기어이 돌아서지 않으리라.

1. 오늘의 시 2022.11.06

나눔의 행복

나눔의 행복/ 월정 강대실 반백 년 부초같이 흐느적거린 불초향촌 아래뜸에 구년묵이 세간 부쳐 놓고속죄의 삽질 묵정밭 일으켜 심었지요감 대추랑 배 매실 사과...... 빼곡히몸에 안 배어 가다가는 각다분하기도 하고여기저기에 적신호 욱신욱신해도이슬 머금은 흙내에 불끈 힘이 솟는 오뚝이하루가 멀다고 발자국 소리 내지요감나무 시득부득 노름한 꽃 진 자리마다가지가 휘어지게 주먹감 흔전만전 매달고갈바람 단맛 빨갛게 들이지요맏물은 원매 기다린 지인들 보내고원근처 사양지심의 정인들 챙기고 나면내 차지는 이내 비뚤고 새들이 쪼아 댄 거에다더 못 나누어 섭섭한 이웃들이지요하지만, 유년 적 동지죽 먹으면 싣고 나갈토방 위 쟁여진 나락가마니 들쳐 메 보이며싱글벙글하던 박 씨처럼 행복 넘실하지요. 초2-805

1. 오늘의 시 2022.10.28

풀솔

풀솔※ / 월정 강대실 한 이불 속 형제들 다 딴솥 걸고 어머니 그만 된숨 몰아쉬며 노을 따라 가시자 막냇동생 외로이 삭망 지키는 고향집 몽매간에도 아른대는 부모님 뒷모습, 헛간 한 켠 거미줄에 칭칭 붙들린 널 만났지 용케 어머니 베매기 때는 꼭 나와서 상일꾼이 된 동네 누님들 하나둘 도회 방직공장 가고 아버지 대목 장날 설빔 사오시더니 언젠가부터 내 눈에서 멀어진 대바구니 장사 졸졸 따라간 봉팔이 녀석처럼 빡빡이 네가 그리울 때는, 너의 본향 앞내 갈밭을 서성이며 휘파람도 불어보았으나 그믐밤만큼 까맣게 잊고만 살아 왔지 지금은 바디 삼칼과 함께 문방 한편에 초례청에 든 신부처럼 다소곳이 숨죽이고 앉아 뿌연 그리움의 먼지 덕지덕지 뒤집어쓰고 있는 너와 눈이 마주칠 때면, 불쑥 번번이 내 딱지 따먹던 곰철..

1. 오늘의 시 2022.10.20

이순耳順

이순耳順 / 月靜 강대실 바람길 따라가는 生 멀고 먼 길 득달같이 달려 知天命 고개 넘고 나니 이제, 귀나 순해지라 하네 한 마름이 차도록 세상 흥야항야 살아왔나니, 때로는 발등 짓찧고 싶은 회한도 가슴 저미는 슬픔도 보일 수 없는 눈물 속에 묻어두고 얼풋이 보이는 남은 길 서둘지 말고 쉬엄쉬엄 가라하네 찌륵소도 불여우도 마음 편히 들고 나게 묵정밭 된 마음, 다시 일구며 無量世界 가꾸라 하네.

1. 오늘의 시 2022.10.10

동네 밥잔치

동네 밥잔치/ 월정 강대실  기세가 시퍼런 설한에 두 발 꽁꽁 묶이어아랫목 요 밑에 발 뻗고 앉아건성건성 책장 넘기며 詩 만나다가 사립 앞 눈이라도 치우고밥값 하자는 생각에 온몸 싸매고 나가니풍겨 오는 콩나물밥 익는 냄새 코를 앞세우고 졸래졸래 따라 들자회당 가득 희색이 만면한 일촌 식구들어서 오라며 보내는 소의 눈빛 어울려 그림책도 보고 운동도 하자고동네 밥잔치 벌인다고부지런한 사람만이 찾아 먹을 수 있다고 겸연쩍은 마음, 틈새에 끼여 앉아양념장에 고봉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초2-737/2014. 12.22.

1. 오늘의 시 2022.10.05

숲 속을 걸으며

숲 속을 걸으며 / 月靜 강대실 먼발치에서는 나무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숲 속 등어릴 쓰다듬고 손도 잡고 내 마음과 숨결 첩첩이 불어 넣으며 이리저리 길 내고 걷는다 긴긴 여정 끝, 아득한 침묵의 행자 진대나무에 기대어 숨 돌리면 전율처럼 느껴 오는 숲 마을과 정겨움 서로 손에 손 덧잡고 갈맷빛 소망 하늘 끝 펼치고 있었다 여기저기 둔 빈자리에 뿌리박은 너럭바위 해와 달 들러서 가고 갈 길 잃은 목숨과 지친 나래 감싸 새 힘 받고 마음의 갈피 잡게 하였다 숲 속을 걷고 걸으며, 사람도 한 물 되어 말 섞어 보지 않고는 든 것도 본받을 것도 없다고 지레짐작 말 않기로 했다.

1. 오늘의 시 2022.10.01

덕산할매

덕산할매 / 월정 강대실 도졌다 또 그 기, 덕산할매! 으슥한 고샅 싸늘한 냉기 자뿌룩한 사립짝 앞 댓 발짝 나와 서서 부담을 한다 아까워 안 해먹고 둔 고지말랭이 어느 오그라질 놈의 손이 싸그리 가져갔다고 얼른 내놓아라고 …… 먼 산 바라 넋을 놓고 울부짖는 이사 든 집 부끄럽다던 이웃들 언제부턴가 두 귀 마주 뚫려 흘리고 자식들 민망의 귀는 멀어서 못 듣고 기둥이 쓰러지고 새끼들 품을 떠나고 저물어 어둠길 나앉아 혼밥하다가 얼마나 쓰디쓴 꼴 봤기에… 먼 길 달려온 해 눈자위 붉고 울 밑 물끄럼말끄럼 제비꽃 푸념한다 어젯밤 깜빡, 약을 빠뜨린 게 맞다고 저린 배추처럼 진이 빠진 할매 비척비척 지팡이가 손잡고 마당에 들고 중환자 병실처럼 쓸쓸한 뒷고샅.

1. 오늘의 시 2022.09.30

덕산할매

덕산할매 / 월정 강대실 도졌다 또 그 기, 덕산할매! 으슥한 고샅 싸늘한 냉기 자뿌룩한 사립짝 앞 댓 발짝 나와 서서 부담을 한다 아까워 안 해먹고 둔 고지말랭이 어느 오그라질 놈의 손이 싸그리 가져갔다고 얼른 내놓아라고 …… 먼 산 바라 넋을 놓고 울부짖는 이사 든 집 부끄럽다던 이웃들 언제부턴가 두 귀 마주 뚫려 흘리고 자식들 민망의 귀는 멀어서 못 듣고 기둥이 쓰러지고 새끼들 품을 떠나고 저물어 어둠길 나앉아 혼밥하다가 얼마나 쓰디쓴 꼴 봤기에… 먼 길 달려온 해 눈자위 붉고 울 밑 물끄럼말끄럼 제비꽃 푸념한다 어젯밤 깜빡, 약을 빠뜨린 게 맞다고 저린 배추처럼 진이 빠진 할매 비척비척 지팡이가 손잡고 마당에 들고 중환자 병실처럼 쓸쓸한 뒷고샅.

1. 오늘의 시 2022.09.30

병아리눈물꽃

병아리눈물꽃/ 월정 강대실 병아리눈물꽃이랑                             얼굴 맞대보았나요머리 조아리고 앉아눈물  뚝뚝  흘려본 적 있나요                                        행여 눈에 띌세라숨소리라도 새어 나갈세라바람도 눈길 보내지 않는맨땅 끝자리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앙증스런 자태로옴실옴실 모여 앉은얌전 자르르한 꽃 우리님 단아한 말씀이 듯마음문 안 열면 볼 수 없는참깨 알 같은 꽃절대 겸허가 몸에 배인 그 꽃. 병아리눈물꽃

1. 오늘의 시 2022.09.29

망초꽃

망초꽃/  월정 강대실                            청청하늘에서날벼락 내리치던가요한 돌기 연륜 채 감지 못한서른아홉 젊으나젊은 나이에고샅길 뒹구는 땡감처럼 꼭두새벽에 뚝 떨어지더니두 눈 다 못 감고 황망히 망초꽃 길로 떠난 형이여!못 잊어셨나요, 남긴 떡잎 둘 해마다 그맘때 두견이 울어대면 풀빛 짙은 들길 하얗게 서성이다무덤가에 발돋움하고 서서동구 밖 먼 신작로 바라 보다곰삭은 그리움에 스러지는서녘 놀 붉게 타오를수록마음속 서러움 우러나는 꽃.

1. 오늘의 시 2022.09.25

아내의 발

아내의 발/月靜 강 대 실 길마 무거운 소, 드러눕더니 며칠째 꼼짝 못하는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자락 쏘-옥 나온 두 발 오롯, 가족들 바람의 고임돌 되어 세상의 질고 매운 것 다 심곡에 묻고 한 生 바닥으로 살아온. 구부정한 발가락 거뭇거뭇한 발톱 금이 가 벌어진 발뒤꿈치며 여기저기에 박인 옹이와 굳은살, 도짓소로 살아온 세월의 유산. 한밤, 구도자 고행의 훈장에서 성자의 말씀 들린다 내리 걸어야 할 길 본다 두 발이 몰래 흘렸을 눈물 헤아리다 마음속 촛대에 불 밝히고 참회의 뜨거운 경배 발볼에 기-인 입맞춤 한다. (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2022.09.25

귀향 歸鄕

귀향歸鄕/월정 강대실 하늘 노랗고 해 긴긴 춘삼월 앞산보다 더 높은 보릿고개 허리띠 졸라매기 진절머리 난다며 열여섯에 어린 동생 업고 이삿짐 보퉁이 짊어진 어머니 따라 말만 들은 서울행 기차 탄 쌀순씨. 한강물 풀리면 꽃소식 물어오고 향수가 모닥불 타면 바람 타고 와 돌나물 쑥국 향에 객수 씻던. 해 기울기 전에 객짓밥 청산하고 부르는 손짓 빤히 보일 만한 데다 조붓한 처소라도 한 칸 내겠다더니 청댓잎 서걱이는 소리 잇는 담양호 상류 복리암 언덕배기에 제비 집같이 아담한 둥지 마련 사십오 년 망향의 설움 접고 홑몸 귀향 날, 산천이 앞서 반겼다. 산도 물도 설고 낯까지 서러웠건만 어느새 격이 없어 일촌이 다 사촌 두루두루 쌓은 도타운 정리 꽃 보고 텃밭 갈고 운동 챙기고…… 잃은 반생애 되찾아 산다. 귀..

1. 오늘의 시 2022.09.21

그림자 찾는 노인장

그림자 찾는 노인장 /월정 강대실 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 오후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 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 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 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 소복단장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아득히 잠겼을까 ‘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 기다림 눈자위보다 더 깊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 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 뛰노는 학동들에게서.   초2-868

1. 오늘의 시 2022.09.20

생가生家

생가生家 / 월정 강대실 개울녘 정자나무 허허로운 가슴 쓸며 늘어만 가는 빈 집 지켜섰는 산골 동네 매방앗간 고샅 지나 탱자나무집 뒤 아들네로 떠난 새 주인 기다리다 녹슨 철문은 문패마저 떨구고 있다 거지반 허물어진 강담 넘어다 뵌 집 안 뒤틀린 마루바닥에 흙먼지 뿌옇게 앉고 텃새들 발자국 어지러운데 영혼의 숨결로 돌부리 솟아나는 마당 봄볕이 널리고 쑥잎들 토방 아래 졸다 귀 익은 소리에 고갤 든다.

1. 오늘의 시 2022.09.11

고향집

고향집 / 월정 강대실 굴뚝새 포로롱 달아난 어스레한 헛청 여기저기 어지러운 거미줄 살풍경하다. 등태 흘린 빈 지게 토담 벽 기대어 서서 등에 업고 나설 주인 기다리고 날근날근한 덕석 몇 닢 삭은 나무토막 베고 포개 누워 잠이 곤하다 땀에 벌겋게 절은 괭이 쇠스랑 날이 금 간 삽 구석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허리 구부러진 호미 불쑥 튀어나와 응석을 부리며 발목 거머잡는다.

1. 오늘의 시 2022.09.11

사모곡思母曲1

사모곡思母曲1 月靜 강 대 실 아들 딸 맘대로 둘 수 있냐고 둘러앉은 손자들 어르며 꽃터 하나씩 팔아보라고 훤히 웃으시더니 사는 것 맘대로 할 수 있냐고 허줄히 지나는 이 손짓하여 옷가지 요깃거리 챙겨 주시며 흔흔해 하시더니 죽는 것 맘대로 안 된다고 사자 귀신 원망하며 용한 의원 예제 찾아 헤매다 삼베옷 한 벌로 떠나신 당신 어머니, 이젠 편안하신가요 하늘 세상 좋고 좋은지 한 아름 미소로 꿈길 들러 가시고.

1. 오늘의 시 2022.09.04

산밭2

산밭2 /月靜 강 대 실 몇 해 전 가을 끄트머리 포르르!, 한 양반이 날아들더니 호들갑 떨며 토주 행세 부리더구먼 구린내가 몰큰몰큰 풍겼으나 어련히 알아 하겠지 싶어 못 본 척 납작 엎드려 있었지 그런데, 팔도 유랑 길에라도 올랐는지 그 후로는 도통 그림자도 안 비치니... 꼭 삿갓 같은 사람 이라며 찔레나무 사방에서 지경을 넘어들고 산딸기나무 가운데다 진 치고 칡넝쿨 온 밭을 횡행활보하니…… 구시렁대다 흠칫 말허리 꺾는, 산밭 씁쓰레한 낯꼴 눈앞에 아른거리는지 시르르 밭귀퉁이 눈 둘러보며 마음 질질 끌고 도망치는 새 주인.

1. 오늘의 시 2022.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