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박용철 시 편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26. 17:15
'박용철' 프로필 


이름 : 
박용철

출생 : 
1907년 6월 21일

직업 : 
시인

학력 : 
도쿄외국어대학
배재고등보통학교

1904. 6. 21 전남 광산~1938. 5. 12.

시인.

예술의 순수성을 내세운 시를 썼고 외국의 시와 희곡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에 입학했다가 바로 배재학당으로 전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몇 달 앞둔 1920년 자퇴해 귀향했다. 그뒤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에 입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귀국했다. 연희전문학교에 임학했으나 몇 달 뒤 자퇴해 문학에만 전념했다. 1938년 5월 후두결핵으로 죽었다.

그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오야마 학원 시절 김영랑과 사귀면서부터이다. 1930년 김영랑·정지용과 함께 시동인지 〈시문학〉을 창간해 편집과 재정을 맡아보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하게 되었다. 〈시문학〉 창간호에 〈싸늘한 이마〉·〈떠나가는 배〉·〈비내리는 밤〉 등을 발표했다. 1931년 〈문예월간〉에 이어 1933년 〈문학〉을 펴내 편집을 맡아보면서 번역가·비평가로 활동했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일하면서 〈정지용시집〉·〈영랑시집〉을 펴냈으며, 해외문학과 극예술연구회에 참여해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1935년 12월에 발표한 〈올해문단총평〉에서는 김기림과 임화의 시를 비판하고 정지용의 시를 옹호해 임화와 기교주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뒤에 발표한 평론〈시적 변용에 대하여〉(삼천리 문학, 1938. 11)는 그의 시론의 뿌리를 보여주는 평론으로서 계급주의와 민족주의 문학 모두를 배격하고 존재로서의 시론, 즉 선시적인 것에 더욱 의미를 두었다. 비평가는 예술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청우계(晴雨計) 구실을 해야 한다고 했으며 M. 하우스만의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비평을 주로 했다. 또한 서구문학사조에 강한 영향을 받던 당시의 문단에 민족언어의 완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죽은 뒤 시문학사에서 〈박용철전집〉(1939) 3권을 펴냈고 광주공원에 김영랑의 시비와 함께 그의 시비도 세워졌다.


 

 

떠나가는 배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안윽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가치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뫼ㅅ부리 모양
주름쌀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닛는 마음
 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도라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네.
압 대일 어덕인들 마련이나 잇슬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시문학} 창간호, 1930.3>

* 닛는 : 잊는
* 희살짓는다 : 남의 일을 짓궂게 훼방 놓는다는 뜻으로 '헤살짓는다'의 전라도 사투리.



1930년대에 우리 민족은 일제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유랑의 길을 떠났다. 일제의 탄압은 특히 젊은 사람들의 의욕을 꺽고 실의에 빠지게 하기에 청년들은 참다운 일을 찾아 '앞 대일 언덕'도 없이 떠나가게 된다. 고국을 떠나는 사정이 타의에 의해서이기 때문에 '헤살짓는다'라고 말한다. 망명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국을 떠나는 배로 비유하면서 울적한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성격 : 서정적, 애국적, 낭만적(우수적), 감상적, 독백적
제재 : 이별. (망명으로 떠나는 배)
주제 : ① 고향과 정든 사람들을 떠나는 슬픔. (일제하 망명의 울분과 비애)
②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나는 우울한 심정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시인. 본관은 충주. 아호는 용아(龍兒).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출신. 하준(夏駿)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고광고씨(高光高氏, 혹은 長澤高氏)이다.
4남매 중 장남.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하였다가 바로 배재학당(培材學堂)으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1920년 배재학당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 귀향하였다.
그뒤 일본 동경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동경외국어학교 독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 몇 달 만에 자퇴하였다.
16세 때 울산김씨 회숙(會淑)과 혼인하였다가 1929년 이혼하고, 1931년 5월 누이동생 봉자(鳳子)의 이화여자전문학교 친구였던 임정희(林貞姬)와 재혼하였다. 재학중 수리과목에 재능을 보였는데,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오야마학원 재학 때에 사귄 김영랑(金永郎)과의 교우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문학 이외의 경력은 전혀 없다.
1930년대에는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 詩文學》 3권, 1931년에는 《문예월간 文藝月刊》 4권, 1934년에는 《문학 文學》 3권 등 도합 10권을 간행하였다.
한편으로는 그가 주재하였던 시문학사에서 1935년 같은 시문학동인이었던 정지용(鄭芝溶)의 《정지용시집》과 김영랑의 《영랑시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문단활동으로는 자신이 주축이 된 시문학동인으로서의 활동과 ‘해외문학파’ 및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하여 연극공연을 위하여 입센 원작의 《인형의 집》 등 몇 편의 희곡을 번역하였다. 정지용과 시집 및 문예지를 간행하는 등 문학활동에 전념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집은 내지 못하고 1938년 서울에서 후두결핵으로 죽었다.
그의 시작활동은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떠나가는 배〉·〈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싸늘한 이마〉·〈비내리는 날〉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뒤로 《문예월간》·《문학》 및 기타의 잡지에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발표되지 않고 유고로 전하여지다가 뒤에 전집에 수록된 작품도 상당수에 달한다. “나 두 야 간다·나의 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거냐·나 두 야 간다”로 시작되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는 어딘가 정박지를 찾아 떠나가는 ‘배’에다 인생을 비유한 작품이다.
즉, 인정과 고향을 되돌아보는 현실과 ‘삶’의 행정(行程)속에서 아무런 마련도 없이 또다른 정박지를 향하여 떠나가는 이상과의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1938년 《삼천리문학 三千里文學》에 발표된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널리 읽혀지고 있는 그의 대표적인 평론으로서 그의 시작이론(詩作理論)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시는 같은 시문학동인인 정지용이나 김영랑의 시를 못 따르지만, 《시문학》·《문예월간》·《문학》 등 문예지를 간행하였고 방대한 역시편(譯詩篇) 등을 통하여 해외문학의 전신자적(轉信者的)구실을 하였다는 점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큰 공적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서구문학사조에 편향되어 혼류를 이루었던 1920년대 문단을 크게 전환시켜 ‘살’과 ‘피’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보다 높은 차원의 시창작, 즉 ‘민족언어의 완성’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유해는 고향 송정읍 우산리에 안장되었고, 광주공원에 영랑의 시비와 함께 그의 시비도 건립되어 있다. 시비에는 대표작 〈떠나가는 배〉의 한 절이 새겨져 있다.
유작집으로 《박용철전집》 2권이 각각 1939·1940년 동광당서점에서 간행되었고, 대표적 평론으로 〈효과주의비평론강 效果主義批評論綱〉(1931)·〈문예시평 文藝時評〉(1931) 등이 있다.

 

 

바람부는 날                                            
 

오늘따라 바람이 저렇게 쉴새없이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것을 여위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단 말인가.


풀잎에 나뭇가지에 들 길에 마을에

가을날 잎들이 발갛게 쏠리듯이

나는 오늘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것을 여희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인가.


아! 지금 바람이 저렇게 못 견디게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또 내가 내게 없는 모든것을 깨닫고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인가.

 

 

 


고향                                                     


고향은 찾어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 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로 옛 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 하리.

 

하늘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보랴

남겨둔 무엇일래 못 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생 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앗긴

옛 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이대로 가랴마는                                       


설만들 이대로 가기야 하랴마는

이대로 간단들 못 간다 하랴마는


바람도 없이 고이 떨어지는 꽃잎같이

파란 하늘에 사라져 버리는 구름쪽같이


조그만 피로 지금 수떠리는 피가 멈추고

가는 숨길이 여기서 끝맺는다면-


아- 얇은 빛 들어오는 영창아래서

차마 흐르지 못하는 눈물이 온 가슴에 젖어나리네. 

 

 

 


너의 그림자                                            


하이얀 모래

가이 없고


적은 구름 우에

노래는 숨었다
 

아지랑이 같이 아른대는
 
너의 그림자

 


그리움에

홀로 여위어 간다

 

 

 


비                                                        
 
비가 조록조록 세염없이 나려와서···

쉬일 줄도 모르고 일도 없이 나려와서···

나무를 지붕을 고만히 세워놓고 축여준다···

올라가는 기차소리도 가즉히 들리나니···

비에 흠출히 젖은 기차모양은 애처롭겠지···

내 마음에서도 심상치 않은 놈이 흔들려 나온다···


비가 조록조록 세염없이 흘러나려서···

나는 비에 흠출 젖은 닭같이 네게로 달려가련다···

물 건너는 한줄기 배암같이 곧장 기어가련다···

검고 붉은 제비는 매끄름히 날아가는 것을···

나의 마음은 반득이는 잎사귀보다 더 한들리어···

밝은 불 켜놓은 그대의 방을 무연히 싸고돈단다···


나는 누를 향해 쓰길래 이런 하소를 하고 있단가···

이러한 날엔 어는 강물 큰애기 하나 빠져도 자취도 아니남을라···

전에나 뒤에나 빗방울이 물낱을 튀길 뿐이지···

누가 울어보낸 물 아니고 섧기야 무어 설으리마는···

저기 가는 나그네는 누구이길래 발자취에 물이 괸다니···

마음 있는 듯 없는 듯 공연한 비는 조록조록 한결같이 나리네···

 

 

 


눈은 내리네                                              


이 겨울의 아침을

눈은 내리네

 

저 눈은 너무 희고

저 눈의 소리 또한 그윽하므로

 

내 이마를 숙이고 빌까 하노라

임이여 설운 빛이

그대의 입술을 물들이나니

그대 또한 저 눈을 사랑하는가

 

눈은 내리어

우리 함께 빌 때러라.


 

 

 

싸늘한 이마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한 즐검이랴
 
 

 


절망                                                     
 
나는 이제 절망의 흙속에

파묻혀 엎드린 한 개의 씨

아! 한없는 어둠……

과 고요……

그러나 그러나

천 천 이 천 천 이

나는 고개를 든다.

천천이 천천이

그러나 힘있게 우으로

나는 머리를 밀어 올린다……

나는 숨을 쉬었다. 지구를 나는 뚫었다-

나는 팔을 뻗힌다-

나는 다리를 뻗힌다-

아! 나는 아침해 비친 언덕 우에

두팔 쳐들어 왼몸 훨씬 펴고 서 있는

오! 서 있는 사람이로다.

 

 

 


기다리는 때                                            

 

솔사이를 어른어른

올라오는 그의 얼굴

얼핏 내려다본 나의 마음

…… …… …… ……

살짜기 등지고 앉어서

반이운 꽃을 어여뻐 하는체

피여나는 꽃을 어여삐 하는체

뒤에 들리는 발자취만

…… …… 기다리네

…… …… …… ……

…… …… 와 멈추는 발자취

귀뒤에 들리는 숨소리

무슨 작난을 하려는 듯

…… …… …… ……

자석에 끌리는 바늘같이

햇발따라 송이같이

틀었든 내얼굴

하염없이 돌아가니……

오 나의 해……별……달   

…… …… 나의 사랑!

 

 

 


어디로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쉬임없이 궂은비는 나려오고

지나간 날 괴로움의 쓰린 기억

내겐 어둔 구름되어 덮히는데
                        
바라지 않으리라는 새론희망

생각지 않으리라든 그런생각

번개같이 어둠을 깨친다마는

그대는 닿을 길 없이 높은 데 계시오니
                       
 
아-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비나리는 날                                            

                                        
세엄도 업시 왼하로 나리는 비에

내 맘이 고만 여위어 가나니

앗가운 갈매기들은 다 저저 죽엇겠다
             
 


비에 젖은 마음                                        

 

불도 없는 방안에 쓰러지며

내쉬는 한숨따라 '아 어머니!' 석기는 말

모진 듯 참어오는 그의 모든 설어움이

공교로운 고임새의 문허져 나림같이

이 한말을 따라 한번에 쏟아진다.
 

 

 

 

 

 

 

 

박용철 朴龍喆 (1904. 6. 21 - 1938. 5. 12)                                                    


호 용아(龍兒). 광주 광산(光山) 출생.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도일, 아오야마[靑山]학원 중학부를 거쳐서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에 입학했으나, 간토[關東] 대지진으로 귀국하여 연희전문(延禧專門)에 입학, 수개월 후에 자퇴하고 문학에 전념했다. 1930년에 김영랑(金永郞)과 함께 《시문학(詩文學)》을 창간, 이 잡지 1호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떠나가는 배》 《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등을 발표했다.

 

《시문학》에 이어 《문예월간(文藝月刊)》 《문학》 등을 계속해서 발간하고 시와 함께 많은 번역시, 그리고 《인형의 집》을 비롯하여 《빈의 비극》 《베니스의 상인》 등의 희곡을 번역했다. 1931년 이후로는 비평가로서도 크게 활약하여 《효과주의 비평논강(效果主義批評論綱)》 《조선문학의 과소평가》 《시적 변용(詩的變容)에 대하여》 등을 발표, 계급주의와 민족주의를 동시에 배격하여 임화(林和)와 논전을 벌이기도 했다. 사후 1년 만에 《박용철 전집》(전2권)이 간행되었으며, 2001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詩的 變容에 대하여

                                              박 용 철朴 龍 喆(1904~1938)

                                                                                  시인. 아호 龍兒                                                                                   전남 光山 출생

                                                                                  일본 東京 外國語學校 독문과를 거쳐

                                                                                  연희전문에서 修學(1923)


 핏속에서 자라난 파란꽃, 흰꽃, 혹시는 험하게 생긴 독이毒栮. 이것들은 저희가 자라난 흙과 하늘과 기후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 그럴 필요가 있으랴. 그러나 이 貞淑한 따님들을 그저 벙어리로 알아서는 안 된다. 사랑에 취해 홀려 듣는 사람의 귀에 저희는 저의 온갖 비밀을 쏟기도 한다. 저희는 다만 지껄이지 않고 까불대지 않을 뿐, 피보다 더욱 붉게 눈보다 더욱 희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

 

 우리의 모든 체험은 피 가운데로 溶解한다. 피 가운데로 피 가운데로. 한 낱 감각과 한 가지 구경과, 구름같이 피어올랐던 생각과, 한 근육의 움직임과, 읽은 시 한 줄, 지나간 激情이 피 가운데 알아보기 어려운 용해된 기록을 남긴다. 지극히 예민한 感性이 있다면 옛날의 전설같이 우리의 맥을 짚어봄으로 우리의 呼吸을 들을 뿐으로 얼마나 길고 가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랴.


 흙 속에서 어찌 풀이 나고, 꽃이 자라며, 버섯이 생기고, 무슨 솜씨가 핏속에서 시를 시의 꽃을 피어나게 하느뇨? 變種을 만들어 내는 園藝家, 하느님의 다음 가는 創造者. 그는 실로 교묘하게 배합하느니라. 그러나 몇 곱절이나 더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랴!

 

 巧妙한 配合, 考案, 技術. 그러나 그 위에 다시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되는 變種 발생의 찬스.


 문학에 뜻 두는 사람에게 “너는 먼저 쓴다는 것이 네 心靈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일인가를 살펴보라. 그리고 밤과 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네 스스로 물어보라. 그 글을 쓰지 않으면 너는 죽을 수밖에 없는가.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죽어도 못 배길 그런 內心의 요구가 있다면 그때 너는 네 생애를 이 必然性에 의해서 건설하라.”고 이런 무시무시한 권고를 한 독일의 詩人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브릭게의 手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全生涯를 두고 될 수 있으면 긴 생애를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意味와 甘味를 모으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러면 아마 최후에 겨우 열 줄의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詩는 보통 생각하는 것과 같이 단순히 애정이 아닌 것이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 한 가지 시를 쓰는 데도 사람은 여러 都市와 사람들과 물건들을 봐야 하고, 짐승들과 새의 날아감과 아침을 향해 피어날 때의 작은 꽃의 몸가짐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았던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던 이별, 이러한 것들과 지금도 분명치 않은 어린 시절로 마음 가운데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여러 밤의 사람의 기억(하나가 하나와 서로 다른), 陣痛하는 여자의 부르짖음과 아이를 낳고 해쓱하게 잠든 여자의 기억을 가져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에도 있어 봐야 하고, 때때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방에서 창을 열어 놓고 죽은 시체를 지켜도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억을 가짐으로 넉넉지 않다. 기억이 이미 많아진 때 기억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말할 수 없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記憶만으로는 시가 아닌 것이다. 다만 그것들이 우리 속에 피가 되고 눈짓과 몸가짐이 되고 우리 자신과 구별할 수없는 이름 없는 것이 된 다음이라야, 그때에라야 우연히 가장 귀한 시간에 시의 첫 말이 그 한가운데서 생겨나고 그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열 줄의 좋은 시를 다만 기다리고 일생을 보낸다면 한 줄의 좋은 시도 쓰지 못하리라. 다만 하나의 큰 꽃만을 바라고 일생을 바치면 아무런 꽃도 못 가지리라. 최후의 한 송이 극히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는 그보다 작을지라도 덜 고울지라도 數多히 꽃을 피우며 一生을 지내야 한다. 마치 그것이 최후의, 최대의 것인 것 같이 최대의 情熱을 다하여. 주먹을 펴면 꽃이 한 송이 나오고, 한참 心血을 모아 가지고 있다가 또한번 펴면 또 한 송이 꽃이 나오고 하는 이러한 奇術師와 같이.


 나는 書道를 까맣게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서도를 예로 들어 이야기할 욕망을 느낀다. 서도의 대예술가가 그 일생의 절정에 섰을 때에 한번 붓을 들어서 한 글자를 이루었다고 하자. 怪石같이 뭉치고 범같이 쭈그린 이 한 자. 최고의 知性과 雄志를 품었던 한 생애의 전 체험이, 한 人格이 온통 거기에 不滅化하였다. 이것이 주는 눈짓과 부르는 손짓과 소곤거리는 말을 나는 모른다. 나는 그것이 그러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유추할 뿐이다. 이 무슨 불행일 것이냐.


 어떻게 하면 한 생애가 한 정신이 붓대를 타고 가는 털을 타고 먹으로서 종이 위에 나타나 웃고 손짓하고 소곤거릴 수 있느냐. 어쩌면 한참 만에 손을 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나오는 奇術에 다다를 수 있느냐?

 우리가 처음에는 先人들의 그 부러운 奇術을 보고 서투른 자기 暗示를 하고 念願을 외우고 땀을 흘리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이다. 그저 빈주먹을. 그러는 중에 어쩌다가 자기암시가 성공이 되는 때가 있다. 비로소 주먹 속에 드는 조그만 꽃 하나. 염화시중의 미소요, 以心傳心의 秘法이다.


 이래서 손을 펼 때마다 꽃이 나오는 확실한 경지에 다다르려면 무한한 고난과 수련의 길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한번 밤에 흙을 씻고 꾸며 놓은 무대 위에 흥행하는 奇術師로 올라설 때에 그의 손에서는 다만 假花 조각이 펄펄 날릴 뿐이다. 그가 뿌리를 땅에 박고 曠野에 서서 大氣를 호흡하는 나무로 서 있을 때만 그의 가지에서는 生命의 꽃이 핀다.


 詩人은 진실로 우리 가운데서 자라난 한 포기 나무다. 청명한 하늘과 적당한 온도 아래서 무성한 나무로 자라나고 長霖과 曇天 아래서는 험상궂은 버섯으로 자라날 수 있는 기이한 식물이다. 그는 지질학자도 아니요, 기상대원일 수도 없으나 그는 가장 강렬한 생명에의 의지를 가지고 빨아올리고 받아 들이고 한다. 기쁜 태양을 향해 손을 뻗치고 험한 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그는 다만 기록하는 이상으로 그 기후를 생활한다. 꽃과 같이 자연스러운 詩, 꾀꼬리같이 흘러나오는 노래, 이것은 도달할 길 없는 彼岸을 理想化한 말일 뿐이다. 비상한 苦心과 노력이 아니고는 그 생활의 精을 모아 표현의 꽃을 피게 하지 못하는 비극을 가진 식물이다.

  (後略)

            1938년「三千里文學」에 수록

 

고향(故鄕) - 박용철
번호 : 553   글쓴이 : 기다림114
조회 : 27   스크랩 : 0   날짜 : 2006.11.23 22:07

           고   향 

 

# 시 전문 읽기

 

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느진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옛 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우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 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아 무얼하리.

 

하늘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 보랴
남겨 둔 무엇일래 못 잊히우랴
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일이언만 -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앗긴
옛 사랑의 생각 같은 쓰라린 심사여라.


# 작품 개관


일제 강점기의 억압 받던 현실 속에 떠돌다가 돌아온 고향에서, 너무 많이 변해 버린 모습에 느끼는 허탈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짓밟힌 우리 민족의 고향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잘 표현되고 있지요.

 

 

# 내용 연구

 

(1)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2)일가 흩어지고 집 흐느진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3)옛 자리 바뀌었을라.

 

(4)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우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 온 지 (5)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아 무얼하리.


하늘가에 새 기쁨을 그리어 보랴
남겨 둔 무엇일래 못 (6)잊히우랴
(7)모진 바람아 마음껏 불어쳐라
(8)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9)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 (10)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일이언만 -
서로의 굳은 뜻을 (11)남께 앗긴
(12)옛 사랑의 생각 같은 쓰라린 심사여라.
 

 

(1) 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 돌아온다 해도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고향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허

                           탈감과 안타까움이 드러나고 있으며, 1연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이미 너무 많이 변

                           해 버린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일가 흩어지고 집 흐느진데 : ‘흐느진데’는 ‘허물어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고 . 가족들도 모두

                           흩여지고 없고 집마저 다 허물어진 고향. 즉 이미 변해 버린 고향의 모습이다.
(3) 옛 자리 바뀌었을라 : 시냇물조차도 흐르던 그 옛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으로서. 변해

                           버린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표현.

 

                                        -1연의 핵심 내용 : 변해 버린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

 

(4)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미래를 향한

                                꿈을 접고 구름과 같이 살아지는 대로 삶을 살아갔던 모습으로 볼 수 있으며, 무덤

                                이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된다는 것에서 현실에서의 상실과 절망을 생각해볼 수   

                                 있고 꿈을 잃고 현실 속에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5) 여남은 해 : ‘여남은’ 이란 ‘10개 가량’의 수량을 의미하므로 여기에서는 ‘여러 해’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다.

 

                                           -2연의 핵심 내용 : 꿈을 잃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

 

(6) 잊히우랴 : ‘잊혀지지 않겠는가’, 곧 ‘잊혀진다’는 뜻.
(7) 모진 바람 : 화자에게 고통을 주는 현실의 괴로움을 가리킴
(8) 흩어진 꽃잎 쉬임 어디 찾는다냐 : ‘쉬임’이란 ‘쉼’, 곧 ‘쉴 곳’을 의미하며, 모진 바람으로 인해 흩어져

                         서 날리는 꽃잎들이 쉴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요. 무기력하게 살아가다가 돌아온 고향

                         에서도 쉴 곳을 찾지 못하는 화자의 심정이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람에 실려 다니

                         는 꽃잎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3연의 핵심 내용 : 현실에서 느끼는 괴로움

 

(9)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 생각 :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고향이 변해 버린 이유가 드러나

                          고 있으며, 고향을 짓밟는 험한 발이란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고려했을 때 일제 시대

                          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0)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일 : 고향을 떠나 떠돌 때에는 달려갈 정도로 간절히 그리워했던 고향.
(11) 남께 앗긴 : ‘남에게 빼앗긴’의 뜻이 되겠습니다. 험한 발이 일제 시대를 상징한다는 점을 고려한다

                          면 여기서의 남 역시 그러한 일제로 볼 수 있다.
(12) 옛사랑의 생각 같은 쓰라린 심사 : 4연 2행에서 언급했던 간절한 심정이었으나 정작 고향에 돌아와

                         서 느끼는 심정은 헤어진 옛사랑에 대한 기억처럼 고통스럽고 아픈 느낌이며, 2행과

                         대조되어 고향에 돌아와 느끼는 허탈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4연의 핵심 내용 :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 느끼는 허탈감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주제 : 짓밟힌 고향에 대한 안타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