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
염소가 말뚝에 묶여
뱅뱅 돌고 있다. 풀도 먹지 않고 뱅뱅 돌기만 하는 염소가
울고 있다.
우는 염소를 바람이 톡톡 쳐본다. 우는 염소를 햇볕이 톡톡 쳐본다. 새까맣게 우는 염소를 내가 톡톡 다독여본다.
염소 주인은 외양간 서까래에 목매달고 죽은 사람.
조문을 하고 국밥을 말아먹고 소피를 보고,
우는 염소 앞에서 나는 돌 한 개를 주워 말뚝에 던져본다.
말뚝은 놀라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고 꼼짝하지도 않으면서 염소 목줄을 후려 당긴다.
자기 생의 말뚝을, 하도 화가 나서 앞도 뒤도 없이 원심력도 같이 뜯어 먹어버린 염소 주인.
뿔로 공중을 들이박을 줄도 모르고
세상 쪽으로 힘껏, 터질 때까지 팽팽히, 목줄 당겨볼 줄도 모르던 주인처럼 뱅뱅 제 자리 돌기만 하는 염소가
울고 있다. 환한 공중에 동글동글 새까만 울음을 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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