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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 명가

(사진 출처: 사진은 인터넷 이미지임)    한봉 명가名家 / 월정 강대실  향리에 한봉 명가 귀동 어르신이 계셨어요 열 두 가족이 여럿 집짐승과 한식구가 되어 적지 않은 농사에 틈틈이 벌을 쳤지요 울안 여기저기에 호박돌로 초석을 놓았어요 그 위에다 토막 낸 소나무 속을 파내서 만든 벌통을 층층이 올렸지요 모내기 철이면 분봉이 시작되고 대여섯 살 어린 자식들은 벌 지킴이가 되지요 형은 어미 벌통에서 떼 지어 나온 벌떼가 어느 쪽으로 날아가나 뒤쫓고 아래는 부리나케 들로 달려나가 아버지께 이르지요 집 주위 그리 높지 않은 감나무 가지에 내려앉으면 비행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지요 어르신은 내내 ‘들이들이’를 외며 쑥대 묶음으로 꿀 바른 멍덕에 쓸어 담았어요 그리고 빈 벌통 위에 얹고는 출입구 하나를 남기고 진..

1. 오늘의 시 2023.12.21

상골

상골*(上谷)  내 탯줄 묻은 상골은 우렁이처럼 생겼어요 사방 겹겹이산이 둘러쌌지요 산읍에서 북으로 마중 나온 오장산이랑좋이 이십 리는 팍팍한 자갈길 걸어야 하지요 게딱지 같은 초가가 왕대밭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 정겹게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상골인가 봐요 동구 밖에 산이 혀를 날름거리는 손바닥만 한 논배미는천둥지기여요 층층이 얹혀 있어요 동네 사람들 허기 다못 채워 주지만 곡간이고 명줄 이지요 배가 고프면 맨맛한 산자드락만 파 일구었는지 뺑 둘러 밭이에요 논 없는사람은 많아도 밭 없는 사람 드물지요 상상 골짝 마루에서 동네 초입으로 추월산 자락이 계곡에 발 담그고 살아요 당산 마당에서는 이마를 바짝 디밀고요 아침엔 해를 낳고 봄날이면 참꽃 따먹고 병정놀이하라며 아그들 꼬드겨요 반짝대는 바위가 ..

1. 오늘의 시 2023.12.20

고독한 산행

고독한 산행/ 월정 강대실 지세 험하며 높고 가파른 산 묵은 외길에 곰삭은 정적 겹겹하고 산지니 날아가 주인 없는 빈산 바람에 스치인 가랑잎 처연한 울음소리 혼자 든 산행 산그림자가 막아서 쭈뼛쭈뼛 머리끝이 솟구치는데 날다람쥐 한 마리 총총 앞장서 가고 따라나선 골바람 땀 훔쳐 주면 어느새 발 맞은 도반들 순례의 길 어둑발 진 노루목에 휴!, 올라서자 마중 나온 아내 같은 둥실한 달 찬찬히 살펴 하산하자며 뒤따른다.

1. 오늘의 시 2023.12.19

은행잎 연가

은행잎 연가/ 월정 강대실 누구를 찾아서 여길 오셨나요아리따운 꿈에 부푼 어느 문학소녀손에 든 시집 책갈피 이어야 하는데스산한 포도 위를 방황하시나요낯선 바람 흐드러진 너스레에 빠져허둥지둥 뒤쫓다낮고 젖은 데에 흩날리는 처량함오가는 발길에 그지없이 짓밟혀 끝내 해어지고야 만 노오란 가슴밤이 이슥하면 하늘가 별 하나 만나날밤을 지새워 샛노란 밀어 나누다 어느새 온 몸을 적시는 차디찬 이슬길섶에 갈한 메아리로 스러지시나요. 초2-857

1. 오늘의 시 2023.12.18

하늘길

하늘길/ 월정 강대실 공원 초입 외따로이 선 모과나무 할 일 없이 그냥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고 사는 줄 알았습니다. 철이 되면 늘 그랬듯 잎과 꽃 피우고 열매 매다는 줄로 알았습니다. 지명知命 고갯마루 턱 훌쩍 올라앉아 종용히 뒤를 돌아보다 알았습니다. 삼시선三時禪으로 빛과 어둠 비와 바람 견디며 잎도 꽃도 열매도 맺고 동안거 하안거 부단히 마음공부 하여 눈에 안 띄게 조금씩 조금씩 오늘도 하늘길 오르고 있었습니다.

1. 오늘의 시 2023.12.18

눈 내리는 창가에서

눈 내리는 창가에서 / 월정 강 대 실 가벼워지고 싶다 가벼워야 내려앉을 수 있다면 나도 저 희뜩거리는 눈처럼 가볍디가벼워져 눈꽃으로 내려앉고 싶다 보고 듣고 시를 쓰고 하루하루가 수없는 두레박질, 매양 비워내기 연습이련만 한 눈금도 기울지 않는 가련한 세월 키 낮추고 몸집 줄이고 겹겹이 둘러쓴 인두겁 벗어야겠다 심보를 씻고 양심 헹구고, 욕심으로 뒤틀리는 창자 말끔히 비워내야겠다 허공을 바람의 무게로 날아 시려운 가슴에 꽃이 되고 싶다 쓰레기 같은 세상 순백으로 칠하고 싶다 순수한 내 빛깔로 평천하하다가 어느 순간 소리소문도 없이 스러져 아래로 아래로 스며들고 싶다.

1. 오늘의 시 2023.12.16

밤골 풍경

밤골 풍경✽        어둑살 땅뺏기 하는 당산 마당에 드니까치가 머리오리가 세었다며 통성한다맨손으로 호랑이 때려눕힌 이야기도 좋고모여 앉아 이약이약하다 밥도 함께 먹고회당이 내 집 안방 같아서 좋다. 정월 대보름 천 원씩 내는 인구전당산신께 풍요와 평안을 빌며 제 지낸다메 주 과 포 편 채 정갈한 제물에울리는 매구굿 소리 축수하는 부민들파제 후 훈훈한 동네잔치가 좋다. 첩약보다 운동이 더 좋은 줄을 알고틈내어 삼삼오오 동네 윗길 수차처럼 돈다된깔크막 넘어서 약수터에 다녀온 이들앞 강 자전거길 애마로 달리는 사람들섭슬려 운동하는 습관이 좋다. 고희의 마루턱에 선 토박이 친구들목이 칼칼하면 아무나 가만히 손짓한다주막집에 앉아 소주 막걸리 몇 병 앞에 놓고애먼 세상 씹다가도, 남은 세월 얼마인데함께 헝클어..

1. 오늘의 시 2023.12.15

삶의 송가

삶의 송가/ 월정 강대실                                                                바람한테 뺨 맞고 버얼개진 붉나무무서리 둘러쓰더니 창창해진 땅솔잎도그냥 스쳐보지 마라 우리가 생각 못할 큰 기쁨에 사나니마른 창공을 찢어대는 천둥 번개빠알간 맹감에 입맛이 당긴 산비둘기도좋아서 한가락 아니리를 하나니우리가 다 못 아는 설움 있나니보리밭을 질러 산모롱이로 줄행랑치는 고라니 주야장천 구슬프게 울어 예는 개여울도가끔은 달 보고 설움에 겨운 눈물 흘리나니 삶은 늘 기쁨이고 슬픔이라어쩌다가는 눈물이 더 아름다우나하늘에 닿도록 기껍게 뛰며 살아야 하리.   초2-851

1. 오늘의 시 2023.12.11

화분을 들이며

화분을 들이며/ 월정 강 대 실  천더기로 버려진 너 측은지심에 귀갓길 품어 왔다 초초히 진데 마른데 골라 주며 때 맞춰 정을 챙겨 부었다 천연스레 낯설음 딛고 뜨락 한가득히 미소 날리더니 스산한 바람결 속 달마중 하다 무서리 먹고 숙연해진 너 저어해하지만 안으로 맞아 삼동의 긴 강 함께 넘고자 함은 좋아한다는 것은 끝내는 목숨까지도 책임 져야 함을믿기 때문이란다.제2시집 81

1. 오늘의 시 2023.12.10

버스 관광

버스 관광/월정 강대실 손꼽은 디데이 전세버스에 실렸다 고삐 풀린 나들이 고속도로 달린다 줄달은 가로등 쏟아지는 전조등아 넘보지 말아라 차창 속의 군무를 부어라 넘치게 마셔라 취하도록 천근만근 일상은 저만치 물렀거라 음악 소리 높여라 하늘은 무너져라 비비고 흔들고 뛰어라 땅이 꺼지게 숨 막힌 응어리 녹아내린다 땀으로 희망찬 내일이 용솟는다 새힘으로 바람도 질주하는 귀가길 고속도로 시간이 짧다 길이 짧다 광란의 무도장.

1. 오늘의 시 2023.12.08

그림자를 지우며-매화나무

그림자를 지우며- 매화나무 월정 강대실 다 떠나가고 적요에 잠긴 들판 부르튼 손발 구동을 건너는 매화나무 못 잊을 우리 부모님 그림자이리 어깨 흔들어 깨워 보지만 끝내, 침묵의 빗장 열리지 않고 죄목도 정죄도 없이 기계톱 굉음에 동강나 툭! 툭! 땅 위에 떨어져 눕는 반백 년 그루터기에 남은 나이테 평생 호미등처럼 허리 한 번 못 펴신 부모님 안돌잇길 한이 담긴 타임캡슐 낙과落果 같은 순명 곁에 움츠리고 앉자 생의 내력 소스라쳐 튀어나오고 살붙이를 보내듯 목이 메이는데 빈 논배미 건너 시르죽은 해의 눈시울 떨어진 동백꽃 가슴보다 섧고 솔밭 발밤발밤 건너오는 절집 독경소리 내 화끈거리는 두 귓불.

1. 오늘의 시 2023.12.07

다시 길을 찾다

다시 길을 찾다/월정 강대실  어느덧, 기운 해 서창 너머로 설핏한데 여기저기 솔깃한 눈맛 귀맛만 찾아 기웃대다 아까운 계절도 곁도 몽땅 놓쳐 버리고주저주저하다 딱지 동무 찾은 친구뒷산 솔폭 밑에 숨어 내뺀 세월 뒤쫓다 목을 꺾고 울며 돌로 발등 찧어 봤는가! 불고추 씹어 삼키는 얼얼한 고통 맛보았다면줄밤 새워서라도 무릎을 맞대자꾸나세상사 모두 다 마음먹기 달렸다고 맞잡은 다짐 마음의 돌판에 아로새겨네발로 기고 물소의 뿔로 산과 바다를 넘어 다시금 뿌리 깊은 사과나무 심자 안락의 허기 일면 눈과 귀 틀어막고숨이 턱에 차올라 쓰러지면 오뚝이 되어굽이치는 강물 제아무리 시려도끝은 노을빛보다 더 따스운 마음이자.초2-792/2020. 8. 25

1. 오늘의 시 2023.12.01

산행 일

산행 일/ 월정 강대실 숨 고르고 싶은데 날아든 안내장, 외할머니 집 가듯 친정집 가듯 방맹이질 치는 가슴 산행 날 손꼽는다 무게가 될 것은 눈곱까지 내려놓고 차에 오르면, 세월에 헐거워졌지만 태산이라도 오를 수 있다는 듯 한 차 가득한 주체 못할 욕망들 도란도란 휴식 같은 풍광 내다보며 흥타령에 궁댕이 몇 번 틀어 앉으면 산문 불끈 솟아오르는 한창때의 기운 송골송골 땀방울이 밟아 오른 산정 멀리 바라보이는 아름다움에 취해 꿀맛 같은 도시락 잔치 벌이고 나면 불꽃 진 생의 아쉬움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서산을 물들이는 금빛 낙조 바람의 나래 잡고 가뿐히 내려와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권하는 하산주 가슴속 시궁창에 떠오르는 보름달 생기 돋은 산객들 귀로가 가볍다.

1. 오늘의 시 2023.11.27

고독한 산행

고독한 산행/ 월정 강대실 지세 험한데다 높고 가파른 산묵은 외길에 곰삭은 정적 겹겹하고 산지니 날아가 주인 없는 빈산바람에 스치인 가랑잎 처연한 울음소리 혼자 든 산행 산그림자가 막아서쭈뼛쭈뼛 머리끝이 솟구치는데날다람쥐 한 마리 총총 앞장서 가고따라나선 골바람 땀 훔쳐 주면 어느새 발 맞은 도반들 순례의 길어둑발 진 노루목에 휴!, 올라서자마중 나온 아내같이 둥실한 달 찬찬히 살펴 가자며 뒤따른다.

1. 오늘의 시 2023.11.24

국수4.3.2.1

국수(4차 수정 본) 담양 땅 찾아갈 때는 관방제 초입 초사막 국수거리 들러 멸치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기다라니 늘어선 느티나무 가지 아래 머리를 맞대어 내놓인 평상 손님들 틈서리 비집고 올라서 한쪽 빈 상머리에 자리 잡고 앉으면 국수 한 그릇 꼬옥 먹고 잡더라만, 문 앞에까지 갔다가는 그냥 ...... 힘이 팽겨서 자갈길 간신히 왔다 시며 허리춤에 묻어 온 박하사탕 가댁질치다 우르르 달려드는 자식들 입 속에 물리시던 어머니 백지장같이 창백한 얼굴 흔흔한 미소 뒤에 갈앉힌 허기 원추리 새순처럼 뾰조롬 솟아올라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배고픔 대신 채우고 간다. 국수(3차 수정 본) 담양 땅 찾아갈 때는 관방제 초입 초사막 국수거리 들러 멸치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가지런한 평상 손..

1. 오늘의 시 2023.11.22

째마리

째마리*/ 월정 강대실  심심풀이로 그지없는 땅콩,동삼을 가보처럼 깊이 갈무리했다가토방 봄볕과 마주앉아 탱탱한 걸로 골랐지요조심스레 땅의 궁실 열어 다져 넣고는 약속처럼 연초록 얼굴 기다렸으나더러는 곯고, 서생원 웬 떡이냐 훔쳐갔지요장에서 애기모 모셔다 두벌 심고는땡볕 숨 고르는 틈새에 정성으로 돌보며알뜰히 수확의 기쁨 키웠지요웬걸, 들짐승이 다 뒤져 먹고 난 처진가리뿐하천해도 흙의 고결한 마음 감지덕지해  샅샅이 이삭 주워 모았지요  우리 부모님 허리가 휘어지게 농사지어좋은 것만 골라 따로 두었다가, 지성으로기제사며 식솔 생일상 차린 모습 선했지요 애잔한 농심, 우선 씨오쟁이 채우고 나니남은 건 손자들 입에 물리고 싶지 않은, 오십년 째마리 같은 생 박차고    코숭이로 기어든 내 차지, 째마리뿐이지요..

1. 오늘의 시 2023.11.22

소박한 행복

소박한 행복/월정 강대실 귀가 순해지고서야 어렵사리 아귀지옥에서 발을 빼고 훌쩍 키를 높인 청대 연신 구름 비질하는 무욕의 하늘 아래 묵은 짐 풀었지요 詩 향에 生을 대끼며, 틈틈이 햇귀 앞서 밭에 나가 흙내 마시며 풀과 가뭄, 벌레 새 짐승과 씨름하여 몸에 좋은 먹거리 가꾸지요 자라고 열리고 밑이 든 대로 거두어 자랑스레 형제 자식들 챙기고 정분 깊은 이웃이랑 나누지요 윗목 한구석 콩이며 참깨 자루 오막조막 널린 잡곡 보퉁이 바라보면 추수한 나락 가마니 차곡차곡 쟁여진 아버지 가을 토방같이 부자 아니어도 든든해지는 마음 주머니 소박한 행복에 겨워 살지요 (4-41.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2023.11.22

관방제림

관방제림* / 월정 강대실 푸조나무 팽나무 음나무 고향 집 지키는 허리 굽은 노모처럼 시름겹게 눌러살고 계셨네 죽장에 깨금발로 들머리 내다보며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긴긴 기다림으로 버텨 사셨네 해가 설핏한데도 한눈에 얼른 날 알아보고는 연신 오색 꽃잎 날리시며 이제 가면 다시 또 천년만년 학수고대하겠노라며 눈시울 붉히셨네. * 관방제림: 천연기념물 제366호.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담양천의 북쪽 언덕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인공림. 각종의 노거목이 줄지어 서 있으며 녹음과 아름다운 경치 바람을 막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

1. 오늘의 시 202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