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0. 24. 15:49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 고재종
번호 : 4313   글쓴이 : 들바람꽃
조회 : 93   스크랩 : 3   날짜 : 2006.09.23 18:02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 고재종 하늘의 정정한 것이 수면에 비친다. 네가 거기 흰구름으로 환하다. 산제비가 찰랑, 수면을 깨뜨린다. 너는 내 쓸쓸한 지경으로 돌아 온다. 나는 이제 그렇게 너를 꿈꾸겠다. 초로(草露)를 잊은 산봉우리로 서겠다. 미루나무가 길게 수면에 눕는다. 그건 내 기다림의 길이. 그 길이가 네게 닿을지 모르겠다. 꿩꿩 장닭꿩이 수면을 뒤흔든다. 너는 내 외로운 지경으로 다시 구불거린다. 나는 이제 너를 그렇게 기다리겠다. 길은 외줄기 비잠(飛潛) 밖으로 멀이지듯 요요하겠다. 나는 한가로이 거닌다. 방죽가를 거닌다. 거기 윤기 흐르는 까만 염소에게서 듣는다. 머리에 높은 뿔은 풀만 먹는 외골수의 단단함 임을. 너는 하마 그렇게 드높겠지. 일월(日月) 너머에서도 뿔은 뿔이듯 너를 향하여 단단하겠다. 바람이 분다. 천리향 향기가 싱그럽다. 너는 그렇게 향기부터 보내오리라. 하면 거기 굼뜬 황소마저 코를 벌름거리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렇게 아득하겠다. 그 향기 아득한 것으로 먼 곳을 보면, 삶에 대하여 무얼 더 바라 부산해질까. 물결 잔잔해져 수심(水心)이 깊어진다. 나는 네게로 자꾸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