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김수영의 시편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15. 16:29
 
 
 
김수영[金洙暎]
인쇄하기 

본문

나의 가족-김수영 | 김수영/신동엽
2007.01.11 18:17


나의 가족

 

김수영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全靈)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 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1921. 11. 27 서울 종로~1968. 6. 16 서울 수유동.

시인.
[개요]

김수영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썼다. 본관은 김해.


[생애]

서울 관철동에서 아버지 태욱(泰旭)과 어머니 안형순(安亨順) 사이의 8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효제보통학교 6학년 때 뇌막염을 앓아 학교를 그만둔 뒤, 1936년 선린상고에 들어가 1941년 졸업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대[東京商大] 전문부에 입학, 미즈시나[水品春樹]에게 연극을 배웠다. 1943년 겨울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1944년 가족과 함께 만주 지린 성[吉林省]으로 이주했다. 해방 후 돌아와 연희전문학교 영문과 4학년에 편입했으나 곧 그만두었다. 6·25전쟁 당시 미처 피난하지 못해 인민군에 징집되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미8군 통역, 모교인 선린상고 영어교사와 평화신문사 문화부 차장 등을 맡으며 여러 직장을 돌아다녔다. 1956년부터는 집에서 닭을 기르며 시창작과 번역에만 전념했다. 그의 나이 47세 때인 1968년 6월 15일, 집 앞 거리에서 버스에 치여 그 다음날 숨졌다. 서울 도봉동에 있는 누이 김수명의 집 뒷동산에 잠들어 있다. 1969년 5월 1주기를 맞아 문우와 친지들이 그의 마지막 시〈풀〉을 새긴 시비를 세웠다.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한 뒤 마지막 시 〈풀〉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많은 시론을 발표했다. 1949년 김경린·박인환·임호권·양병식 등과 함께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내면서 모더니스트로서 각광을 받았다. 여기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꾀하려는 시인의 진지한 태도를 잘 보여준 것이다. 〈공자의 생활난〉·〈사령 死靈〉 등의 초기시에서는 '느낀다, 생각난다, 본다'와 같은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를 많이 썼다. 사물에 대한 인식은 전통적이며 상식적인 태도와 방법을 뛰어넘고자 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자기가 보고 있는 사물이 처음부터 왜곡되어 있음을 깨달은 데서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生硬性)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에 겪어야 했던 방황을 풍자적이며 지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1959년에 펴낸 첫 개인시집 〈달나라의 장난〉은 이런 시정신을 잘 보여주었다.

해방 이후 시인들 가운데 김춘수와 함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그의 문학적 업적은 '반시론'(反詩論)에 있다. 그의 반시론은 1960년대 시의 주류인 참여시론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시적 경향, 즉 모더니즘을 청산하고 현실과 역사, 시대와 사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시는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에서 과거의 자기를 부정하고,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가에서도 일대 변화를 보였다. 그가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초월적 태도와 조화의 논리에서 참여적 태도와 분열의 세계관으로 바꾸고, 또 세련된 간접표현 대신 독설과 요설이 뒤섞인 직설법을 쓰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4·19혁명과 그 정신이 퇴색되어간 현실에 있었다. 시 〈사령 死靈〉·〈그 방법을 생각하며〉·〈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에서는 1960년대 현실이 '자유·민주·정의·혁명' 등을 내세웠던 4·19정신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며 절망했다.


[평가]

그의 시는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꿈과 열정, 순수의 훼손에서 오는 비애와 시니시즘(cynicism),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일어서보겠다는 오기 등으로 어우러져 있다. 시적 상상력은 '지금, 여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1970년대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시적 상상력으로 바꾸어놓으려던 시인들은 그에게서 '비판의지, 독설과 자조의 수법, 세상을 뒤틀어보기, 언어희롱' 등의 태도와 방법을 배웠다. 그의 시는 말하자면 몰이해적인 명상 또는 근본지(根本知)의 산물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삶에 부대끼면서' 욕설을 내뱉거나 비명을 지르는 것에 가깝다.

5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과 김종문·이인석·이상로·김춘수 등과 펴낸 9인 시집 〈평화에의 증언〉(1957) 외에 그가 죽고난 뒤에 펴낸 시선집 〈거대한 뿌리〉(1974),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김수영전집〉(1981) 등이 있고, 번역서로 유영·소두영과 공역한 〈20세기의 문학평론〉(1953), 김붕구와 공역한 〈까뮈의 사상과 문학〉(1958) 등이 있다. 1959년 〈달나라의 장난〉으로 한국시인협회상을 받았다. 1981년 유족과 민음사가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曺南鉉 글

 

 

박인환과 김수영의 시 몇 편 읽기 | 나의 일상
2007.01.12 23:57


 

박인환과 김수영의 시 몇 편 읽기

1. 서(序)

한국 현대시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 보아야할 것들 중 하나로 모더니즘 시를 들 수 있다.
20년대 후반 창작되기 시작한 한국의 모더니즘 시는 30년대에 이르러 양적으로 풍부하게 창작되었고 질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렇게 찬란한 빛을 밝히던 30년대의 모더니즘 시는 50년대를 거쳐 오늘에까지 그 넉넉한 물줄기가 닿고 있다.
그런데 30년대 모더니즘 시에 대해서는 그 성과와 평가가 풍부하게 논의된 반면 50년대 모더니즘 시에 대해서는 '30년대 모더니즘시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식의 평가가 주류를 이루어온 듯하다.
그러나 50년대의 모더니즘 시를 읽어보면 그 시대적 과제들을 충분히 수행하려고 고심한 흔적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모더니즘 시가 전반적으로 현실을 직접적으로 들어내지 않고 자기인식을 통해 현실과 주체의 상관관계를 직접적으로 들어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50년대의 모더니즘 시는 30년대의 모더니즘을 받아 더욱 확산시켰고 시대적 현실을 시에 충분히 접맥시켰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50년대 모더니즘 시의 가장 중추적인 창작집단이었던 <後半期> 동인 그룹의 대표적인 시인인 박인환과 김수영의 몇몇 작품을 통해 50년대 모더니즘 시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2. 박인환의 작품 세계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고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詩 '목마와 숙녀' )

이 시는 50년대의 전쟁과 퇴폐와 무질서, 불안, 초조 등의 시대적 고뇌를 신선하고 리듬 있는 언어로 노래한 박인환의 대표작으로 볼 수 있다.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버리고' '떠났다' '떨어진다' '죽고' '버릴 때' '보이지 않는다' '시들어 가고' '희미한 의식' '서러운' 등등의 도시적 비애와 패배주의적 감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도시적 우수에 휩싸인 정황은 포착되나 시의 의식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박인환의 시적 주체는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50년대 이전에 창작된 시를 보자.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있는 대로 영웅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暴壓과 비민주적인 民政策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人民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 詩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중에서 )

나는 불모의 문명,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한 싸움 속에서, 시민정신에 이반된 언어작용만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자본의 군대가 진주한 시가지에는 지금은 증오와 안개 낀 현실이 있을 뿐……. 더욱 멀리 지난날 노래하였던 식민지의 애가며 토속의 노래는 이러한 지구에 가란져 간다.
그러나 영원의 일요일이 내 가슴에 찾어든다. 그러할 때에는 사랑하던 사람과 시의 산책의 발을 옮겼든 교외의 원시림으로 간다.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를 즐겼던 시의 원시림으로 간다.
아 거기서 나를 괴롭히는 무수한 장미들의 뜨거운 온도.
( 詩 '장미의 온도' )

위 인용된 시에는 시각적인 이미지의 언어들보다는 관념어들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지금은 '불모의 문명 시대'이며 '자본과 사상의 불균정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풍토와 개성과 사고의 자유'가 허용되는 시대라기보다는 '시민정신'이 요구되는 시대로 본다.
인용된 시에서 화자가 '인도네시아 인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보편적으로 들려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을 균질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민해방을 추구하는 인도네시아 사태가 단순히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모욕임을 내세울 수 없다.
이 시기의 박인환에게 있어서 '시민정신'이란 이념적 토대로서 자신의 시각장을 균질하게 바라보는 의식의 눈이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50년대 박인환에게 이르면 자신이 딛고 있던 이념의 허위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근본 이유는 전쟁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시기의 박인환은 '시민정신'보다는 주로 '현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현실의 실재성을 문제 삼기 시작한다.

푸른 하늘 가를
기나긴 夏季의 비는 내렸다.
겨레와 울던 感傷의 날도
眞實로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狀態
우리는 결코
盲目의 時代에 살고 있는 것인가.
視力은 服從의 그늘을 찾고 있는 것인가.
( 詩 '눈을 뜨고도' 중에서 )

전쟁 때문에 나의 財産과 親友가 떠났다.
人間의 理知를 위한 書籍 그것은 재떼미가 되고
지난 날의 榮光도 날아가 버렸다.
( 詩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중에서 )

眞正코 내가 바라던 하늘과 그 季節은
푸르고 맑은 내 가슴을 눈물로 스치고
한때 靑春과 바꾼 反抗도
이젠 書籍처럼 불타 버렸다.
( 詩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중에서)

인용된 시에서 보여주는 시의 주체는 균열되어 있다. '겨레와 울던 감상의 날'은 '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상태'와 연결되면서 부재를 나타낸다. 이러한 부재는 시인의 눈이 시적 대상들을 바라봄에 균열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서적은 인간에게 행복 자유 지혜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인간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승격시켜준 광채와 같았다. 시인에게 있어 서적은 자신의 통일성을 유지시켜주는 표상이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현실의 실재성 추구를 담아내지 못함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목마와 숙녀'로 돌아가 보자.
이 시에서 시적 주체는 '나' 가 아니라 '우리' 다. 이 변화는 균열된 나를 대신하는 새로운 주체라고 보여지지만 그것 역시 견고하게 시인을 붙들어 주지 못한다.
우리의 이념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페시미즘에 대해 적극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실재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할 뿐이다.
이러한 주체의 균열은 시속에서 한탄할 '그 무엇'으로만 존재한다. 그 무엇은 소멸과 닿아있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상관없는 무관심적인 표현들로 나타나고 작별하여야 한다, 바라다보아야 한다, 기억하여야 한다, 들어야 한다, 술을 마셔야 한다, 등과 같은 당위적인 표현들이 반복되는 것 역시 균열되어 재확립되지 않은 '그 무엇' 이 시적 주체로 대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의지 무의식 차원에 빠져 있으면서도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자 하는 것으로는 현실의 실재성 추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인환은 50년대 이전에는 시민정신이라는 견고한 시적 주체 위에 서 있었으나 전쟁을 경험한 이후 균열된 주체로서 현실의 부정적인 단면을 포착하였으나 그 극복에는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김수영의 작품 세계

김수영의 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현실의 일상성이다. 일상에 대한 관심과 반성적 소시민성은 그의 산문 정신과 동궤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서술 중심의 독특한 글쓰기로 표현되어 있다. 시적 언어로 규정된 종래의 보이지 않는 규범을 깨뜨리고 산문체의 문장, 비속어, 욕설, 노골적인 성적 표현의 언어 등 일상적인 언어들을 시로 끌어들여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고 있다.
그의 시는 시적 대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정서적 반응을 집약하여 이미지즘 언어로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시인의 생각과 경험을 서술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사건이나 사실로서의 대상, 거기서 비롯되는 생각과 체험을 산문적이고 서술적인 방식으로 진술하는 편에 가깝다.

더 넓은 展望이 必要없는 이 無制限의 時間 우에서
山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未練도 없이
앙상한 肉體의 透明한 骨格과 細胞와 神經과 眼球까지
모조리 露出落下 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果敢한 너의 意思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矜持와 善意가 있다
너의 祖上들이 우리의 祖上과 함께
손을 잡고 超動物世界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原型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늬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 詩 '헬리콥터' 중에서 )

도시적이며 현대적인 이미지의 헬리콥터에 자기의 존재를 투영하고 있다.
앙상하고 투명하게 모든 육체를 드러내 보이며 날아가는 헬리콥터는 육체를 지닌 설운 동물로 시적 자아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헬리콥터는 비상하는 사물이지만 김수영의 시 속에서는 낙하하는 대상이 된다.
더 넓은 전망조차 필요치 않을 무한한 공간과 무제한의 시간 속에서 진흙과 진창, 미련 등 존재를 붙잡아 내리는 끈적한 것을 배제한 가운데 헬리콥터의 존재 의미만 극대화시키고 있다. 자신의 앙상한 존재를 투명하게 드러내 보이며 노출하는 헬리콥터의 날렵한 정신은 긍지와 선의라는 긍정적 가치로 나타난다. 그리고 시인의 헬리콥터는 초월 공간으로 날아오르기보다 지상 즉 일상 속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는 자신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김수영의 시는 도시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일상적 삶과 현실의 문제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시의 차원보다 의미하는 시의 차원에서 일상적인 삶의 구체성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김수영에게 근간이 되는 도시적 정서는 일상적 삶에 뿌리를 내려 일상성의 가치를 진정한 시의 지평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며 그의 소시민성은 일상적인 것에서 가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 詩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

이 시에서 김수영은 고백적이고 자전적 성격이 두드러져 나타나는 일인칭의 현상적 화자를 왜소한 인물이나 성찰하는 지식인으로 등장시켜 그가 자기 밖의 세계를 바라보기 이전에 자신부터 직시하려는 태도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왕궁으로 풍자되는 현실적 통치 세력의 음탕에 맞서지 못하고 약자와 힘없는 것만을 향해 분개하고 욕하는 나를 한탄하면서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하는 자신의 위악성을 스스로 노출하고 있다. 분개하고 욕을 하고 증오하는 화자의 악의스런 행동은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의 일상적 탐욕스러움과 작은 액수의 돈을 받으러 오는 야경꾼의 구차함에서 자신의 모순을 읽기 때문이다.
이같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반된 현실을 향해 분노와 체념과 위선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데서 오는 거칠고 직선적인 어조 욕설과 비속어 등의 표현으로 나타내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김수영의 시가 소시민적 사고를 넘어서 나와 세계와이 관계에서 자신부터 반성하고 정립하려는 치열한 자기반성과 정직한 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즉 위악적이고 반어적인 어법을 구사함으로써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하면서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스스로를 깨닫는 동시에 그러한 자아의 내적 갈등을 이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4. 결(結)

50년대 모더니즘의 두 시인인 박인환과 김수영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같이 동년배로서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 이라는 앤솔로지를 발간할 정도로 두터웠던 두 시인의 시는 당시의 문학주류였던 모더니즘의 선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박인환은 모더니즘으로는 실패한 듯 보인다.
전쟁이라는 시대의 질곡을 거치면서 체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 인식의 시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울러 1950년대적인 한계 상황을 인식하고 절망과 좌절의 불안과 고독 등 실존적 포즈를 취함으로써 1950년대 전후문학의 당대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김수영은 나라는 소시민적 성찰에서 비롯된 일상성을 천착하는 과정에서 모더니즘의 영역에서 60년대 참여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여겨진다.
두 시인의 도시적 정서는 모더니즘을 표방하며 출발했고 그 영향권 내에서 이루어졌지만 도시문명의 체험에 대한 새로운 충격에서 이국적 정조로 모더니즘을 수용한 박인환과는 달리 김수영은 산문적이고 서술 중심의 독특한 글쓰기로서 일상적인 언어로서 일상적 삶에 뿌리를 내려 일상성의 가치를 진정한 시의 지평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끝.

 

 

나의 가족-김수영 | 김수영/신동엽
2007.01.11 18:17


 

나의 가족

 

김수영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全靈)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 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의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너를 잃고 - 김수영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번 늬가 없어 설워한끝에
억만걸음 떨어져있는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주는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인의 여자를 보지않고 산다
나의 생활이 원주 우에 어느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무렵
나는 또하나 다른유성을 향하여 달아날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 비 - 김수영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 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계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 모든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制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 플란넬 저고리 - 김수영

낮잠을 자고 나서 들어보면
플란넬 저고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거지의 누더기가 될락말락한
저놈은 어제 비를 맞았다
저놈은 나의 노동의 상징
호주머니 속의 소눈깔만한 호주머니에 든
물뿌리와 담배 부스러기의 오랜 친근
윗호주머니나 혹은 속호주머니에 든
치부책 노릇을 하는 종이쪽
그러나 돈은 없다
-돈이 없다는 것도 오랜 친근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돈이 없는 무게이기도 하다
또 무엇이 있나 나의 호주머니에는?
연필쪽!
옛날 추억이 든 그러나 일년 내내 한번도 펴본 일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 본 일이 없는
죽은 기억의 휴지
아무것도 집어넣어 본 일이 없는 왼쪽 안호주머니
-여기에는 혹시 휴식의 갈망이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휴식의 갈망도 나의 오랜 친근한 친구이다......




* 푸른 하늘을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거대한 뿌리 - 김수영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팔.일오 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사년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벧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일팔구삼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외국인의 종놈,관리들 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가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일본영사관,대한민국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망건,장죽,종묘상,장전,구리개 약방,신전,
피혁점,곰보,애꾸,애 못 낳는 여자,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삼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커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구슬픈 육체 - 김수영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자체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統覺과 調和와 永遠과 歸結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대지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일체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不屈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天上의 무슨 등대같이 까마득히 사라져 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海底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막대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들이여

調和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는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될 것이지만
천사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여




*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 - 김수영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세계는 그러한 무수한 간단(間斷)

오오 사랑이 추방을 당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관악기처럼
우주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 눈 - 김수영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헬리콥터 - 김수영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해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더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생리이다

1950년 7월 이후에 헬리콥터는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
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고보다는 늦게 나왔다
그렇지만 린드버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 안에 느끼고야 만다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우리는 좁은 뜰안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부터라도 내어다볼 수 있고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을
헬리콥터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 자유
--- 비애

더 넓은 전망이 필요없는 이 무제한의 시간 우에서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진흙도 없고 진창도 없고 미련도 없이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너의 조상들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손을 잡고 초동물 세계 속에서 영위하던
자유의 정신의 아름다운 원형을
너는 또한 우리가 발견하고 규정짓기 전에 갖고 있었으며
오늘에 네가 전하는 자유의 마지막 파편에
스스로 겸손의 침묵을 지켜가며 울고 있는 것이다




* 1956년 - 김수영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령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구름의 파수병 - 김수영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상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수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면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파리와 더불어 - 김수양

多病한 나에게는
파리도 이미 어제의 파리는 아니다

이미 오랜전에 일과를 전폐해야 할
문명이
오늘도 또 나를 이렇게 괴롭힌다
싸늘한 가을 바람소리에
전통은
새처럼 겨우 나무 그늘같은 곳에
정처를 찾았나보다

병을 생각하는 것은
병에 매어달리는 것은
필경 내가 아직 건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비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저 광막한 양지 쪽에 반짝거리는
파리의 소리없는 소리처럼
나는 죽어가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 그 방을 생각하며 - 김수영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四肢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落書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풍뎅이 - 김수영

너의 앞에서는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았다
백년이나 천년이 결코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사랑의 테두리 속에 끼여있기 때문이 아니리라
추한 나의 발 밑에서 풍뎅이처럼 너는 하늘을 보고 운다
그 넓은 등판으로 땅을 쓸어가면서
네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잇으면
너도 우둔한 얼굴을 만들 줄 안다
너의 이름과 너오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
소금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며
의심할 것인데
등 등판 광택 거대한 여울
미끄러져가는 나의 의지
나의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
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
너의 사랑




* 강가에서 - 김수영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 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어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훨씬 늙었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 자꾸 소심해져만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 자꾸 소인이 돼 간다.
俗돼 간다. 俗돼 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 사령(死靈) -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 절망 -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 도취의 피안 - 김수영

내가 사는 지붕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 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수 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우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이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보다 두려워하는것도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씩
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
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얇은 지붕우에서 솔개미같은
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
더운날과 추운날을 가리지 않고
늙은 버섯처럼 숨어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있을 문명
그것이 사람의 발자국 소리보다도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

나야 늙어가는 몸우에 하잘 것 없이 앉아 있으면 그만이고
너는 날아가면 그만이지만
잠시라도 나는 취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나의 초라한 검은 지붕에
너의 날개소리를 남기지 말고
내가 던지는 조그마한 그림자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의 귀에다 너의 엷은 울음소리를 남기지 말아라

차라리 앉아 있는 기계와 같이
취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와 나의 겨울을 한층 더 무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눈이랑 한층 더 맑게 하여다오
짐승이여 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도취의 피안에서 날아와 무수한 날짐승들이여.




* 사랑 -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 김수영(남)


1921년 서울 출생.
1947년 예술부락 동인지로 등단
1958년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수상
1968년 6월 16일 사망.
1981년 김수영문학상수상제정
시집 <달나라의 장난> <거대한 뿌리> <주머니속의 시>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사랑의 변주곡> <김수영 전집> 등.

                                                                                                                                 


top


    • 생애
    •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 평가

    '12. 내가 읽은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일근 시편  (0) 2007.01.25
    함동정월 / 최두석  (0) 2007.01.24
    [스크랩] 김수영 시모음  (0) 2007.01.15
    느티나무 타불 / 임 영조  (0) 2007.01.15
    [스크랩] 자서전/임영조  (0) 2007.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