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36
윤사월(閏四月)/박목월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 음력으로 4월에 든 윤달
*윤달: 윤년에 드는 달
달력의 계절과 실제 계절과의 차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1년 중의 달 수가 어느 해보다 많은 달을 이른다.
즉, 태양력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2월을 29일로 하고, 태음력에서는 19년에 7번, 5년에 두 번의 비율로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만든다.
*문설주: 문짝을 끼워 달기 위하여 문의 양쪽에 세운 기둥
우리 조상들은 윤달이 든 달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무덤을 옮기는 이장을 하였다.
이 때에 하면 동티가 나지 않아 후손들이 편안하였기 때문이다.
또 할머니가 있는 집에서는 할머니가 본인의 수의를 직접 만들기도 하였다. 윤달에 미리 수의를 만들어 두면 오히려 장수를 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큰 일은 대응할 시간을 미리 예고라도 하며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닥치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
장례 치를 준비나 문상객 맞을 준비로 바쁠 것을 미리 아는 어른들은 당신을 위한 일들을 손수 마련해 놓음으로써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영정사진과 수의를 미리 만들어 놓음으로써 상주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사려 깊은 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런 윤달이 든 음력 사월의 소나무꽃가루가 노랗게 세상에 날릴 때, 해도 길어지고 따뜻해진 날이다.
죽음의 이미지가 시의 배경에 안개처럼 깔려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동떨어진 외딴 산 꼭대기의 판대기로 지은 산지기 집이 있다.
그 산지기에게는 어미 없이 키운 눈 먼 딸이 하나 있는데, 십 수 번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동안 그 어린 딸은 처녀애가 되었고 산지기는 늙어버렸다.
보이는 건 하나 없어도 꾀꼬리 소리와 함께 있을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느라 문에 기대어 쭈그리고 앉아 있다. 그리고는 문설주에 살짝 귀를 대고 무언가를 들으려는 눈먼 처녀애는 이 적막하고 고독한 산 중에 한없이 안타깝고 마음 저리게 하는 주인공이다.
이것이 이 시가 갖는 비극적 아름다움이 아닐까
[출처]윤사월(閏四月) l 박목월|작성자브라바 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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