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161

말바우시장

말바우시장/월정 강대실                                  왠지 마음 헛헛하고일손 무거워지는 날은저린 그리움 새떼같이 몰려와말바우 저자 거리로 나선다생의 구렁에서 허덕여 본 사람은 안다남모른 눈물 흘린 사람은 보인다현란한 네온의 길섶길나무 성긴 그림자 밑에그믐달처럼 졸고 있는 향리한생, 꿈 한 동이 땀 한 섬휜 허리 짊어지고 버티다검은 비닐 봉다리 봉다리마다한恨 한 저분 더 얹어 주는 어머니.

1. 오늘의 시 2024.05.22

망초꽃

망초꽃/ 월정 강대실 청청하늘에서 날벼락이라도 내리치던가요 한 돌기 연륜 채 감지 못한 서른아홉 젊으나젊은 나이에 고샅길 뒹구는 땡감처럼 꼭두새벽에 뚝 떨어지더니 두 눈 다 못 감고 황망히 망초꽃 흐드러진 길로 떠난 형이여! 못 잊어셨나요, 남긴 떡잎 둘 해마다 그맘때 두견이 울어대면 풀빛 짙은 들길 하얗게 서성이다 무덤가에 발돋움하고 서서 동구 밖 먼 신작로 바라 보다 곰삭은 그리움에 스러지는 서녘 놀 붉게 타오를수록 마음속 서러움 우러나는 꽃.

1. 오늘의 시 2024.05.22

신경림 시인 별세

고 신경림 시인. 경향신문 자료사진 로 197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고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신경림 시인이 22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8세.암으로 투병하던 신 시인은 이날 오전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의대 재학 시절부터 신 시인과 연을 맺어온 서홍관 국립암센터장(시인)이 마지막까지 고인의 곁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서 센터장은 “7년 전 대장암이 발병하셨는데, 치료를 잘 받으셔서 많이 좋아지셨었다. 하루 5000보를 걸으실만큼 정상적인 활동을 하셨는데 재발이 되면서 호스피스 병동에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선생께서 워낙 깔끔하신 분이라서 남들에게 폐가 될까봐 아픈 걸 알리는 걸 굉장히 꺼려하셨다. 병문안 오고 싶어하는 분들은 많았지만 선생께서 절대 알리..

13. 문학 산책 2024.05.22

48. 남해 금산///이성복

내가 읽은 좋은 시48          남해 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작자의 두 번째 시집인 『남해금산』은 서사구조를 가진 시집으로, 치욕스런 삶을 사는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집에서 작자가 말하는 치욕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다음의 시를 보면 그 불분명한 치욕의 정황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안개가 내렸다 이곳에 입에 담지 못할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하는 대신 무릎으로 기어 먼 길을 갔다 (..

47. 죽편1//서정춘

내가 읽은 좋은 시47          죽편1//서정춘     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죽편·1 -여행’ 서정춘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누구든 이 푸른 기차를 타기만 하면 멀다. 갓 태어난 아기든, 스무 살 청년이든, 오십 줄 중년이든, 구순 노인이든, 무조건 멀다. 저마다 타고 있는 칸이 다르고, 출발한 시각이 다르지만, 이 기차를 타는 순간 모든 승객은 도착할 역이 아직 멀다. 칸칸마다 깊은 밤은 좀처럼 새지 않는다. 그러니 누구라도 꿈꾸는 데 조급할 이유가 없다. 대나무는 백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자기 삶의 정점에서 죽는다. 대나무에게 죽음은 추락이 아니라 상승이다. 반칠환 [시인]

46.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내가 읽은 좋은 시46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아아, 아직 처녀인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그러나 지금 우리는불로 만나려 한다.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저 불 지난 뒤에흐르는 물로 만나자.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올 때는 인적 그친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1987년 문학사상사에서 간행한 시집 『우리가 물이 되어』의 표제작이다. 강은교의 시세계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허무주의적 경향은 1980..

45. 풀//김종해

내가 읽은 좋은 시45               풀/김종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풀이 되어 엎드렸다풀이 되니까하늘은 하늘대로바람은 바람대로햇살은 햇살대로내 몸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시를 쓰면서 그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하며, 시인이 이 「풀」과의 거리를 어떻게 의식하며 자신의 ‘풀’을 노래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수영의 ‘풀’은 민중적인, 서민적인 전통적인 의미를 내장하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더 바람과 풀의 존재론적인 호응과 존재론적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풀’이라고 할 「풀 앞에 서서」에서 화자는 자기 자신이, ‘나’ 자신이 ‘풀’에 지나지 않음을 ..

44. 농무//신경림

내가 읽은 좋은 시44         농무/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철없이 킬킬대는구나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신경림 시인은 이러한 즐거운 소재를 시상으로 삼아 ..

43. 눈물//김현승

내가 읽은 좋은 시43          눈물/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나는 내 가슴의 상처를 믿음으로 달래고, 그러한 심정으로 썼다. ‘인간이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오직 썩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 앞에서 흘리는 눈물뿐일 것이다.’ 라는 것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눈물을 좋아하는 나의 타고난 기질에도 잘 맞는다.󰡕이 시는 ..

42. 귀천/천상병

내가 읽은 좋은 시42        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당시 천상병 시인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과 정신이 많이 상했다. 불임이 되고 이가 많이 빠져 영양실조에 걸리는 등 신체적 고통을 겪었으며, 정신 착란 등으로 괴로워 하여 음주 없이는 잠도 못 이루는 지경이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쓴 시가 바로 '귀천'이었다.그 때문에 언뜻 천상병 시인이 죽기 직전 유언 비슷하게 남긴 작품으로 오해 받기도 하는 시지만,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한 뒤 23년이 지난 1993년에 사망..

41. 화사//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41 화사/서정주 사향(麝香) 박하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촛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

40. 귀촉도//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40 귀촉도/서정주 눈물 아롱아롱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서정주는 1933년부터 시를 발표하였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벌였다. ‘시인부락’ 동인지에서 여러 작품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그의 두 번째 시집 ‘귀촉도’는 ..

39. 푸르른 날//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39 푸르른 날/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서정주(1915~2000) '푸르른 날' 전문가을이 오고 있는 9월이다. 맑고 깨끗한 고국의 하늘은 너무 눈이 부셔서, 외국에 오래 나가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눈물겨운 계절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나는 '저기 저기 저'하는 말도 안 되는 말, 가을 풍경에 얼이 빠진 시인의 당황이 그렇게도 좋다. 미당의 고향마을의 발음으로 다시 한번 외워 본다. 과연 그는 시인이다.[출처][서정주] 푸르른 날|..

38. 눈//김수영

내가 읽은 좋은 시38 눈/김수영 눈을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 김수영은 ‘눈’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세 편의 시를 썼다. 시기를 달리하면서 같은 제목의 시를 여러 편 썼다는 것은 김수영이 ‘눈’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956년에 창작된 「눈」은 김수영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눈’과 ‘기침’이다. 1연의 도..

37. 사랑의 변주곡//김수영

내가 읽은 좋은 시37 사랑의 변주곡/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 열렬하다 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