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풍선 심장 - 詩人: 이형기

월정月靜 강대실 2007. 1. 13. 10:40
풍선 심장 - 詩人: 이형기
번호 : 6222   글쓴이 : 아 우 성
조회 : 42   스크랩 : 1   날짜 : 2006.04.18 19:48
      http://cafe.daum.net/musicstory2 풍선 심장 - 詩人: 이형기 심장을 만듭니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어 색칠을 합니다. 원래의 심장은 지난 여름 장마때 피가 모조리 씻겨 빠졌습니다. 그리고 장마 뒤의 불볕 속에서 내 심장 빈 껍데기만 남은 그것은 허물처럼 까실까실 말라버렸습니다.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된 심장 구겨 뭉쳐 쓰레기통에 내버린 심장 한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심장을 달랍니다. 드리고 말고요 어렵잖은 일입니다. 당신의 맘에 꼭 드는 예쁘장한 심장 어두운 가슴 속에 감추어 둘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쩨쩨하게 혼자 독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혼자 둥둥 하늘에 띄는 심장 떠다니다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심장 오늘 나는 그 풍선 심장에 곱게 곱게 색칠을 합니다.

       

       

      나는 우물입니다... 그대가 처음 구름이 되어 찾아와 신기하듯 내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우물이 된 게 너무나 기뻤습니다. 짧은 순간 그대는 스쳐 지나가고 나는 그대를 쫓아갈 수 있는 새나 바람이 아닌 우물이라는 사실에 절망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대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내 몸 안에서는 그리움이 파란 이끼로 피어났습니다 가을이 되자 사랑을 모르는 철부지 참새들이 놀러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나의 운명을 바꿔버린 짧은 눈 맞춤에 대해서..... 혼자 있을 때 촛불을 켜는 것은 그대의 환한 미소가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x-text/html; charset=iso-8859-1" loop="1" volume="0">

 

죽어가는 사람의 여섯 번째 반응 : 원로시인 이형기낙화

 

담담히 죽지 못하면 불제자 아니다

 

원로 시인 형기씨는 시 낙화를 남기고 지난 22일 세상을 떠났다. 16세 되던 1949년 「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고인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시의 덫에 걸렸다는 말을 자주 했다. 11년 전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아내의 도움을 받아 구술 시작을 했을 정도로 시혼을 불살랐다. 사람마다 죽어가는 모습이 다르지만, 원로시인의 낙화는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 죽음에 담긴 철학적 의미, 죽음 이해의 다양성과 중요성, 어떤 방식으로 죽을 것인가,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가 라는 문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점이 있다. 11년간 누워 지내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낙화를 통해 죽음에 임해 여행을 떠나는 자기 자신의 심정을 남김없이 토로하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고인은 이 시를 통해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소멸의 미학을 특유의 반어법으로 표현해 사라짐에 대한 존재론적 미학의 정점을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득도하지 않기 위해 구도하고, 구원에 이르러 안주하지 않기 위해 구원을 갈구한다.” “변하고 소멸하는 것을 수용하고 처절히 절망한 연후에야 비로소 인간에게 본질적인 자유가 주어진다
.”

시인의 통찰력으로 죽음에 임하는 바로 그 순간,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기고 떠난 시인,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바로 영적으로 진화하기 위함이고, 고통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설정된 기회이다. 죽음은 삶 속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시험해보는 관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성장의 마지막 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뿐만 아니라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붓다도 말씀하지 않았던가. “인간에게 아무런 어려움도 아무런 고통도 없다고 한다면 내적인 강인함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키울 수 없고, 성숙한 정신과 미래에 대한 비전도 바랄 수 없다
.”

죽음을 평소에 수용해 인간다운 삶, 존엄한 죽음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 삶과 죽음에 대한 정견(正見) 확립, 사람과 죽음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평생 전력을 다하는 것이 바로 불자가 해야 할 일이다. 불교 가르침은 바로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명상 수행 가운데 죽음에 대한 명상이 으뜸이라고 붓다도 말씀한 적이 있다. 아니 붓다의 가르침은 전부가 죽음 준비라고 말해도 된다. 우리가 수행을 닦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죽음 준비, 즉 삶의 준비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담담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죽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취이다. 만일 어떤 수행자가 도를 닦는 듯이 보였을지라도, 담담하게 죽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붓다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단정해도 된다
.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출처 : 대승의바다 원문보기 글쓴이 : 진흙속의연꽃

 

 

 

작고시인 이형기 문학상 제정 / 세계일보
번호 : 188   글쓴이 : 우담
조회 : 8   스크랩 : 0   날짜 : 2006.04.06 22:56



작고시인 이형기 문학상 제정



격월간 시전문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작고한 시인 이형기(1933-2005) 씨의 문학정신을 기려 '이형기 문학상'을 제정한다.
이 상은 지난 1년간 발행된 시집 가운데 우수 시집 1권을 선정해 시상한다. 상금은 올해 300만원이며 추후 증액하기로 했다. 4월 중 본심을 거쳐 6월에 시상할예정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로 시작되는 시 '낙화'로 유명한 이형기 시인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50년 '문예'지로 등단했다. 평론가로도 활동하면서 시집 '적막강산' '절벽', 비평집 '감성의 논리' 등을 남겼으며 국제신문 편집국장,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연합>

2006.04.03 (월) 08:12

 

 

* 詩를 쓰지 못하는 시인 1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은
밤에 또한 잠을 못 잔다.
국산 수면제 스리나

그 매끈매끈한 하얀 정제 속에는
꿈이 스며들 틈이 없고나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지 않지만
때로는 너무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을수록 하얀 정제를.....

아아 내게서 꿈을 내쫓고
복용
한 시간 전후에 동물적인 수면을....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은
잠에 취해서 꿈을 잊어버린다.

 

'낙화'의 시인 이형기
2005.10.02 17:08


 

시인 이형기씨 별세


그리던 동무 박재삼 곁으로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지금은 가야 할 때”(〈낙화〉 앞 3연)

원로 시인 이형기씨가 2일 오전 10시 20분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11년 전에 찾아온 뇌졸중이었다. 향년 72.

시인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진주농림 5학년이던 1949년 촉석루예술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다. 당시 2등인 차상에 오른 이가 동갑내기인 박재삼이었다. 시인은 이어 이듬해 잡지 〈문예〉를 통해 서정주의 추천으로 정식 등단한다. 만 17살의, 기록적으로 어린 나이였다.

초기 이형기 시인의 시세계는 자연을 응시하는 가운데 자아와 존재의 궁극을 추구하는 전통 서정의 계보에 속했다. 조락와 소멸의 운명을 수긍하는 의젓한 태도를 친숙한 가락에 얹어 노래하는 모습은 시인의 생물학적 젊음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대표작 〈낙화〉와 함께 첫 시집 〈적막 강산〉(1963)에 수록된 〈비〉에서도 그런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풍경은 정좌하고/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나를 에워싼 적막강산/그저 이렇게 빗속에 저문다.”(〈비〉)

시인은 창작은 물론 평론과 시론 등의 분야에서도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1964년 무렵에는 김우종씨 등을 상대로 순수·참여문학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시인의 논지는 순수문학 역시 그 자체로 벌써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므로 그를 두고 ‘정치가 부족하다’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통 서정으로 출발한 시인의 시세계는 70년대 이후 도발적·모험적인 면모를 보이며 급격하게 변해 간다. 상투성과 모방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새로움과 시적 방법론의 갱신을 추구한 결과 그의 시는 서정주의에서 모더니즘 쪽으로 자리를 바꿔 앉은 것처럼 보였다.

199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그는 병석에서도 창작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았다. 지난 98년에는 투병 중에 쓴 시와 잠언을 모아 시집 〈절벽〉을 묶었다. 거기서 시인은 소멸의 운명과 맞서 있는 단독자의 고독과 결의를 아득한 슬픔에 버무려 이렇게 노래했다. 그것은 초기시 〈낙화〉의 승화이자 완성과도 같았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높게/날카롭게/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아아 절벽!”(〈절벽〉 전문)

같은 시집에 실린 시 〈이름 한번 불러보자 박재삼〉에서 “이름 한번 불러보자/아아 박재삼!/이왕 갔으니/내 자리도 네 가까이 하나 봐다오”라 했던 시인은 이제 비로소 먼저 간 동무 옆으로 떠나갔다.

시인은 〈서울신문〉 〈대한일보〉 〈국제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모교인 동국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한국문학가협회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숙씨와 딸 이여경씨, 사위 김태윤(한국와이어스 대리)씨가 있다. 장례식은 4일 오전 9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02)929-4099.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한겨레신문 2005/02/03(나모) '사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