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진경옥 시 편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29. 18:11
진하에서-진경옥 | 시의 이름으로
2007.01.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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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하에서




             자오록 봄비에 젖은 모래톱

             내리기 시작한 어둠 밟으며

             금싸라기 고향에 온 듯 옷섶 연 시인들

             오유권의 농민소설과

             떠오르는 신예, 김이태의

             "궤도를 이탈한 별"을 얘기한다

             처참하게 부서지는 청춘을 배경으로

             존재법을 묻고 있는 그녀의 소설처럼

             들끓는 20대의 치기 어린 열정과

             좌절한 40대의 고통스런 시국을

             몇 줄의 글에 남길 수 있을지

             담담히 생각들을 나누며 걷는다

             복국집 漁家에서 뜨겁게 마신 국물과

             통나무집 Kim's Cab!in의 커피향기에 취해

             상처 없는 젊음은 맹물이라고

             찢어졌던 우리들의 청춘을 두둔한다

             집어등 훤히

             밤바다를 비추는 멸치잡이 배들

             히끗히끗 야산의 잔설로 누운 배꽃들

             알싸하게 가슴 훑는 진하의 봄밤



             -진경옥

 

              그림-생 마리의 어선 고흐 

 

진경옥님의 글 [작별]
번호 : 7453   글쓴이 : arte
조회 : 81   스크랩 : 0   날짜 : 2005.10.03 21:00




안녕

떠나는 이의 어깨자락에

무겁게 내려온 당신의 얼굴

안녕,하고 마주 받아

깜박이는 내게도

떨어져 오는것은

여전히 어두운 당신의 얼굴

보는이 없이 세상은

조용히 저물어가고

맺히는 이슬

설운 바람도

돌아서면 잠깐 서리는 안개

영원한것은 끝내

보이지 않는것

내리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그늘도 없이 흔드는

우리들의 손

안녕.

안녕.

-진경옥님의 글-

 

 

 

arte

가을편지






가을이 오고


사람들은 다투어 편지를 쓴다.


눈부신 한 때 다 떠나고


무성하던 잎새 덧없이 쓰러질 때


문득 생각나는 이별 하나를


빈 가슴 안에 부질없이 묻어두고


사람들은 고적하게 편지를 쓴다.


들판은 넉넉히 누울 자세를 하고


떠났던 意慾 절룩이며 돌아와


따뜻한 불빛 아래 쓰는 편지는


뜨거우나 늘 혼자다.


방황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비로소 눈뜨는 외로움의 가시를


세상 끝 헤매다 돌아온 이에게


바치리라, 은밀히 편지를 쓴다.

 

 

겨울비

진경옥

겨울비에 젖으며

한 잔의 술

간절히 기다린다.

입술보다도 눈

눈보다도 가슴으로

전율해 오는 취기

뜨거운 사랑을 마시고

돌아선 사랑도 마신다.

취할수록 돌이킬 수 없는

한 순간의 절망

시간도 닿지 않고

소리도 닿지 않는

망각의 저편으로 떨어져 내리

차갑게 창틀을 두드리는

겨울비.


추억은[진경옥]
번호 : 37144   글쓴이 : 무명도
조회 : 114   스크랩 : 0   날짜 : 2001.04.02 03:31
** 추억은 ** 죄없는 우리 눈을 푸르게 적시고 추억은 겨울 바다의 가장 진한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작은 섬 바위의 한 끝을 때리고 추억은 가끔 몸서리치는 물살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보랏빛 라일락의 꽃잎 속에서 떠도는 香으로 추억이 날고 있을 때 취한 우리는 4월이 다 가도록 헤매고 있었다. 人生의 어느 깊이에 내려가면 썰물로 빠져 나간 동굴은 나타나고 메눌 수 없는 동굴 속에 추억이 자라고 있었다. *진경옥..현대시학으로 등단..한국시협회원* *시집..불을 스쳐가는 작은 바람..풍경을 지우면서..*

음 풍 영 월



산청군 휴천면
백무동 계곡의 청정수가
경호강으로 흘러드는 합수지
잠든 수면 위로 파문을 그리며
쉴새 없이 입질하는
피라미일까 은어일까 입 큰 메기일까
잠시 앉았던 백로가 날아가고
짙은 안개에 가린 백중달이 떴다
반딧불 따라 기슭으로 눈이 가자
취한 듯 휘어진 배롱나무
큰물의 흔적인 듯 비닐이며 옷가지가
붉은 배롱꽃을 가리듯 걸려 있다
둑이 터지고 성난 황톳물이
키 높이로 아우성쳤을 경호강
여태도 군데군데 누워 못 일어나는 벼들
떠내려 와 여기 저기 널린 세간들
시름겨운 어른들은 일찍 자리에 들었는지
요요(寥寥)히 깊고 있는 휴천면
늦은 배롱꽃이 일없이 지고 있다.
 
청 학 동 행



안개비 속을 걸어 지리산에 든다
청정한 대숲이
과거를 씻기우며 다소곳하다
길은 오를수록 가파르고
길은 오를수록 막막해
젖은 목청 휘여 휘여
숨은 산새 깨우며 간다
푸드득 빗물 털며 산새 날아간 능선
그 너머 추억 속의 묵정밭에 나를 놓는다
낯선 세상 와르르 쏟으며
어디론가 숨고 싶던 한 시절이
도인촌 헐거운 초가에 잠시 얹힌다
자오록 안개비 사이로
고로쇠 물병 몇 개 빈 패트병도 몇 개
사고 팔 게 뭐가 더 있는지
팔리지 않은 산채다발
그 곁에 붙어 앉아 속수무책 바라본다
왕소금 푸슬푸슬 갈 앉는 청학동을.

별같이   
  


                

                              詩  진경옥
                     

불빛이 보인다

일렁거리는 촛불이 보인다

석유램프가 보인다

램프의 찌든 그을음도 보인다

절대빈곤의 저 50년대

꺼졌다 켜지고 켜졌다 금새 꺼지는

30촉의 희미한 알 전등이 보인다

그만 자거라

어깨 좁은 어머니 뒷모습이 보인다

이슥토록 글을 읽으며

이유 없이 눈시울 뜨겁던

그 많은 눈물 강물이 되었을까

촛불처럼 램프처럼

깜박이는 30촉 알 전등처럼

캄캄할 때마다 불빛이 보인다

길 잃을 때마다 길을 비춘다

별같이 눈물같이 반짝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