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5 36

24. 황동규 시/ 6. 꽃의 고요

* 꽃의 고요일고 지는 바람 따라 청매(靑梅) 꽃잎이눈처럼 내리다 말다 했다바람이 바뀌면돌들이 드러나 생각에 잠겨 있는흙담으로 쏠리기도 했다'꽃지는 소리가 왜 이리 고요하지?'꽃잎을 어깨로 맞고 있던 불타의 말에 예수가 답했다'고요도 소리의 집합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꽃이 울며 지기를 바라시는가왁자지껄 웃으며 지길 바라시는가?''노래하며 질 수도....''그렇지 않아도 막 노래하고 있는 참인데.'말없이 귀 기울이던 불타가 중얼거렸다'음, 후렴이 아닌데!' *

24. 황동규 시/5. 병꽃

* 병꽃  아, 저 병꽃!봄이 무르익을 제그 무슨 꽃보다도 더 자연스럽게자주색으로도 피고흰색으로도 피는,  모여서도 살고쓸쓸히도 사는,  허허로운 꽃.계획했던 일 무너지고 우울한 날학교 뒷산을 약속 없는 인사동처럼 방황하다가그냥 만나 서로 어깨힘 빼고마주볼 수 있는 꽃.만나고도 안 만난 것 같고안 만나고도 만난 것같이허허롭게. *

24. 황동규 시/4. 꿈꽃

* 꿈꽃내 만난 꽃 중 가장 작은 꽃냉이꽃과 벼룩이자리꽃이 이웃에 피어서로 자기가 작다고 속삭인다자세히 보면 얼굴들 생글생글이빠진 꽃잎 하나 없이하나같이 예쁘다동료들 자리 비운 주말 오후직장 뒷산에 앉아 잠깐 조는 참누군가 물었다. 너는 무슨 꽃?잠결에 대답했다. 꿈꽃작디작아 외롭지 않을 때는 채 뵈지 않는(내 이는 몰래 빠집니다)바로 그대 발치에 핀 꿈꽃..

카테고리 없음 2025.04.05

24. 황동규 시/3. 쨍한 사랑 노래

* 쨍한 사랑 노래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마음 없이 살고 싶다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마음 비우고서가 아니라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저물녘, 마음 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그 흘러내린 자리를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내림 줄 그어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24. 황동규 시/2. 빗방울 화석

* 빗방울 화석 - 황동규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점점점 찍혀있는 빗방울 화석혹시 어느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홑뿌린 눈물 자국감춘 눈물 방울들이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

24. 황동규 시/1. 황동규 시 모음

* 빗방울 화석 - 황동규   창녕 우포늪에 가서 만났지뻘 빛 번진 진회색 판에점점점 찍혀있는 빗방울 화석혹시 어느저녁 외로운 공룡이 뻘에 퍼질러 앉아홑뿌린 눈물 자국감춘 눈물 방울들이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 어려우리길섶 쑥부쟁이 얼룩진 얼굴 몇 점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가을 저녁 안개몰래 내쉬는 인간의 숨도삶의 육필(肉筆)로 남으리채 굳지 않은 마음 만나면화석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  * 쨍한 사랑 노래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마음 없이 살고 싶다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마음 비우고서가 아니라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저물녘, 마음 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