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많이 읽히는 시

35. 그리움/유치환

월정月靜 강대실 2024. 5. 20. 22:04

내가 읽은 좋은 시35          

  

그리움/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닭 않은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세기의 로맨스,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 시인의 사랑  
청마 유치환 시인님의 시 '그리움'은 1965년 발간된 시인님의 13번째 시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에 실렸습니다. 시집의 제목도 시 '그리움'의 한 구절을 따서 지었네요. 그만큼 시 '그리움'은 시인님에게도 중요한 시라는 뜻이겠네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시 '그리움'은 아주 절절한 사랑시입니다. 시에서 시인님의 가쁜 숨결이 느껴집니다. 파도는 잠시도 쉬지 않지요. 시인님의 그리움도 끊임없이 밀려오네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이 구절은 사랑을 향한 그리움도, 그 그리움을 어쩌지 못하는 괴로움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시인님의 절규로 들리네요. 파도처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그리움과 괴로움, 희망과 절망으로 시인님 마음은 온통 폐허가 된 것만 같습니다. 

이 시에 대해 시인님은 '40대의 그리움'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고」 : 김광회 엮음, 지문사, 1984년) 
 
과연 시인님은 누구를 이토록 연모하고 있을까요?
 
님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 유치환 시 '그리움' 중에서

 
그즈음 청마(靑馬) 유치환 시인님의 삶에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시조시인 정운(丁芸) 이영도 님(1916~1976, 경북 청도)입니다. 당시 두 사람의 공공연한 로맨스는 세간의 큰 화제였습니다. 과연 어떤 사랑이었을까요?
 
1945년 해방 후 청마는 통영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하게 됩니다. 거기에 정운은 가사교사였고요. 청마 38세, 정운은 30세였네요.
 
청마는 처음 3년 동안 정운에게 매일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뭍같이 까딱' 않던 정운의 마음이 열렸다고 하네요. 그리고 두 사람은 20년의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20년 동안 문학의 동지로 편지로만 사랑을 나누었던 관계입니다. 청마는 매일 정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가 무려 5,000여 통에 달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희대미문(稀代未聞)의 로맨스가 아닐 수 없네요.
 
이영도 시인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영도 시인님의 시비(詩碑)가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금강공원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시비에 3편의 시조가 새겨져 있네요. 이 시조 속의 정(情)이 청마를 향한 것이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 심지 돋으고 이마 맞대이면 / 어둠도 도운 애정에 삼가한 듯 둘렸다

- 이영도 시조 '단란' 전문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 알알 익은 고독 기어히 터지는 추정(秋情) /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 이영도 시조 '석류' 전문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흩는다

- 이영도 시조 '모란' 전문

 
이영도 시인님은 이호우 시인님(1912~1970)의 여동생입니다.  이호우 시인님은 우리 모두 사랑하는 '개화' '살구꽃 핀 마을'을 쓴 시인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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