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227

체증약

체증약/ 월정 강대실    연분홍이나 갈색으로 쥐눈이콩 만한부모님 가보처럼 여기고 늘 안 떨어지게 하셨던매스껍고 답답한 속이 몇 알에 씻은 듯 개운해지는.   흰토끼 눈망울 같은 손자가 방학을 해 왔다가며칠 더 할애비랑 놀겠다고 떨어졌다잠을 자고 난 누에처럼 게걸스레 먹더니한밤중 뱃속이 돨돨해 보채댄다  갈큇살 같은 손으로 연신 배를 쓸어 주다섬광처럼 번쩍 떠오른 그 똥그란 체증약,유년 적 꺼멍이가 늘 곁을 지켜 주듯 든든했으나언제인가 종적도 모르게 사라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의 고통여직 아버지 어머니 지혜의 분깃 못 이은이내 아둔함 탓이라 생각하니타는 가슴, 회한의 한숨이 줄을 잇는다.초2-803

1. 오늘의 시 2024.11.10

함석헌 시9// 할미꽃

할미꽃 함석헌 얼음도 아니 녹아 피는 향기 갸륵커늘 고개 숙고 털옷 입어 숨기잠 웬 뜻인고 깊은 속 붉은 맘 찾는 임만 볼까 함이네. 가뜩이 덧없는 봄 채 오지 못한 적에 잠시 영화 안 누리고 질러감 웬일인고 동풍에 백발이 날아 더욱 눈물겹고나 얼음과 싸우던 뜻 아는 이 하나 없고 덧없는 한때 영화 다투는 꼴 가엾어서 흰 머리 풀어 흔들고 허허 웃는 노장부 백화요란(百花요亂) 계집년들 봄꿈 깰 줄 모르건만 서리 치는 가을 심판 어이 멀다 할 것이냐 막대로 하늘 가리켜 부르짖는 예언자 동풍 비에 머리 푸는 즐풍목우(櫛風沐雨) 저 사내야 세상이 너 모른다 슬피 한숨 짓는 거냐 온 세상 다 모른대도 눈물질 난 아니여 ☆★☆★☆★☆★☆★☆★☆★☆★☆★☆★☆★☆★

함석헌 시 8/ 하나님

하나님함석헌몰랐네뭐 모른지도 모른내 가슴에 대드는 계심이었네몰라서 겪었네어림없이 겪어보니찢어지게 벅찬 힘의 누름이었네벅차서 떨었네떨다 생각하니야릇한 지혜의 뚫음이었네하도 야릇해 가만히 만졌네만지다 꼭 쥐어보니따뜻한 사랑의 뛰놂이었네따뜻한 그 사랑에 안겼네푹 안겼던 꿈 깨어 우러르니영광 그득한 빛의 타오름이었네그득 찬 빛에 녹아버렸네텅 비인 빈탕에 맘대로 노니니거룩한 아버지와 하나됨이었네모르겠네 내 오히려 모를 일이네벅참인지 그득 참인지 겉 빔인지 속 빔인지나 모르는 내 얼 빠져든 계심이네☆★☆★☆★☆★☆★☆★☆★☆★☆★☆★☆★☆★

함석헌 시7/ 참외를 사는 계집

참외를 사는 계집함석헌꽃 쓰러진 배꼽 달고 줄기 달린 꼭지 쓴 줄을배꼽 줄 떨어진 날부터 먹어 알아온 참외를"이 참왼 꼭지에 갈수록 더 달다" 하는"참외 참외" 하며 말 파는 사내 말 곧이 사대가리 같은 박참외를한 입 또 한 입 싱겁게 다 먹었구나남의 말 믿고 맛을 따라내 혀 도리어 의심하는 어리석은 계집먹다 남은 쓰디쓴 꼭지 공중에 내던진 후입 닦고 손 떨고 멋없이 구름 보고 서니배는 풍랑 맞고 파선한 뱃잔등 같고빈 주머니만 그 위에 맥없이 목을 매고 달려지나가는 초가을 바람에 흔들 또 흔들.☆★☆★☆★☆★☆★☆★☆★☆★☆★☆★☆★☆★

함석헌 시6// 진리

진리함석헌진리는 슬퍼,파랗게 슬퍼.분주한 일 다 마치고떠들던 손님 다 보내고사람이 다 자고새도 자고 쥐도 죽은 밤티끌이 다 가라앉고구름 다 달아나고높이 드러나는 파란하늘깜박깜박하는 파란 별아슬하게 올려다볼 때 같이,진리의 얼굴 마주 대하면파랗게 슬퍼.진리는 슬퍼,파랗게 슬퍼.엉클어진 넝쿨 다 헤치고우는 시냇물 그대로 남겨두고험한 골짜기를 건너위태로운 바위를 더듬어무르익은 산과를 내버리고어지러이 피는 꽃밭도 뒤에 두고나무도 없고 풀도 없는 높은 봉에하늘 쓰고 돌 위에 앉아포구의 그림자도 없이망망하게 열린 파아란 바다끝없이 일고 꺼지는 파란 물결아득하게 바라볼 때 같이,진리의 눈동자 건너다보면파랗게 슬퍼☆★☆★☆★☆★☆★☆★☆★☆★☆★☆★☆★☆★

함석헌 시4/ 삶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

삶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함석헌맹꽁이의 음악 너 못 들었구나.구더기의 춤 너 못 보았구나.살무사와 악수 너 못해보았구나.파리에게는 똥이 향기롭고박테리아에게는 햇빛이 무서운 거다.도둑놈의 도둑질처럼 참 행동이 어디 있느냐?거짓말쟁이의 거짓말처럼 속임 없는 말이 어디 있느냐?거지의 빌어먹음처럼 점잖은 것이 어디 있느냐?그것은 정치가의 정의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고,군인의 애국보다 한층 더 믿을 만한 것이고종교가의 설교보다 비길 수 없이 거룩한 것이다.☆★☆★☆★☆★☆★☆★☆★☆★☆★☆★☆★☆★

함석헌 시3// 산

산함석헌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 걸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크신 그대높으신 그대무거운 그대은근한 그대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함석헌 시2//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현 만리 길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함석헌 시1//그 사람을 가졌는가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천리 길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면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세상이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뿐이야라고 믿어 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예" 보다도 "아니오" 라고 가만히 머리 흔들어 진실로 충언해 주는 그 한사람을! ☆★☆★☆★☆★☆★☆★☆★☆★☆★☆★☆★☆★

나눔의 행복

나눔의 행복/ 월정 강대실    반백 년 부초같이 흐느적거린 불초향촌 아래뜸에 구년묵이 세간 부쳐 놓고속죄의 삽질 묵정밭 일으켜 심었지요감 대추랑 배 매실 사과...... 빼곡히 몸에 안 배어 가다가는 각다분하기도 하고여기저기에 적신호 욱신욱신해도이슬 머금은 흙내에 불끈 힘이 솟는 오뚝이하루가 멀다고 발자국 소리 내지요 감나무 시득부득 노름한 꽃 진 자리마다가지가 휘어지게 주먹감 흔전만전 매달고갈바람 단맛 빨갛게 들이지요 맏물은 원매 기다린 지인들 보내고원근처 사양지심의 정인들 챙기고 나면내 차지는 이내 비뚤고 새들이 쪼아 댄 거에다더 못 나누어 섭섭한 이웃들이지요 하지만, 유년 적 동지죽 먹으면 싣고 나갈토방 위 쟁여진 나락가마니 들쳐 메 보이며싱글벙글하던 박 씨처럼 행복 넘실하지요. 초2-805

1. 오늘의 시 2024.11.09

그 아픈 겨울날

그 아픈 겨울날/ 월정 강대실  삐리리! 삐리리! 보채대는 전화기 마뜩찮은 듯이 노려보던 왼손이 나서서 귀에 맞대자 환히 피어나는 이름 석 자 충사(忠事)! 여느 날처럼 방가를 복창하자 곤두선 목소리 어-이 나 때려 치웠어 어제 날짜로! 웬 날벼락이여! 이 엄동설한에 입도 뻥긋 않더만 난 행장은 따 놓은 당상으로 알았어 친구는 그런데 어떡하겠는가 개보다 못한 녀석들이 쥐구멍도 안 보고 막무가낸디 이빨 빠진 사냥개라고 나는 벌써 넉 달째네 영에서 뺨 맞고 저잣거리서 눈 흘긴다고 손톱만 송곳같이 갈고 있어 나는 평생 가슴속 품고 살라네 그리고 소리 안 나는 총 하나 어디 구할 데 있나 알아봐 친구 가 선배 아닌가 사회! 이른 아침 졸지에 백수당 선배가 됐네! 친구나 나나 죽으면 죽었지 징역 갈 며리는 없지 ..

1. 오늘의 시 2024.11.08

은행잎 연가

은행잎 연가/ 월정 강대실 누구를 찾아 여길 오셨나요 아리따운 꿈에 부푼 어느 문학소녀 손에 든 시집 책갈피 이어야 하는데 스산한 포도 위를 방황하시나요 낯선 바람 흐드러진 너스레에 발목 잡혀 허둥지둥 뒤 따르다 낮고 젖은 데에 흩날리는 처량함 오가는 발길에 그지없이 짓밟혀 끝내 해어지고 만 노오란 가슴 밤이 이슥하면 하늘가 별 하나 만나 날밤을 지새워 샛노란 밀어 나누다 어느새 온 몸을 적시는 차디찬 이슬 길섶에 갈한 메아리로 스러지시나요. 초2-857

1. 오늘의 시 2024.11.08

가을을 두고 간 여자

가을을 두고 간 여자/ 월정 강대실얼마나 많은 밤을 뒤척였을까먼 하늘 나의 별 가슴에 얼굴을 묻고지새워 목쉰 독백 나누었을까팔려가는 송아지 같은 속울음 소리차창 밖 가을 산은 알아챘을까바람은 새살새살 달래 주었을까하마, 망각의 강 질러 멀리 갔을까산책길 붉나무 연신 떨구는 잎새 헤며추억의 향기 헤적이고 있을까계절이 오고 갈 때면 아리게 떠오르는가을을 두고 낙엽 따라 간 그 여자 앙가슴에 꺼멓게 멍울지는 그리움.

1. 오늘의 시 2024.11.07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 월정 강대실 스산히 낙엽이 뒹군다 한 생 아름답게 살더니 어느새 스르르 스러진 나뭇잎 하이얀 얼굴 지르밟고 고독히 걷는다 바사삭! 바람으로 다시 만나자 새로운 결별의 외마디 내 영혼 채질하는 찬란한 노래여! 결코 아파하지 말자 끝 날까지 사랑으로 보듬자며 속에 깊숙이 큼직한 바위 하나 품고 훌쩍, 성자처럼 미련없이 떠나 왔건만 사랑꽃 꽃눈 하나 틔워 내지 못하고 어스름 강둑에 눈 흘기고 서 있으니 어이 죄 아니랄 수 있으랴 사랑을 노래한다 하랴 꽃잎이 다시 피어날 그 날까지 기어이 돌아서지 않으리라.

1. 오늘의 시 2024.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