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함동정월 / 최두석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24. 17:15
최두석의 함동정월 시편
번호 : 194   글쓴이 : 오소후
조회 : 5   스크랩 : 0   날짜 : 2007.01.17 10:23
함동정월 / 최두석


  살크당 다로당 이 가야금 음정에 서슬이 있어요. 쓸데없이 투트당거리고 뜯고 튕기면 어떻게 해. 바쁘고 어려웅깨 얼릉얼릉 해볼랑께 될 거여. 악보만 외았제 장단만 맞췄제 아무것도 아니데, 밤나 악보로만 외아 가지고 널 뛸라나? 손끝만 가지고 어깨힘만 가지고 산조 탈 수 있간디. 안 되아. 아 제대로 탈라면 그냥 땀이 착 흘러. 그러니께 산조에는 모든 희로애락 인간 이야그가 다 들어 있단 말이야.
  소매 든 김에 춤추드라고 내 이야그까장 하라고? 내가 긍께 명색이 가얏고 문화잰디 물 나는 지하 셋방 신세여, 아들 딸덜은 모다 어리도 뿔뿔이 읎어졌어. 하여간에 징한 세월이여. 도무지 울도 웃도 못해. 사람얼 사는 길로 움직이게 둬야 할 거 아냐. 된통 보쌈당히서 광풍에 불려왔고만. 내 앞에서는 왜 하나도 쓸모 없는 일만 닥치는 지 말도 못해. 되는 일로도 힘드는데 아닌 일만 일삼으니 엉망진창이제.

*전라도 강진 가야금 문화재의 이야기이다.
동정호에 뜬 달처럼 아름다운 가야금 명인
함동정월의 산조는 듣는 겨울 한 낮이 한산하다. (소후)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 / 최두석
번호 : 5542   글쓴이 : 사랑초
조회 : 9   스크랩 : 0   날짜 : 2007.01.08 12:45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 / 최두석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노래와 이야기 / 최두석
번호 : 62889   글쓴이 : 플로우
조회 : 63   스크랩 : 0   날짜 : 2006.11.01 09:04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대꽃]


* 정간보(井間譜) : 조선 세종이 창안한 악보. 井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놓고 율명(律名)을
기입함.
 
 
 
눈길 / 최두석
번호 : 253   글쓴이 : 지게
조회 : 0   스크랩 : 0   날짜 : 2006.11.23 13:34
최두석 / 최민식
번호 : 1701   글쓴이 : 진란
조회 : 22   스크랩 : 1   날짜 : 2006.02.03 23:18

 

최민식

최두석

 

  날 때부텀 가난 구뎅이에 빠진 사람이 있거덩. 가들은 구걸하는 어매 등에 업히가 거리에서 자라고 걷게 되믄 알아서 지 묵을 걸 찾아야 되는 기라. 혹은 지 건강을 다 바쳐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사람들이 있지. 가들은 나이 묵으믄 더 팔 수 있는 건강도 없어가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한다꼬. 가들의 땀에 쩔은 생활을 찍고 있으믄 살과 뼈로 이롸진 빈곤의 몸통을 덥썩 만져보는 것맹키로 섬찟한 기라.

 

  내는 사진 작업 할라꼬 현실적 고통을 차라리 즐깄거덩. 어떤 어렵음도 사진의 거름이 된다꼬 여깄으니까. 어떤 불행도 쾌감으로 수용할 수 있다 카는 오기로 넘몰래 미소짓곤 했지. 쌀 사놓으믄 연탄 떨어지고 연탄 들라노면 쌀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기라. 아픔맹키로 우리를 깊게 하는 기 없고 가난한 자의 행복만큼 진실한 거는 없어. 내 생애는 젤로 낮고 더럽은 땅을 입맞추믄서 흐르는 물로 남을 기야.

 

 「꽃에게 길을 묻는다」최두석, 문지. 2003.

 

*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티브이 광고에서 ‘부자 되세요’라고 떠들고,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가르는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온순한 이 땅 사람들이

반백년 만에 이뤄낸 경제적 성과가

놀랍기는 합니다만, 어째

소주 한잔의 온기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은 그리 편치 않습니다.

사진 속 가슴을 풀어헤친 걸인의

발꿈치에 놓인 찌그러진 깡통이

제 마음 같아서 말입니다.


*사진은 사진작가 최민식씨의 홈페이지

(http://human-photo.com)에서 가져왔습니다.

최민식씨가 1965년 부산에서 찍은 것입니다



금촌까지 이십 리

차는 눈길에 막혀 오지 않고

간혹 미끄러져 비칠대며

나는 눈사람이 되어 걷는다

길가 앙상한 코스모스도

눈꽃으로 새로이 만발하고

파주군 탄현면 성동리 임진강가

길이 끊겨 더 갈 수 없는 곳으로부터

자꾸 안경알을 닦으며

되짚어 돌아오는 것이다

무작정 막다른 곳까지 갔다가

후퇴하며 다시 시작하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 하나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세월

세밑의 어느 날

잿빛 하늘 자욱히

함박눈 춤추며 내리는데

뚜루루루 끼룩

기러기떼는 보이지 않고

울음 소리만 날아간다
 
 
 






 
최두석 / 최민식
번호 : 1701   글쓴이 : 진란
조회 : 22   스크랩 : 1   날짜 : 2006.02.03 23:18

 

최민식

최두석

 

  날 때부텀 가난 구뎅이에 빠진 사람이 있거덩. 가들은 구걸하는 어매 등에 업히가 거리에서 자라고 걷게 되믄 알아서 지 묵을 걸 찾아야 되는 기라. 혹은 지 건강을 다 바쳐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사람들이 있지. 가들은 나이 묵으믄 더 팔 수 있는 건강도 없어가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한다꼬. 가들의 땀에 쩔은 생활을 찍고 있으믄 살과 뼈로 이롸진 빈곤의 몸통을 덥썩 만져보는 것맹키로 섬찟한 기라.

 

  내는 사진 작업 할라꼬 현실적 고통을 차라리 즐깄거덩. 어떤 어렵음도 사진의 거름이 된다꼬 여깄으니까. 어떤 불행도 쾌감으로 수용할 수 있다 카는 오기로 넘몰래 미소짓곤 했지. 쌀 사놓으믄 연탄 떨어지고 연탄 들라노면 쌀 떨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기라. 아픔맹키로 우리를 깊게 하는 기 없고 가난한 자의 행복만큼 진실한 거는 없어. 내 생애는 젤로 낮고 더럽은 땅을 입맞추믄서 흐르는 물로 남을 기야.

 

 「꽃에게 길을 묻는다」최두석, 문지. 2003.

 

*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티브이 광고에서 ‘부자 되세요’라고 떠들고,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가르는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온순한 이 땅 사람들이

반백년 만에 이뤄낸 경제적 성과가

놀랍기는 합니다만, 어째

소주 한잔의 온기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은 그리 편치 않습니다.

사진 속 가슴을 풀어헤친 걸인의

발꿈치에 놓인 찌그러진 깡통이

제 마음 같아서 말입니다.


*사진은 사진작가 최민식씨의 홈페이지

(http://human-photo.com)에서 가져왔습니다.

최민식씨가 1965년 부산에서 찍은 것입니다

 

 

읽기 좋은 시 (최두석, 아우라지에서)
번호 : 79   글쓴이 : 하노이 상처리
조회 : 63   스크랩 : 0   날짜 : 2006.03.26 21:13
 

아우라지에서



(최두석)



진달래 꽃잎 띄우고

그리움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겨울 골짜기에 얼어붙었던

슬픔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리움은 슬픔을 만나

깊어지고 넓어지고

슬픔은 그리움을 껴안아

강이 된다고 넌지시 일러주며

하염없이 일렁이는 물살은

어디로 아득히 흘러가는가

여울을 지나 소를 지나

다시 오지 않을 생애의 한 굽이를

소용돌이치며 돌아



<문학사상사, 『1996년도 제10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애의 한 굽이를 돌아,

소용돌이치며 돌아


내 그리움은,

내 슬픔은,

진달래 꽃잎 같은 내 청춘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노루귀-최두석 詩/청노루귀 사진/Unchained Melody 경음악
번호 : 148   글쓴이 : 두루미
조회 : 33   스크랩 : 0   날짜 : 2006.03.26 11:27


 

청노루귀

 

 



            노루귀 / 최두석


            봄이 오는 소리
            민감하게 듣는 귀 있어

             

            쌓인 낙엽 비집고
            쫑긋쫑긋 노루귀 핀다

             

            한 떨기 조촐한 미소가
            한 떨기 조촐한 희망이다


            지도에 없는
            희미한 산길 더듬는 이 있어
            노루귀에게 길을 묻는다

 

 

 

미소 - 최두석
번호 : 928   글쓴이 : 별소녀
조회 : 15   스크랩 : 0   날짜 : 2006.03.01 23:21

미소/최두석

쓸쓸한 이에게는
밝고 따스하게
울적한 이에게는
맑고 평온하게 웃는다는
서산 마애불을 보며
새삼 생각한다
속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그냥 절로 생성되지 않는다고

생애를 걸고
암벽을 쪼아
미소를 새긴
백제 석공의

지극한 정성과 공력을 보며
되짚어 생각한다
속깊이 아름다운 웃음은
생애를 두고 가꾸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미소가
세상을 구하리라 믿은
천사백 년 전 웃음의 신도여
그대의 신앙이
내 마음의 진창에
연꽃 한 송이 피우누나.

 

마라도 바다국화 / 최두석
번호 : 62865   글쓴이 : 플로우
조회 : 71   스크랩 : 0   날짜 : 2006.10.22 15:36





뿌리로 검은 바위 끌어안고

난바다 거센 파도 소리 삼키며

모진 바람에 고개 숙여

잔디처럼 바닥을 기다가도

꽃만은 그윽이 푸른 가을 하늘

마주 보며 피우누나



내가 아는 눈빛 맑은 여인

세상살이 온통 허무해져

바다에 몸을 던지러 왔다가

바다국화 꽃 피우는 모습 보고는

마음 다잡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게 됐다는구나.



[ 꽃에게 길을 묻는다 / 문학과지성사 ]

 

 

최두석 철원평야
번호 : 712   글쓴이 : 문선생
조회 : 95   스크랩 : 0   날짜 : 2006.10.17 18:47

 

 

내 마음속에 구름 모이고 흩어지는


철원평야 같은 너른 들판이 있어

시적 공간이자 화자의 마음/ 삶의 터전을 상징한다.

<때로 폭우 쏟아져
      시련의 요소

한탄강 같은 강물이 격류로 아우성치기도 하고

 

때로 폭설이 내려

지상의 모든 길이 끊기는 눈나라가 되기도 하는데 >

<  >부분 : 삶의 시련이지만 통과의례적인 가치를 지닌다. 너를 들판에서 만물이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폭우 속에서도 백로는 알을 품고

 

폭설 속에서도 두루미는 새끼를 기르나니 >
<   > 부분 : 시련 속에서도 가치를 꽃피우는 자연의 생명력

나 세상일에 하염없이 슬퍼질 때
                    나약해질 때 / 시련이 버거울 때

부엉이 되어 찾아가 밤새워 우나니

시적화자 분신 /감정이입 

철원평야 : 삶의 깨달음의 공간이자 든든한 위안의 공간이다.

 

 

성에꽃 - 최두석
번호 : 181   글쓴이 : 기다림114
조회 : 278   스크랩 : 0   날짜 : 2006.03.16 10:32

 

                 성  에  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새벽 시내 버스에 핀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 입깁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림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서정적, 사회 비판적(현실 참여적), 상징적, 회화적, 감각적

  ▶어조 : 우울한 사회 현실을 노래하는 낮고 잔잔한 어조

  ▶표현 : 상징법, 역설법

  ▶제재 : 버스 창문에 핀 성에꽃

  ▶주제 : 80년대의 시대적인 아픔, 동시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

               어둡고 고통스런 사회 현실과 서민들의 남루한 삶

  ▶출전 : <성에꽃>(1990)


 *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추운 날 새벽 차창에 서리는 성에꽃을 바라보면서 이 버스를 타고 다녔을 무수한 이웃들을 생각하고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한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 볼수록 그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만 간다. 그 연민은 차츰 그들이 모두 함께 힘겹게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확대되어 간다. 마침내 이 정직한 삶을 방해하던 것들에 맞서 몸을 던진 친구까지, 우리 모두 현실의 모순을 뚫고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 시에서 성에꽃은 그것이 지워지고 난 자리에 비치는 시적 화자의 얼굴로, 다시 자신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친구로 이미지가 전이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의 구절과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에서 역설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에서는 그 의미가 친구에서 서민들로까지 확장된다.

      친구에 대한 의미는 마지막 구절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에서 친구가 같은 삶(민주화 운동)의 여정을 걸어 왔으나 암담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시는 이렇듯 소외된 자리에서 ‘푸석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대감을 서둘거나 외치지 않고 조용하고 푸근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시어 및 시구 풀이

․혹한 : 몹시 심한 추위, 극한(極寒)  ․선연 : 산뜻하고 아름다움

․차창에 웬~하고 달린다. : 시인의 눈과 상상력은 성에를 단지 성에로 보지 않고 차창에 핀 꽃으로 여긴다. 이러한 성에꽃을 ‘찬란한 치장’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성에꽃은 따스한 봄날에 자연이 피워 낸 꽃이 아니다. 겨울과 같은 팍팍한 세상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 넉넉지 못한 서민들이 피워 낸 꽃이다.

․어제 이 버스를~기막힌 아름다움 : 유리창에 서린 성에꽃에서 고단한 몸짓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성에꽃’의 아름다움을 ‘번뜩이는 기막힌’이라는 수식으로 집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동시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어느 누구의~숨결이던가 : 화자는 성에꽃을 보며 그것을 피워 낸,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강한 생명력을 상상한다. 서민들의 막막한 한숨과 그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삶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이 성에꽃이다.

․덜컹거리는 창에~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화자는 새벽 시내 버스의 유리창에서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본다. 하지만 그 상상은 차가 덜컹거리는 순간 돌연 장면이 바뀌면서 차단당하고,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의 푸석한 얼굴이 그 한숨과 정열의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만다.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가 화자와 단절돼 있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생각해 봅시다

1. 이 작품에서 ‘창’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시에서 ‘창’은 흔히 바깥 세상의 풍경을 내다보는 메개체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른 새벽 성에가 낀 버스의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된다. 그 창에 비친 세상의 풍경은 얼룩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막막하다. 그러나 그 막막하고 팍팍함에서 오는 슬픔을 ‘성에’를 통해 잊게 된다. 왜냐하면 ‘성에’는 동시대인들의 숨결과 입김으로, 공동체 의식 그 자체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2. ‘성에꽃’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 ‘성에꽃’에는 시대 현실에 대한 화자의 차게 얼어 붙은 의식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사적인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이리저리 오가며 성에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성에꽃을 정성스레 지우는 행위를 통해 삶의 고단함, 애환을 함께 느끼는 공감의 세계로 나아간다. 따스한 봄날 자연이 피워 낸 꽃이 아니고, 한겨울의 팍팍한 현실 속에서 이웃들이 피워 낸 꽃이기에 차창의 성에꽃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3. 정지용의 ‘유리창1’과 비교해 보자.

 ▶ 이 시는 정지용의 ‘유리창1’과 발상이나 형상화의 수법에서 흡사한 면이 있다. 창을 통해 시상을 불러일으키고, 또 이 창을 통해 무언가를 보려 한다는 점에서 시적인 맥락이 비슷하다. 정지용의 ‘유리창1’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절제된 언어로 내면화했다면, 최두석의 ‘성에꽃’은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하며 이를 내면화했다. 그리고 시인의 민중적인 시선은 이 성에꽃을 고통과 희망의 복합체로 여기며 엄동설한과 같은 80년대의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서정적인

 

 

최두석, [백운산 고로쇠나무]
번호 : 506   글쓴이 : 이은봉
조회 : 26   스크랩 : 0   날짜 : 2006.09.03 12:10
 

최두석

백운산 고로쇠나무

백운산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

고무호스가 줄줄이 뻗어 있다

친절하게도 그 고무호스가

일일이 방문드린 대상은 고로쇠나무

우수 경칩 무렵이면

나무마다 밑둥에 구멍 뚫어

고무호스를 박아

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히는

고로쇠 수액을 받는다


사람들은 약수라 하지만

실상 나무에게는 피인 것인데

봄을 맞아 힘을 내려고

위장병에도 신경통에도 좋다고

하마 물 마시듯 벌컥벌컥

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야 효험 있다고

몇 통씩 사 들고

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땀 흘리며

배 두드리며 마시는 자도 있다.

 

-{시와사람} 2004년 여름호 

 

   * 인간이 자연을 착취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적 근대 이후 훨씬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욕망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에너지를 더욱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그런 욕망과 에너지 숭배를 ‘백운산 고로쇠나무’라는 객관상관물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화자이다. 물론 이 때의 비판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아 독자들의 인식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고로쇠나무는 “우수 경칩 무렵이면” “밑둥에 구멍 뚫어/고무호스를 박아/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히는” “수액을 받는” 나무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약수라 하지만/실상 나무에게는 피인 것”이 고로쇠나무의 수액이다. 이런 고로쇠나무 수액을 “하마 물 마시듯 벌컥벌컥/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야 효험 있다고/몇 통씩 사 들고/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땀 흘리”는 것이 오늘의 인간이다. 따라서 고로쇠나무 수액을 받기 위해 “백운산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고무호스가 줄줄이 뻗어 있”는 것을 보고 화자가 인간의 증폭된 욕망과 에너지 숭배와 관련해 비판을 넘어 비감에 젖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최두석' 프로필 



이름 : 
최두석

출생 : 
1956년 11월 23일

출신지 : 
담양

직업 : 
대학교수

학력 : 
서울대학교대학원

경력 : 
2001년~2003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원장
1997년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한국문화학부 문예창작전공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