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좋은 시10
향수/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의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 작품의 배경은 평범한 한 농촌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배기(현 표준어: 얼룩빼기) 황소가 울음을 우는 풍경으로서의 한국적인 농촌 모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다시 가족사적인 그리움이 결합된다. 겨울밤에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우어 괴시는 정겨운 모습이 다가오는 것이다.
아울러 ‘질화로, 재, 뷔인 밭, 밤바람 소리’ 등의 소재가 유년의 회상을 강하게 환기시켜주는 촉매가 된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로서의 소년시절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소년시절이란 흙과 하늘의 대조 속에서 ‘화살을 쏘는’ 상징적인 행위로 요약된다. 그것은 꿈 많던 시절 끊임없이 솟구쳐 오르기만 하던 비상의지의 발현이며, 이상을 향한 몸부림을 반영한다.
여기에 다시 가족사적인 풍정이 연결된다. ‘누이’와 ‘안해’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누이와 아내는 둘 다 그리움의 표상이자 모성적인 따뜻함과 편안함을 일깨워주는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현재와 연속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마지막 연에서 드러나는 ‘석근 별, 모래성, 서리 까마귀,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 등의 대응 속에는 이제 추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비애감이 담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낙원에 대한 지향을 시로 표현한 「향수」는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향수 [鄕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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