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6 50

29. 김용택 시/15. 빗장

빗장/김용택 내마음이당신을 향해언제 열렸는지서럽기만 합니다가민히 있을 수 없어논둑길을 마구 달려보지만내달아도 내달아도속떨림은 멈추지 않습니다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곳곳에서 떠올라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어쩔 줄 모르겠어요무얼 잡은 손이 마구 떨리고시방 당신 생각으로먼 산이 다가오며 어지럽습니다밤이면 밤마다당신을 향해 열린마음을 닫아보려고찬바람 속으로 나가지만빗장 걸지 못하고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돌아옵니다.

29. 김용택 시/13. 늘 보고 싶어요

늘 보고 싶어요 /김용택 오늘가을산과 들녘과 물을 보고 왔습니다.산골 깊은 곳작은 마을 지나고작은 개울들 건널 때당신 생각 간절했습니다산의 품에 들고 싶었어요, 깊숙이물의 끝을 따라 가고 싶었어요물소리랑 당신이랑 한없이늘 보고 싶어요늘 이야기하고 싶어요당신에겐 모든 것이 말이 되어요십일월 초하루 단풍 물든 산자락 끝이나물굽이마다에서당신이 보고 싶어서,당신이 보고 싶어서 가슴 저렸어요오늘가을산과 들녘과 물을 보고하루 왼종일당신을 보았습니다.

29. 김용택 시/12. 그리운 꽃편지1

그리운 꽃편지1 /김용택 봄이어요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없다면 고개 들어 잠시 먼 산 보셔요. 꽃 피어나지요.꽃 보며 바라보는 곳마다 꽃은 피어나며 갈 데 없이 나를 가둡니다. 숨막혀요. 내 몸 깊은 데까지 꽃빛이 파고들어 내 몸은 지금 떨려요. 나 혼자 견디기 힘들어요 이러다가는 나도 몰래 나 혼자 쓸쓸히 꽃 피겠어요. 싫어요. 이런 날 나 혼자 꽃 피긴 죽어도 싫어요. 꽃 피기 전에 올 수..

29. 김용택 시/11.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대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내 옷깃이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던 길 하나를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산다는 것이나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보면 이슬처럼반짝떨어지는 내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그 숲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왔습니다

29. 김용택 시/10. 가난한 꽃

가난한 꽃/김용택 가난이 뭔지 알겠습니다가난 안에서만 꽃은 만발하고가난 안에서만 꽃은 향기롭습니다가난이 뭔지 알겠습니다가난이 뭔지 아는 것은사랑이 뭔지 아는 것이고사랑은 다 버리고세상을 다 얻는 것이겠지요이제그대 가난한 가슴 위에 피어나는 들꽃들이그대 가난한 가슴 속의 눈물인 줄도알겠어요

29. 김용택 시/9. 11월의 노래

11월의 노래/김용택 해 넘어가면당신이 더 그리워집니다잎을 떨구며피를 말리며가을은 자꾸 가고당신이 그리워마을 앞에 나와산그늘 내린 동구길 하염없이 바라보다산그늘도 가버린 강물을 건넙니다내 키를 넘는 마른 풀밭들을 헤치고강을 건너강가에 앉아헌옷에 붙은 풀씨들을 떼어내며 당신 그리워 눈물납니다못 견디겠어요아무도 닿지 못할세상의 외롬이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와 닿습니다가을은 자꾸 가고당신에게 가 닿고 싶은내 마음은 저문 강물처럼 바삐 흐르지만나는 물 가버린 물소리처럼 허망하게빈 산에 남아억새꽃만 허옇게 흔듭니다해 지고가을은 가고당신도 가지만서리 녹던 내 마음의 당신 자리는식지않고 김납니다

29. 김용택 시/8. 누이야 날이 저문다

누이야 날이 저문다/김용택 누이야 날이 저문다저뭄을 따라가며소리없이 저물어 가는 강물을 바라보아라풀꽃 한 송이가 쓸쓸히 웃으며배고픈 마음을 기대오리라그러면 다정히 내려다보며, 오 너는 눈이 젖어 있구나--배가 고파--바람 때문이야--바람이 없는데?--아냐, 우린 바람을 생각했어해는 지는데 건너지 못할 강물은 넓어져오빠는 또 거기서 머리 흔들며 잦아지는구나아마 선명한 무명꽃으로피를 토하며, 토한 피 물에 어린다누이야 저뭄의 끝은 언제나 물가였다배고픈 허기로 저문 물을 바라보면 안다밥으로 배 채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멀고 먼 허기를누이야가문 가슴 같은 강물에 풀꽃 몇 송이를 띄우고나는 어둑어둑 돌아간다밤이 저렇게 넉넉하게 오는데부릴 수 없는 잠을 지고누이..

29. 김용택 시/7. 들 국

들 국/김용택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뭐헌다요 산 아래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산 너머, 저 산 너머로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산 아래 집 뒤안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저 달 금방 져불면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이 가을 다 가도록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29. 김용택 시/6. 사 랑

사 랑/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지난 몇 개월은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답답했습니다.하지만 지금은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어찌하지 못합니다.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어디선가 또새 풀이 돋겠지요.이제 생각해보면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지난 몇 개월 동안아..

29. 김용택 시/5.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이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환한 달이 떠오르고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간절한 이 그리움들을,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달빛에 실어당신께 보냅니다세상에,강변에 달빛이 곱다고전화를 다 주시다니요.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문득 들려옵니다.

29. 김용택 시/2. 사람들은 왜 모를까

사람들은 왜 모를까/김용택 이별은 손 끝에 있고서러움은 먼데서 온다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아침 산그늘 속에산벗꽃은 피어서 희다누가 알랴 사람마다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저문 산 아래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29. 김용택 시/1. 김용택 시인 시모음

[김용택 시인 시모음] 박절하고 매몰한 도시적 삶을 동글게 순화시키는 자연의 원초적인 힘섬진강 시인 김/용/택/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뜰에어둠을 끌어다 죽이며그을린 이마 훤하게꽃등도 달아준다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일어서서 껄껄 웃으며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