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많이 읽히는 시 51

22. 별 헤는 밤//윤동주

내가 읽은 좋은 시22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

21. 산유화/김소월

내가 읽은 좋은 시21 산유화/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지네     산유화(山有花)는 산에서 피고 지는 모든 꽃을 의미하며, 이 작품에서는 홀로 외롭게 피고 지는 비극적 존재로 형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산은 이러한 존재의 생멸이 순환되는, 근원적 고독감을 발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작가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일상적 자연 현상에서 착안하여 존재의 근원적 고독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시는 고독하게 태어나고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하게 돌아간다는, 탄생과 소멸의 순환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단순히 꽃이 피고 지는 내..

20. 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가 읽은 좋은 시20                즐거운 편지/ 황동규Ⅰ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1958년 『현대문학』 11월호에 추천 등단작으로 발표된 황동규의 시 작품. 총 2연..

19. 국화 옆에서/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19   국화 옆에서/서정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4연 13행의 자유시로 서정주의 대표작이다. 이 시는 국화를 소재로 하여 계절적으로는 봄·여름·가을까지 걸쳐져 있다.   「국화 옆에서」의 ‘국화’는 “괴로움과 혼돈이 꽃피는 고요에로 거두어들여진 화해의 순간을 상징하는 꽃”이라고 한 어느 논자의 말과 같이, 이 시에서 ‘국화’의 상징성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봄부터 울어대는 ..

18.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내가 읽은 좋은 시18              모란이 피기까지는/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金永郎)의 대표적인 시.이 작품은 12행시로 4행시를 즐겨 쓰던 저자로서는 새로운 변형이라 할 수 있다.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버린 뒤의 '절망감'이라는 이중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17. 초혼 // 김소월

내가 읽은 좋은 시17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나는 그대 이름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출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민예원 초혼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일이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면 망자의 체취가 스며든 옷가지를 들고 기와..

16. 사평역에서//곽재구

내가 읽은 좋은 시16     사평역에서//곽재구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 열차는 ..

15. 빈 집//기형도

내가 읽은 좋은 시15     빈 집/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출처]좋아하는 시 - 기형도 |작성자다온단열   화자는 사랑했던 순간의 대상을 하나하나 부르며 사랑했던 당시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잘가'를 반복하면서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잘가'라는 표현 속에는 사랑의 추억이 온전하길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잃은 화자는 세상의 빛을 잃은 장님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사랑의 대상을 빈집에 ..

14. 나그네//박목월

내가 읽은 좋은 시14   나그네/박목월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南道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작자는 이 시의 주제적 모티프(motif)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 제목이 다 주제적 모티프가 되는 ‘나그네’는 바람과 함께 떠도는 절망과 체념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떠도는, 무엇인가 송두리째 잃은 듯한 상실감으로 허전해진 모습을 ‘나그네’에서 상기할 수가 있다.제1연의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은 작자가 태어나서 자란 농촌 풍경이나, 우리 모두가 보아온 보편화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곳을 찾아들거나 떠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은 ‘구름에 달가듯이’ 간다. 이 때 ‘달’의 발걸음은..

13. 북치는 소년//김종삼

내가 읽은 좋은 시13   북치는 소년/김종삼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가난한 아이에게 온서양 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진눈깨비처럼 세 개의 연이 모두 ‘∼처럼’으로 끝났다. 시 본문만으로는 내용이 애매하다. 팁이 있기는 하다. 제목 ‘북치는 소년’을 맨 끝으로 가져오면 시가 새벽빛처럼 밝아온다. 그렇더라도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북치는 소년’이라니…. 이 말에는 빈 공간이 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그 자체로 완성이다. 어쭙잖은 설명으로 그 공간에 개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시에서 ‘무의미’를 이야기한 사람은 김춘수(1922∼2004) 시인이다. 사물을 보는 고정관념을 해체시키고 사물 그 자체가 지닌 ‘순수’를 보려고 했..

1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내가 읽은 좋은 시12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하고눈은 푹푹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눈이 푹푹 쌓이는 밤나타샤와 나는 흰당나귀 를 타고 산골로가자출출이 우는 깊은산골로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리없다아니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와 얘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 시는 제목에서부터 이국 정취를 풍기고 있어서 백석의 시로서는 다소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기행체험의 시에 해..

11.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내가 읽은 좋은 시11    울음이 타는 가을 강/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저것 봐, 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특히 이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그가 지닌 삶에의 애잔한 슬픔, 그리고 정한(情恨)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질녘 언덕에 올라앉아 저녁노을에 물드는 강을 바라보면, 마치 그 강은 노을..

10. 향수//정지용

내가 읽은 좋은 시10   향수/정지용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얼룩빼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 벗은 아내가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9. 풀//김수영

내가 읽은 좋은 시9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金洙暎)이 지은 시. 작자의 말기를 대표하는 시작품으로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쓴 것이다. 3연 18행으로 된 이 작품은 ‘풀’과 ‘바람’이 대립관계를 이루고 있다.‘풀’과 ‘바람’의 반복적인 구조와 효음(效音)을 제외하고 문맥상으로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다. 단순히 ‘눕다’·‘일어나다’·‘울다’·‘웃다’라는 ..

8. 진달래꽃//김소월

내가 읽은 좋은 시8   진달래꽃/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藥山)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가시는 걸음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이 지은 시.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에 실려 있다. 총 4연, 각 연 3행의 짧은 서정시로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님의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담뿍 뿌리겠다는 것이 그 간추린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 떠나가는 님은 다시 돌아올 기약조차 없다. 오직 자신의 마음속으로만 그런 기대감을 갖고 보내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사람의 사무친 정(情)과 한(恨), 동양적인 체념과 운명관에서 빚어내는 아름답고 처..

7. 동천//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7 동천/서정주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출처] 동천 _ 서정주 (참나무공화국) | 작성자 참나무    이 시기는 작가의 초기 시에 보이던 생명력에 대한 갈구나 병적인 징후가 『귀촉도(歸蜀途)』와 『신라초(新羅抄)』의 단계를 거침으로써 어느 정도 사라지고, 동양적 체념과 안식의 자세를 취하며 마음의 평정을 도모하던 때이다. 서정주 시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는 사상적 원숙미와 시적 구성력이 가장 고조된 시기라 할 수 있다.물론, 『동천』에 실린 작품들이 불교의 인연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신라초』의 연장선상에 놓인다고도 볼 수 있지만, 불교적 설화조의..

5. 낙화//이형기

내가 읽은 좋은 시5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사랑, 나의 결별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이 시는 꽃이 떨어지는 현상을 인생의 문제와 연결한 작품입니다. 꽃이 떨어지는 현상 그 자체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슬픈 일이지요. 그러나 꽃이 떨어지고 나야 여름에 녹음이 무성해지고 가을에 열매도 맺히기 때문에, 낙화는 더 큰 결실을 위해 요구되는 슬프지만 의..

4. 자화상//서정주

내가 읽은 좋은 시4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병든 수캐마..

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백 석

내가 읽은 좋은 시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백 석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바로 날도 저물어서,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2. 서시//윤동주

내가 읽은 좋은 시2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안테 주어진 길을거러가야겠다。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별, 바람' 등의 자연물을 통해 지은이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별은 천상세계에 속하고 바람은 지상세계에 있는데, 시 마지막에 가서 별이 바람에 스치는 것은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 '바람'은 시인의 불안과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면, 시국에 대한 불안, 가정에 대한 걱정, 하숙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 등으로 무척 괴로워했다.'한 점 부끄럼 없기를 ~ 괴로워했다'이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의 결벽성을 짐작할 ..

1. 꽃// 김춘수

내가 읽은 좋은 시 1.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952년에 발표되고 이듬해에 시집 『꽃의 소묘』에 수록된 김춘수의 시 작품.김춘수의 초기세계를 대표한다. 이 시가 강조하는 것은 ‘꽃’이라는 사물과 ‘언어’의 관계이다. 시속의 화자가 말하는 대상은 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꽃은 감각적 실체가 아니라 관념, 말하자면 개념으로서의 꽃이다. 따라서 이 시가 노리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