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에서
자오록 봄비에 젖은 모래톱
내리기 시작한 어둠 밟으며
금싸라기 고향에 온 듯 옷섶 연 시인들
오유권의 농민소설과
떠오르는 신예, 김이태의
"궤도를 이탈한 별"을 얘기한다
처참하게 부서지는 청춘을 배경으로
존재법을 묻고 있는 그녀의 소설처럼
들끓는 20대의 치기 어린 열정과
좌절한 40대의 고통스런 시국을
몇 줄의 글에 남길 수 있을지
담담히 생각들을 나누며 걷는다
복국집 漁家에서 뜨겁게 마신 국물과
통나무집 Kim's Cab!in의 커피향기에 취해
상처 없는 젊음은 맹물이라고
찢어졌던 우리들의 청춘을 두둔한다
집어등 훤히
밤바다를 비추는 멸치잡이 배들
히끗히끗 야산의 잔설로 누운 배꽃들
알싸하게 가슴 훑는 진하의 봄밤
-진경옥
그림-생 마리의 어선 고흐
진경옥님의 글 [작별] | |
번호 : 7453 글쓴이 : arte |
조회 : 81 스크랩 : 0 날짜 : 2005.10.03 21:00 |
가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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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풍 영 월
산청군 휴천면 백무동 계곡의 청정수가 경호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 잠든 수면 위로 파문을 그리며 쉴새 없이 입질하는 피라미일까 은어일까 입 큰 메기일까 잠시 앉았던 백로가 날아가고 짙은 안개에 가린 백중달이 떴다 반딧불 따라 기슭으로 눈이 가자 취한 듯 휘어진 배롱나무 큰물의 흔적인 듯 비닐이며 옷가지가 붉은 배롱꽃을 가리듯 걸려 있다 둑이 터지고 성난 황톳물이 키 높이로 아우성쳤을 경호강 여태도 군데군데 누워 못 일어나는 벼들 떠내려 와 여기 저기 널린 세간들 시름겨운 어른들은 일찍 자리에 들었는지 요요(寥寥)히 깊고 있는 휴천면 늦은 배롱꽃이 일없이 지고 있다. 청 학 동 행 안개비 속을 걸어 지리산에 든다 청정한 대숲이 과거를 씻기우며 다소곳하다 길은 오를수록 가파르고 길은 오를수록 막막해 젖은 목청 휘여 휘여 숨은 산새 깨우며 간다 푸드득 빗물 털며 산새 날아간 능선 그 너머 추억 속의 묵정밭에 나를 놓는다 낯선 세상 와르르 쏟으며 어디론가 숨고 싶던 한 시절이 도인촌 헐거운 초가에 잠시 얹힌다 자오록 안개비 사이로 고로쇠 물병 몇 개 빈 패트병도 몇 개 사고 팔 게 뭐가 더 있는지 팔리지 않은 산채다발 그 곁에 붙어 앉아 속수무책 바라본다 왕소금 푸슬푸슬 갈 앉는 청학동을. 별같이 詩 진경옥 불빛이 보인다 일렁거리는 촛불이 보인다 석유램프가 보인다 램프의 찌든 그을음도 보인다 절대빈곤의 저 50년대 꺼졌다 켜지고 켜졌다 금새 꺼지는 30촉의 희미한 알 전등이 보인다 그만 자거라 어깨 좁은 어머니 뒷모습이 보인다 이슥토록 글을 읽으며 이유 없이 눈시울 뜨겁던 그 많은 눈물 강물이 되었을까 촛불처럼 램프처럼 깜박이는 30촉 알 전등처럼 캄캄할 때마다 불빛이 보인다 길 잃을 때마다 길을 비춘다 별같이 눈물같이 반짝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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