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정일근 시편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25. 17:56
'정일근' 프로필 


 


이름 : 
정일근

출생 : 
1958년 7월 28일

출신지 : 
양산

직업 : 
시인

학력 : 
경남대학교

경력 : 
시힘 동인, 문화공간 다운재 운영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수록

수상 : 
2003년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2001년 시와 시학상 젊은시인상

 

 

사는 맛 ... 정일근

번호 : 624   글쓴이 : 여정
조회 : 27   스크랩 : 1   날짜 : 2007.01.22 15:07

      사는 맛 / 정일근
      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복어가 아니다, 독이 빠진 복어는 무장 해제된 생선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 요릿집이 있다고 한다,조금씩 조금씩 독의 맛을 들이다 고수가 되면 치사량의 독을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고수가 먹는 것은 진짜 복어다 맛이란 전부를 먹는 일이다 사는 맛도 독 든 복어를 먹는 일이다 기다림, 슬픔, 절망, 고통, 고독의 독 맛 그 하나라도 독으로 먹어 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사는 맛은 독이 빠진 복어를 먹고 있을 뿐이다.
        * 시집<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중에서. 시학. 2006년.

        Live in Concert in Feldkirch (Schubertiade), Austria, 1991
        (Piano : András Schiff)
        Schubert : 'Wasserflut' (넘쳐 흐르는 눈물)
        Dietrich Fischer-Dieskau,

     

     

    사랑론/정일근



    사랑을 사랑이라 하면
    곧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해도 곧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도
    아니고 사랑이 아님도 아니다
    사랑은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면서 사랑이다

    사랑아,
    사랑이 아니면서 사랑인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정일근 시인의 시노래 - 낮잠 (석광희 곡 울림 노래)
    번호 : 129   글쓴이 : 제노
    조회 : 31   스크랩 : 2   날짜 : 2005.08.21 09:09

      낮 잠 정일근 시 석광희 곡 울 림 노래 파~아란 물속에서 보는 하늘은 요술도화지 솜털 구름 울퉁 불퉁 기차바퀴되어 굴러가네요. 물고기와 함께 놀다 냇가 그늘에 누워 보는 여름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숨어 따뜻한 돌에 귀를 대면은 욜랑 욜랑 바람이 찾아와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고 누나가 다니는 학교 풍금 소리에 스르르 낮잠이 듭니다.

       
       
      사랑 -이름 1 / 정일근
      번호 : 149   글쓴이 : 북회귀선
      조회 : 22   스크랩 : 0   날짜 : 2007.01.19 20:43
      봄, 엄나무 가시 사이 부풀어 오르는

      정일근


      화려하게 꽃 피우는 것만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온 몸에 가시 달고 섰는 엄나무
      은현리 엄나무도 봄을 기다린다
      잘린 가지 끝이나 가시와 가시 사이
      거칠고 좁은 황무지 같은 살결에
      화상 입은 듯 스스로 붉은 상처 내며
      엄나무는 진실로 봄을 기다렸다
      예쁜 봄꽃들 꽃 피우고 새잎 내밀 때
      엄나무 제 아픈 상처 찢고
      착하고 푸른 새순 밀어 올릴 것이다
      향기로운 꽃은 독이 될 수 있지만
      가시 가진 것들이 피우는 어린순은
      생명을 살리는 약이 된다 했느니
      엄나무 가시 사이 부풀어 오르는 봄처럼
      가장 엄격한 자세로 겨울을 견딘 것들에게
      가장 뜨거운 봄은 찾아온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 정일근 詩


      제 1 신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저희들끼리 풀리며 쓸리어가는
      얼음장 밑 찬 물소리에도 열 손톱들이 젖어 흐느끼고
      깊은 어둠의 끝을 헤치다
      손톱마저 다 닳아 스러지는 謫所의 밤이여,
      강진의 밤은 너무 깊고 어둡구나.
      목포, 해남, 광주 더 멀리 나간 마음들이
      지친 봉두난발을 끌고 와
      이 악문 찬 물소리와 함께 흘러가고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이 깎고 가는 바람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제 2 신

      이 깊고 긴 겨울밤들을 예감했을까
      봄날 텃밭에다 무우를 심었다.
      여름 한철 노오란 무우꽃이 피어
      가끔 벌, 나비들이 찾아와 동무해주더니
      이제 그 중 큰놈 몇 개를 뽑아
      너와지붕 추녀 끝으로 고드름이 열리는 새벽까지
      밤을 재워 무우채를 썰면, 절망을 썰면,
      보은산 컹컹 울부짖는 승냥이 울음소리가 두렵지않고
      유배보다 더 독한 어둠이 두렵지 않구나.
      어쩌다 폭설이 지는 밤이면
      등잔불을 어루어 詩經講義補를 엮는다.
      학연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을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四宣齊에 앉아 시 몇 줄을 읽으면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 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바다도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

       

      ~~~~~~~~~~~~~~~~~~~~~~~~~~~~~~~~~~~~~~~~~`

       

      정일근 시인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 , 이 계절에 읽으면 좋은 듯 하여 올려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이백년 수 년 전에 다산선생께서 유배지에서 감당해야 하셨던 그리움과 외로움, 통한과 절망을
      시인은 너무도 절절하게 그려 내었군요.
      시가 술술술...읽히는 한편으로 어떤 대목에 이르러선 가슴이 너무나 아려 숨이 턱 멎을정도로군요.
      그런 질곡을 떨치고 등잔불을 어루어 詩經講義補 을 엮는 다산의 정신이 환하게 비치는 듯도 하구요.
      학연이  아버지로 부터 이런 편지를 받자옵는 심정은 어떠할까요? ㅡ  (뜰에봄)

      사랑 -이름 1



      강원도 태백 너덜샘* 펑펑 솟는 물 위로 그대에게 사랑의 편지 쓰나니
      그 물 흘러 낙동강 일천 삼백 리 물길 따라 흐르고 흘러 그대의 수도꼭
      지 끝에 가슴 두근두근 거리며 닿는다면
      그대 수도꼭지 틀어 한 잔의 물을 받다가 혹은 세숫물을 받아 놓다가 물
      위에 빼곡하게 떠 있는 편지 읽으며 내 이름 떠올린다면 내 이름 떠올리
      다 귓볼 빨갛게 타오르면


     

    매생이/정일근
    번호 : 8276   글쓴이 : 벽계수
    조회 : 31   스크랩 : 0   날짜 : 2007.01.17 08:11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리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 훌훌 소리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정일근(1958∼ )

    **중앙일보(2007. 1.17<수> 35면 '시(詩)가 있는 아침')

    **정끝별시인말씀
    초록 명주실처럼 치렁치렁 밀려오는 천길 바닷속 맛. 생굴이랑 끓인 후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김이 나지 않아 산(山)사람 매생이국에 데고 바다 사람 토란국에 덴다는, 해서 미운 사위에게 덥석 준다는, 겨울 한철의 뜨끈한 매생이국 한 그릇! 매생이 같은 여자를 꿈꾸는 저 남자, 미운 사위 아니겠지요?



    사진도 늙는다

                            정일근

    잠시 왔다간 세상 사진 한 장 남기신 아버지
    20대 후반 공군 시절 닫힌 격납고 배경으로
    푸른 군복,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서 있는 아버지
    어머니 몰래 한 20여 년 그 사진 숨겨두고 아버지를 추억한다
    신기하다, 닮고 싶지 않았던 사진 속의 아버지를 내가 닮아가고
    사진 속의 아버지는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하루하루 늙어간다
    늙으신 어머니 그 곁에 나란히 서로 어울릴 듯
    배경 풍경들 욕심 없이 늙어간다
    신비한 시간의 힘이여
    사진 속에서도 시간은 쉬엄쉬엄 흘러가
    사진 밖의 세상과 사람과 함께 늙어간다
    사진 속에 담긴 추억도 슬픔도 쭈글쭈글 김빠져간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옛모습으로 남아 기다리지 않는다
    잊고 살아온 사진을 찾아 펼쳐 보라
    사진도 늙는다! 우리와 함께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정일근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선암사 뒷간으로 찾아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
    가벼워진 세상의 발들 전殿을 돌아
    장등丈燈이 밝혀주는 대웅전 앞 섬돌을 밟고 오를
    시간, 나는 뒷간 무명無明 속에 발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죽비 

                 정 일 근


    스승께 죽비를 선물받고 몸이 뜨거워진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욕심이 많아
    평생 세 벌의 옷과 밥 그릇 하나로 만족한
    삭발의 길을 걷지 못했으나
    한 철이라도 묵언(默言)의 겨울 선방에 들어
    흩어지는 마음 팽팽하게 붙잡고 앉고 싶었다
    화두(話頭)하나 이고 굽은 허리 곧게 세우고
    졸면 천리만리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시퍼렇게 날선 작둣날 위에 앉아
    내리치는 죽비에 마음의 피를 흘리고 싶었다
    시의 길을 걸어온 지 스무 해
    한 소식 얻지 못하고 세간 저자를 떠돌다
    만 권 책을 등짐 지고 산속에 들어갔다는 소식듣고는
    스승은 죽비를 준비하셨을 것이다
    죽비는 마음을 치는 뜨거운 경책(警策)
    이놈 시야,내 이제 너를 잡을 것이니
    게을러질 때마다 스스로 어깻죽지를 내리치며
    목어(木漁)인양 두 눈 부릅뜨고 너...로 가려니
    솔밭산이 보이는 창가에 죽비를 걸어놓고
    서쪽을 향해 무릎을 꿇는다

    흑백사진 -歸去來辭-

                     정일근

    내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지느러미가 주어진다면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 삼백팔십의 일번지
    호적등본 속의 긴 주소 같은 강물을 따라 달려가고 싶네
    달려가 막혀버린 시간의 아궁이를 털어 군불을 피우고
    신평장 가신 守자 彬자 우리 할아버지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싶네
    할머니는 새벽마다 떨어진 알밤 몇 알을 주워 잠든 나를 깨우고
    작은 양팔을 펼치며 더 작은 어린 새가슴을 내밀며 만나고 싶은
    흐드러지게 떨어진 감꽃을 헤아리면 시작하던 이슬처럼 맑은 아침과
    마당 가득 찾아오던 고추잠자리들이 노을보다 붉게 타던 저녁이여
    밤이면 젊은 할머니의 늘어진 젖을 막내고모 몰래 훔쳐만지며
    벚꽃이 아름답다는 먼 도시에 사는 아버니지와 어머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죽은 여동생을 그리워하고 싶네
    호룽불 아래 할어버지 늦도록 춘향던을 읽으시고
    밤이면 박꽃처럼 피어나는 고모들 목소리 높여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는 그 노래 부를 때마다
    어린 마음의 두레박에 가득 담긴 슬픔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쏟아져
    에미소가 팔려간 어린 송아지같은 두 눈을 하고 그 별빛을 담았네
    그런 밤이면 오줌잠에 깨어 괜한 잠투정으로 멀리 있는 어머니를 찾고
    불매야불매야 할머니의 따뜻한 자장가 가락이 눈꺼풀을 덮어야 잠이 들던
    아랫목 이불 속의 온기 같은, 그 온기 속의 편안한 잠과 같은 그곳으로
    유년의 강으로 모천회귀하는 한 마리 은어가 되어 돌아가고 싶네
    돌아가 할아버지의 손자가 되어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 저물 무렵 사립문 밖에 서서
    그들이 내 이름 길게 불러주었듯이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 이 세상으로 불러 다시 옛집을 이루고 싶네
    사라지지 않는 세상의 영원한 집 한 채 이루고 싶네

     
     

    정일근


    통도사 서운암 대안 스님 새벽마다 된장 장독 간장 장독 닦는다. 정성이

    맛을 만든다고 한 말씀 건네자 스님 정색하신다. 아닙니다. 장은 사람이

    만들지만 맛은 자연이 만들지요. 그 말씀 詩같아 받아 적는데 스님 더더욱

    정색하신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건 처음부터 다 있는 것이지요. 맛도

    그렇고 詩도 그렇지요. 처음부터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 쓰는 것이지요.


    *현대시학 2004년 9월호 

     

     

    그 마지막엔 詩만이 詩人을 만든다 




                                                                                                                   정일근(시인)


    신문사는 새로 입사하는 수습기자에게 기사 작성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종이밥을 먹던 신문기자 시절, 어느 누구도 나에게 기사 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이 들어 입사한 신문사라 후배를 선배로 모시고 경찰기자 생활이 시작됐다. 1진은 서울 중부경찰서 기자실 소파에 앉아있고, 나는 남대문, 용산경찰서를 들개처럼 싸돌아다녔다.


    내가 근무하는 신문사가 석간신문을 제작하고 있어 새벽같이 종합병원 영안실과 경찰서 형사계, 유치장을 돌고 1진에게 간밤의 사건과 사고를 전화로 보고한다. 그러면 1진은 뉴스가 될만한 것을 기사로 만들어 즉시 전화로 부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6하원칙을 적용하여 기사를 작성해 전화송고를 하면 욕설이 쏟아진다. 새벽부터 나이 어린 신문사 선배에게 듣는 욕은 사람을 참담하게 만들어준다. 남쪽에 두고 온 가족생각이 나고, 같이 욕설을 퍼붓고 때려치워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1진의 지적은 정확했다. 내가 놓친 부분을 보지도 않고서 정확하게 찾아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다.


    1진은 그렇게 욕설로 지적을 할 뿐 3개월의 그 지독한 수습기간에 신문기사를 어떻게 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강원도 백담사에 유배돼 있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법회를 연다고 해서 취재지원을 나간 적이 있었다. 경쟁사의 기자들과 함께 취재를 하고 나는 끙끙대며 2백자 원고지 5장 정도 분량의 스케치 기사를 작성해 팩스로 보냈다.


    그런데 경쟁사 모 선배기자는 기사를 작성하지도 않고 메모만 보고, 그것도 전화기를 들고 짧은 시간에 25장 분량의 기사를 송고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과연 나는 신문기자의 자질이 있는가 하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히 내 그런 좌절을 안 한 선배가 ‘신문기자의 교과서는 신문이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서야 나는 신문을 통해 신문기사 쓰는 법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쏟아지는 신문을 펴놓고 좋은 기사는 옮겨 적어보고, 사건과 사고의 유형별로 좋은 기사들을 스크랩해 참고서를 만들었다. 신문 속에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이 숨어있었다.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 창작의 최고의 교과서는 시고, 시집이다. 그것도 좋은 시고 시집이어야 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집을 권하고 무조건 필사할 것을 숙제로 내준다. 눈으로 읽는 리듬과 손으로 쓰며 배우는 리듬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도 신춘문예 당선 전까지 참으로 많은 선배시인들의 시를 옮겨 쓰며 시 쓰는 법을 배웠다.


    시인이 되려는 제일 마지막 관문은 선배들의 좋은 시와 시집이 나에게 시가 무엇이며, 시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내 친구 최영철 시인은 내 시집 발문에 나를 ‘타고난 시인’이라고 쓴 적이 있다. 너무 일찍 배운 슬픔으로 감성은 타고 났을지 몰라도 나 역시 ‘만들어진 시인’임을 고백한다. 손에 펜혹이 생기도록 좋은 시를 옮겨 적는 연습을 통해 시를 배웠다.


    시인이 되는 교과서는 시인들의 시에 있고, 시집에 모여 있다. 시인은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선배 시인들의 인정을 통해 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서 혹은 엉뚱한 곳에서 시인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나는 앞에서 많은 것들이 시인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런 것들 중 제일 마지막에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시다. 시인이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후배라 할지라도 좋은 시를 발표하면 한 번 옮겨 적어보며 그 시의 비밀을 찾으려고 한다.


    시인을 꿈꾸거나, 시인인 그대여. 시를 읽자. 시집을 읽자. 그것이 시인을 만들고, 시인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정일근

    오줌 마려워 잠 깼는데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사랑나누고 계신다.
    나는 큰 죄 지은 것 처럼 가슴이 뛰고 쿵쾅쿵쾅 피가 끓어 벽으로
    돌아누워 쿨쿨 잠 든 척한다, 태어나 나의 첫 거짓말은 깊이 잠든
    것처럼 들숨 날숨 고른 숨소리 유지하는 것, 하지만 오줌 마려워
    빳빳해진 일곰 살 미운 내 고추 감출 수가 없다.

    어머니 내가 잠 깬 것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 사랑이 끝나고
    밤꽃내음 나는 어머니 내 고추 꺼내 요강에 오줌 누인다, 나는
    귀찮은 듯 잠투정을 부린다, 태어나 나의 첫 연기는 잠자다 깨어난 것처럼
    잠투정을 부리는 것, 하지만 어머니는 다 아신다, 어머니 몸에서
    낸 몸 만들어 졌으니 어머니 부엌살림처럼 내 몸 낱낱이 다 알고 계신다.

    *정호승과 떠나는 작은 時여행 /「이 시를 가슴에 품는다 」 가운데서 발췌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시인 정일근

     

    솔밭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시를 쓴다. 공책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옛 동료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

    나는 산골 마당이 새 직장이고

    시가 유일한 직업이다

    월급도 나오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지만

    나는 이 직장이 천직인양 즐겁다

    나의 새로운 직장 동료들은 풀꽃과 바람과

    구름, 내가 중얼거리는 시를

    풀꽃이 키를 세우고 엿듣고 있다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내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

    내일이면 그들은 더 멋진 시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올릴 것이다

    이 직장에서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마당으로 출근한다

     

    -----------------------------

    *실제 정일근시인은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135의 31번지에서

    시로 살아가는 멋지고 아름다운 시인입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가 누리는 행복을 저도 한번 흉내내려 베란다에 상을 펴고 앉았지요.

    ㅎㅎㅎ 그런데 말이죠.

    이놈의 바람과 구름이 제가 중얼거리는 시에는 꿈쩍을 않네요.^^

    아직도 야생의 향기가 나지 않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여러분은 잠시 정시인의  시 속의 주인공이 되어

    마음의 평화를 누려 보십시오.

    푸른솔의 고운님들!

    맑고 청정한 오늘

    연필끝이 닿는 곳에 바람과 구름이 훔쳐보고 갈

    여백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주머니 속의 바다

     

    정일근

     

    그 마을 사람들은 바다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설마?하고 물어보면 불쑥 주머니 속의 바다를 꺼내 보여 준다

    놀라지 마라, 그것은 마을의 아주 어린 꼬마 녀석도 할 수 있는 일이란다

    제법 사랑을 아는 나이가 된 친구들은

    사랑으로 외롭거나 쓸쓸할 때에는

    손바닥 위에 바다를 올려놓고 휘파람을 분다

    아무래도 마을 어른들은 한 수 위다

    흰 손수건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갈치 떼로 변하고

    손금 위로 바다가 흐르게  하고 흐르는 바다 위에 섬을 띄운다

    아주 오래 전 그 섬을 찾아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안부까지 전해 준다

    떠나오던 날 마을 사람들이 주섬주섬 챙겨 선물로 건네주던 바다

    읽다 만 시집 속에 곱게 접어 온 바다

    삶에  지칠 때, 누군가가 아득히 그리울 때

    나는 손바닥에 그 바다를 올려 놓고 엽서를 쓴다 

    아침이면 사람과 함께 눈뜨는 바다

    저녁이면 사람과 함께 잠드는 바다

    사람과 한봄이 되어 살아가는 바다를 나는 알고 있으니

     

    출처-시집 : 문학시간에 시 읽기 3 자연속에서

     

    꽃과 나무를 엮어 사랑을 쓰다 /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정일근 시집
    번호 : 828   글쓴이 : 신숙
    조회 : 30   스크랩 : 0   날짜 : 2006.09.16 08:31
    꽃과 나무를 엮어 사랑을 쓰다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정일근 시집|시학|110쪽|8000원
     

    소나무와 대나무로 각각 빚은 궁륭들을 지나고 나니 시인의 집이 나타났다.

    “나를 만나러 오시려거든, 솔밭에서 마음을 씻고, 대숲에서 죽향에 취해 오소서…하하하, 이런 되지도 않는 소리 하고 살아요.”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의 정일근 시인(48)은 집이 가까워지자 신고 있던 고무신을 벗어 맨발로 걷는다. 시인이 사는 곳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추수를 앞두고 들판에 부는 바람에 일렁이는 벼 물결을 내려다보는 곳에 시인의 집(전세 3000만원)이 자리잡고 있다.


     

    “20만 원만 있으면 겨울 석달 동안 난방비로 충분하다”는 시인은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쓰는 글로만 먹고 산다”며 웃었다. “수돗물과 아파트를 버리고 지난 2001년 이곳에 왔다”는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을 냈다. 한때 뇌종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던 시인은 보름에 한 번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받고 주사도 맞지만, 지난 5년 동안 은현리에서 매년 책 한 권씩 내고 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가 또 서랍 속에 있다”는 시인은 “자연을 받아쓰기만 해도 시가 나온다”고 다작의 비결을 공개했다.


     

    ▲ “마당에 나가면 시는 기다리고 있다”며 시골집 마당에서 시를 캐는 정일근 시인.

    ‘한 평의 땅에는/ 200가지의 식물이 산다고 했다/ 살아 있는 생명이 있어/ 마당 한 평에 200편의 시가 있다’(‘마당론’ 부분)는 것이다. 시인이 시를 캔다고 하는 마당을 둘러보니 벚나무 아래 꽃밭과 텃밭이 꾸며져 있다. ‘반짝이며 별 하나 그대 눈 속에 담기기 위해/ 별빛은 수십억 광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시 ‘꽃의 고백’)고 노래한 시인은 부추꽃을 가장 사랑한다고 했다. “부추는 정월에서 구월까지는 사람에게 먹히기 때문에 경상도 말로 ‘정구지’라고 하는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내주고나서 가을에 피는 그 꽃을 들여다 보면,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일근 시인은 꽃과 나무를 매개로 한 사랑의 언어로 시를 쓴다. ‘태풍에 무너진 담 세우려 목수를 불렀다. 나이 많은 목수였다. 일은 꿈떴다. 답답해서 저 일 어떻게 하나 지켜 보는데 그는 손으로 오래도록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한참 후 그 자리에 못 하나 박았다. 늙은 목수는 제 손 온기가 나무에게 따뜻하게 전해진 다음 아, 그 자리에 차가운 쇠못 조심스레 박았다. 그때 목수의 손은 경전처럼 읽혔다. 아하, 그래서 木手구나. 생각해 보니 나사렛의 그 사내도 목수였다. 나무는 가장 편안한 소리로 제 몸에 긴 쇠못 받아들이고 있었다.’(‘목수의 손’ 전문)


     

    시인은 일본 북해도 여행길에 산 푸른빛 유리펜을 애용한다. 곧 나올 육필 시집도 그 펜으로 썼다고 한다. 북태평양 물결처럼 시퍼런 잉크를 묻혀 백지에 서걱서걱 몇 자 적으면서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네”라며 감탄할 때 시인은 행복하다.


     

    울산=글·사진 박해현기자
     

    말하지 않는 즐거움

    정일근/시인

    크게 아프고 나서 복잡한 세상에 나가지 않고 글만 쓰면서 살고싶었다. 그래서 도심을 떠나 은현리(銀峴里)라는 산골로 이사를 왔고 3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인연처럼 만난 은현리는 마을이름부터 좋았다. 숨어살고 싶다고 했더니 은현리를 은현리(隱賢里)로 해석해주는 친구도 있어 더욱 좋았다.

    그 때부터 자호(自號)를 두문처사(杜門處士)로 정했다. 두문불출에서 따온 말이다. 저잣거리와 같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에 빗장을 지르고 살고자 다짐했던 탓에 그런 건방진 자호를 가졌었다.  

    두문동(杜門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에 고려왕조의 충신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성계의 조선에 반대한 고려의 유신 72명은 두문동에 들어가 끝까지 세상으로 출사하지 않았다.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장내마을에는 고려동(高麗洞)이 있다. 두문동에 살았던 모은(茅隱) 이오(李午)는 남쪽으로 내려와 마을에 담을 치고 그 곳을 고려땅으로 선언하고 평생 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두문동이나 고려동의 삶이 부러웠다. 숨어살기를 작정했다고 해서 두문동이나 고려동 사람처럼 살겠다는 높은 뜻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새로운 인연을 만들지 않고 싶었다. 그쯤에 나는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다. 말을 하기도 싫어졌다.

    자연으로 귀의해서 신문도 읽지 않고 TV도 보지 않고 살아보니 참 편안했다. 마당에 목련나무와 벚나무를 심어 친구하고 개를 기르며 동무 삼았다. 함께 살지만 자연은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아 좋았다. 자연에서의 생활하다보니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혀는 때로는 아주 무서운 칼이 된다. 그 세 치의 칼로 단숨에 남의 심장에 비수를 꼽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말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지지 않는 말은 허언(虛言)이 되고 마는데, 허언의 혀는 결국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되고 만다. 나는 그런 칼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내 칼에 찔려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은현리에 살면서 최고 열흘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낸 적이 있다. 더러 절집에서 묵언(默言)이라 쓴 것을 보았지만 그 속에 진리에 이르는 즐거움이 있는지는 몰랐다. 단지 조용히 하라는 경구로만 알았는데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삼매와 열락이 침묵 속에 있었다.

    삶은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을 오를 때는 제일 먼저 말을 아껴야 한다. 말이 귀한 산소를 갉아먹는 것을, 그래서 결국은 고산병에 걸려 고통을 겪는 다는 것을 나는 히말라야에서 직접 경험을 했다.

    몇 달 전부터 우리집에 유황앵무라는 앵무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따라하기에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몇 달 생활을 하다 보니 그건 앵무새에게는 큰 벌이고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고역이었다.

    앵무새는 말을 하지만 노래하지 못하는 새였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대신 자신의 노래를 잃어버린 새였다. 우리집 앵무새는 새장에 갇혀 하는 일이라고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거나 하이 소프라노로 고함을 지르는 일 뿐이다. 앵무새가 하는 말이나 고함소리를 듣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고역이 되고 말았다.

    앵무새를 보면서 나는 사람의 말이 새에게도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소리로 노래하는 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숲 속에 숨어서 노래하는 휘파람새의 소리나 저물 무렵에 울고 가는 갈가마귀 소리는 자신의 소리를 가졌기에 아름다웠다.

    나는 앵무새를 보면서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당리당락에 따라 국회의사당에서 욕설과 싸움을 일삼는 모습은 새장에 갇혀 사람의 말을 흉내내며 고함을 지르는 앵무새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올 봄은 숨어사는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은 것 같다. 춘삼월에 폭설이 내리고 그 뒤를 이어 탄핵정국이 찾아와 꽃 피는 봄은 아예 실종되고 말았다. 섬진강가의 흐드러진 매화를 보러오라는 친구의 초대에도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올 봄은 매화를 보지 않기로 작정했다. 사실 꽃을 보기가 부끄러운 봄이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정치다. 정치의 가장 고전적인 정의는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는 일'이다. 그 일이 무슨 큰 일이며 힘든 일인가 싶은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 정치사는 단 하루도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다. 정치가 도대체 무엇이라서 세상일을 잊고 살고 싶은 나까지 분노하게 하는지 짜증이 난다.

    나는 오늘날의 정치를 '말의 시궁창'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그건 시궁창에게 미안한 표현이다. 시궁창은 자신을 던져 오물이나 더러운 것들을 모아주는 좋은 일을 한다. 정치가들의 말은 시궁창 보다 못하다. 나에게 정치가들이란 양복 입고 금배지 달고 싸우는 사람들일 뿐이다.

    두문처사(杜門處士)를 자처하였기에 나는 그들이 왜 싸우는지 자세히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탄핵이란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 눈동냥 귀동냥을 해본즉 '대통령의 말'이 문제라고 한다. 대통령의 말을 두고 사과하라, 못한다로 싸우다 결국은 탄핵이라는 사상초유의,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정치적으로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러나 정치가들이 연출한 탄핵은 국가와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분노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이제부터는 말을 아꼈으면 한다. 모두 사람 말을 흉내내는 앵무새가 아니라 제 소리로 우는 산새가 되었으면 한다.

    묵언의 열락을 그들이 어찌 알랴. 말하지 않고 사는 즐거움을 대통령도 정치가들도 모르기에 나는 그들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국어 1- 2, 2.(1)바다가 보이는 교실 | 1학년 국어 공부방
    2006.07.07 11:39


     

     

    □참고자료□

    1. ‘바다가 보이는 교실’과 정일근

      정일근 시인의 첫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창작과 비평 펴냄)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정시인이 대학 졸업 후 국어교사로 첫 발령 받은 진해남중학교에서 쓴 시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이란 10편의 연작시 가운데 하나. 87년 창비시선으로 나온 시집「바다가~」는 현재까지 12쇄 발간됐으며 3만여권이 팔린 스테디셀러.〈유리창 청소〉는 85년 발표 이후 여러 신문과 문예지 등에 재수록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치 동시처럼 맑은 감성과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대학 때부터 문예지에 작품 발표를 해왔던 정시인은 진해 앞바다가 보이는 이 학교에 근무할 때 〈바다가 보이는 교실〉연작시를 내놓으면서 우리 문단에서 처음으로 교육을 소재로 한 시로 주목을 끌었다. 정시인은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8년 한국 문학 특별 창작지원금 수혜, 2000년 한국 시조 문학상 수상 등의 경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전업작가로 안도현, 김용택, 나희덕씨 등과 함께 시힘동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http://www.icantour.co.kr/news/nwes50.htm에서 발췌


    2. 정일근의 시 - 바다가 보이는 교실

    바다가 보이는 교실 1

    -우리반 내 아이들에게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구나.

    저 산에 들에 저절로 돋아나 한 세상을 이룬

    유월 푸른 새 잎들처럼, 싱싱한

    한 잎 한 잎 무게로 햇살을 퉁기며

    건강한 잎맥으로 돋아나는 길이 여기 있구나.

    때로는 명분뿐인 이 땅의 민주주의가,

    때로는 내 혁명의 빛바랜 꿈이,

    칠판에 이마를 기대고 흐느끼는

    무명교사의 삶과 사랑과 노래가

    긴 회한의 그림자로 누우며 흔들릴 때마다

    너희들은 나를 환히 비추는 거울,

    나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가에 서서

    너희들 착한 눈망울 속을 조용히 들여다보노라면

    저마다 고운 빛깔과 향기의 이름으로

    거듭나는 별, 별들

    저 신생의 별들이 살아 비출 우리 나라가 보인다.

    내 아이들아, 너희들 모두의 이름을 불러 손잡으며

    걷고 싶어라. 첫새벽 맨발로 걷고 싶어라.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내가 걷고 걸어가 닿아야 할 그 나라가 있구나.

     

    바다가 보이는 교실 11

     

    음악 실기 시험이라도 있는 것일까?

    새벽 빈 교실에서

    누군가 리코더를 불고 있네.

    열세 살 온 영혼 리코더에 담고서

    서툴게 한 음 한 음

    머나먼 스와니강 홀로 건나가고 있네.

    아름다워라, 새벽 리코더 소리여.

    맑은 영혼의 향기여.

    나의 가르침 나의 시에도

    저리 맑은 영혼 담을 수는 없을까?

    내 영혼은 어떤 향기를 머금고 있을까?

    조용 조용 발길 되돌리며

    착하게 뉘우치는 순결한 새벽

    환하고 따뜻한 아침 오네.

    가슴 열어 부둥켜 안고 싶은

    눈부신 아침 오네.


     

    흑백 사진(닭국)


    닭국을 끓이는 겨울날은 새벽부터 신이났다. 동네
    어른들을 모시러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며 아주 자랑스러
    운 목소리로 , 우리 집에 아침 잡수러 오시라 예 , 외치
    며 사발통문을 돌리는 일은 어린 내 차지였다. 부엌에서
    허연 김이 첫눈처럼 펑펑 솟아오르고 노란 닭기름이 구
    수하게 끓을 때 당숙모는 겨울 마당에 묻어둔 무를 꺼
    내와 가마솥 가득 빚어 넣었다. 닭 한 마리로 한 가마솥
    끓여내던 당숙모의 풍성한 닭국을 어른들은 배내댁 백
    국이라고 불렀다. 덤성덤성 무 몇 조각과 아주 작은 닭
    기름이 국그릇마다 평등하게 담겨 아침 밥상으로 오르
    고 그 국 한 그릇 앞에 놓고 어른들은 모여 즐거운
    숟가락 소리를 내며 마을 대소사를 의논했다. 더러 당숙
    모는 내 국그릇에 몰래 계륵을 넣어주며 그런 날
    은 눈 쌓인 성선산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코도 귀도
    장갑이 없는 내 손도 하루 종일 춥지 않았다.



    흑백 사진 (불꽃놀이)



    닫힌 창문 열어드릴까요 누님. 창밖에는 찬란한 4
    월 진해의 밤 , 축등을 든 소녀들은 벚꽃나무 물관안으
    로 녹아들어가 한잎한잎 화사한 꽃등으로 불을 켜고
    소아마비 아픈 누님의 다리에도 봄물이 올라 나를 부르
    지 않고도 자리에서 그대로 일어설 것만 같습니다.
    나도 누님 의 손을 잡고 저 봄꽃 속으로 달려가고 싶
    습니다.달려가 밤하늘 불꽃으로 터져나가고 싶습니다.
    보세요 누님 ,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누님의 착
    한 발에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의 꽃신을 신겨드리
    고 싶습니다 . 저 오랜 목발을 치워 드리고 싶습니다 꽃
    신 신고 4월 진해의 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또박
    또박 축제의 도시로 오세요 어느새 4월이네요 누
    님 . 겨우내 닫아둔 저 창문을 열어드릴까요 누님 .

    흑백사진 -갈치



    -정일근



    할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할머니는 돌담 위 따뜻한

    가을 햇살 속으로 손을 넣어 애호박 하나를 고르셨다. 그런 날 저녁 반찬에

    는 호박에갈치를 넣은 조림반찬이 올라 기다리는 저녁내내 입 안에 군침이

    고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차가운 웃목에서 작은 독상을 받고 하나뿐인 어

    린 손주만 할아버지 상에 함께 앉아 고만고만한 고모들의 시샘을 받으며 하

    얀 갈치살을 발라냈다. 시골마을 풋내나는 밥상에는 비린 반찬만큼 귀한 것

    이없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신평장터에서 사십 리 길을 걸어온 갈치 한 마

    리를 할머니는 애지중지 아껴 소금독에 묻고 할아버지 독상에만 한 토막 올

    려놓아 고모들의 밥상에는 갈치가 달아나며 남긴 흰 비늘과 호박 뿐이었다.

    그런 저녁이면 고모들은 괜히 심술을 부려 마당 가득 찾아오는 고추잠자리

    도 잡아주지 않고 잠자리에서 막내고모는 할머니의 젖을 가로채고 만지지

    못하게 했다. 가을달은 내가 잠든 뒤에야 슬그머니 떠오르고 오줌잠에 배부

    른 꿈을 깨 툇마루에 서면 크고 깊은 마당에도 더 크고 깊은 고모들의 잠

    속에도 가을 달빛은 갈치비늘인 양 욜량욜량 쏟아져내렸다.

     

    흑백사진 -갈치



    -정일근



    할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할머니는 돌담 위 따뜻한

    가을 햇살 속으로 손을 넣어 애호박 하나를 고르셨다. 그런 날 저녁 반찬에

    는 호박에갈치를 넣은 조림반찬이 올라 기다리는 저녁내내 입 안에 군침이

    고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차가운 웃목에서 작은 독상을 받고 하나뿐인 어

    린 손주만 할아버지 상에 함께 앉아 고만고만한 고모들의 시샘을 받으며 하

    얀 갈치살을 발라냈다. 시골마을 풋내나는 밥상에는 비린 반찬만큼 귀한 것

    이없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신평장터에서 사십 리 길을 걸어온 갈치 한 마

    리를 할머니는 애지중지 아껴 소금독에 묻고 할아버지 독상에만 한 토막 올

    려놓아 고모들의 밥상에는 갈치가 달아나며 남긴 흰 비늘과 호박 뿐이었다.

    그런 저녁이면 고모들은 괜히 심술을 부려 마당 가득 찾아오는 고추잠자리

    도 잡아주지 않고 잠자리에서 막내고모는 할머니의 젖을 가로채고 만지지

    못하게 했다. 가을달은 내가 잠든 뒤에야 슬그머니 떠오르고 오줌잠에 배부

    른 꿈을 깨 툇마루에 서면 크고 깊은 마당에도 더 크고 깊은 고모들의 잠

    속에도 가을 달빛은 갈치비늘인 양 욜량욜량 쏟아져내렸다.



    **

    졸업날에 프린세스 다이어리라는 비디오를 친구들하고 봤는데,
    재미도 있었지만 주인공이 참 부러웠어요.
    공주라서도 아니고 이뻐서도 아니고...
    그냥 할머니가 있다는게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어요.
    전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사실 거의 없거든요.
    그동안 할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든 할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시를 읽으니까 그 생각이 문득 나네요.

     

     

     

    흑백사진―가물치 / 정일근

     

     

     

    팔순을 넘기신 우리 할머니 경주이씨와 칠순이 가까운 큰고모부는 의좋은 오누이 모습으로 도란도란 옛날 이야기 나누시네. 때는 봄날, 햇살은 까르르 까르르 간지러운 웃음으로 방바닥 위로 환하게 퍼져나가고 백발 장모가 권하는 일배 일배에 취한 눈멀고 귀먹어 가는 사위는 아주 오랜 옛날도 어제처럼 가까워 흥이 나네. 기억하시는교 빙모님요 막내 처제 낳고 제가 가물치 한 마리 사 가지고 찾아갔지요. 하모 김서방 그 달이 윤삼월 참으로 큰 가물치였제. 마흔 고개 힘겹게 넘어 출산한 장모 문안 가던 젊은 서른 사위, 가물치 한 마리 짚으로 꿰어들고 경남 양산군 하북면 삼감리로 걸어가는 키 큰 고모부 모습 나도 보이네. 산후조리하고 있던 할머니의 민망한 마음 보이네. 갓난애기 처제를 본 우리 큰고모부 선한 눈가 웃음도 보이네. 金粉으로 부서지는 두 분의 옛날 이야기 곁에 버릇없이 누운 나는 살아보지도 못한 저 먼 세월 어슬렁어슬렁 거슬러 올라가는 귀 큰 당나귀, 금줄 친 사립문 밖에서 百年 손님 맏사위 멋쩍게 맞으며 新羅瓦當의 웃는 얼굴로 웃는 할아버지 젊은 웃음소리 듣네. 아직도 살아 푸드득거리는 가물치 소리 생생히 들려오네.

    .

    잊을 수 없는 흑백사진
    번호 : 107   글쓴이 : 팔할이 바람
    조회 : 56   스크랩 : 0   날짜 : 2006.02.24 21:13
     

    잊을 수 없는 흑백사진

    아침 신문에 난 ‘증손자 둔 할머니 12번째 아이 낳아’란 기사를 읽는다. 올해 62세인 재니스 울프란 할머니가 손자 20명, 증손자 3명을 두고 14세 연하인 세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손자들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삼촌’이라 불러야 하고 증손자들은 ‘작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아기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까. 하도 기가 막혀서 ’응애‘하고 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으리라.

    “가물치 한 마리 짚으로 꿰어 들고 경남 양산군 하북면 삼감리로 걸어가는 키 큰 고모부 모습 나도 보이네. 산후조리하고 있던 할머니의 민망한 마음보이네. 금줄 친 사립문 밖에서 백년손님 맏사위 멋쩍게 맞으며 신라 와당의 얼굴로 웃는 할아버지 젊은 웃음소리 듣네. 아직도 살아 푸드덕거리는 가물치 소리 생생히 들려오네.”(정일근의 ‘흑백사진-가물치’중에서)

    고모부가 외손자를 두고 출산을 한 장모님을 축하해주러 가물치를 사들고 사립에 금줄을 쳐둔 처가에 갔으니 얼마나 쑥스러웠을까. “김서방 오는가” 소리가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장모는 민망한 얼굴로 웃고 있고, 아기의 아버지인 장인어른은 신라와당의 푸른 웃음으로 부끄러움을 감추고, 사위인 고모부는 불장난하다 들킨 아이들 앞에 선 선생님처럼 나무랄 수도 타이를 수도 없는 난감한 얼굴로 웃고 있다. 흑백사진에서 보는 진풍경이다.

    시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장인어른은 젊은 한 시절 바람께나 피운 모양이다. 그래서 장모님 속을 어지간히 태웠겠지. 딴 집 살림을 겨우 걷어치우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을 붙잡아 두기 위해 장모님은 철 지난 꽃이 서리 내리는 계절에 꽃망울 맺듯 그렇게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리라. 손자들이 “삼 추운...”하고 불러야 할 그런 아기를.

    정일근 시인의 연작시인 ‘흑백사진-그 여자’란 시를 읽어 보자. 장인어른의 젊은 날이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듯 하다. “마루 끝에 걸터앉은 아버지는 말이 없다. 저녁햇살에 길어진 감나무 그림자가 그 곁에 눕고 댓돌 위에는 가을하늘처럼 맑은 옥색 고무신 한 켤레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어머니 낮은 목소리 사이 가끔씩 낯선 울음소리가 흘러나와 안방 문풍지를 적시고 툭툭 할머니의 타이르는 소리 무겁게 새어나왔다. 아버지는 돌아앉아 말이 없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견고한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적 화자인 아버지가 네 살 때 돌아가신 내 아버지처럼 바람을 피워 옥색 고무신을 신은 ‘그 여자’를 집으로 데려 온 모양이다. 할머니는 아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타일렀고 결국 아버지도 단념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옥색 고무신도 울고, 아버지의 어깨도 울고, 낮은 목소리의 어머니도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고, 할머니 마음 또한 눈물의 강물로 출렁거린다. 흑백사진의 진풍경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성님 동상”하며 지낸 고향의 서사리 아지매 생각이 난다. 아주 작은 평수의 능금밭 농사를 하던 아지매는 쉰이 가까운 나이에 늦둥이를 뱄다. 장날 장에 갔다가 남산만한 배를 안고 집으로 들어온 아지매는 “동상아. 안 있나 그쟈. 그날은 아침부터 능금나무 전지를 하고 하도 고단해서 농막에 누워 있는데 빌어묵을 영감쟁이가 들어오더니 슬쩍 다리를 잡아 땡기는기라. 달거리도 있다 없다 하길래 안 괜찮겠나 싶었는데 고마 이래 됐능기라. 동네 부끄러버 죽겠다 앙이가.”

    아지매의 맏딸은 이미 시집은 갔지만 아기가 없어 다행히 나이 어린 삼촌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위 보기에도 면목이 없고 동리 사람들 만나서도 한참 동안 민망한 ‘가물치 얼굴’로 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지매의 막내아들은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두뇌가 명석하지도 못했고 응석받이로 성장한 탓에 버릇이 없어 부모의 속을 많이도 썩였다.

    아지매에게 한 가지 미안한 것은 언젠가 이미 청년으로 성장한 막내의 취직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다. 아지매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어머니의 심부름을 겸해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아지매는 노골적으로 “나는 참말로 섭섭하데이”라고 말할 때의 그 표정이 내 가슴 속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