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많이 읽히는 시 51

많이 읽히는 시//내가 읽은 좋은 시)4

내가 읽은 좋은 시37         사랑의 변주곡/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산이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다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열렬하다間斷도 사랑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

많이 읽히는 시(내가 읽은 좋은 시)3

내가 읽은 좋은 시25          광야//이육사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 뒤에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1연까마득한 옛날에 천지가 창조되어 하늘이 열렸고, 닭 우는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인간 문명이 존재하기도 이전에 광야가 이미 있었음을, 광야의 근본성을 제시한다.2연바다를 연모해 휘달리는 산맥..

많이 읽히는 시(내가 읽은 좋은 시)2

내가 읽은 좋은 시13 북치는 소년/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세 개의 연이 모두 ‘∼처럼’으로 끝났다. 시 본문만으로는 내용이 애매하다. 팁이 있기는 하다. 제목 ‘북치는 소년’을 맨 끝으로 가져오면 시가 새벽빛처럼 밝아온다. 그렇더라도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치는 소년’이라니…. 이 말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그 자체로 완성이다. 어쭙잖은 설명으로 그 공간에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시에서 ‘무의미’를 이야기한 사람은 김춘수(1922∼2004) 시인이다. 사물을 보는 고정관념을 해체시키고 사물 그 자체가 지닌 ‘순수’를 보려고 했었다...

많이 읽히는 시//내가 읽은 좋은시)1

내가 읽은 좋은 시1 꽃//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작품은 전집에서 보면 와 등과 함께 ‘꽃의 소묘’부에 실려 있다. 꽃을 소재로 한 시편들의 대부분이 정감과 영탄조로 되어 있는 데 반해서 김춘수의 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러한 상식적이고 일반화된 통념에서의 발상법을 전면 거부한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한 ..

48. 남해 금산///이성복

내가 읽은 좋은 시48          남해 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작자의 두 번째 시집인 『남해금산』은 서사구조를 가진 시집으로, 치욕스런 삶을 사는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집에서 작자가 말하는 치욕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다음의 시를 보면 그 불분명한 치욕의 정황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안개가 내렸다 이곳에 입에 담지 못할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하는 대신 무릎으로 기어 먼 길을 갔다 (..

47. 죽편1//서정춘

내가 읽은 좋은 시47          죽편1//서정춘     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죽편·1 -여행’ 서정춘 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누구든 이 푸른 기차를 타기만 하면 멀다. 갓 태어난 아기든, 스무 살 청년이든, 오십 줄 중년이든, 구순 노인이든, 무조건 멀다. 저마다 타고 있는 칸이 다르고, 출발한 시각이 다르지만, 이 기차를 타는 순간 모든 승객은 도착할 역이 아직 멀다. 칸칸마다 깊은 밤은 좀처럼 새지 않는다. 그러니 누구라도 꿈꾸는 데 조급할 이유가 없다. 대나무는 백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자기 삶의 정점에서 죽는다. 대나무에게 죽음은 추락이 아니라 상승이다. 반칠환 [시인]

46.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내가 읽은 좋은 시46           우리가 물이 되어/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아아, 아직 처녀인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그러나 지금 우리는불로 만나려 한다.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저 불 지난 뒤에흐르는 물로 만나자.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올 때는 인적 그친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1987년 문학사상사에서 간행한 시집 『우리가 물이 되어』의 표제작이다. 강은교의 시세계에서 볼 수 있는 초기의 허무주의적 경향은 1980..

45. 풀//김종해

내가 읽은 좋은 시45               풀/김종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풀이 되어 엎드렸다풀이 되니까하늘은 하늘대로바람은 바람대로햇살은 햇살대로내 몸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시를 쓰면서 그가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김수영의 「풀」을 생각하며, 시인이 이 「풀」과의 거리를 어떻게 의식하며 자신의 ‘풀’을 노래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수영의 ‘풀’은 민중적인, 서민적인 전통적인 의미를 내장하면서도 그보다는 훨씬 더 바람과 풀의 존재론적인 호응과 존재론적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풀’이라고 할 「풀 앞에 서서」에서 화자는 자기 자신이, ‘나’ 자신이 ‘풀’에 지나지 않음을 ..

44. 농무//신경림

내가 읽은 좋은 시44         농무/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철없이 킬킬대는구나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신경림 시인은 이러한 즐거운 소재를 시상으로 삼아 ..

43. 눈물//김현승

내가 읽은 좋은 시43          눈물/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나는 내 가슴의 상처를 믿음으로 달래고, 그러한 심정으로 썼다. ‘인간이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오직 썩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 앞에서 흘리는 눈물뿐일 것이다.’ 라는 것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눈물을 좋아하는 나의 타고난 기질에도 잘 맞는다.󰡕이 시는 ..

42. 귀천/천상병

내가 읽은 좋은 시42        귀천/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당시 천상병 시인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과 정신이 많이 상했다. 불임이 되고 이가 많이 빠져 영양실조에 걸리는 등 신체적 고통을 겪었으며, 정신 착란 등으로 괴로워 하여 음주 없이는 잠도 못 이루는 지경이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쓴 시가 바로 '귀천'이었다.그 때문에 언뜻 천상병 시인이 죽기 직전 유언 비슷하게 남긴 작품으로 오해 받기도 하는 시지만,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한 뒤 23년이 지난 1993년에 사망..

41. 화사/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41        화사/서정주     사향(麝香) 박하 (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꽃대님 같다.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촛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바늘에 꼬여 두를까 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같이 ..

40. 귀촉도/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40         귀촉도/서정주   눈물 아롱아롱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임의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부질 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차마 아니 솟은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서정주는 1933년부터 시를 발표하였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벌였다. ‘시인부락’ 동인지에서 여러 작품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그의 두 번째 시집 ‘귀촉도’는 ..

39. 푸르른 날/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39         푸르른 날/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서정주(1915~2000) '푸르른 날' 전문​가을이 오고 있는 9월이다. 맑고 깨끗한 고국의 하늘은 너무 눈이 부셔서, 외국에 오래 나가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눈물겨운 계절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나는 '저기 저기 저'하는 말도 안 되는 말, 가을 풍경에 얼이 빠진 시인의 당황이 그렇게도 좋다. 미당의 고향마을의 발음으로 다시 한번 외워 본다. 과연 그는 시인이다.[출처][서정주] ..

38. 눈/김수영

내가 읽은 좋은 시38       눈/김수영    눈을 살아 있다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   김수영은 ‘눈’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세 편의 시를 썼다. 시기를 달리하면서 같은 제목의 시를 여러 편 썼다는 것은 김수영이 ‘눈’에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1956년에 창작된 「눈」은 김수영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는 ‘눈’과 ‘기침’이다. 1연의 도..

37. 사랑의 변주곡/김수영

내가 읽은 좋은 시37         사랑의 변주곡/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산이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다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節度는열렬하다間斷도 사랑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

36. 윤사월(閏四月)/박목월

내가 읽은 좋은 시36     윤사월(閏四月)/박목월 ​ 송화(松花)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 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고엿듣고 있다.   *윤사월: 음력으로 4월에 든 윤달*윤달: 윤년에 드는 달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과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1년 중의 달 수가 어느 해보다 많은 달을 이른다.즉, 태양력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2월을 29일로 하고, 태음력에서는 19년에 7번, 5년에 두 번의 비율로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만든다.*문설주: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     우리 조상들은 윤달이 든 달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무덤을 옮기는 이장을 하였다. 이 때에 하면 동티가 나지 않아 후손들이 편안하였기 때문이다. 또 할머니가 있는 ..

35. 그리움/유치환

내가 읽은 좋은 시35            그리움/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닭 않은데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세기의 로맨스,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 시인의 사랑  청마 유치환 시인님의 시 '그리움'은 1965년 발간된 시인님의 13번째 시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에 실렸습니다. 시집의 제목도 시 '그리움'의 한 구절을 따서 지었네요. 그만큼 시 '그리움'은 시인님에게도 중요한 시라는 뜻이겠네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시 '그리움'은 아주 절절한 사랑시입니다. 시에서 시인님의 가쁜 숨결이 느껴집니다. 파도는 잠시도 쉬지 않지요. 시인님의 그리움도 끊임없이 밀려오네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34. 절정/이육사

내가 읽은 좋은 시34         절정/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절정'의 뜻, 국어사전에 '산의 맨꼭대기', '사물의 진행이나 발전이 최고의 경지에 달한 상태'라고 나옵니다. 시인님은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하면서 17번이나 옥고를 치렀습니다. 일제의 폭압에 맞서 투쟁하는 길은, 시인님이 위의 산문에서 썼듯이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입니다. 그 과정은 얼마나 극도의 긴장의 연속이었겠는지요. 그래서 '절정'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 일제의 옥..

33. 자화상/윤동주

내가 읽은 좋은 시33             자화상/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1]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2]그리고 한 사나이 [3]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소중하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꾸미지 않은 순수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순간이..

32. 백록담/정지용1

내가 읽은 좋은 시32             백록담/정지용 1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뻐꾹채꽃 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 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암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3백화(白樺) 옆에서 백화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31. 흰 바람벽이 있어/백 석

내가 읽은 좋은 시31           흰 바람벽이 있어/백  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이 흰 바람벽에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때글은 다 낡은 무명 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이 흰 바람벽에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 가의 나지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주 앉아 대굿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

30. 거울//이 상

내가 읽은 좋은 시30           거울/이  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소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6연 13행의 자유시로, 행과 연은 구분되었으나 띄어쓰기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상은 다른 많은 작품에서도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데 이것은 정서법이나 기존의 율격의식 같은 모든 상식이나 질..

29. 산정묘지1/조정권

내가 읽은 좋은 시29                 산정묘지1/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산정(山頂)은얼음을 그대러 뒤집어 쓴 채빛을 받들고 있다.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차라리 침묵하는 것.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그러나 한 번 잠든 정..

28. 갈대//신경림

내가 읽은 좋은 시28             갈대/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이 시는 신경림의 초기 경향을 대표하는 시로,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생명 인식을 보여준 작품이다. 다시 말해, 삶의 근원적인 비애를 '갈대'의 울음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갈대'가 연약한 인간 존재를 상징하는 것임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갈대는 '울고 있고', '흔들리고 있고',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 '사..

27. 저녁 눈/ 박용래

내가 읽은 좋은 시27         저녁 눈/ 박용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출처]저녁눈 - 박용래 -|작성자안정식   ​ 이 詩는 1960년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의 눈 내리는 풍경을 단순하면서도 정 감있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말집’은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귀틀집을 말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합니다.등도 그럴 고요 이 詩를 읽다 보면 무엇보다, 언젠가 우리가 눈이 내리는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을 때, 똑같이 내리는 눈들 도 유독 어느 한두 군데에 더 많이 내리며 쌓이는 듯 ..

26. 무등을 보며//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26         무등을 보며/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5연으로 된 《무등을 보며》전..

25. 광야//이육사

내가 읽은 좋은 시25          광야/이육사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 뒤에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1연까마득한 옛날에 천지가 창조되어 하늘이 열렸고, 닭 우는 소리 같은 것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인간 문명이 존재하기도 이전에 광야가 이미 있었음을, 광야의 근본성을 제시한다.2연바다를 연모해 휘달리는 산맥은..

24. 유리창/정지용

내가 읽은 좋은 시24   유리창/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갔구나!시의 주제가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임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유리'는 표면적으로 시적화자가 머무는 공간인 '안'과 '밖'을 차단 하기도 하고, 투명하기 때문에 연결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집니다.실제로는 차단되어 있지만, 무언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즉 '유리'는 화자가 살고 있는 이승..

23. 여승//백 석

내가 읽은 좋은 시23                            여승/백  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전판[1]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193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한 여승의 비극적인 인생역정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