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4
자화상/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애비는 종이었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등 이 시의 화자가 상당히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이러한 자신의 불행하고 가난하던 자신의 삶을 당당히 고백하고 이에 대해 당당히 맞서려는 의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연 맨 마지막 시구에서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라는 시구는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해 사회의 부정의에 항거한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자신이 닮았다 하면서 자신 역시 그러한 성향을 가졌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
시의 내용이 암울하나 시의 어조 역시 단정적이어서 이를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읽은 좋은 시 > 많이 읽히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동천//서정주 (0) | 2024.05.16 |
---|---|
5. 낙화//이형기 (0) | 2024.05.16 |
3.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백 석 (0) | 2024.05.16 |
2. 서시//윤동주 (0) | 2024.05.15 |
1. 꽃// 김춘수 (0) | 2024.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