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읽은 좋은 시

연가 5-새끼들에게/ 문병란

월정月靜 강대실 2006. 11. 18. 19:09

이 애비는

식민지의 하늘 밑에서

쑥죽을 먹으며 자라났고

너희들은

분단 시대의 하늘 밑에서

정부미 혼합곡을 먹으며 자라난다.

대 물려온 할아버지의 가난을

이 애비가 물려받았고

이 애비의 가난을

너희들이 물려 받을 것이다.

우리들에겐 이미 익숙한 가난,

한번도 잘 살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들은 가난 따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양옥집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자가용 타는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라

콩나물 아침 시내버스에 흔들리면서

남의 발등도 조금 밟으면서

증오보다는 사랑,

돈보다 의리가 더 값진 재산임을 믿으라.

가난은 또 하나의 스승,

궁핍 속에 고이는

풍성한 눈물을 배우라

척박한 땅,

맹물을 마시고 고운 꽃을 피우는

봄철 민들레의 웃음을 배우라

오늘 이 땅에는

남의 총 남의 깃발이 길을 막는데

팝송을 들으며

코카콜라를 마시며

코밑이 까칠해지는 아들아

아무리 달콤하게 속삭일지라도

아무리 술술 잘 넘어갈지라도

애들아, 너희는 구정물통에 뜬

기름진 선진국의 기름덩어리,

먹고 남아 돌아가는 버터에 길들은

할렘가의 검둥이가 되지 말아라

국적 모를 洋돼지가 되지 말아라

나의 아들 딸들아!

 

 

'12. 내가 읽은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치 외 1편-고은  (0) 2006.11.20
희망가/문 병 란  (0) 2006.11.18
박재삼 시편  (0) 2006.11.16
[스크랩] 문인수 시감상  (0) 2006.11.16
[스크랩] 빈 산 / 김지하  (0) 2006.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