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금밭 앞을 서성이다 / 고재종
내가 시방 어쩌려고 능금밭 앞에서 서성이며
내가 요렇듯이 바잡는 마음인 것은
저 가시 탱자울의 삼엄한 경비 탓이 아니다
내가 차마 두려운 건, 저 금단의 탱자울 너머
벌써 신신해진 앞강물소리와
벌써 쟁명해진 햇살을 먹고
이 봐라, 이 봐라, 입 딱! 벌게는 주렁거리며
빨갛게 볼을 붉히고 있을 능금알들의 황혼
어느해 가을 저곳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볼이 달아오를대로 올라선
그 능금알을 따는 처녀들과
그것을 한 광주리씩 들어올리는
먹구리빛 팔뚝의 사내들을 훔쳐본 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저 능금밭에 들려거든
두근두근 숨을 죽이고, 콩당콩당 숨을 되살리며
개구멍을 뚫는 벌때추니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익을대로 익은 빛깔이
그토록 견딜 수 없는 향기로 퍼지는
저 풍성한 축제를 누가 방자하게 바라볼 것인가
내가 능금밭 앞에서 여전히 두려운 것은
시방 무슨 장한 기운이 서리서리 둘러치는!
저 금기의 신성의 공간, 그것을
내 차마 좀팽이로도 바잡는 마음 다하여
아직도 몰래 훔치고 싶은 이 황홀한 죄, 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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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직장 동료들과
청도에 다녀왔습니다.
별장처럼 예쁜 집에서 밤, 땅콩, 고구마를 먹고
집 근처 텃밭에서 자란 풋고추와 배추도 먹으며
눈부신 가을햇살까지 마음껏 먹었습니다.
그 집 옆엔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보고 우리들은
하나 따 먹어도 될까? 괜찮겠지? 안되겠지? 하면서
초대받지 않은 그들의 달콤한 축제에
방자하게 끼워 들었습니다.
정말로, 무슨 장한 기운이 서리서리 둘러쳐 있는 것인지
저마다 둥글게 깊어지고 있는 그 곳에
차마 들어서지 못하고
가지고 간 카메라에 몰래 담아 왔습니다.
詩하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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