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시 989

고향 무정

고향 무정 / 월정 강대실  보고파 고향에 다시 찾아왔어도아버지 어머니 뵈올 길 없어이사 드신 봉안당 찾아 성묘 드리고늦자란 제비풀만 쥐어뜯다 간다 고향 동네 몇 바퀴를 둘러봐도봉철이 명문이 소식 전해들을 데 없고윗주막 들 신작로 옆 큰밭에 들러감나무 매화나무 손만 한 번 잡고 간다 유년적 들일머리 말씀 귀에 생생한데뒷산 같은 그 모습 보이질 않고주인 잃은 전답에서 일어난 바람서낭당 고개까지 등을 떠민다 지금도 상월부락은 상월부락인데묏등걸에서 뒹굴던 벗들은 어디로 가고오장산 봉머리 에돌아 온 구름밀재 너머 북으로 북으로 울어 옌다. 초2-820

1. 오늘의 시 2024.10.20

사랑의 두 얼굴

사랑의 두 얼굴/ 월정 강대실  이제 그만 동거 끝내자고거실 꽃분 남창 아래로 내놓으며, 문득생각을 해 본다 내 사랑의 두 얼굴. 아비 아들 범벅 금 그어 먹는 건 아니되두 아들 어느새 자라 앞산도 들쳐 멜 만하여책가방 내려놓게 되면 다음 날 부터는눈앞에 얼씬도 말라 이르곤 한. 성미 칼칼한 바람 기웃거린다 싶으면 유난히도 호들갑을 떨며 거실로 맞아들여삼동을 눈 맞추며 고운 꿈 키우다햇살의 은사로 꽃 피워 고운님 모셔라며진자리 마른자리 골라 돌보는.   선뜻이 파도 더 센 인해로 뛰쳐나가허위허위 나래치는 모습 안타깝기도 하지만머잖아 태산준령을 맨발로 넘어야 하기에   뒤를 받칠 건 맵고 쓰거운 훈계와지금껏 바쳐 온 붉은 정성을 다한 기도뿐어찌 못할 야누스 같은 내 사랑의 두 얼굴.초2-821

1. 오늘의 시 2024.10.17

일장춘몽

일장춘몽一場春夢 / 월정 강대실  봄날, 무단히 마음 시려하자쏘옥 가슴속 파고드는 한 여자 있었지요아무리 내치려 해도 찰거머리 같은 동구 목로주점으로 슬렁슬렁 나가막걸리 한잔하기로 했지요요런조런 세간사 안주 삼아 권커니 잡거니 수도 없이 마시다곤드레만드레 대취하고 말았지요하늘을 너울너울 날 것 같이 손잡고 으쓱대며 답청 놀다, 그만돌부리에 걸려 철푸덕 넘어졌지요 둘 다그냥, 꼭 껴안고 세상모르고 잠잤지요 목이 말라 허공을 허덕이다불현듯, 정신이 버쩍 들어 눈을 떠니봄날의 긴긴 해는 벌거니 눈 흘기고 빨래를 개키든 아내가 빙시레 웃으며그만 일어나라 흔들어 깨웠지요. 초2-841

1. 오늘의 시 2024.10.05

홍단풍나무

홍단풍나무/ 월정 강대실  벌써야! 말 걸어 왔지요아니라 했지요 무심코지금 무슨 말이냐! 언성을 높이 대요정말로 아니라 했지요퉁명스레, 나이가 몇이냐 물어왔지요한참 꽃띠 이팔 이라고,바람에 물어 보라 쏘아붙였지요홍당무가 되어 뒷걸음질 치더니어인 일이냐, 겸연쩍어했지요나도 모른다 숙었지요하기는 사십령 고개 넘기도 전에상상봉에 서리 하얗더니바야흐로 가을이라고 탄식하더군요우겼지요 끝내 애초라고홍치마 보라고 다시, 오는 봄에 꼭. 초2-842

1. 오늘의 시 2024.10.05

해질녘 풍경

해질녘 풍경                                착한 사람들이 쑥잎처럼 모여 사는산마을 소년촌에 장맛비 숨 돌리자앞내 한가득한 붉덩물에 온갖 것들내 잡념이 듯 어지럽게 쓸려 간다산문 앞 메뽕나무 바람 받아 올려내려앉은 하늘이 움질움질 물러나고 한 가닥  한 가닥 옷 벗은 산자락 툭 터져 흐를 듯이 검푸름 탱탱하다  논다랑이에 풍년 꿈이 땅심을 받아  너불너불 입춤을 추어대는데 새까맣게 햇살이 익힌 복분자딸기 발밑에 문드러진 농심 냉가슴 앓는다산작로 건너 점방 앞에 선 막차 밤톨처럼 떨친 단장에 봇짐 진 노인장 팔느락팔느락 모깃불 속으로 사라지고산새들 안식 찾아드는 날갯짓.

1. 오늘의 시 2024.10.04

가을

(사진출처: 인터넷 이미지)  가을                        월정 강대실  여보,저어기 보이소 ! 멍석 위에 한가득 널린버얼건 고추,새색시 적 당신의 갑사 치마.     여보 여보,저어기도 좀 보이소 ! 감낭 가지 덩그맣게 달린두웅실한 호박,큰애 가졌을 적 당신의 만삭.                                               (사진출처: 인터넷 이미지)가을

1. 오늘의 시 2024.10.04

소안도 뱃길

소안도 뱃길/ 월정 강대실  뭍과 긴 입맞춤 끝내고이별의 저린 고함소리 토해내며꼬리 접고 돌아선다외로운 질주는 부두가 아련하고섬 사이에 물방울 주단 깔더니어느새 뱃길은 낭만이 넘실댄다삼삼오오 헤헤대며고스톱 신나게 두들기는 이들신문지에 순대 안주 벌려놓고정 남실 부어 돌리는 이들수평선 너머서 건져 올린 꿈한 구덕 짊어진 연인들 넘치는 수다훼리호 뱃마루는수국의 해방 공원이 된다. 초2-862

1. 오늘의 시 2024.09.14

어느 여름날

어느 여름날/월정 강대실                                        벗님네들 얼굴 한 번 볼 양으로너릿재 새털같이 사뿐 넘었지요  술 익는 냄새 졸졸 쫓아가다, 농주큰통 하나 실었지요 도갓집에서주춧돌 놓일 날만 손을 꼽던 집터계절이 엉클어져 한마당 잔치인데느릅나무 그늘 멍석 깔고 둘러앉아막 한 잔 타는 목 축이려는 참에솔밭 건너 앞산이 훌쩍 아는 시늉해어서 오라 손나발 해 옆자리 앉히고건하게 들었지요 너나들이하면서산들바람도 대취하여 따다바리고어느덧, 설움에 겨운 해 서녘에 벌겋고 텃새들 시나브로 제 둥지로 모여들어흥얼흥얼 어둑발 붙들고 넘었지요어느 여름날 그 하루 햇살 좋은 날. 초-864

1. 오늘의 시 2024.09.14

어느 여름날3

어느 여름날3/ 강대실                                     올여름엔 산방에서 탁족회 갖자고 여기저기 벗네 전화 받고는장에 간 어머니 눈이 까맣게  기다리던유년 적 기다림을 다 해 본다읍내 마트에 들러 주섬주섬주전부리감 갖추갖추 좀 사서캄캄한 산모롱이 돌아 산방에 닿는다늦었다며 등 뒤로 얼굴 내미는 산더러는밤새 더 푸르러라 이르고각시둠벙 불러 새 물로 남실 채우라 하고잠에 떨어진다첫새벽 자박자박 찾는 호반 산보길 얼굴 보자는 손짓에 잠깐 만나고 와서여기저기 땅에 물밑에 나뒹구는피서의 허접쓰레기에 팔렸는데어둠을 발라먹었나머리통이 고만고만한 꼬맹이들 한패거리어느 틈에 둠벙을 독차지했다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아침부터 안개가 중대가리를 깰 기세인데 벗님네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

1. 오늘의 시 2024.09.14

그림자 찾는 노인장

그림자 찾는 노인장/월정 강대실아동들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간간이 창을 넘어 질러오는오후의 텅 빈 운동장 한 켠 긴긴 세월의 상흔 온전히 부둥켜안고교계 지켜 서 있는 버드나무휘늘어진 가지 아래 불언의 위로 주고받으며긴 벤치에 석불처럼 앉아 있는소복단장 중절모 쓴 하이얀 노인장 무슨 회상에 저리도 아득히 잠겼을까‘왜 아이들이 하나도 안 놀아!’기다림 눈자위보다 더 깊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초립동 시절아련한 그림자 찾아 나왔을까뛰노는 학동들에게서. 초2-868

1. 오늘의 시 2024.09.14

한가위 달2

한가위 달2/ 월정 강대실                  돌아보며 감아 올리지 않아도어느새 도지는 막심한 불효세월 거듭 가고 층층히 쌓일수록도지는 부끄러움 깊히 짓는 회심바람 앞서 떠날 줄 알았더라면서둘러 편히 한 번 모셨을 것을나와 서성이시네 밤 하늘에추석빔 송편은 나누나 걱정하시다 자식들 소원 한아름 안고 가시네한가위 덩덩그런 달이 되셔.

1. 오늘의 시 2024.09.13

한가위 달

한가위 달 /월정 강대실 꼬박 일 년을 노심초사 기다린 어머니 환한 얼굴 뵙는 날, 희끗희끗 바랜 세월 먹칠하고 서둘러 세목을 한다 가뿐한 마음 문밖에 나서자 눈앞 천궁에서 초조히 기다리시다 선뜻 이 아들 알아보고는 덩두렷한 웃음 보드라운 은빛 손길 연신 등어리 쓰다듬어 주신다 마음을 곧이곧대로 가지면 얼굴에 둥굴둥굴 달이 떠오른다며 발걸음 따라 마당까지 오시더니 시장할 테니 어여 들라 등 떠민다 박덩어리 같은 아내 얼굴 수저 젓가락 가지런한 저녁상 둘러앉은 가족 가운데로 내온다. 초2-875

1. 오늘의 시 2024.09.11

숲속에 들어

숲속에 들어/ 월정 강대실                                                                                                                                  괜스레 내가 밉고 울화가 치밀어마음을 어르며 비비한 세우 길 나선다삼나무 편백나무가 화엄을 이룬 극락그 향기 자욱한 한재골 트레킹 코스 초입에다부끄러워 무거운 발길 벗어놓고도반 나무랑 산이랑 꼼지락꼼지락 걷는다이러히 나와 내 길이 불퉁불퉁한 것은나를 보듬기에도 늘 부족한 가슴에다입에 꿀을 바른 말을 경멸한 탓이리하나 둘 주위랑 격을 두고 먼전으로 돌다어느덧 무인도 첩첩한 가시울타리 속에꼼짝도 할 수가 없게 갇혀 버린 나시 한 수를 긷기 위한 이 끈질긴..

1. 오늘의 시 2024.08.31

진대나무 붓다

진대나무※붓다 /월정 강대실 지리산 화엄사 등반길, 일찍이발 잘 못 들이어 원껏 천기 누릴 수 없고긴 허리 꼿꼿이 못 펴고 살아대웅전 대들보로 쓰임 받지 못한 해와 달이 먼 일가같이 대해도그윽한 꽃향내 크고 작은 날벌레 분분히 찾고나무갓 큰 품 놀란 산짐승 걷어안았을 나이 이길 재주 없어 생을 거두고독야청청 허연 알몸이 절개 지켜 가다골바람에 그만 벌러덩 나자빠진 나락에 빠져도 아주 못되진 않다고찾아든 청설모 산지니 앉아 쉴 등 대주고산객들 땀 밴 옷 받아 뽀송뽀송히 말리는 일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 있다는 바람의 발톱에 긁힌 흐물흐물한 살은배고픈 중생 흰개미 땅강아지 지네들...옆구리 곪아 터진 음부는 진물 빠는 버섯들모름지기 공양할 제물이다는 마..

1. 오늘의 시 2024.08.24

방황의 호사

방황의 호사/ 월정 강대실     詩文과 가까이하기로는사철 푸른 숨결의 댓잎 향 불어 잇는대나무골이 제일 좋을 성 싶어신문 귀퉁이 오려 쥐고 한달음에 찾아가쥔 달란 대로 주고 몸 붙일 자리 잡았지요 생에 찌든 번뇌의 때 벗고자밭고랑에 박히어 향긋한 흙냄새에 취하고들개처럼 앞 뒷벌 이슬을 쓸고 다니고가끔은 감춰 둔 길을 내주는 산 찾아 오르며누습한 생각의 부대 비워내지요 어떤 날은 하루가 물먹은 솜뭉치 같지만머잖아 마음의 진창에 더덩실 달 떠올라잘 익은 홍시 같이 달보드레한 詩 한 편꼭, 빚어낼 것 같은 예감에오늘은 방황의 호사 누리는 거지요.초2- 736/2014. 5. 28.

1. 오늘의 시 2024.08.22

고향에 띄운 편지

고향에 띄운 편지/ 월정 강대실  울 밖 빈터에 철철이 뿌려 놓은 푸성귀시나브로 이리 저리 퍼져나가나서면 들과 산에 달래 냉이 참취…  라니! 볕받이 막에서 쑥쑥 자라던 짐승들알게 모르게 한 마리 한 마리 뛰쳐나가이 산 저 골에 까투리 토끼 멧돼지… 라니! 친구, 참말로 재수가 불붙었네 그려바쁜데 가꾸고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산열매 칡뿌리 산삼 녹아든 물 마시고해와 달 별을 보고 우둥푸둥 살찐다니 여보게 친구, 꼭 부탁하네!올여름엔 죽마고우 탁족회 날 잡히면연락 주시게,  시간 낼 수 있네 이제는 내도 벼르던 모교에도 들러고 어우렁더우렁한 사나흘 고향 명소 샅샅이 둘러보며틈틈이 나물 캐고 멧돼지도 한 마리 잡세  먹거리 넉넉히 해서 계곡물에 들앉아친구네 잘 익은 가양주도 곁들이어권커니 잣거니, 내 단단히 ..

1. 오늘의 시 2024.08.22

민들레꽃4

민들레꽃4/ 월정 강대실   발길 드문 데 찾아 제 발 스스로 묶고 갖은 고난과 역경 일상으로 여기며감사와 염불로만 사는 앉은뱅이꽃. 새해 첫머리 꽃샘바람 고집스레 불어쳐도  천지 만물의 넘치는 새 소망 발원하며봄의 길목에 샛노란 꽃등 보시하는 남의 꽃자리 넘어다보는 일 없이  날개는 접어 땅바닥에 납작 몸 낮추고 땅속 깊숙이 생명줄을 다지는 민초 땅기운 공덕으로 받아 연신 피어낸 별꽃꽃대 높이 받쳐 올려 기도하다이유 없는 밟힘도 업고로 믿고 합장하는 어느 결 여물인 호호백발 두상 위 씨알바람의 날개 기다려 홀홀 떨쳐 보내고일체 만물이 다 공덕임을 실천하는.   한생이 깨달음의 향기 농농한 법문보면 볼수록 영락없는 보살올봄도 광명 바라 묵언 수행 중이다.초2-830/2023. 3. 29.  (민들레꽃 )

1. 오늘의 시 2024.08.22

십팔공

소나무 십팔공十八公 / 월정 강대실 다붓한 언덕길 동자승같이 깜찍했던 너 바람에 옷고름 너푼대는 몇 해 전 늦가을 해거름넌지시 맞아들였지 스산한 마음의 뜨락에멈출 줄 모르는 시간 열차 올라타서는눈길 닿을 때마다 면모 몰라보게 수려한데다 불길 같은 열정 하늘 높은 줄 모르고세인들 깨무는 입술 새어 나오는 탄식까지도모래 속에서 찾은 금싸라기로 알고온전히 마음공부에만 정신을 쏟더군오늘은 고통을 삼키며 허욕의 긴 팔 잘라 내고 더벅머리며 겉치레 정갈히 다듬은 너십팔공十八公 별호를 준다먼 하늘 우렛소리에도 올곧게 뼈를 못 세우는비루한 이내 도반 되어 되알지게 두 손 붙잡고 길 중의 길 좇아 해맑은 거울로 서자꾸나. *십팔공十八公 : 소나무를 달리 이르는 말. ..

1. 오늘의 시 2024.08.19

하심

하심下心/월정 강대실  방울땀 까맣게 익어 가는 복분자 밭머리느티나무 푸르른 그늘 멍석에 누워바람도 흰 구름도 유정하자 손짓 보낸다무심히 스쳐지나가다, 뜬금없이길 가다 마음에 밟힐 성싶은 것 보면먼눈에라도 띌까 무섭게 얼른 들쳐 메야 한다곗술에 낯내는 비열을 나무라며칠갑의 강에 下心을 던지는 바람 한줄기사돈에 팔촌 보듯 했던 생 더듬다  달아오르는 낯, 뒷등 바위 바라기한다이름 없는 골짜기 절로 피고 지는그늘골무꽃 그리움 부르련다어느덧 낯익은 이름과 얼굴 하얗게 지워지면달 넘어오는 노루목 등 굽은 노송 아래얼룩노루 사랑놀이 훔쳐 보이는나직한 흙집 지어 조용히 살리라.초2-834

1. 오늘의 시 2024.08.19

못/ 월정 강대실 탕! 탕! 못 박았다 버럭 불뚝대고 말을 무지르고, 안하무인으로어지간히 믿었던 많은 가슴에다 깨소금처럼 고소했다마음의 탕개가 풀려 눈에 뵈는 게 없고하늘 무서운 줄 몰랐다 어쩌다 역지사지해 보면 박은 못에 붙박여 곁이 허했으나세상을 막사는 개망나니짓,질매를 당한다 해도 버릇 개 주지 못했다 어느새, 망치도 못도 녹슬고 못 쓴 지 오래종용히 뒷방에 들앉아 면벽하고파란 많았던 생 돌아본다속죄의 거울 닦고 닦는다 꺼들대며 무수히 때려 박은 그 못대침 되어 내 야윈 앙가슴 찔러대고찬웃음 매서운 눈빛 한없이 뒤통수에 꽂힌다. 초2-838/2023. 9. 10.

1. 오늘의 시 2024.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