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 550

8. 문병란// 22. 전라도 젓갈

전라도 젓갈 문 병 란썩고 썩어도 썩지 않는 것썩고 썩어도 맛이 생기는 것그것이 전라도 젓갈의 맛이다전라도 갯땅의 깊은 맛이다괴고 괴어서 삭고 곰삭아서맛 중의 맛이 된 맛온갖 비린내 땀내 눈물내갖가지 맛 소금으로 절이고 절이어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맛소금기 짭조롬한 눈물의 맛장광에 햇살은 쏟아져 내리고미닥질 소금밭에 소금발은 서는데짠맛 쓴맛 매운맛 한데 어울려설움도 달디달게 익어가는 맛원한도 철철 넘치게 익어가는 맛어머니 눈물 같은 진한 맛이다할머니 한숨 같은 깊은 맛이다자갈밭에 뙤약볕은 지글지글 타오르고꾸꾸기 뻐꾸기 왼종일 수상히 울어예고눈물은 말라서 소금기 저린 뻘밭이 됐나한숨은 쉬어서 육자배기 뽑아올린 삐비꽃이 됐나썩고 썩어서 남은 ..

8. 문병란// 21. 아버지의 귀로

아버지의 귀로 문병란 서천에 노을이 물들면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리어커꾼의 거치른 손길 위에도 부드러운 노을이 물들면 하루의 난간에 목마른 입술이 타고 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한 애인이 된다는 것, 무너져가는 노을 같은 가슴을 안고 그 어느 귀로에 서는 가난한 아버지는 어질기만 하다. 까칠한 주름살에도 부드러운 석양의 입김이 어리우고,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그 아들딸 앞에 돌아오는 초라한 아버지, 그러나 그 아들딸 앞에선 그 어느 대통령보다 위대하다! 아부도 아첨도 통하지 않는 또 하나의 왕국 주류와 비주류 여당과 야당도 없이 ..

8. 문병란/ 20. 배암

배암                           문   병   란배암,너는 저주 받은 운명을 몸에 두르고돌팔매 단죄 장대공격을 피하여볕 가린 구멍이나음지의 진구렁 가시밭에아무도 모르게 고독을 또아리쳤다.아담과 이브,차라리 진실은 인간의 죄를 둘러씌운 음모소리를 빼앗긴 혓바닥 낼룽거리며너는 또 돌팔매에 쫓기는구나멋대로 타락한 인간들뱀을 팔아 하느님을 배신한보다 더 징그러운 인간의 혓바닥들이총알보다 무서운 증오를 내뿜는다배암,눈이 시리게 차거운 달밤이면오만한 조상의 풍속을 배워호화로운 뱀춤 기나긴 교미를 끝내고아라비아 사막의 노래 피리를 부느냐.슬기롭고 냉혹하여라 배암,완강한 운명의 목줄을 물어뜯어선지피 낭자한 그날에다시 한 번이브와 아담을 타락하게 하려므나.

8. 문병란/ 19. 매운 고추를 먹으며

매운 고추를 먹으며                           문   병   란오뉴월 더위에 약 오른매운 고추,된장에 찍어그 정력제를 먹으며맵고 毒한 오늘의 눈물을 삼킨다.눈물을 흘리면서호호 불면서한사코 매운 것으로 골라 먹으면뼈 속까지 스미는 이 맵고 독한기운,그 어느 장미의 肉香보다 더욱 진하게우리의 오장 깊이 아리힌다.오직 우리만이 알고 있는서러운 눈물, 千年의 恨을 삼키듯질겅질겅 씹어 삼키는 매운분노,모질게 으깨려 온너와 나의 슬픔을 깨문다.그 옛날 不逞鮮人의 눈물을 알고그 半島人의 가슴에 맺힌 恨닛본刀 끝에서 피흘리던마디마디 맺힌 슬픔이오늘은 작은 고추 속알알이 스민 매운 역사.최루탄 가스보다 더 아리게우리의 마음을 울리고모질게 깨아무는어금니의 충돌그 속엔 무엇이 으깨려져 지는가. 고추를 못..

8. 문병란/ 18. 새벽 세 시

새벽 세 시 문  병  란나의 눈은 밤중에도 오히려대낮처럼 환하다다방의 탁자와 커피잔들이내 머릿속을 걸어다닌다무수한 골목들이실뱀처럼 기어다닌다묵은 책들이 눈을 뜨고쥐마저 잠든 밤나는 남처럼 앉아 나를 바라본다너는 또 무엇이 그리워이 밤에 동그랗게 앉아 등불을 지키는 것이냐언제부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며이루지 못할 사랑 하나 큰 죄악처럼 지니고이 밤도 너는 단테의 제7지옥 애욕의 골짜기깊고 먼 고뇌의 어둠 속을 헤메고 있구나새벽 세 시죽어버린 올빼미도이 밤엔 울지 않는다내 슬픈 임종처럼 고독한 밤두 눈 말똥해 가는 불면 속에서사신(死神)처럼 앉아 있는 외로운 사내를 본다

8. 문병란/ 17. 예수가 계신 곳은

예수가 계신 곳은 문   병   란호화찬란한 교회당거기에 예수는 없다은빛 빛나는 벽장식의 거대한 십자가거기에 예수는 없다수천만원이 모이는 바구니 속의 헌금거기에 예수는 없다장엄하게 들리는 수백명 합창단의 찬송거기에 예수는 없다.예수는 예수를 모르나 예수를 닮은 사람들의어질고 가난한 손 가운데 있고굶주린 사람들이 물어뜯는 한덩이 빵義人의 목마름을 적시는 한 잔의 우유빈 창자를 채우는 한 그릇 밥 속에 있다.그대 서가를 장식하는 금박의 책그대의 허영을 만족시키는 속세의 명성소리 높여 부르는 저 호리톤의 기도흥겨운 박자에 맞추어 부르는 열광의 찬송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을 파는뭇 바리새인들의 혀끝에서예수는 두 번 다시 처형을 받는다.벗겨지지 않는 가시면류관멎지 않는 구멍 뚫린 옆구리의 피두꺼운 벽 속에 갇..

8. 문병란/ 16. 꽃에게

꽃에게 문   병   란차라리 마지막 옷을 벗어버려라.밤마다 비밀을 감추고마지막 부분,부끄러운 데를 가리우던그날부터.내 앞에 위태롭게 서 있던 자태.너를 탐내는 눈 앞에너를 더듬어 찾는 음모의 손길 앞에간신히 지켜온비밀,가장 안에 감춘 빛나는 아픔을 보여주어라.그 어느 빛의 언저리에서간음 당하는 너의花心,이 눈부신 밝음 앞에탐욕의 눈길들이 너를 찾고 있다.오늘의 수치,白磁의 無法 앞에알몸으로 떨고 있는 꽃이여.아슬아슬한 빛의 난간에서네가 마지막 지킨분노,어느 절정에 눈을 꼭 감고 있느냐.이제 지켜야 할 아무것도 없는赤裸裸한 가슴,차라리찬란한 밝음을 갈갈이 찢어버려라.

8. 문병란/ 15. 손

손 문  병  란서로의 可能이 꽃피는 距離를 두고저만치한 개의 銀錢이 놓인다.핏빛 아픔이 벙을히는 손금을 따라가면거기,전쟁이 누워 있는 地圖속.한 줄기 아픈 線이 금그어지고.어느 날엎었다 뒤집는 손바닥 위에20만분의 1로 줄인 세계가 펼친다.지금은 물러나빈 잔을 채우는 저녁 일곱時 위에길게 놓여 있는 수지운 孤獨.밤이면 둘 곳 없는 나의손.차가운 은메달 언저리에목마른 어둠이 기어내리고.한밤중.비밀 회담이 시작되는 나의 王國거기.황홀히 點火되는 손가락끝.極東의 위기가 불타오른다.잠든 젖무덤 사이,위기일발의 8부 능선을 따라또 하나의 火藥庫 위에 기어가는 나의손.전쟁은 極點에 피어나는 꽃이었다.이제는 찬란한 깃발을 내리고두 손을 한데 모으는 밤.凍傷이 번지는 아픔을 모아M1소총 방아쇠언저리.긴 겨울을 지키던..

8. 문병란/ 14.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문   병   란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철조망이나 탱크가 아니다.철조망이나 탱크보다 더 완강한 것은우리들의 편견, 우리들의 이기심,형제의 손에 떡 대신 돌을 쥐어 주는욕망의 빌딩을 쌓아올리는모진 놀부의 욕심에 있다.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제국주의나 파시즘의 논리만이 아니다.최루탄보다 총칼보다 더 무서운 것은우리들의 기득권, 우리들의 독점욕,형제의 가난까지 훔쳐다 투기하고손만 닿으면 황금이 되는 마이더스의 욕망,수천억의 공장을 통째로 삼키는 저금통장에 있다.우리를 가로막고 갈라놓는 것은휴전선이나 판문점 초소가 아니다.잘못된 지배논리, 약한자의 이마를 딛고핏줄기보다 인간끼리의 참된 사랑보다얼굴이 닮은 동포의 ..

8. 문병란/ 13. 고무신

고무신                         문   병   란어느 노동자의 발바닥 밑에서40대 여인의 금간 발바닥 밑에서이제는 닳아지고 구멍 뚫린 고무신,이른 새벽 도시의 뒷골목 위에서나저무는 변두리의 진흙밭 속에서나그들은 쉬지 않고 아득히 걷고 있다.태어날 때부터 쉬임없이 걸어온 운명,존데만 딛고 온 고단한 발길 따라캄캄한 어둠도 밟고 가고끝없이 펼쳐진 노동의 아침,타오르는 불길도 밟고 간다.아득한 시간의 언덕 너머 펼쳐진고향의 잃어진 논둑길을 걸어서가물거리는 호롱불을 찾아가는 고무신,두메산골 머슴의 발바닥 밑에서도뿌듯한 중량의 눈물을 안고그들은 어디서나 돌아오고 있다.영산포 어물장 법성포 소금장이 장 저 장 굴러다니다영산강 황토물 속에 처박혀멀뚱멀뚱 두 눈 부릅뜨고한많은 가슴 썩지 못하는 고무신..

8. 문병란/ 12. 꽃가게 앞을 지나며

꽃가게 앞을 지나며                        문   병   란그 꽃빛깔만큼이나 예쁜 이름을 가진온갖 꽃들이 진열된꽃가게 앞을 지나면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문득너의 이름이 떠오른다.진정 그리움이란진홍빛 장미꽃만큼이나 간절히 타오르는 정열인 것이냐.아름다운 것만 보면 문득푸른 하늘이 치어다 보이고거기 눈부신 이국종아네모네의 이름보다 멀게너의 고운 미소 피었다 스러지나니.삶의 외로움 나누는목마른 어느 길목에서나는 너의 조그만 미소를 구하여이리도 간절히 발돋음해 애태운다.오라, 노을 지는 꽃길 위에종종 걸음으로 왔다가 스러지는무수한 발자국 지우며봄과 함께 꽃내음 타고 올제비꽃 초롱 내 사랑하는 연인아!

8. 문병란/ 11. 어리석음

어리석음                  문   병   란현명보다 먼저 와서너는 인간과 함께오랜 역사를 만들었다.많은 사람들너 때문에 사랑하고너 때문에 이별하고너 때문에 죽었다.20대에처음 만났던 너,조롱섞인 웃음소리 속에서나는 너와 더불어 사랑을 배웠다.어리석음.너는 또 하나의 스승이 시대의 암유 속에서너는 현명을 깔아뭉갠다.60년 동안너는 나의 오랜 친구,나의 묵은 원고뭉치 속에서내 젊은 날의 죄상에 대해은밀한 조서를 꾸미고 있고너는 이 아침에도맨먼저 깨어나 내 곁에 앉는다.어리석음아천하를 삼키고도 남을 위력으로내 한평생을 지배하는슬픈 인생의 동반자야이 아침 너는늙은 태양을 데불고 와서내 창문을 탕탕탕 총쏘는 구나.

8. 문병란/ 10. 곰내 팽나무

곰내 팽나무                                문   병   란아직도 젊고 팽팽한 몸뚱어리에푸른 가지를 죽죽 뻗치고남해의 푸른 하늘을 끌어안고 서 있는곰내 팽나무임진년 난리 때이순신 장군의 노모 변씨와그의 부인 방씨가5년간 기거했다는 내력을 지니고하나의 역사가 수천 개의 이파리를 달고서눈부신 유월 햇살 아래그 미끈한 아랫도리 당당하게 서 있다팽나무는 그대로아름다운 조선 역사그날의 내력 안으로 간직하고거대한 상형문자처럼 두 팔 벌려이 세상 사내란 사내 천하의 모든 수컷들을죄다 삼키고도 모자랄 듯천하의 햇살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서 있다천하 장정들 다 오라그 넉넉한 무당각시의 품을 열고아랫도리 성한 왜놈들 한 부대쯤 모조리 삼키고이 세상 남편과 자식 줄줄이 거느리고그 수천 수만 개의 남근..

17. 박용래 시인/9. 제비꽃

제비꽃부리 바알간 장 속의 새,동트면 환상의 베틀 올라 금사(金絲), 은사(銀絲) 올올이 비단올만 뽑아냈지요, 오묘한 오묘한 가락으로.난데없이 하루는 잉앗대는 동강,깃털은 잉앗줄 부챗살에 튕겨 흩어지고 흩어지고,천길 벼랑에 떨어지고,영롱한 달빛도 다시 횃대에 걸리지 않았지요.달밤의 생쥐, 허청바닥 찍찍 담벼락 긋더니,포도나무 뿌리로 치닫더니, 자주 비누쪽 없어 지더니.아, 오늘은 대나뭇살 새장 걷힌 자리, 흰 제비꽃 놓였습니다.

18. 오탁번 시인/11. 봄

봄 /오탁번겨우내 살이 오른 딱정벌레 작은 알이봄 아침 눈을 뜨고 나무 밑둥 간질일 때그리움 가지 끝마다 새잎 나며 보챈다버들개지 실눈 뜨는 여울목 아지랑이눈물겨운 물거울로 꿈결 속에 반짝일 때이제야 견딜 수 없는 꽃망울이 터진다오탁번(吳鐸蕃, 1943년 7월 3일제천 ~ )대한민국의 시인이다.고려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당선되어 등단하였다.1978년부터 고려대학교 사범대학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였고,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이다.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주요 저서 작품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1985년, 시집)생각나지 않는 꿈 (1991년, 시집겨울강 (1994년, 시집미터의 사랑 (1999년, 시집처형의 땅 (1974년, 소설)오탁번 시화 (199..

18. 오탁번 시인/9. 굴비

굴 비- 오탁번-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굴비 사려, 굴비!아주머니, 굴비 사요―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는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그거 한 번 하면 한마리 주겠소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웬 굴비여?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사내와 계집은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며칠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또 웬 굴비여?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앞으로는 안 ..

18. 오탁번 시인/6. 잠지

오탁번 시인 / 잠지​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옆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한 밥 얻어먹겠네

18. 오탁번 시인/5. 혼잣말

오탁번 시인 / 혼잣말  수수밭 가에서 팔 휘저으며새떼 쫓는 할아버지나보행기 밀고 가다가느티나무 그늘에 쉬는 할머니는중얼중얼 혼잣말 잘도 하신다그 말을 가만히 귀동냥해서 들으면그게 바로 시다그러나 문장으로 옮겨 적으려는 순간는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마른기침 사이로 쉬는 한숨에는전 생애의 함성이 있고캄캄한 우주를 무섭게 가로지르는살별의 침묵도 있다중얼중얼 혼잣말이여아, 알짜 시여

18. 오탁번 시인/4. 하관

오탁번 시인 / 하관  어머니 어머니하관의 밧줄이 흙에 닿는 순간에도어머니의 모음을 부르는 나는놋요강이다 밤중에 어머니가 대어주던지린내나는 요강이다 툇마루 끝에 묻힌오줌통이다 오줌통에 비치던잿빛 처마 끝이다이엉에서 떨어지던 눈도 못 뜬벌레다밭두럭에서 물똥을 누던어머니가 뒤 닦아주던 콩잎이다 눈물이다저승은 한줌 재로 변하여이름모를 뿌리들의 풀꽃으로 돌아오고

18. 오탁번 시인/3. 폭설

폭설오탁번​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뒷물하는 아낙네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

18. 오탁번 시인//2. 純銀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純銀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나뭇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선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천년 동안 땅에 묻혀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 있다가발굴되어 건강한 탄부의 손으로화차에 던져지는,원시림 아아 원시림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 일구며 타던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겨울 저녁의무변한 세계 끝으로 불리어 가은빛 날개의 작은 새,작디 작은 새가 되어나뭇가지 위에 내려 앉아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눈을 뜬다.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 번째눈을 뜨듯. ( 후략) * 겨울 서정시의 대표격인 시다이 시의 묘미는 자연 현상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