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애상적, 감상적, 전통적, 민요적, 격정적
◈ 운율 : 3음보, 7․5조의 민요적 율격
◈ 어조 : 의지적이며 절규적 어조, 직접적이고 영탄적인 어조
◈ 제재 : 임의 죽음
◈ 주제 : 임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
■ 표현 및 특징
① 자아 내면의 간절한 절규가 애절하게 표출
② 설화적 모티프[망부석 설화]
③ 반복과 영탄을 통한 강렬한 어조
④ 감정의 격함을 직설젹으로 표현
⑤ 각 연의 시상을 연쇄적으로 연결
⑥ 7·5조, 3음조의 전통적 민요조의 리듬
⑦ 혼을 부르는 고복(皐復) 의식이 강함
◈
시작(詩作) 배경
비탄을 노래한 절정의 시로 소월의 대표작의 하나인 이 작품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처절한 슬픔을 노래한 시로서
살아서도 사랑을 짓밟기 쉬운 세상에,
이 시는 죽은 뒤에 더욱 그리운 사랑을 노래했다.
또한 치유될 길이 없는 세계와의 단절을 절감하면서도
단절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소월의 숙명적 슬픔을 엿볼 수 있다.
'초혼'의 외치는 소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공허감을 환기한다.
저승으로 뻗치는 사랑의 소리,
유계(幽界)까지를 현실화한 이 시의 주제는 그리움이라 하겠다.
◈
김소월(金素月) 본명은 정식(廷湜) (1902-1934)
1902년 8월 30일 평북 정주 출생.
오산학교 배재고보 졸업. 일본 동경 상대 수학.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며 등단.
『영대(靈臺)』 동인. 민요시인, 국민시인, 전통시인으로 불리는 그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전통적 율조와 정서를 성공적으로 시화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눈물·정한 등을 주제로 하며,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해 독특하고 울림이 큰 표현을 이룩하는 경지를 보여준다.
바로 이와 같은 특징이 그를 한국 현대시인 가운데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가장 많이 연구된 시인이 되도록 한 것이다.
시집으로는 『진달래꽃』(매문사, 1925)이 있으며,
그가 작고한 후 이에 기타 발표작을 수습·첨가해 많은 시집이 발간되었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끞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우울한 낭만주의자로서 출발한다. 3.1운동의 좌절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러나 20년대 중반부터 우리 문단은 냉정한 현실 인식을 회복하게 된다. 이 시도 그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것은 '빼앗긴 들'에 과연 참다운 삶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제1연에서 이 질문을 던지고 마지막 연에서 이에 대해 대답한다. 나머지 연들은 이러한 대답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대칭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시의 둘째 연과 마지막에서 둘째 연을 비교해 보면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앞의 것이 이상이라면 뒤의 것은 현실이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은 열려 있는 조국 해방의 비평을 의미한다. 그 지평을 향해 '한 자국도 섰지 마라',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는 강박에 사로잡혀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꿈속을 가듯' 화자는 걸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은 그에게 '푸른 웃음'이기도 하지만, '푸른 설움'이기도 한 것이다. 이상과 현실 속에서 그는 '다리를 절며' 걷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한 지식인이 느끼는 아픔이 '다리를 절며'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그러한 아픔 속에서 발견한 것이 허황한 관념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민중의 실체라는 점이다.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 로 표현된 빈농(빈농)의 아내와 누이에 대한 뜨거운 눈물을 우리는 이 시에서 본다. 창백한 지식인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는 싱싱한 표현을 가능케 했으리라.
부활-서정주
내 너를 찾아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鐘路)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리더냐. 순아, 이것이 몇만 시간(萬時間)만이냐, 그 날 꽃상여 산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촉불 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 린지 한 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연이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서도 열아홉 살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 속에 들어앉어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정리]
갈래-산문시. 서정시
주제-죽은 순아의 부활에 대한 소망
[짜임]
기-종로에서 처녀애들을 보며 순아의 모습을 봄
서-죽은 순아에 대한 그리움을 느낌
결-순아가 종로의 소녀들의 모습으로 부활함
[느낌]
이 시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는 과거에 죽은 순아의 부활이다.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는 진술은 죽은 순아를 현재 속에 끊임없이 되살리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화자의 이러한 소망에 부응하듯 어느 날 종로 네거리에서 부활하는 순아를 보게 되는데, 그 순아의 부활은 종로를 걸어가면서 문득 눈앞에 다가오는 소녀들의 밝은 모습에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시에는 죽음에서 부활을, 이별에서 만남을, 절망에서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정신적 갈망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