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162

고향집

고향집 / 월정 강대실     굴뚝새 포로롱 달아난어스레한 헛청 여기저기어지러운 거미줄 살풍경하다.등태 흘린 빈 지게토담 벽 기대어 서서등에 업고 나설 주인 기다리고날근날근한 덕석 몇 닢삭은 나무토막 베고 포개 누워잠이 곤하다땀에 벌겋게 절은 괭이 쇠스랑날이 금 간 삽 구석에서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허리 구부러진 호미  불쑥 튀어나와 응석을 부리며발목 거머잡는다. (2-25.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

1. 오늘의 시 2024.06.17

생가를 찾다

생가를 찾다/월정 강대실  강담에 기대인 철문 밀치자꽃초롱 밝혀 든 참깨두엄자리에 나와 멀끔히 쳐다본다주인 영감님 낮잠 자다 손짓하는때 절은 마루턱에 엉거주춤 앉으면발길 뜸한 마당 여기저기에서돌부리 입을 삐쭉삐쭉 수군댄다주춧돌에 붙들린 기둥뿌리 삭고바람은 사방 간데 들쑤시고 다닌다소복소복 꿈을 키우던 윗방엔빛바랜 책상이 맥없이 앉아 있다눈감고도 훤한 뒤꼍에 돌아가자반질반질한 장독 온데간데없고아픈 것들만 몇 쌜쭉 토라져 있다웃자란 옥수숫대 헉헉거리며골방 부엌간 허물어진 슬레이트 떠받고서까래에 얹힌 흰 구름 무심하다울안으로 기다란 팔 내밀고홍시 떨구던 감나무 베어져 없고자두나무랑 까치발 딛던 죽나무우뚝이 갈맷빛 뽐낸다. (2-21. 제2시집 먼 산자락 바람꽃)

1. 오늘의 시 2024.06.17

두멧골의 밤

두멧골의 밤/  월정 강대실                                              찔레 덤불 저편에 해 떨어지자귀목나무 잎 사이 달이 솟는다사자봉 바위 뒤로 구름 외돌자산등성이 높은 봉두 별이 외롭다길 건너 애솔밭 밤은 깊은데앞개울 무어라 종알대는데오늘은 고추밭 머리 소쩍새 노래로까투리 푸드등 날면 또 어디로 가려나. (4-59. 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2024.06.17

혼자 있는 날

혼자 있는 날/ 월정 강대실              자식들 제 식솔이랑 멀리 떨어져 살고  아내는 오랜 친구들 모임에 나가   긴긴날 덩그러니 혼자 있는데   어찌 적적하지 않으리오     봄샘바람에 몸을 뒤척이던 감나무   어느새 피운 손자 손바닥만 한 이파리   진종일 뜨락에 살랑이는데   어찌 그리움 모르리오     길 잘못 알고 온 나나니벌 한 마리   온 방 누비며 벽창을 치받더니   그만 진이 빠져 허공을 기는데   어찌 안쓰럽지 않으리오     해 떨어지자 땅거미 스멀스멀 밀려들고   앞집 용마루 환한 살구꽃 위로   개밥바라기 처량히 반짝이는데  어찌 서러움 모르리오. (4-66.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2024.06.17

물내 나는 여자

물내 나는 여자/월정 강대실  툭툭 털고 한번쯤은 나그네 되자던휘영청 달 밝은 어느 밤의 약속 미뤄질수록점점 마음보다 더 긴 하루하루오늘도 첫새벽부터 종종걸음 치다옆에 앉더니 스르르 잠에 빠진짠한 눈빛으로 얼굴 한 겹 덮어 주다망연히 창밖 먼 산 바라보면만나고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 잔영 위로연화처럼 봉긋이 피어오르는천둥이 치면 버썩 겁이 나 문 걸어 잠그고그저 꽃무늬 몸뻬 바지가 좋아 즐겨 입고가난한 내 시 읽어 주다가는어느덧, 눈에 핑 도는 눈물 애써 감추는영락없이 숙맥 같은 아내,내가 더 좋아하는 물내 나는 여자. (4-72. 제4시집 바람의 미아들)

1. 오늘의 시 2024.06.17

선덕여왕의 말씀//善德女王의 말씀

善德女王의 말씀 - 서정주 朕의 무덤은 푸른 嶺 위의 欲界 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 터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病弱者한테 柴糧도 더러 노느고 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 瞻星臺 위엔 瞻星臺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黃金 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千年의 知慧가 가꾼 國法보다도 國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朕의 무덤은 푸른 嶺 위의 欲界 第二天. 피 예 있..

별난 상념

별난 상념 / 월정 강 대 실  땅 속 중생들 밥이 되겠다고 시간에 야금야금 무너지는 나무토막 하산길 질질 끌어와서일까경칩을 망각한 개구리 한 마리 번뜩이는 삽날이 겁나 얼떨떨해하는데 다짜고짜 등 떠밀어내서일까봄의 꽃길에 미세먼지 자욱한 것은삼동을 함께하자 불러들여 갓 고갯마루 넘은 분화들 파르르 내쫓아 덜덜 떨게 해서일지 몰라복 들어오라 서둘러 열어 둔 사립 줄줄이 쪽박 차고 드는 길고양이들물렀거라 내쫓아서일지 몰라.

1. 오늘의 시 2024.06.14

내 앞 상서

내 앞 상서 / 월정 강대실      아버지, 휜 허리 곧추세우며   발 받쳐 주셔 가까스로 면무식했지요.   서릿발 일갈에 쫓겨 들어선 길   때론, 원망의 뉘 눈 떴으나   삼십여 년 붙박이별 마음 붙안고   변리 장수로 처자들 근근이 구입하다   망망대해에 닻 내렸습니다 덥석   이제, 내 안 번듯한 길보다는   부나방 날개 앞 호롱불 마음 다잡으며   풀 나고 돌멩이 궁굴고 순수가   꽃물처럼 찬란한 샛길로 에돌랍니다   소도 개도 닭도 만나서 유정하고   日月을 거머쥔 갑부로, 혼자 푸른   향리의 당산나무같이 살랍니다   그리고, 좋은 글 하나 꼭 써   착하게 살아도 눈먼 복록에 설운 이들   가슴굽 한기 녹여 주는   질화로 속 잿불이라도 되게 할랍니다.

1. 오늘의 시 2024.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