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사람의 여섯 번째 반응 : 원로시인 이형기의 ‘낙화’
담담히 죽지 못하면 불제자 아니다
원로 시인 이형기씨는 시 ‘낙화’를 남기고 지난 2월2일 세상을 떠났다. 16세 되던 1949년 「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고인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시의 덫에 걸렸다”는 말을 자주 했다. 11년 전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아내의 도움을 받아 구술 시작을 했을 정도로 시혼을 불살랐다. 사람마다 죽어가는 모습이 다르지만, 원로시인의 ‘낙화’는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 죽음에 담긴 철학적 의미, 죽음 이해의 다양성과 중요성, 어떤 방식으로 죽을 것인가,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가 라는 문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점이 있다. 11년간 누워 지내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낙화’를 통해 죽음에 임해 여행을 떠나는 자기 자신의 심정을 남김없이 토로하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고인은 이 시를 통해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소멸의 미학을 특유의 반어법으로 표현해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의 정점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득도하지 않기 위해 구도하고, 구원에 이르러 안주하지 않기 위해 구원을 갈구한다.” “변하고 소멸하는 것을 수용하고 처절히 절망한 연후에야 비로소 인간에게 본질적인 자유가 주어진다.”
시인의 통찰력으로 죽음에 임하는 바로 그 순간,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기고 떠난 시인,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바로 영적으로 진화하기 위함이고, 고통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설정된 기회이다. 죽음은 삶 속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시험해보는 관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성장의 마지막 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뿐만 아니라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붓다도 말씀하지 않았던가. “인간에게 아무런 어려움도 아무런 고통도 없다고 한다면 내적인 강인함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키울 수 없고, 성숙한 정신과 미래에 대한 비전도 바랄 수 없다.”
죽음을 평소에 수용해 인간다운 삶,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 삶과 죽음에 대한 정견(正見) 확립, 사람과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평생 전력을 다하는 것이 바로 불자가 해야 할 일이다. 불교 가르침은 바로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명상 수행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으뜸이라고 붓다도 말씀한 적이 있다. 아니 붓다의 가르침은 전부가 죽음 준비라고 말해도 된다. 우리가 수행을 닦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죽음 준비, 즉 삶의 준비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담담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죽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취이다. 만일 어떤 수행자가 도를 닦는 듯이 보였을지라도, 담담하게 죽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붓다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단정해도 된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