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오솔길의 몽상.2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24. 15:51
오솔길의 몽상.2 / 고재종
번호 : 62754   글쓴이 : 플로우
조회 : 49   스크랩 : 1   날짜 : 2006.09.23 09:00



이고 들고 업고 안은 아낙네만 같아서

무얼 좀 놓아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

그리하여 내가 다시 찾는 오솔길에는

억새 속새 푸나무 넌출 무성한데

무얼 더 붙잡겠다고 거미는 곳곳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가, 기다려보아야

아무도 없는 혼자일 때마다

소쩍새 울음이나 뼈마르도록 듣던 곳,

잎새들이 또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모퉁이를 돌아간 쓸쓸함까지 되부르는 곳.

무얼 좀 놓아버리면 몽상은 되살아나선

가령 수제비 떼어놓은 듯한 구름이며

휘파람새 울음 속에 집 한 채 짓고 싶다.

몽상은 요렇더라도 머루 다래 돌배는

토실토실 여기저기 풍성한데

오목눈이들은 어찌 오락가락 야단법석인지.

야단법석으로 여럿일 때마다

늘 무언가 잃어버린 듯 막막하던 날들,

저처럼 햇빛 코팅한 억새들의 반짝임 속에

그러나 곧장 해지면 소슬해지는 그 속에

혼자 누워 있던 때가 그립더라니!

무얼 좀 잡은 적도 좀체는 없는데

무얼 다 놓지 않으면 목숨에 닿을 것 같은

그 경각의 마음으로 찾는 오솔길에는

설렁설렁 바람만니 수만 길을 낸다, 내는데

아까부터 저쪽의 햇빛 환한 무덤 뒤에선

웬 커다란 엉덩이가 잦은 방아를 찧어대며

밑에 깔린 숨결을 자꾸만 결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