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에 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새벽 시내 버스에 핀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 입깁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림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성격 : 서정적, 사회 비판적(현실 참여적), 상징적, 회화적, 감각적
▶어조 : 우울한 사회 현실을 노래하는 낮고 잔잔한 어조
▶표현 : 상징법, 역설법
▶제재 : 버스 창문에 핀 성에꽃
▶주제 : 80년대의 시대적인 아픔, 동시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
어둡고 고통스런 사회 현실과 서민들의 남루한 삶
▶출전 : <성에꽃>(1990)
*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추운 날 새벽 차창에 서리는 성에꽃을 바라보면서 이 버스를 타고 다녔을 무수한 이웃들을 생각하고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한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 볼수록 그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만 간다. 그 연민은 차츰 그들이 모두 함께 힘겹게 그러나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확대되어 간다. 마침내 이 정직한 삶을 방해하던 것들에 맞서 몸을 던진 친구까지, 우리 모두 현실의 모순을 뚫고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이 시에서 성에꽃은 그것이 지워지고 난 자리에 비치는 시적 화자의 얼굴로, 다시 자신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친구로 이미지가 전이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의 구절과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에서 역설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 낸 정열의 숨결이던가'에서는 그 의미가 친구에서 서민들로까지 확장된다.
친구에 대한 의미는 마지막 구절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에서 친구가 같은 삶(민주화 운동)의 여정을 걸어 왔으나 암담한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현재 옥살이를 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시는 이렇듯 소외된 자리에서 ‘푸석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대감을 서둘거나 외치지 않고 조용하고 푸근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시어 및 시구 풀이
․혹한 : 몹시 심한 추위, 극한(極寒) ․선연 : 산뜻하고 아름다움
․차창에 웬~하고 달린다. : 시인의 눈과 상상력은 성에를 단지 성에로 보지 않고 차창에 핀 꽃으로 여긴다. 이러한 성에꽃을 ‘찬란한 치장’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엄동 혹한일수록 / 선연히 피는 성에꽃 : 성에꽃은 따스한 봄날에 자연이 피워 낸 꽃이 아니다. 겨울과 같은 팍팍한 세상 속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 넉넉지 못한 서민들이 피워 낸 꽃이다.
․어제 이 버스를~기막힌 아름다움 : 유리창에 서린 성에꽃에서 고단한 몸짓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성에꽃’의 아름다움을 ‘번뜩이는 기막힌’이라는 수식으로 집약해서 표현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동시대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표현이다.
․어느 누구의~숨결이던가 : 화자는 성에꽃을 보며 그것을 피워 낸,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강한 생명력을 상상한다. 서민들의 막막한 한숨과 그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삶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이 성에꽃이다.
․덜컹거리는 창에~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화자는 새벽 시내 버스의 유리창에서 개미처럼 성실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본다. 하지만 그 상상은 차가 덜컹거리는 순간 돌연 장면이 바뀌면서 차단당하고,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의 푸석한 얼굴이 그 한숨과 정열의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만다.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친구가 화자와 단절돼 있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생각해 봅시다
1. 이 작품에서 ‘창’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 시에서 ‘창’은 흔히 바깥 세상의 풍경을 내다보는 메개체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른 새벽 성에가 낀 버스의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된다. 그 창에 비친 세상의 풍경은 얼룩져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막막하다. 그러나 그 막막하고 팍팍함에서 오는 슬픔을 ‘성에’를 통해 잊게 된다. 왜냐하면 ‘성에’는 동시대인들의 숨결과 입김으로, 공동체 의식 그 자체의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2. ‘성에꽃’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 ‘성에꽃’에는 시대 현실에 대한 화자의 차게 얼어 붙은 의식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사적인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이리저리 오가며 성에꽃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성에꽃을 정성스레 지우는 행위를 통해 삶의 고단함, 애환을 함께 느끼는 공감의 세계로 나아간다. 따스한 봄날 자연이 피워 낸 꽃이 아니고, 한겨울의 팍팍한 현실 속에서 이웃들이 피워 낸 꽃이기에 차창의 성에꽃은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3. 정지용의 ‘유리창1’과 비교해 보자.
▶ 이 시는 정지용의 ‘유리창1’과 발상이나 형상화의 수법에서 흡사한 면이 있다. 창을 통해 시상을 불러일으키고, 또 이 창을 통해 무언가를 보려 한다는 점에서 시적인 맥락이 비슷하다. 정지용의 ‘유리창1’이 자식을 잃은 슬픔을 절제된 언어로 내면화했다면, 최두석의 ‘성에꽃’은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하며 이를 내면화했다. 그리고 시인의 민중적인 시선은 이 성에꽃을 고통과 희망의 복합체로 여기며 엄동설한과 같은 80년대의 우울한 사회 분위기를 서정적인
최두석, [백운산 고로쇠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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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글쓴이 :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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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석
백운산 고로쇠나무
백운산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
고무호스가 줄줄이 뻗어 있다
친절하게도 그 고무호스가
일일이 방문드린 대상은 고로쇠나무
우수 경칩 무렵이면
나무마다 밑둥에 구멍 뚫어
고무호스를 박아
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히는
고로쇠 수액을 받는다
사람들은 약수라 하지만
실상 나무에게는 피인 것인데
봄을 맞아 힘을 내려고
위장병에도 신경통에도 좋다고
하마 물 마시듯 벌컥벌컥
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야 효험 있다고
몇 통씩 사 들고
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땀 흘리며
배 두드리며 마시는 자도 있다.
-{시와사람} 2004년 여름호
* 인간이 자연을 착취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것은 자본주의적 근대 이후 훨씬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욕망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에너지를 더욱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그런 욕망과 에너지 숭배를 ‘백운산 고로쇠나무’라는 객관상관물을 통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화자이다. 물론 이 때의 비판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아 독자들의 인식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고로쇠나무는 “우수 경칩 무렵이면” “밑둥에 구멍 뚫어/고무호스를 박아/이슬처럼 방울방울 맺히는” “수액을 받는” 나무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약수라 하지만/실상 나무에게는 피인 것”이 고로쇠나무의 수액이다. 이런 고로쇠나무 수액을 “하마 물 마시듯 벌컥벌컥/한꺼번에 많이 들이켜야 효험 있다고/몇 통씩 사 들고/부러 찜질방에 들어가 땀 흘리”는 것이 오늘의 인간이다. 따라서 고로쇠나무 수액을 받기 위해 “백운산 크고 작은 골짜기마다/고무호스가 줄줄이 뻗어 있”는 것을 보고 화자가 인간의 증폭된 욕망과 에너지 숭배와 관련해 비판을 넘어 비감에 젖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최두석'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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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두석
출생 :
1956년 11월 23일
출신지 :
담양
직업 :
대학교수
학력 :
서울대학교대학원
경력 :
2001년~2003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원장 1997년 한신대학교 인문대학 한국문화학부 문예창작전공 부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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