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나무※붓다 /월정 강대실
지리산 화엄사 등반길, 일찍이
발 잘 못 들이어 원껏 천기 누릴 수 없고
긴 허리 꼿꼿이 못 펴고 살아
대웅전 대들보로 쓰임 받지 못한
해와 달이 먼 일가같이 대해도
그윽한 꽃향내 크고 작은 날벌레 분분히 찾고
나무갓 큰 품 놀란 산짐승 걷어안았을
나이 이길 재주 없어 생을 거두고
독야청청 허연 알몸이 절개 지켜 가다
골바람에 그만 벌러덩 나자빠진
나락에 빠져도 아주 못되진 않다고
찾아든 청설모 산지니 앉아 쉴 등 대주고
산객들 땀 밴 옷 받아 뽀송뽀송히 말리는 일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 있다는
바람의 발톱에 긁힌 흐물흐물한 살은
배고픈 중생 흰개미 땅강아지 지네들...
옆구리 곪아 터진 음부는 진물 빠는 버섯들
모름지기 공양할 제물이다는
마지막 궁극에 남은 지스러기는 기꺼이
흙으로 썩고 섞이어 목숨 탄 것들 보금자리로
보시의 공덕 닦아야 한다는
오늘 우연히 연이 닿아 상면했지만
아직껏 어디서도 한 번을 뵌 적이 없는
사람이 못할 일을 다 하는 진대나무 붓다.
※진대나무: 산 속에 죽어서 넘어지거나 쓰러져 있는 나무.
초2-784/ 2020. 01. 10.
진대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