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시 989

가을의 애수

가을의 애수哀愁 / 월정 강대실 가을은 아파하지 말자무심결에도 회한의 탄식일랑은 꼭 하지 말자몇 번이고 마음을 다져 먹는다. 들풀 우부룩한 풀숲에 묻혀서도그윽이 쑥 냄새 풍기는 곰삭은 쑥대처럼이내 계절도 아무 향이든 하나는 품기 원했지 갈급한 나의 바람은 잘게 깨어진 거울 조각  여직 한 번 가슴을 뜨겁게 한 적 없는열매보다는 가지만 우부룩한 무화과나무 같은 정열을 잃은 해 허겁지겁 종심의 강 건너는가을의 길목 갈꽃 나부끼는 강둑에 서자내안에 그득히 쌓여 드는 공허함 뒤 돌아보며 흘깃 눈길 하늘에 이르자밀물처럼 밀려드는 부끄러움갈한 심신을 얼러 마음의 고삐 바투 잡는다. 초2-840

1. 오늘의 시 2024.11.14

다시 너를

다시 너를 /월정 강대실손사래 향한 헤픈 미소로바람처럼 돌아선 너,  눈길은 하냥 뒤를 쫓지만달랑 빈 깡통처럼 남겨두고산모롱이 돌아서 사라졌다가눌 길 없는 허전함, 개울가 검바위를 찾는다잔바람에 꽃잎 하르르 날리는 오후의 적막한 신작로 너머 가슴 숭숭한 산 어슬렁이다  멧부리 위 두둥실 흰 구름 멀거니 바라보며 흐르다가 여직 잠 깨지 않아 앙상한 가지 많은 은행나무 붙들고  또 한 겹 고독의 더깨 쌓으며앞산 붉어질 날 기다린다.(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1. 오늘의 시 2024.11.14

낙엽 인생

낙엽 인생人生                                                  월정 강대실                                             여름이다  했더니 어느새 삭풍 일세청청한 이파리 연기 없이 붉게 타떨어져 쫓기는 서러움이내 가슴 파고든다. 산정 향해 오른 길 어느새 하산 일세오르면 내려야 온당한 인간산데 세월 강 허무타 말자인생은 낙엽 이리.(초2-863) 초2-863

1. 오늘의 시 2024.11.13

가을 산

가을 산/ 월정 강대실                                저 높은 산 상상봉 멧부리아스라한 벼랑 끝에, 덩그맣게 내 목마른 영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울컥울컥 피 울음 토악질해그 서글픔 이 산 저 산에 저토록   영롱한 꽃등으로 피워 내걸고 나무처럼 계절 모른 기도로칼바람 진눈개비, 의젓이 언 강 건너 주저 없이 사랑의 나래 펼치련만 돌아보면 볼수록 이제는사랑도 미움도 그리움도 안개처럼 덧없고기다란 그림자 찬란히 서러운 석양녘 타고 몽당비만큼 남은 여정이라도가을빛 속 또 다른 영롱한 빛이 되어절름절름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초2-848

1. 오늘의 시 2024.11.11

땀의 여백

땀의 여백/ 월정 강대실              언제까지나 마음에 두고만 살 수 없어작심하고 낙목 쫓아가는 막내 동서랑땅끝 마을 달마고도 트래킹에 오른다   산문에 드니 기실 나는 땅을 기는 미물울울한 숲길을 걸으면 구정물 들이킨 잡물골짜기에 들어서자 있는 듯 사라지는 안개   산주 청설모 길라잡이가 오르는 바윗등힘이 풀리고 후들후들한 네 다리로 기어서가까스로 산정에 땀벌창 되어 닿는다   무상무념 반석에 오도카니 앉아가쁜 숨 갈앉히고는 사방으로 눈길 보내자아득히 열리는 시야, 땀이 일군 여백장부의 호연지기를 오늘에야 안다.초2-802

1. 오늘의 시 2024.11.10

체증약

체증약/ 월정 강대실    연분홍이나 갈색으로 쥐눈이콩 만한부모님 부적인 양 항상 약상에 넣어 두셨던불편한 속이 몇 알에 씻은 듯 개운해지는.   토끼 눈망울 같은 손자가 방학을 해 찾아와며칠 더 할애비랑 놀겠다고 떨어져서는꼭 잠을 자고 난 누에, 게걸스레 먹더니한밤중 뱃속이 돨돨해 보채댄다  놀란 갈큇살 같은 손 연신 배를 쓸어 주다번쩍 떠오른 그 똥그란 환약,꺼멍이처럼 든든히 식구들 체증을 지켰으나언제인가 종적도 모르게 사라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의 고통여직 아버지 어머니 지혜의 분깃 못 이어받은이내 불성실의 탓이라 생각하니타는 가슴, 회한의 한숨이 줄을 잇는다.초2-803

1. 오늘의 시 2024.11.10

나눔의 행복

나눔의 행복/ 월정 강대실    반백 년 부초같이 흐느적거린 불초향촌 아래뜸에 구년묵이 세간 부쳐 놓고속죄의 삽질 묵정밭 일으켜 심었지요감 대추랑 배 매실 사과...... 빼곡히 몸에 안 배어 가다가는 각다분하기도 하고여기저기에 적신호 욱신욱신해도이슬 머금은 흙내에 불끈 힘이 솟는 오뚝이하루가 멀다고 발자국 소리 내지요 감나무 시득부득 노름한 꽃 진 자리마다가지가 휘어지게 주먹감 흔전만전 매달고갈바람 단맛 빨갛게 들이지요 맏물은 원매 기다린 지인들 보내고원근처 사양지심의 정인들 챙기고 나면내 차지는 이내 비뚤고 새들이 쪼아 댄 거에다더 못 나누어 섭섭한 이웃들이지요 하지만, 유년 적 동지죽 먹으면 싣고 나갈토방 위 쟁여진 나락가마니 들쳐 메 보이며싱글벙글하던 박 씨처럼 행복 넘실하지요. 초2-805

1. 오늘의 시 2024.11.09

그 겨울의 아픔

그 겨울의 아픔/ 월정 강대실  삐리리! 삐리리! 보채대는 전화기 마뜩찮아 노려보던 왼손이 슬그니 나서서 펼쳐 들자 환히 피어나는 이름 석 자 충사忠事! 여느 날처럼 방가를 복창하자 곤두선 목소리 어-이 나 때려 치웠어 어제 날짜로! 웬 날벼락이여! 이 엄동설한에 입도 뻥긋 않더만 행장은 따 놓은 당상으로 알았어 친구는 그런데 어떡하겠는가 물짠 개 아랫것들이 쥐구멍도 안 보고 막무가낸데 토끼 사냥 끝났다고 나는벌써 넉 달 짼데 영에서 뺨 맞고 저잣거리서 눈을흘긴다고 손톱만 송곳같이 갈고 있어 나는 평생가슴속 품고 살라네 그리고 소리 안 나는 총 하나어디 있나 알아 봐 친구가 선배 아닌가 사회! 이른아침 졸지에 백수당 당수가 됐네! 친구나 나나 죽어도 징역 갈 며리는 없지 않는가! 맘 추슬러 오는새봄엔 한..

1. 오늘의 시 2024.11.08

은행잎 연가

은행잎 연가/ 월정 강대실 누구를 찾아 여길 오셨나요 아리따운 꿈에 부푼 어느 문학소녀 손에 든 시집 책갈피 이어야 하는데 스산한 포도 위를 방황하시나요 낯선 바람 흐드러진 너스레에 발목 잡혀 허둥지둥 뒤 따르다 낮고 젖은 데에 흩날리는 처량함 오가는 발길에 그지없이 짓밟혀 끝내 해어지고 만 노오란 가슴 밤이 이슥하면 하늘가 별 하나 만나 날밤을 지새워 샛노란 밀어 나누다 어느새 온 몸을 적시는 차디찬 이슬 길섶에 갈한 메아리로 스러지시나요. 초2-857

1. 오늘의 시 2024.11.08

가을을 두고 간 여자

가을을 두고 간 여자/ 월정 강대실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먼 하늘 나의 별 가슴에 얼굴을 묻고지새워 목쉰 독백 나누었을까팔려가는 송아지 같은 속울음 소리차창 밖 가을 산은 알아챘을까바람은 새살새살 달래 주었을까하마, 망각의 강 질러 멀리 갔을까산책길 붉나무 연신 떨구는 잎새 헤며추억의 향기 헤적이고 있을까계절이 오고 갈 때면 아리게 떠오르는가을을 두고 낙엽 따라 간 그 여자 앙가슴에 꺼멓게 멍울지는 그리움.

1. 오늘의 시 2024.11.07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 월정 강대실 스산히 낙엽이 뒹군다 한 생 아름답게 살더니 어느새 스르르 스러진 나뭇잎 하이얀 얼굴 지르밟고 고독히 걷는다 바사삭! 바람으로 다시 만나자 새로운 결별의 외마디 내 영혼 채질하는 찬란한 노래여! 결코 아파하지 말자 끝 날까지 사랑으로 보듬자며 속에 깊숙이 큼직한 바위 하나 품고 훌쩍, 성자처럼 미련없이 떠나 왔건만 사랑꽃 꽃눈 하나 틔워 내지 못하고 어스름 강둑에 눈 흘기고 서 있으니 어이 죄 아니랄 수 있으랴 사랑을 노래한다 하랴 꽃잎이 다시 피어날 그 날까지 기어이 돌아서지 않으리라.

1. 오늘의 시 2024.11.07

꿈길에 받은 편지

꿈길에 받은 편지/ 월정 강대실 야야, 주원이 어멈아!아비가 집으로 와 몸조리 잘 하다 다시 입원을 했다니 무슨 날벼락이냐!한 장이 멀다 하고 지성으로 들러더니발길이 끊어진 지가 길어만 져날마다 눈이 까맣게 들머리만 내다봐지고몽조까지 뒤숭숭하더니만...아무튼, 네가 고생이 많다자고로 긴 병에 장사 없다고 했다특히 네가 끼니를 에우는 일 없이제대로 챙겨야 한다, 안 지치게원체 의지가 강철 같아 쉬이 털고 일어날 거다그리고 지금은 용한 의사도 좋은 약도 많지만큰밭 감나무 아래 머위가 효험이 좋단다뿌리를 차로 끓여 상복하도록 해 보아라하루 속히 완쾌해 우리 몫까지 살면서두 손자 동재로 만들어 손부까지 꼭 봐야 한다너희들 옥작옥작 살게 도와 달라고네 아버지랑 기도 더 많이 할란다, 이제는고맙다.초2-812202..

1. 오늘의 시 2024.10.27

감사한 도선생께

감사한 도선생께 / 월정 강대실  두 발로 지구를 받치는 사람이라면어느 누가 군침 삼키지 않을 수 있으리오처마 밑 맛깔스레 익어 가는 곶감을 보고는. 유년의 아슴아슴한 기억 속 아버지 흉내 내 감 깎아 꿰어 즐빗이 매달아 놓고 보니그 연출 하도 순수하고 예술 바로 그 자체라이리저리 사진 찍어 자랑쳤지요 볕 좋고 바람 일고 중천에 달이 휘영청해 검붉고 달보드레하니 숙성해 가는데감꼬치 곶감 빼 먹듯 한다는 말 되새기며춘향이 한양 도령 기다리듯 완숙을 기다리지요 가을 나들이 나선 도선생 뜬금없는 선경에 솔깃이 도지는 곶감 서리의 추억 농막의 길손 되어이마 앞 두고 보자니 마음이 혼미해졌겠지요  참으로 요상하고 감사한 도선생!얼마나 끌끌하고 점잖으시면, 더도 아닌꼭 두 꿰미만을 왼손에 쥐셨나요, 금줄을 친 듯도..

1. 오늘의 시 2024.10.27

사랑의 두 얼굴

사랑의 두 얼굴 / 월정 강대실 이제 그만 동거 끝내자고거실 꽃분 남창 아래로 내놓으며, 문득생각을 해 본다 내 사랑의 두 얼굴.아비 아들 범벅 금 그어 먹는 건 아니되두 아들 어느새 자라 앞산도 들쳐 멜 만하여책가방 내려놓게 되면 다음 날 부터는눈앞에 얼씬도 말라 이르곤 한.성미 칼칼한 바람 기웃거린다 싶으면유난히도 호들갑을 떨며 거실로 맞아들여삼동을 눈 맞추며 고운 꿈 키우다햇살의 은사로 꽃 피워 고운님 모셔라며진자리 마른자리 골라 돌보는.선뜻이 파도 더 센 인해로 뛰쳐나가허위허위 나래치는 모습 안타깝기도 하지만머잖아 태산준령을 맨발로 넘어야 하기에뒤를 받칠 건 맵고 쓰거운 훈계와지금껏 바쳐 온 붉은 정성을 다한 기도뿐어찌 못할 야누스 같은 내 사랑의 두 얼굴.초2-821

1. 오늘의 시 2024.10.27

호반의 길손

호반의 길손/ 월정 강대실 소슬바람 그지없이 집적거려도 요조숙녀처럼 얌전하고 정숙한 산국 풍기는 향기 호안에 가득한 외져 발길 뜸해진 고요로운 호수 오늘도 긴 벤치에 홀로이 찾아와 앉은 호반의 길손 밀려갔다 밀려드는 파문 산산이 부서져 반짝이는 윤슬에 실려 그윽이 풍겨 오는 물의 내음 짓누른 생의 무게 어느덧 사라지고 붉어오는 나뭇잎의 체온 오롯이 가슴에 담는다. 초2-839

1. 오늘의 시 202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