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많이 읽히는 시

22. 별 헤는 밤//윤동주

월정月靜 강대실 2024. 5. 17. 20:45

내가 읽은 좋은 시22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네이버 지식백과] 별헤는밤 (공유마당)
 
1948년 정음사에서 간행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마지막에 수록된 윤동주의 시 작품.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인 1941년 11월 5일에 졸업을 앞두고 쓴 시로, 가을밤을 배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시의 전반부에서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유년 시절을 회상하고 여러 상념에 젖어드는 심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후반부로 갈수록 자아의 현실적인 고뇌와 자아성찰, 소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뿐만 아니라 부분적으로 산문적인 리듬을 구사하여 호흡의 변화를 가져오는 등 새로운 시도도 눈에 띄는 점이다.

윤동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과 별이라는 소재는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적 공간과 순수한 이상에의 동경을 표현하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적 역할을 하고 있다. 담담하게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가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시적 화자는 가슴 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상념들을 차분한 어조로 읊조리듯 전하고 있다. 그러다가 5연에서 줄글로 시행이 바뀌면서 호흡이 빨라지고, 이처럼 빠르게 시적 화자의 눈앞에 온갖 그리운 것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화자가 잃어버린 추억이자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다.

그들과 멀리 떨어진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오면서 시적 화자는 우울하고 안타까운 현실에 괴로워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쓰고 흙으로 덮어버리는 행위에서는 자책감과 부끄러움이 동반된 자아성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시적 화자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러나”라는 시어를 기점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생적인 자세를 다짐하고 있다. ‘봄’으로 형상화된 아름다운 미래는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는 날이며, 이를 위해서는 죽음일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며 나아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적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 역시 윤동주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움과 자기 성찰, 부끄러움과 희생적 자세라는 주제를 근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별 헤는 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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