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애비는
식민지의 하늘 밑에서
쑥죽을 먹으며 자라났고
너희들은
분단 시대의 하늘 밑에서
정부미 혼합곡을 먹으며 자라난다.
대 물려온 할아버지의 가난을
이 애비가 물려받았고
이 애비의 가난을
너희들이 물려 받을 것이다.
우리들에겐 이미 익숙한 가난,
한번도 잘 살아본 적이 없기에
우리들은 가난 따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양옥집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아라
자가용 타는 사람을 시기하지 말아라
콩나물 아침 시내버스에 흔들리면서
남의 발등도 조금 밟으면서
증오보다는 사랑,
돈보다 의리가 더 값진 재산임을 믿으라.
가난은 또 하나의 스승,
궁핍 속에 고이는
풍성한 눈물을 배우라
척박한 땅,
맹물을 마시고 고운 꽃을 피우는
봄철 민들레의 웃음을 배우라
오늘 이 땅에는
남의 총 남의 깃발이 길을 막는데
팝송을 들으며
코카콜라를 마시며
코밑이 까칠해지는 아들아
아무리 달콤하게 속삭일지라도
아무리 술술 잘 넘어갈지라도
애들아, 너희는 구정물통에 뜬
기름진 선진국의 기름덩어리,
먹고 남아 돌아가는 버터에 길들은
할렘가의 검둥이가 되지 말아라
국적 모를 洋돼지가 되지 말아라
나의 아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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