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사(楸韆詞) - 春香의 말 1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 다시 밝은 날에 - 春香의 말 2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훤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 춘향유문(春香遺文) - 春香의 말 3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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