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내가 읽은 좋은 시/2)시인의 대표시

27. 서정주 시/5. 추천사(楸韆詞) - 春香의 말 1.다시 밝은 날에 - 春香의 말 2. 춘향유문(春香遺文) - 春香의 말 3

월정月靜 강대실 2025. 4. 7. 08:58

추천사(楸韆詞) - 春香의 말 1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 다시 밝은 날에 - 春香의 말 2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훤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춘향유문(春香遺文) - 春香의 말 3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