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20
즐거운 편지/ 황동규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1958년 『현대문학』 11월호에 추천 등단작으로 발표된 황동규의 시 작품.
총 2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로, 간절하고도 변함없는 사랑에 대한 고백적인 정서를 노래한 작품이다. 황동규의 초기 작품인 이 시는 작가가 고등학교 3학년인 18세 때 연상의 여성을 사모했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여러 영화의 모티프가 되는 등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는 시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인한 젊은 날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서정적인 어조로 형상화하여 낭만적이고 우수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1연에서는 간절한 자신의 사랑을 “사소한 일”이라고 함으로써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이라는 자연현상에 빗대어 자신의 사랑은 ‘그대’가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해 보이지만 실상은 늘 변함없이 ‘그대’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2연에서는 “진실로 진실로”라는 반복적 표현을 통해 상대를 향한 시적 화자의 사랑이 매우 절실함을 보여준다.
자신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영원히 그리고 변함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다릴 것임을 말하고 있다. 기다림의 도중에 찾아오는 “밤”과 “골짜기”라는 시어가 상징하듯, 외롭고 견디기 힘든 시간이 오거나 자신의 사랑이 끝난다고 해도, 그대를 사랑했던 그 기다림의 자세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백이 이어진다. “눈”, “꽃”, “낙엽”과 같은 계절의 변화처럼 다소 변할 수는 있으나, 결국은 자연의 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사랑과 기다림도 영원할 것이라는 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반어적 표현을 통한 정서 전달과, 자연 현상에 빗대어 사랑을 나타낸 비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산문시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시어의 반복과 완결된 문장 구조의 반복으로 자연스럽게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시는 일반적인 연시에서 보이는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전통적 정서를 뛰어 넘어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 기다림의 자세를 노래함으로써, 전형화되어 온 전통적 연애시의 계보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즐거운 편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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