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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그네//박목월

내가 읽은 좋은 시14   나그네/박목월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南道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작자는 이 시의 주제적 모티프(motif)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 제목이 다 주제적 모티프가 되는 ‘나그네’는 바람과 함께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떠도는, 무엇인가 송두리째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허전해진 모습을 ‘나그네’에서 상기할 수가 있다.제1연의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은 작자가 태어나서 자란 농촌 풍경이나, 우리 모두가 보아온 보편화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을 찾아들거나 떠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은 ‘구름에 달가듯이’ 간다. 이 때 ‘달’의 발걸음은..

13. 북치는 소년//김종삼

내가 읽은 좋은 시13   북치는 소년/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 세 개의 연이 모두 ‘∼처럼’으로 끝났다. 시 본문만으로는 내용이 애매하다. 팁이 있기는 하다. 제목 ‘북치는 소년’을 맨 끝으로 가져오면 시가 새벽빛처럼 밝아온다. 그렇더라도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치는 소년’이라니…. 이 말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그 자체로 완성이다. 어쭙잖은 설명으로 그 공간에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시에서 ‘무의미’를 이야기한 사람은 김춘수(1922∼2004) 시인이다. 사물을 보는 고정관념을 해체시키고 사물 그 자체가 지닌 ‘순수’를 보려고 했..

1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내가 읽은 좋은 시1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하고눈은 푹푹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눈이 푹푹 쌓이는 밤나타샤와 나는 흰당나귀 를 타고 산골로가자출출이 우는 깊은산골로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리없다아니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와 얘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시는 제목에서부터 이국 정취를 풍기고 있어서 백석의 시로서는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기행체험의 시에 해..

11.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내가 읽은 좋은 시11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저것 봐, 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특히 이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그가 지닌 삶에의 애잔한 슬픔, 그리고 정한(情恨)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질녘 언덕에 올라앉아 저녁노을에 물드는 강을 바라보면, 마치 그 강은 노을..

10. 향수//정지용

내가 읽은 좋은 시10   향수/정지용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빼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9. 풀//김수영

내가 읽은 좋은 시9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金洙暎)이 지은 시. 작자의 말기를 대표하는 시작품으로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것이다. 3연 18행으로 된 이 작품은 ‘풀’과 ‘바람’이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풀’과 ‘바람’의 반복적인 구조와 효음(效音)을 제외하고 문맥상으로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다. 단순히 ‘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라는 ..

8. 진달래꽃//김소월

내가 읽은 좋은 시8   진달래꽃/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藥山)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이 지은 시.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에 실려 있다. 총 4연, 각 연 3행의 짧은 서정시로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님의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담뿍 뿌리겠다는 것이 그 간추린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 떠나가는 님은 다시 돌아올 기약조차 없다. 오직 자신의 마음속으로만 그런 기대감을 갖고 보내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사람의 사무친 정(情)과 한(恨), 동양적인 체념과 운명관에서 빚어내는 아름답고 처..

7. 동천//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7 동천/서정주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출처] 동천 _ 서정주 (참나무공화국) | 작성자 참나무    이 시기는 작가의 초기 시에 보이던 생명력에 대한 갈구나 병적인 징후가 『귀촉도(歸蜀途)』와 『신라초(新羅抄)』의 단계를 거침으로써 어느 정도 사라지고, 동양적 체념과 안식의 자세를 취하며 마음의 평정을 도모하던 때이다. 서정주 시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사상적 원숙미와 시적 구성력이 가장 고조된 시기라 할 수 있다.물론, 『동천』에 실린 작품들이 불교의 인연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신라초』의 연장선상에 놓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불교적 설화조의..

6. 님의 침묵//한용운

내가 읽은 좋은 시6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1]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

어떤 친구

어떤 친구 월정 강대실백년가약이 무슨 애들 소꿉장난인가!어떤 친구가 출장길에 차가 미끄럼을 타오랜 병상 신세를 지다 네발로 나와결국엔, 돈 몇 푼에 늙은 도짓소 되었다그간 생활 전선에 나섰던 부인알바에 보험에 방물장사로 돌다받을 건 간데없고 사방에 빚만 늘렸다친구,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둘 수 없다고돈뭉치 싸 들고 이것저것 기웃대다덜컥 덫에 걸려 손 털고야 말았다한쪽은 몇 십 년을 통째로 쥐어 준 봉투어디다 빼돌렸냐 볶아대고다른 쪽은 여우한테 홀려 쪽박 찼다고욕악담에 너니 내니 덤터기 씌우다기어이, 큰 사달이 났다집이며 묻어 둔 땅까지 홀랑 넘어가고끝내는 도장 찍고 각기 돌아서고 말았다반쪽입네 하나네 하며 죽고 못 살다가도등 돌리면 부부간은 깨어진 그릇 ..

8. 동영상 2024.05.16

가을의 예수

가을의 애수 / 월정 강대실 가을은 아파하지 말자무심결에도, 돌아앉아 회한의 탄식일랑 말자수없이 마음을 다잡는다.들풀 우부룩한 풀섶에 묻혀서도쑥 내음 그윽이 풍기는 곰삭아 누운 쑥대처럼이내 계절도 아무 향이든 하나쯤은 품기 바랐지바람은 잘게 깨어진 거울 조각 여직 한 번 가슴을 뜨겁게 불타게 한 적 없는열매보다는 가지만 우거진 사과나무 같은가을의 길목 갈꽃 흰 깃발 나부끼는 강둑에 서자내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공허함정열을 잃은 해 허겁지겁 종심의 강 건너는뒤 돌아보다 흘깃 눈길 하늘에 이르자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부끄러움갈한 심신을 얼러 마음의 고삐 바투 잡는다.

8. 동영상 2024.05.16

5. 낙화//이형기

내가 읽은 좋은 시5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 시는 꽃이 떨어지는 현상을 인생의 문제와 연결한 작품입니다. 꽃이 떨어지는 현상 그 자체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슬픈 일이지요. 그러나 꽃이 떨어지고 나야 여름에 녹음이 무성해지고 가을에 열매도 맺히기 때문에, 낙화는 더 큰 결실을 위해 요구되는 슬프지만 의..

4. 자화상//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4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병든 수캐마..

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백 석

내가 읽은 좋은 시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백 석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바로 날도 저물어서,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2. 서시//윤동주

내가 읽은 좋은 시2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거러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바람' 등의 자연물을 통해 지은이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별은 천상세계에 속하고 바람은 지상세계에 있는데, 시 마지막에 가서 별이 바람에 스치는 것은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 '바람'은 시인의 불안과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면, 시국에 대한 불안, 가정에 대한 걱정, 하숙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 등으로 무척 괴로워했다.'한 점 부끄럼 없기를 ~ 괴로워했다'이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의 결벽성을 짐작할 ..

1. 꽃// 김춘수

내가 읽은 좋은 시 1.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952년에 발표되고 이듬해에 시집 『꽃의 소묘』에 수록된 김춘수의 시 작품.김춘수의 초기세계를 대표한다. 이 시가 강조하는 것은 ‘꽃’이라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이다. 시속의 화자가 말하는 대상은 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꽃은 감각적 실체가 아니라 관념, 말하자면 개념으로서의 꽃이다. 따라서 이 시가 노리는 것은..

이순

이순耳順 / 월정 강대실바람길 따라가는 생生멀고 먼 길 득달같이 달려 지천명知天命 고개 넘고 나니 이제, 귀나 순해지라 하네한 마름이 차도록세상 흥야항야 살아왔나니, 때로는발등 짓찧고 싶은 회한도가슴 저미는 슬픔도보일 수 없는 눈물 속에 묻어두고얼풋이 보이는 남은 길 서둘지 말고 쉬엄쉬엄 가라하네찌륵소도 불여우도 마음 편히 들고 나게묵정밭 된 마음, 다시 일구며무량세계無量世界 가꾸라 하네.(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1. 오늘의 시 2024.05.15

어떤 친구

어떤 친구/월정 강대실  백년가약이 무슨 애들 소꿉장난인가!어떤 친구가 출장길에 차가 미끄럼을 타오랜 병상 신세를 지다 네발로 나와결국엔, 돈 몇 푼에 늙은 도짓소 되었다그간 생활 전선에 나섰던 부인알바에 보험에 방물장사로 돌다받을 건 간데없고 사방에 빚만 늘렸다친구,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둘 수 없다고돈뭉치 싸 들고 이것저것 기웃대다덜컥 덫에 걸려 손 털고야 말았다한쪽은 몇 십 년을 통째로 쥐어 준 봉투어디다 빼돌렸냐 볶아대고다른 쪽은 여우한테 홀려 쪽박 찼다고욕악담에 너니 내니 덤터기 씌우다기어이, 큰 사달이 났다집이며 묻어 둔 땅까지 홀랑 넘어가고끝내는 도장 찍고 각기 돌아서고 말았다반쪽입네 하나네 하며 죽고 못 살다가도등 돌리면 부부간은 깨어진 그릇 되는가질그릇 깨고 놋그릇 장만 못할진대. (3-..

1. 오늘의 시 2024.05.13

하늘 맑은 봄날

하늘 맑은 봄날/ 월정 강대실                                                                                        눈보라 속 가슴 열더니마디마디 주렁주렁 청매실 매단매화나무 옆에 가기낯부끄러워라풀숲에서 새순 돋더니가지가지 다닥다닥 감꽃 피운감나무 그늘 밑 들기낯 뜨거워라보고 싶은 우리 님 서둘러 가시고는 소식 없는데올해도 한가득 차리는 맞이 상이내 가슴 아려라. 초2-887 하늘 맑은 봄날

1. 오늘의 시 2024.05.12

천생 농군

천생 농군/ 월정 강대실 골짜기 농사 지어서는 고라니 토끼 같은 짐승들 배만 불리고 평생 허리끈 졸라매야 한다고 밥그릇께나 나오는 알짜배기 땅 다 팔아 넘기시더니 낯도 물도 설은 아랫녘 물길 좋고 토심 깊은 데다 대토하고 신새벽 쟁기질 소 끌고 다니며 후한 품삯에 외촌 품꾼들 사서 얼기설기 외간 농사 지으시더니 하늘바라기 어찌 못해 산골짜기 비알밭 어찌 못해 산 대밭 감나무 벌통 짐승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어찌할 방도 없어 살아생전 상골 땅 못 벗어나더니 농골 산밭에 가족 공원 지어 들고서는 온 동네 논밭 뙈기 다 내다보고 계시는 천생 농군 우리 부모님. 초2-886 2024. 05. 09.

1. 오늘의 시 2024.05.09

그림자

그림자/ 월정 강대실  우리 부모님 그림자로 남겨진외씨 같은 흔적들어느 결에 하나 둘세월 강에 쓸려 가고그리움 여울여울 타오르는데 피붙이 하나링거 줄에 매달아 놓고 돌아와벽을 등지고 앉은 형제들서로들 눈동자 속에 얼굴을 새기다소주 한 잔 돌린다 맏형 수심에 찬 표정에근엄한 아버지 계시다누이동생 파리한 얼굴 속에어머니 여실히 살아 계신다. 초2-8742007. 02. 03.

1. 오늘의 시 2024.05.05

나를 만나다

나를 만나다 /월정 강대실 이제는 가차 없이 세월의 누더기 벗어던지고 싶다. 뒤죽박죽된 서실 정리하다가 느지막이 아침 때운다. 차 한 잔 챙겨 들고 우두망찰하다 지나온 길 본다. 예제없이 널린 삶의 편린들 인연의 얼레를 감고 푼 하많은 사람들…… 돌연 탈박 둘러쓴 나를 만난다. 꾸물대다 세월이 벼린 바람 맞고 에움길 돌다 간당간당 회한의 강 건너는 얼뜨기, 정수리에 성근 땀내 밴 머리칼 점점 눈멀고 귀먹더니 이제, 삐뚤어진 주둥이 헛나발 불며 거들먹거리는 (제3시집 숲 속을 거닐다)

1. 오늘의 시 2024.05.05

동네 경사가 났다

동네 경사가 났다/ 월정 강대실넷째야, 동네 경사가 났다 아래 고샅 상 큰댁 네 순기 형순하디순하고 일 잘 하는 씨어미산고를 앞산이 다 쩌렁쩌렁 따라 울더니순산했는갑다 아까참에 네 배 짼디 잠잠해졌다 인제는  야야!, 낼 아침에는 식전에 갈초랑 큰 소쿠리에다 속겨 꼭꼭 눌러 담아   한행부 살째기 짊어다 주어라 먹고 새끼 젖 잘 물리고 얼른 힘 타 농골 수렁배미 애갈이해야 쓴다 해토하면그러고, 단단히 일러두어라 이참에는 송아치 암수 간에 젖 떨어지면 기스락 밑에라도 꼭 판도치 숙부네 집에소고삐 매어 줄 생각 하라고 소 뜯기던 언덕 너머 금살 소 울음소리 망각의 강 질러오는 아버지 말씀. 초2-798

1. 오늘의 시 2024.05.05

아픈 회상

아픈 회상回想/ 월정 강대실                  밤중에 돌담이 와르르 무너지더니서녘 노을빛 곱게 물든 장동 할매어지럽다며 아랫목에 돌아눕더만산들바람 자듯이 가셨답니다가뭄에 앞도랑이 자작자작 마르더니  집 떠나 고생을 사서 한 아래뜸 형이슬길에 실족하여 된숨 내쉬더만땡감이 떨어지듯이 가셨답니다왕대밭에 대꽃 피고 시나브로 죽더니축산에 원대한 꿈을 건 안고샅 양반자꾸만 빈 우사 망연히 바라보더만하늘이 내려앉듯이 가셨답니다샘터길 감나무가 우지직 부러지더니평생 밭고랑에 엎디어 산 기동 엄니온 삭신이 쑥쑥 아려서 고생하더만집스랑 끝 낮달 이울듯이 가셨답니다. 초2-8852024.  5.  9.

1. 오늘의 시 2024.05.05

큰누님

큰누님/ 월정 강대실   도배지 무늬처럼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문갑 속 모신 족보 배견하다 옆의 아버지 제적등본 찬찬히 살핀다 일면식도 없이 한 뼘 흰 집에 갇혀서도세월의 깊이보다 더 애틋이  여섯 살 위 큰누님 내 마음 틀어쥔다예쁜 딸 봤다고, 세간 밑천이라고얼마나 기분이 훨훨 날 것 같았을까 아버지아뿔싸!, 이 무슨 우환덩어리 인가!갓 세 살 뾰조롬한 떡잎젖배 곯았을까? 돌림병 맞았을까?전생의 업 다 못 벗어 세상이 버렸을까? 천국의 두 분께는 입도 뻥긋 못하고맏형 한 점 기억 없다 하고...어디메 꽃밭에 백화 만발해 옹그리고 있는지가슴에 묻고 가신 부모님 전에‘어머님 아버님!, 불효자 양순이옵니다’진작에 찾아 납작 엎드려 용서 빌고왕부모님이랑 서둘러 떠난 두 형들일곱 식구 오붓이 사시나 몰라 지금..

1. 오늘의 시 2024.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