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러서 썩지 않는 슬픔떼 / 고재종 | |
번호 : 62794 글쓴이 : 플로우 |
조회 : 49 스크랩 : 1 날짜 : 2006.10.04 11:18 |
남들은 푸른 절개라 뭐라 하지만 저 대나무 보는 나는 늘 서럽다 한 번의 태생, 그 모진 뿌리에 엉키어 한 발짝도 옮길 수 없는 그것으로 댓마디마디 부르튼 것을 보아라 한 번의 운명, 그 모진 노여움에 살아 푸르른 눈 한 번 감지 못하고 댓잎새 서걱서걱 제 살이나 베고 바람은 한시도 멈출 줄 몰라서 저 대나무도 나도 가만 있질 못한다 때론 우듬지 떨림 같은 그리움으로 수많은 되새떼을 야심천에 띄우고 날빛과 별빛 사이의 설렘을 금쌀밭 은쌀밭으로 바꿔보기도 했지만 모든 게 부질없느니! 그렇다 해서 그 소가지 텅텅 비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꽃 한번 피우는 그날이 생의 최후의 날인 이 천형 때문에 대밭에선 늘 살가지떼나 사는 것이냐 차라리 죽창으로 빛나리라 했다 선혈이 낭자한 어느 아침놀 녘 번뜩이는 도끼로 제 발등 찍어 제 운명을 겨누는 죽창이기보단 차라리 황혼의 대피리 열어 이 땅의 슬픔떼 일렁이게 하리라 했다 푸르러서 썩지 않는 그 슬픔떼 안고 제 생의 몫을 견디는 자들의 노래 아직은 세상에 넘치리라 믿는 탓이다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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