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김남조 시/9. 겨울바다 겨울바다김남조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미지의 새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었네.그대 생각을 했건만도매운 해풍에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 버리고허무의 불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나를 가르치는 건언제나 시간......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남은 날은 적지만기도를 끝낸 다음더욱 뜨거운 혼령을 갖게 하오서.남은 날은 적지만......겨울 바다에 갔었지.인고의 물이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8. 겨울 꽃 겨울 꽃김남조1눈길에 안고 온 꽃눈을 털고 내밀어 주는 꽃반은 얼음이면서이거 뜨거워라생명이여언 살 갈피갈피불씨 감추고아프고 아리게꽃빛 눈부시느니2겨우 안심이다네 앞에 울게 됨으로나 다시 사람이 되었어줄기 잘리고잎은 얼어 서걱 이면서얼굴 가득 웃고 있는겨울 꽃 앞에오랫동안 잊었던눈물 샘솟아이제 나또다시 사람되었어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7.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김남조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기다려 줍시다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부끄러워 할 것은 아닙니다.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잘못이 아닙니다.더 오래 사랑한 일은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진정으로 사랑하여가장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 됩시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6.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김남조나의 밤 기도는 길고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가만히 눈뜨는 것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갓 피어난 빛으로만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내 사람아쓸쓸히검은머리 풀고 누워도이적지 못 가져 본너그러운 사랑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내 사람아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5. 눈 오는 날 눈오는 날 -설 일 (雪 日) -김 남 조-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이 투명한 빨래처럼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사랑도 매인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새해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위에 떨구는 백설을 담고 온다.[출처] 눈오는 날 -설 일 (雪 日) -김 남 조- (글벗문학(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 작성자 Funny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4. 시인에게 시인에게김남조그대의 시집 옆에나의 시집을 나란히 둔다사람은 저마다바다 가운데 섬과 같다는데우리의 책은어떤 외로움일는지바람은 지나간 자리에다시 와 보는가우리는 그 바람을 알아보는가시인이여모든 존재엔오지와 심연,피안까지 있으므로그 불가사의에 지쳐평생의 시업이겁먹는 일로 고작이다나의 시를 읽어 다오미혹과 고백의 골은 깊고애환 낱낱이 선명하다물론 첫새벽 기도처럼그대의 시를 읽으리라다함 없이 축원을 비쳐 주리라시인이여우리는 저마다운명적인 시우를 만나야 한다서로 그 사람이 되어야 한다영혼의 목마름도 진맥하여피와 이슬을 마시게 할그 경건한 의사가시인들말고다른 누구이겠는가좋고 나쁜 것이함께 뭉쳐 폭발하는이 물량의 시대에유일한 결핍 하나뿐인 겸손은마음에 눈 내리는 추위그리고이로 인해 절망하는이들 앞에시인은 진실로 진실로..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3.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김남조나의 밤 기도는 길고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가만히 눈뜨는 것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갓 피어난 빛으로만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내 사람아쓸쓸히검은머리 풀고 누워도이적지 못 가져 본너그러운 사랑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내 사람아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 2.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김남조 신이시여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못내 당신 앞에 벌받던 여름은 가고기도와 염원으로 내 마음 농익는지금은 가을노을에 젖어 고개 수그리고긴 생각에 잠기옵느니여기 이토록 아름차게 비워진 나날가을엔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신이시여 가을엔기도드리게 하옵소서바람 속에서바람에 불리우다 불현듯 더워오는 눈시울주체할 길 바이 없느니이제금 홀로인 그분과 나와가을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신이시여가을엔 사랑하게 하옵소서경건히 보다 경건히요적의 눈빛으로 마주 바라보는계절은 가을신이시여당신과 나 사이에그분과 나 사이에한 아름의 들국화를 두게 하옵소서보랏빛과 흰빛의 소담스런 국화가피어도 있고 피면서도 있게 하옵소서가을은 돌아가는 계절푸른 하늘 아래나도 몰래 내가 멈춰서는 계절문..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6. 김남조 시/1. 김남조 시 모음 김남조 시 모음 67편☆★☆★☆★☆★☆★☆☆★☆★☆★☆★☆★너를 위하여김남조나의 밤 기도는 길고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가만히 눈뜨는 것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갓 피어난 빛으로만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내 사람아쓸쓸히검은머리 풀고 누워도이적지 못 가져 본너그러운 사랑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내 사람아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김남조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기다려 줍시다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부끄러워 할 것은 아닙니다.먼저 사랑을 건넨 일도잘못이 아닙니다.더 오래 사랑한 일은더군다나 수치일 수 없습니다.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진정으로 ..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5. 이동주/5. 서귀포 (西歸浦) 서귀포 (西歸浦) 이 동 주못 믿으리……隆冬 벚꽃이 달밤보다 밝다니.귀가 얼어 오던 길이 한 발은 눈보라요 한 발은 꽃그늘.낭기마다 물 먹어 부풀고. 새 소리 銀방울 찼다.눈 구덕에 밀감이 익고 동백꽃 내내 참나무 숯불일세.마소를 굴레 없이 자랑자랑 밖으로 몰면 짐승도수말스러 애먹지 않도다.여기오면 주름이 펴진다. 흰 머리도 검어지고.아득한 그리움 귓전에 설레나, 나는 어쩌지 못한다.이제 돌아간들 쓸쓸히 갔노라는 옛사람.생소한 강산에, 어릿 어릿 내가 백로보다 희려니……버릇없이 早白한 아니놈도 흰 바돌을 사양치 않으렸다.어지고, 착한 청춘이 이곳 풍토래갸 할 말이면 비린 것날로 먹고 내 여기 살레.[출처] (2024.3.13) 서귀포 (西歸浦) - 이동주|작성자 서창거사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5. 이동주/5. 황혼 황혼 서쪽은 노을에 취해 죽은 듯 자고잔디밭 양은 가자고 설리 운다목화 따던 새댁네는구름 우에 시무룩 서서 어스름 태고로 낡아지는먼-산 재 넘어 돌아서 올고을 갔던 임자가 오는가 오는가 본다- 이동주 「황혼」 『이동주 시전집』(현대문학, 2010) 전문 ‘한국적인 정서를 섬세한 리듬으로 노래’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동주(1920-79) 시인의 어머님이 보낸 편지에 “너 어려서 입버릇이 첩첩이 쌓인 내 포한을 글로써 풀겠다더니 그에 시 쓰는 법을 배우고 말았구나.”라는 구절이 있다. 시를 쓰겠다는 동기가 어머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황혼」에서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있다.송영순 「이동주의 생애와 시의 판본 고찰」 (『이동주..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5. 이동주/4. 혼야 혼야(婚夜) 이동주 / 시인 금실(琴瑟)은 구구 비둘기 ······ 열두 병풍(屛風)첩첩 산곡(山谷)인데 칠보(七寶) 황홀히 오롯한 나의 방석. 오오 어느 나라 공주(公主) 오니까다소곳 내 앞에 받들었소이다. 어른일사 원삼(圓衫)을 입혔는데 수실 단 부전 향낭(香囊)이 애릿해라. 향촉(香燭) 갈고 갈아 첫닭이 우는데 깨알 같은 정화(情話)가 스스로워 ······ 눈으로 당기면 고즈너기 끌려와 혀끝에 떨어지는 이름 사르르 온몸에 휘감기는 비단이라 내사 스스로 의(義) 의 장검(長劍)을 찬 왕자(王子)어느새 늙어 버린 누님 같은 아내여 쇠갈퀴 손을 잡고 세월이 원통해 눈을 감으면 살포시 찾아오는 그대 아직 신부(新婦)고녀. 금실(琴瑟)은 구구 비둘기.[출처] 이동주 시 - 혼야(婚夜)..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5. 이동주/3. 새댁 새 댁 이 동 주 새댁은 고스란히 말을 잃었다 친정에 가서는 자랑이 꽃처럼 피다가도돌아오면 입 봉하고 나붓이 절만 하는 호접胡蝶 눈물은 깨물어 옷고름에 접고웃음일랑 살몃이 돌아서서 손등에 배앝는 것 큰 기침 뜰에 오르면공수로 잘잘 치마를 끌어 문설주 반만 그림이 되며세차게 사박스런 작은 아씨 앞에도너그러움 늘 자모慈母였다 애정은 법으로 묶고이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궁체로 얌전히 상장을 쓰는....... 머리가 무릇같이 단정하던 새댁지금은 풀어진 은실을 이고 바늘귀 헛보시는 어머니 아들은 뜬구름인데도바라고 바람은 태산이라 조용한 임종처럼탓없이 기다리는 새댁 른일사 원삼을 입혔는데 수실 단 부전 향낭이 애릿해라. 황..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5. 이동주/2. 강강술래 강강술래 여울에 몰린 은어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래애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뉘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열 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쓰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혼야 금슬은 구구 비둘기... 열 두 병풍 첩첩 산곡인데 칠보 황홀히 오롯한 나의 방석. 오오 어느 나라 공주오이까. 다수굿 내 앞에 받아들었오이다. 어 1979년 타계했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8. 왈칵, 한 덩어리 꽃 왈칵, 한 덩어리 꽃오래 한 여자를 앓아온 속 깊은 그가, 드디어꽃다발을 들고 고백하려는 찰나말보다 울음 한 덩이가 먼저 그녀 앞에 붉게! 쏟아졌다고 한다.목구멍이 왈칵, 한 덩어리 꽃이다.망설임과 적막한 두려움과 설렘이 뒤엉킨 담쟁이덩굴 담장 아래아무리 깊은 밤 되어도일평생이 환할 그 꽃.세상 파란까지 다 꽃이 되게 하는 한 덩이 아름다운 힘.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7. 상도여관 상도여관홍상수 감독의 영화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나오는그 여관방이 내가 애용하는 숙소였다.취객들 목소리 때문에조그마한 창문이 밤새도록 덜컹거릴 때가 있었다.하루는자정 가까이에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골목에서 목청껏 부르는 합창이어둠을 뚫고 4층까지 단숨에 솟구쳐 올라왔다.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보니시 쓰는 은기와 원경이, 경섭이,그리고 또 몇 명의 얼굴….지금도 감자탕에 소주 몇 잔 기울이고 싶은찬바람 몹시 부는 가을 끝자락이었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6. 일족 일족선산 언덕에서 머윗대를 베어왔다. 껍질을 벗기는데 손톱 밑까지 까맣게 물들었다. 살과 뼈가 삭아 물이 되고 흙이 된 조상의 영토에 뿌리박아 굵고 길게 자란 머윗대, 생각하면 까맣게 물든 손끝이 내 조상이 다녀간 흔적 같다. 까마득한 후손을 머윗대 되어 찾아와 손끝에 풋내 흔적 남기고 음식이 되는 지극, 생각하니 머리카락 쭈뼛 일어선다. 창문 열고 하늘을 본다. 듬성듬성 박혀 있는 구름들, 하늘 손끝에 남은 머윗대 껍질 벗긴 흔적 같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강이 되고 산이 된 조상의 몸과 숨소리 있었던 자리 같다. 생각하면 머윗대와 물과 흙과 하늘과 구름과 나는 그리 멀리 않은 피붙이구나.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데는 몇 번이나 비가 내리고 햇빛과 바람은 얼마만큼의 시간을 감았다 풀기를 되풀이..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5. 제주 활화산 제주 활화산나지막한 현무암 돌담길 같았던 사람, 큰 눈에제주 바다 푸른빛 담고 있던 사람,내심(內心) 깊어 묵묵했으나 손이 따뜻했던 그가 중문의 베릿내 해안에 흰 꽃 피웠다. 한 줌 뼛가루로 피운 흰 바람꽃, 그런 꽃 피운다고 누가 좋아하나? 묻기도 전에, 기어이,물의 집이고 삶의 ‘물집’이던 고향 바다와 하나 되었다.그는 시의 활화산이었다.제주 오름을 사랑하고, 제주 문화와 역사를 뜨겁게 꽃피우고 싶어 하던 사람, 관광단지 된 조그마한 바다 마을 베릿내, 옛날 그 숨비소리를 끝끝내 품은 숨비기꽃 때문이었을까? 강정마을구럼비 바위를 지키려 애쓰던 그가제주 칸나의 시뻘건 꽃잎같이 터져 솟구치던 시만 남겨놓고, 풍문도 없이 바다의 화엄이 되었다. 예순,아직 몇 구비나 남아 있는, 걸어가야 할 길을 제주 ..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4. 발바닥 발바닥 어떤 삶을 웅숭깊은 삶이라 할 것인가. 들여다보면 발바닥 흉터가 깊다. 쩍쩍 금 간 논바닥 같다. 땅거미 내려앉고 서릿발 돋은 일생이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으며 잠든 당신, 푸푸거리는 숨소리 사이사이 거친 바람이라도 부는지 몇 토막 잠꼬대가 논두렁을 타고 넘는다. 지게 가득 나락 가마니를 옮기다 다친 목 척추 통증보다 더 시퍼렇게 밤마다 가슴팍에서 태어나는 열세 살 어린 별을 만나고 오셨나. 이불 사이로 삐죽 나온거북 등 같은 발바닥 깊은 흉터 몇 개가 천체도로 떠오른다. 균열로 기록된 세월의 서책이여, 새끼들 배불리 먹이면 맨발도 아프지 않던 그 생애의 문장을나 이제야 읽는다. 내 추수의 기쁨 뒤에서 딱딱하게 굳고 쩍쩍 금 간 채 신음도 없이 엎드린 당신의 들판, 중년이 되..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3. 흰 달 흰 달생전 그가 좋아하던 목련이었다. 저녁 가느다란 바람 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그것은뿌리 끝에서 몸통을 타고 올라온 음계가, 떨면서 입을 열고 심연의 침묵을 나무 끝에 매달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남양주 봉인사의 지장전에 잠들어 있다.그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 창원행 고속버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려 안간힘 쓰던 햇빛의 언어들,말하려 해도 침묵의 움푹 파인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이내 흐느낌이 되던 생각들,입 다문 그대로, 또 다른 심연에서 어둠 껍질을 벗기며 하얗게 떨리는 음계로 피어나고 있었다. 이름 부르면 조금 느리게 돌아보던 몸짓, 출판사 일 마치고 부천행 급행전철을 타러 종종걸음 치던 뒷모습처럼 생생하게오늘도 어스름 저녁을 흔드는 흰 목련. 마음 끝에 울컥, 솟구쳐 걸리는 흰 달처럼생전..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2. 모서리의 무덤 모서리의 무덤조개껍질을 줍는다 백사장 조개껍질은 깨진 것도 둥글어져 있어, 시간의 오랜 힘이 모서리를 데려가 이 바닷가모래로 부려놓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닷가에 와서 삶의 모서리를 굴리고 굴려 떨구어 냈을 것인가.파도가 지나가자 내 위장 속에서 깨진 조개껍질 절걱거린다. 절걱거리며 위장을 찢고, 드디어는 출혈이 시작된다. 내 위벽 천공은 잦은 과음 탓이 아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던 중년의 무게를저 파도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분노는 독이 될 뿐이라고 시퍼렇게 후려치며 모멸감에 떨었던 마음 파편을 쓸어가는 바다.경솔한 자들의 입방아가 허옇게 거품 물고 스러진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성을 쌓고, 나는 조개껍질을 줍다 본다. 저것은 무덤을 빠져나온 생..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1. 아라 홍련 아라 홍련만개한 붉은 연꽃이 미풍에 설렁거리고 있다. 설렁거리며 뭐라 뭐라 이야기한다. 내리쬐는 볕 속에서 어떤 이는 맑은 향기의 내력을 듣고, 또 어떤 이는 칠백 년 기다림이 부활하는 소리 듣는다. 후끈 밀려오는 물 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못가를 걷다 보면 설렁거리는 그 연꽃들 사이로 고려의 흥망성쇠가 보이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 말발굽 소리 출렁거린다.다시 귀 기울이면 발해 유민들의 목소리가 수런거리고,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는 소리,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하는 소리 걸어 나오고, 목화 벙글고 피는 소리 일렁거린다. 만개한 붉은 꽃잎 섬세한 그물맥으로 새겨진 칠백 년 시간의 길. 자기 몸을 깨야 싹이 트는 신생의 신화를 들려주고 있다. 함안의 고려 연못 터에서 솟아난 그 찬란한 소리를 나는 오늘 귀동냥 ..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0. 그녀의 서가(書架) 그녀의 서가(書架)세상에는 불타올라도 타지 않는서가(書架)가 있다, 타오르면서도 풀잎 하나태우지 않는 화염도 있다.나는 저 불꽃의 마음 읽으려고그렁거리는 차를 몰고 7시간이나 달려왔다.층 층 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채석강 단애한때는 사나운 짐승처럼 시퍼런 칼날튀어나오던 삶이었겠다.그럼에도 벼랑에만 매달려 사는가마우지새에게만은 둥지를 허락하는 여자였겠다.악다구니 쏟으면서, 그게 가난에게 내지르는주먹질이란 걸 알았던 것일까.가파를수록 정 많고 눈물 많은 달동네노을의 그 지독한 핏빛아 나는 기껏 몇 권의 습작노트를 불태우고한 세계를 잃은 듯 운 적이 있단 말인가.이제는 저렇게 불타올라도 용암처럼 들끓지 않는그녀의 삶, 삶의 문장으로 채워진 만 권의 책.오늘은 내가 가마우지새 되어그녀의 서가에 한 권 책으로 ..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9. 염소. 염소염소가 말뚝에 묶여뱅뱅 돌고 있다. 풀도 먹지 않고 뱅뱅 돌기만 하는 염소가울고 있다.우는 염소를 바람이 톡톡 쳐본다. 우는 염소를 햇볕이 톡톡 쳐본다. 새까맣게 우는 염소를 내가 톡톡 다독여본다.염소 주인은 외양간 서까래에 목매달고 죽은 사람.조문을 하고 국밥을 말아먹고 소피를 보고,우는 염소 앞에서 나는 돌 한 개를 주워 말뚝에 던져본다.말뚝은 놀라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고 꼼짝하지도 않으면서 염소 목줄을 후려 당긴다.자기 생의 말뚝을, 하도 화가 나서 앞도 뒤도 없이 원심력도 같이 뜯어 먹어버린 염소 주인.뿔로 공중을 들이박을 줄도 모르고세상 쪽으로 힘껏, 터질 때까지 팽팽히, 목줄 당겨볼 줄도 모르던 주인처럼 뱅뱅 제 자리 돌기만 하는 염소가울고 있다. 환한 공중에 동글동글 새까..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8. 육탁 육탁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육탁(肉鐸) 같다.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19. 비 맞는 무화과나무 비 맞는 무화과나무물 젖어 풀린 화장지처럼 무화과과육이 흘러내렸다, 나무 아래 서성이는내 어깨에 머리에 무화과 맨살이취객의 오물처럼 엉겨 붙었다. 열매란 둥글고 단단하게 자라서익는 것이라 여긴 내게비 맞는 무화과, 이런 삶도 있다고꽃 시절도 없이 살았던뚝뚝, 제 안에 고인 슬픔을빗물로 퍼내는 것 같다,웅덩이 같은 몸을 가진 무화과. 누구나 웅덩이 하나씩은가지고 살지, 상처를 우려내가뭄 든 마음을 적시기도 하지,그러나 너무 오래 고여 있으면안 되는 웅덩이,퍼 내지 못하면 결국출렁이지도 못하고 뭉크러지는영혼의 폐허가 되고 말지. 취객 같은 무화과나무 아래내 가슴속의 무화과 어디 갔나, 나는폐허처럼 서서 한참이나 비를 맞는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7. 푸른 것들의 조그마한 항구 푸른 것들의 조그마한 항구옥상에 상자 텃밭을 만들었다.밑거름을 넣고상추며 들깨 모종을 사다 심었다.일주일에 두세 번 물을 준 것 뿐인데 어느새잎이 손바닥만 해졌다.한 잎씩 채소를 거둬들이는데푸릇푸릇 콧노래가 실실 새 나왔다.부자가 이런 것이라면,삿된 생각 한 점 들지 않고그저 옥상에 동동 떠다니는 실없는 웃음을데려와 웃거름으로 얹어주는 것이행복이라는 재산을 불리는 일이라면나는 엉뚱한 곳을오래 기웃거린 것이다.아하, 웃음이라는 배의 조그마한 항구금은보화 싣고 출렁이는볼록한 종이가방에서푸른빛 환하게 흘러나오는 시간과싱긋싱긋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내 이마에 걸리는 초여름 건들바람이수확한 상추, 깻잎 쌈밥만큼 달달했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6. 대답이 없다 대답이 없다아버지, 하고 불렀다.대답이 없다.대문 여는 소리만 듣고도왔느냐, 하시더니마당에 서서 몇 번 불러도방문 열리지 않는다.나는 아직 이 적막을 믿지 못한다.방문을 열자 사방에서 밀려나오는아버지 냄새.어둑한 시간을 껴입은 적막이부재의 깊이를 보여줄 뿐,간소한 세간살이와 몇 벌의 외출복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불쑥 손을 내밀 것 같은 아버지,가는귀 어두워 들리지 않는 것일까.대답이 없다.실은 아버지도 큰 소리로 답하고 싶을 것이다.대답은 존재 증명의 방법,부르고 듣는 것이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가를이제 알았냐고, 부재의 깊이를 껴입은 적막이내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아버지, 하고 불렀다오냐, 아버지 냄새를 껴입은 침묵이환청처럼 사각의 방 모양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빈집.옷장에서, 낡은 장식장 서랍에..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5. 나는 벗긴다 나는 벗긴다퇴직하고 시골로 간 친구가한 보따리 농산물 놓고 갔다.뭔가 벗기는 일은가을 저녁의 별미 같은 것.티븨를 보는 대신늙은 호박 껍질을 벗기고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기고도라지 껍질까지 벗긴 뒤비닐봉지 뒤적거려 머윗대를 꺼낸다.손가락 까매지도록가을 저녁을 벗긴다.생활의 껍질을 벗긴다.나를 벗긴다.난장판 거실 어느 구석에서시골 친구가 흘리고 간풀벌레, 울다 그쳤다 다시 운다.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
14. 육탁시/4. 덜컹거리는 얼굴 덜컹거리는 얼굴머리 없는 사람이 있다.머리도 없이경주 남산에, 가부좌로, 천년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골짜기 오르는 사람들을 담담히 바라보는풍화된 몸만 가진 사람이 있다. 몇 번이나 목 잘리고도얼굴이 있어서 얼굴이 있어서 사진을 찍고다시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고그 이력서 품에 안고 아직도 잘릴 목 남았는지머리 없는 목 위에가만히 얼굴 얹어 확인해보는사람 닮은 돌사람, 얼굴 없어서 얼굴 없어서 표정 보이지 않아도 되는 돌사람,머리 없는 몸속에서 부처를 꺼낸돌사람을 뒤에 두고그 돌사람을 뒤에 두고파리한 얼굴 덜컹거리며 남산 골짜기 오르는 한낮. 목 위에 붙어 아직도 덜렁거리는 파리한 얼굴의 한낮. 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025.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